俊乂密勿 多士寔寧: Difference between revi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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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on as of 08:38, 13 August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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俊乂密勿하여 多士寔寧[注 1]이라 (俊◑乂◑密●勿●하여 多士◯寔●寧◎이라)

()英俊 호걸들이 〈다스리는 데〉 부지런하여, 많은 學士들이 있어 이들로 태평하다.

大而千人之俊과 小而百人之乂가 咸集于朝하여 經緯密勿也라
俊乂在官하여 國以寧謐하니 詩云 濟濟多士여 文王以寧이 是也라
크게는 1천 명 중의 俊傑과 작게는 1백 명 중의 英傑이 모두 조정에 모여 다스리기를 부지런히 한다.
俊乂가 관직에 있어서 나라가 편안히 안정되니, ≪詩經≫ 〈大雅 文王〉에 이르기를 “가득히 많은 학사들이 있어서 이들로 文王이 편안하다.” 한 것이 이것이다.

[節旨] 이 아래 4節은 역시 위의 群英을 이어서 그 사람들을 종합적으로 거론하여 실증하였다.(≪釋義≫)
[節解] 여러 인재 가운데 공로가 기록된 이들은 또한 太公ㆍ伊尹처럼 세상을 도와 평안히 다스린 공로가 있으며 周公처럼 周나라를 도와 처음 책봉된 공로가 있으며 齊나라 桓公처럼 약자를 구제하고 기우는 이를 부축해 준 공로가 있으며 四皓처럼 태자를 정해준 공로가 있으며 傅說처럼 중흥시킨 공로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1천 사람 중에 俊傑이며 1백 사람 중에 英雄으로서 힘써 도와 다스렸고, 임금은 이 많은 인사들을 의뢰하여 편안하다고 말한 것이다.(≪釋義≫)

俊乂密勿

俊乂密勿

(韓) 준걸과 재사가 조정에 모여 빽빽하더라.

(簡) 준걸한 사람이 말할 수 없이 많으니

준걸과 재사가 조정에 모여 빽빽하더라. 정사를 보는 조정에 1.준걸은 3.빽빽하고 2.벨자는 4.없으니 즉 벌할 자가 없으니 나라가 발전을 할 조직(組織)이다. 준걸(俊傑;여럿 가운데에서 재주와 슬기가 썩 뛰어남.또는 그 사람 준사(俊士;a great men. 탁월한 사람). 준걸 준(俊), 어질 예(乂), 풀 벨 예(乂),풀 벨 예(刈),殺也에서 죽일 예(刈)로 乂와 같이 쓰인다. 빽빽할 밀(密), 말 물(勿),없을 물(勿). 조정에 모여 일을 하는 대신들이 俊士답게 노력 했으니 나라가 편안했다. 뛰어날 준(俊), 높을 준(俊)은 높을 준(峻)과 동일시됨, 깎을 예(乂)는 풀 등을 베어냄, 다스릴 예(乂) 나라를 다스림, 어진 이 예(乂)현재(賢材)로 현명한 사람, 징계할 예(乂), 은밀할 밀(密)심오함.남에게 알리지 아니함, 몰래 밀(密) 남 몰래 밀고함, 없을 물(勿)부정사(否定詞),바쁠 물(勿)을 창황(蒼黃)과 같은 뜻으로:겨를이 없이 매우 급함.망지소조(罔知所措)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서 허둥지둥함. being at a loss"준(準)"망조(罔措),

한자 유래

준예밀물(俊乂密物)은 재주와 슬기가 뛰어난 현사(賢士)들이 친밀(親密)하고도 성실(誠實)하게 천자(天子)를 도와 정사(政事)를 해나갔다는 뜻이다. 그런 인물들이 바로상(商)나라의 탕왕(湯王)을 보필(輔弼)한 이윤(伊尹), 상(商)의 고종(高宗), 무정(武丁)을 보필(輔弼)한 부열(傅說), 주(周)나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을 도운 태공망(太公望), 주(周)나라를 반석(盤石) 위에 놓은 주공(周公), 춘추오패(春秋五覇)의 으뜸으로 존왕양이(尊王攘夷), 제약부경(濟弱扶傾)한 제환공(齊桓公), 제환공을 도운 관중(管仲), 한(漢)의 혜제(惠帝)를 돌려 놓은 상산사호(商山四皓)인 기리계(綺里季), 동원공(東園公), 각리선생(角里先生), 하황공(夏黃公), 그리고 천자문에는 없지만 한(漢)의 고조(高祖)를 도운 장량(張良)과 소하(蘇何) 같은 인물(人物)도 이에 속할 것이다.>

준걸 준(俊)의 구성(構成)은 사람 인(亻)과 천천히 걷는 모양 준(夋)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亻)은 서 있는 사람을 옆에서 본 모양(模樣)을 본뜬 인(人)의 변형자(變形字)이며, 다른 부수의 