存以甘棠 去而益詠: Difference between revi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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存以甘棠하니 去而益詠[注 1][注 2][注 3]이라 (存以◯甘棠하니 去◑而益●詠◉이라)
(註)〈周나라 召公이〉 甘棠나무 아래에 머무니, 떠나가도 더욱 〈功德을〉 노래한다.
周召公奭[注 4]이 在南國之日에 止舍於甘棠之下하니 南國之人이 無不從其敎化焉하니라
及其去也에 則民益思慕하여 作甘棠詩하여 曰 蔽芾[注 5]甘棠을 勿翦勿伐이어다 召伯所茇[注 6]이라하니 可見其澤之入人이 深也라
周나라 召公 姬奭이 남쪽 諸侯國에 있을 때에 甘棠나무 아래에 머물렀더니, 남쪽 제후국의 사람들이 그 교화를 따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가 떠나가고 나서, 백성들이 더욱 그를 사모하여 〈甘棠〉詩를 지어 “무성한 감당나무를 베지 말고 치지 말라. 召伯(召公)께서 草幕으로 삼으셨던 곳이다.” 하였으니, 그 恩澤이 사람들에게 들어간 것이 깊음을 알 수 있다.
[節解]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데에는 반드시 임금의 마음을 알아서 백성을 아껴야 하고, 또 召公이 南國을 떠나도 사람들이 사모하여 그가 쉬었던 나무를 남겨두어 베지 않고 더욱 노래하기를 무궁하게 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釋義≫)
存以甘棠
(韓) 주나라 소공이 남국의 아가위나무 아래에서 백성을 교화하였다.
(簡) 해당화는 달아서 좋이 써이고
주나라 소공이 남국의 아가위나무 아래서 백성을 교화 하였다. 있을 존(存), 써 이(以), 달 감(甘), 아가위 당(棠)
한자 유래
존이감당(存以甘棠)란 이 구절(句節)은 주(周)나라 소공(召公)의 일화(逸話)다. 주나라 소공(召公)은 감당(甘棠)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을 교화(敎化)했다고 한다. 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멸망(滅亡)시키자 나라의 기틀을 세운 공신(功臣)이 바로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다. 나중에 주공(周公)은 노(魯)나라를 식읍(食邑)으로 받았고 소공은 연(燕)나라를 식읍(食邑)으로 받았다. 주(周)나라 소공(召公)은 감당(甘棠)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을 교화(敎化)했다고 한다.
있을 존(存)은 재주 재(才)의 변형(變形)과 아들 자(子)로 짜여 있다. 재(才)에 대한 해석(解釋)은 갑골문(甲骨文)이 발견(發見)되기 전까지는 한(漢)나라의 문자학자인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풀이한 “재(才)는 초목(草木)이 처음 나온 모습(模襲)이다. 곤(丨)이 위로 자라 일(一)을 관통(貫通)하여 앞으로 가지와 잎이 생기려는 모양(模樣)으로 구성(構成)되었다. 일(一)은 땅을 뜻한다.”고 한 해석(解釋)을 따랐다. 이에 따라 가지와 잎이 아직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이란 뜻을 가지며 ‘처음 초(初), 처음 재(哉), 처음 시(始)’와 서로 통(通)한다고 했다. 그래서 초목(草木)의 성장(成長)에 따라 재(才)는 아직 잎이나 가지가 나오지 않은 상태(狀態)며, 철(屮)은 가지나 잎이 어느 정도(程度) 자란 것을, 지(之)는 줄기와 가지가 보다 자란 것을, 그리고 출(出)은 더욱 더 자란 모습(模襲)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 "설문해자(說文解字)"식의 해석(解釋)이다. 따라서 ‘될성부른 놈은 떡잎만 보아도 안다’는 이유(理由)에서 ‘재주’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갑골문(甲骨文)이 발견(發見)되고 부터는 전혀 다른 해석(解釋)이 가해지고 있다. 즉 재(才)에 대한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의 자형은 ‘땅의 경계표시 혹은 측량(測量)을 하기위해 땅에 박아놓은 나무로 만든 표식(標識)’으로 보여 진다. 자(子)는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본뜬 상형글자(象形字)이다. 따라서 존(存)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세대번식을 뜻하는 아이(子)가 특별한 경계구역(才)에 있음을 나타내 ‘시간’적으로 존재(存在)하는 ‘있음’을 뜻하고 있다.
써 이(以)의 옛글자인 㠯(이)의 모양(模樣)이 흙을 쌓아올린 형태(形態)로 볼 때, 사람(人)이 자형 좌변에 놓인 어떤 도구(丄)를 사용하여 흙(丶)을 퍼 올리는 것을 추측(推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어떠한 도구(道具)를 사용(使用)한다는 ‘--로써’라는 기구격(機構格) 조사(助詞)로 주로 활용(活用)된다.
달 감(甘)은 입(口)안에 있는 혀(一)로 무언가를 맛보고 있는 모양(模樣)을 나타낸 지사글자(指事字)다. 특히 혀 중에서도 끝부분은 오미(五味) 중에서도 단맛(甘)을 느낄 수 있으며, 신맛(酸)은 혀 안쪽의 가장자리, 매운맛(辛)은 혀 앞쪽의 가장자리, 쓴맛(苦)은 혀의 안쪽부분, 그리고 짠맛(咸)은 혀 전체로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입(口)안의 혀 중에서도 단맛을 느낄 수 있는 혀끝(一)을 나타내어 ‘달다’의 뜻과 함께 ‘맛있다’는 의미(意味)를 표현(表現)하였다. 갑골문(甲骨文)의 자형은, 입 안에 한 개의 짧은 가로선을 그려서, 음식물(飮食物)이 입안에 있을 때 그것의 단맛을 느낄 수 있는 감각 부위(感覺部位)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나타낸 지사자(指事字)이다. "감(甘)"이 부수자로 들어 있는 문자들은 "달다", "맛이 좋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가위 당(棠)은 나무 목(木)에 상(尙)이 합쳐진 형성문자(形聲文字)다. 옥편(玉篇)에 팥배나무라고 되어 있는데 배나무의 일종(一種)이라는 것을 암시(暗示)하지만 정확히 무슨 나무인지는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는 감당(甘棠)나무라고 하여 두 글자가 합쳐서 된 고유명사(固有名詞)로 나무 이름이다.
주역
[풀이] 주나라가 세워진 뒤에 문왕의 아들인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은 남쪽 제후국을 순수(巡狩)하며 선정(善政)과 교화(敎化)를 널리 베풀었다. 시경(詩經)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 두 편은 남쪽 백성들이 그 덕을 기려 노래한 시를 모아놓은 것이다. 存以甘棠은 소남편 감당(甘棠)에 '폐불감당(蔽甘棠)을 물전물벌(勿勿伐)하라', 즉 우거진 감당나무를 자르지도 말고 베지도 말라는 내용에서 연유하는데, 남쪽지방에 내려간 소공(또는 召伯)이 평소 감당나무 밑에서 유숙(留宿)하면서 정사를 보았으므로 백성들이 이를 흠모하여 소공이 머문 감당나무를 건드리지 말라고 노래한 것이다.
[字義] 存은 才(바탕 재, 싹 재)와 子(아들 자, 씨 자). 싹(才)을 틔우려면 반드시 씨(子)가 있어야 함을 이른다. 在(있을 재)의 경우는 싹(才)이 나오려면 반드시 그 토대(모체) 되는 흙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以는 밭갈 때 쓰는 쟁기를 든 사람(人)의 모습을 나타내며 用(쓸 용)과 비슷한 뜻을 지닌다. 기구격조사인 '~로써'의 용례로 많이 쓰인다. 마주 보는 두 사람, 즉 부모가 어린 자식()을 돌보는 것으로 보면, 자식이 부모의 사랑으로써 세상에 태어난다는 뜻도 된다. 甘은 입(口) 속의 혀끝(一)으로 단맛을 가리는 것에서 달다는 뜻을 나타낸다. 대개 혀의 안쪽은 쓴맛, 좌우는 신맛, 끝은 단맛을 느끼는 부위이다. 棠은 尙(받들 상, 숭상할 상)과 木(나무 목). 사람들이 받들고 우러르는 아가위, 즉 감당나무를 뜻한다.
[참조] 하늘()이 밝은 양기(종자)를 땅에 베풀어주면 땅()은 이를 받아들여 생명을 낳는다. 달력상의 기영(氣盈)은 임신부가 어린 생명을 잉태하여 뱃속에서 화육하는 이치에 부합하는데, 甘의 자형을 살피면 마침 卄(20)과 一(1), 즉 4년 주기로 생성되는 기영(氣盈) 도수 21일을 볼 수 있다. 단맛 또한 오행의 토(땅)에 배속된다. 乾(하늘 건) 坤(따 곤) 蒙(기를 몽, 어릴 몽) 革(고칠 혁, 바꿀 혁, 가죽 혁) 開(열 개) 黃(누를 황) 등도 이러한 역수법도를 나타낸 글자로 생각된다.
去而益詠
(韓) 소공이 죽은 후 남국의 백성이 그의 덕을 추모하여 감당시를 읊었다.
(簡) 이익만 챙기면, 내 몰린다.
소공이 죽은 후 남국의 백성이 그의 덕을 추모하여 甘棠詩를 읊었다, 갈 거(居),말 이을 이(而),더할 익(益),읊을 영(詠) 아가위나무는 산사나무를 가리킴이요 산사(山査)나무란 "쌍 덕 입 식물장미 목 장미 과의 낙엽활엽소 교목" 학명(學名) : Crataegus pinnatifida BUNGE 분류: 장미 과 분포지역:한국,중국,시베리아 등 자생지:산지, 크기:높이 3~6m. 군주가 선정을 펴기 위하여 장미 과에 속하는 아가위 나무아래에서 백성을 교화 하였다는 말은 기아선상에 있는 백성을 달래기 위하여 산사나무열매를 따먹으면서 백성 옆에 바짝 다가섰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사료된다. 本文 아가위나무라고도 한다. 산지(山地)에서 자란다. 높이 3∼6m이다. 나무껍질은 잿빛이고 가지에 가시가 있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에 가까우며 길이 6∼8cm, 나비 5∼6cm이다. 가장자리가 깃처럼 갈라지고 밑 부분은 더욱 깊게 갈라진다. 양면 맥 위에 털이 나고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으며 잎자루는 길이 2∼6cm이다. 꽃은 5월에 흰색으로 피고 사방 꽃 차례에 달린다. 꽃잎은 둥글며 꽃받침조각과 더불어 5개씩이다. 수술은 20개이며 암술대는 3∼5개, 꽃밥은 붉은 색이다. 열매는 이과(梨果)로 둥글며 흰 반점이 있다. 지름 약 1.5cm이고 9∼10월에 붉은빛으로 익는다. 넓은 잎 산사는 잎이 크고 얕게 갈라지며 열매 지름 약 2.5cm이고, 좁은 잎 산사는 잎의 갈래조각이 좁으며, 가세 잎 산사는 잎이 거의 깃 꼴 겹잎 같이 갈라지고, 털 산사는 잎의 뒷면과 작은 꽃자루에 털이 빽빽이 나며, 자작 잎 산사는 잎이 갈라지지 않는다. 한방에서는 열매를 산사자(山査子)라고 하며 건위제(健胃劑)·소화제·정장제로 사용한다. 민간에서는 고기를 많이 먹은 다음 소화제로 쓴다. 유럽에서는 유럽 산사나무의 열매를 크라테거스(Crataegus)라고 하는데, 강심제로 쓰고 5월에 꽃이 피므로 메이풀우워(May flower)라 고도 한다. 한국·중국·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한자 유래
이 구절은 소목공(召穆公) 호(號)가 남국(南國)의 백성(百姓)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다가 떠났는데, 그후에도 사람들은 그를 더욱 사모(思慕)해서 '감당(甘棠)'시를 지어 칭송(稱頌)했다. 옛날부터 훌륭한 인물(人物)이나 공적(功績)에 대해서는 극구(極口) 칭송(稱頌)하여 왔다. 그것이 바로 입덕(立德), 입공(立功), 입언(立言)으로 꼽히는 이른바 삼불후(三不朽)이다.
갈 거(去)에 대해 허신(許愼)은 "설문(說文)"에서 “거(去)는 사람이 서로 어긋나간다는 뜻이다. 대(大)로 구성(構成)되었고 자형하부의 거(凵)모양이 소리요소이다.”고 하였다. 갑골문(甲骨文)에는 사람의 모습(模襲)을 본뜬 대(大)와 고대인(古代人)들의 주거지(住居地)인 동굴(洞窟)을 의미하는 구(口)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따라서 그 의미(意味)는 사람(大)이 주거지(住居地)인 동굴(口)을 떠나 어디론가 간다는 뜻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오물(汚物)을 버리는 구덩이 위에서 대변을 보고 사람의 상형(象形)이라는 설로 ‘버리다’가 본뜻이라고 주장(主張)하기도 한다. 따라서 각(却)의 의미(意味)는 지위(地位)가 높은 사람 앞에 꿇어앉은 사람(卩)이 뒷걸음질을 하며 물러간다(去)는 데서 ‘물러나다’의 뜻이 발생(發生)했으며, 또한 적군(敵軍)의 무릎을 꿇려(卩) 항복(降服)을 받아 제거(除去)했다(去)는 데서 ‘물리치다’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말 이를 이(而)는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에도 보이는 자형(字形)으로 사람의 옆얼굴에 난 구렛나루를 의미(意味)하기도 하였지만 코밑과 턱에 난 수염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뜻인 ‘수염’보다는 말을 이어주는 어조사(語助辭)로써 널리 쓰이고 있다. 즉 위아래의 수염처럼 말을 ‘머뭇거리다’가도 다음 문장(文章)으로 ‘이어줌’ 을 뜻해 ‘말 이을 이’로 확장(擴張)되었다. 이(而)자는 코 밑(一) 인중 양옆과 턱 밑에 난 수염 꼴을 본뜬 상형자(象形字)로 '말을 잇다(而)'라는 뜻의 6획 글자이다. 그런데 이(而)자는 본래의 수염이란 뜻을 잃고 말을 잠깐 쉬면서 다음 할 말을 생각하면서 수염을 바라보게 된다는 데서 '말을 잇다'라는 뜻의 추상(抽象)적인 의미(意味)를 가리키는 지사자(指事字)가 되었다. 그래서 이(而)자는 수염의 원래 뜻이 실제(實際)로는 말을 잇는 표현(表現)인 '그리하여, 그러나(而)'라는 뜻으로 전용(專用)된 글자이다. 한편 이(而)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는 상대방(相對方)이 말을 잇는지 수염을 보고 기다리듯이 무슨 일을 "이어가는 상태(狀態)"에 대한 의미(意味)가 이어진다.
더할 익, 넘칠 일(益)은 물 수(水)와 그릇 명(皿)으로 구성(構成)되었다. 여기서의 수(水)는 옆으로 뉘여 있는 모양(模樣)인데, 바로 물이 넘치는 모습(模襲)을 표현(表現)한 것이다. 명(皿)은 음식(飮食)을 담을 수 있는 넓은 그릇을 본뜬 상형글자(象形字)다. 본디 제기용(祭器用) 그릇이었지만 일반적인 ‘그릇’의 대표명사(代表名詞)가 되었다. 따라서 익(益)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찰랑찰랑한 그릇(皿)에 물(水)을 더하면 넘치는 모양(模樣)을 회화적(繪畵的)으로 표현(表現)하여 ‘더하다’ ‘이롭다’ ‘넘치다’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읊을 詠(영)의 구성(構成)은 말씀 언(言)과 길 영(永)으로 이루어졌다. 언(言)은 입(口)에 나팔모양의 악기(辛)를 대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을 담았는데, 언(言)이 들어가는 글자는 입을 통해 소리로 묘사(描寫)하는 다양(多樣)한 행동(行動)적 양식(樣式)을 나타내게 된다. 갑골문(甲骨文)에 새겨진 영(永)자의 모양(模樣)은 현재자형과는 판이(判異)하게 다르다. 즉 거리나 걷는다는 뜻을 지닌 척(彳)과 사람(人) 그리고 물(氵)을 뜻하는 몇 개의 물방울이 새겨진 점으로 미루어 ‘물(氵)에서 헤엄쳐 가는(彳) 사람(人)’이 본뜻인데, ‘길다’란 의미(意味)로 쓰이자 본뜻을 보존(保存)하기 위해 ‘헤엄칠 영(泳)’을 별도(別途)로 만들었다. 현재자형인 永(영)은 소전이후에 정착한 것인데, 인문학적인 관점(觀點)에서 해석(解釋)하자면 자형상부의 ‘점 주(丶)’모양은 강의 시원(始原)이 되는 옹달샘을 뜻하며 하부의 수(水)는 모여들고 갈라지는 물줄기를, 그리고 수(水)의 가운데 획이 ‘ㄱ’모양으로 꺾인 것은 긴 강줄기를 표현(表現)하는 방식(方式)이다. 이에 따라 영(永)은 강의 시원이 된 옹달샘(丶)에서부터 모이고 나뉘는 길고 긴 물줄기(水)란 데서 ‘길다’ ‘오래’ 등의 뜻이 발생(發生)하였다. 따라서 영(詠)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아주 길고 오래토록(永) 목소리를 늘려 말한다(言)는 데서 ‘읊다’ ‘노래하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주역
[풀이] 存以甘棠의 바깥짝 대구(對句)이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백성들이 '소백(召伯)께서 머물다 간 감당나무를 어찌 다치고 상하게 하랴'는 存以甘棠의 시구를 읊으며, 소백의 훌륭한 덕치를 칭송하고 정신적으로 추모한다는 내용이다.
[字義] 去는 土(흙 토)와 눚(사사 사/ 마늘 모). 그릇의 뚜껑(덮개)을 덮은 형태로 음식물의 부패를 제거하는 뜻임을 관련글자인 (덮을 합, 어찌 합)에서 미루어 알 수 있다. 밝은 생명(一)을 낳는(눚) 흙(土)의 덕이 지극하다는 至(이를 지)와 대비되므로 흙속(土)에 파묻힘(눚), 즉 세상을 떠나(죽어) 땅으로 되돌아가 귀장(歸藏)됨을 나타내기도 한다. 而(멈칫거릴 이, 말 이을 이)는 하나로부터 여러 갈래로 나뉘는 모습으로서 어디로 갈지 멈칫거리는 뜻이 있으므로 문장의 순접과 역접 기능을 하는 접속사로 많이 쓰인다.
일설에는 而를 턱수염을 뜻하는 須(모름지기 수, 기다릴 수, 수염 수→鬚)에서 나온 것으로도 본다. 하늘에서 비 내리길 간구하며 때를 기다리는 需(구할 수, 음식 수, 기다릴 수)에도 이러한 뜻이 담겨있다. 益은 본래 皿(그릇 명)에 물(水→ )을 부어넣어 그득 채움을 뜻하는데 물건을 보태주는 것에서 '더하다·이롭다'는 뜻이 되었다. 관련 글자로 溢(넘칠 일)이 있다. 詠은 言(말씀 언)과 永(길 영). 말을 길게 끌어 노래하고 읊는 뜻이다.
[참조] 위에가 바람인 巽( ) 장녀이고 아래가 우레인 震( ) 장남인 괘가 風雷益이다. 하괘(下卦) 우레와 상괘(上卦) 바람이 서로 부딪쳐 만물을 동요(動搖)하게 하는 덕이 있으므로 유익함을 보는 것이다. 震( )은 양목으로서 힘차게 줄기를 벋어 나아가는 상이고 巽( )은 음목으로서 가지에 무성히 열매가 매달리는 상이므로, 뿌린 씨앗이 마침내 수확을 보아 그릇에 풍성하게 담기는 모습도 된다. 상고에 처음 농경법을 가르쳐 만민을 이롭게 한 신농씨(神農氏)는 이 익괘(益卦)의 원리를 응용하여 단단한 나무를 깎아 쟁기( )를 만들고 나무를 휘어 따비( )를 만들었다고 한다.
注
- ↑ 存以甘棠 去而益詠 : 存은 머문다는 뜻이다. 甘棠은 나무 이름이니, ≪草木疏≫에 이르기를 “지금의 棠梨이다.” 하였다. 去는 떠난다는 뜻이다. 而는 말을 돌리는 말이다. 益은 더한다는 뜻이다. 詠은 노래한다는 뜻이다. 召公 姬奭이 南國을 순행할 적에 감당 나무 아래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후인들이 그 공덕을 사모하고 이어서 그 나무를 아껴서 차마 베지 못하였다. 그 시에 이르기를 “무성한 감당 나무를 베지 말고 치지 말라. 召伯께서 초막으로 삼으셨던 곳이다.” 하였다.(≪釋義≫)
- ↑ 存以甘棠 : ‘存以’를 ≪註解≫에는 “止舍於”로 설명하여 ‘〈소공이〉 ……에 머물다’로 풀이하였고, ≪釋義≫에는 “留所止之樹而不伐”로 설명하여 ‘〈백성들이 소공이〉 머물던 나무를 남겨두어 베지 않다.’로 풀이하였다. ‘存’을 ≪註解≫에는 ‘머물다’로, ≪釋義≫에는 ‘나무를 머물러 두다.’로 풀이한 것이다. 存은 소공이라는 인물보다 감당이라는 나무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 ↑ 詠 : 咏(읊을 영)과 같다.(≪註解≫)
- ↑ 召公奭 : 周나라 文王의 庶子, 이름은 奭이다. 成王 때에 三公이 되어 陝(섬) 以西의 땅을 다스렸다. 일찍이 南方을 巡行하다가 감당나무 아래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가 떠나간 뒤에 그의 덕을 추모하고 그 나무를 아껴 노래를 지은 것이 ≪詩經≫ 〈甘棠〉이다. 召를 食邑으로 받고 諸侯의 우두머리로서 方伯이 되었기 때문에 召伯이라고 하였다. 陝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으로, ≪春秋公羊傳≫ 隱公 5年에 “陝 동쪽은 周公이 관할하고, 陝 서쪽은 召公이 관할한다.” 하였다. 오늘날 河南省 陝縣 지역이고, 더 큰 지역으로 西安이 속한 陝西省도 이 지명에서 유래된 것이다.
- ↑ 蔽芾 : 성대한 모양이다.(≪詩經≫ 〈甘棠〉 集傳)
- ↑ 茇 : 草家이다. 그 아래에 머물러 스스로 가려서 초가와 비슷할 뿐이니, 집을 지음을 말한 것이 아니다.(≪詩經≫ 〈甘棠〉 大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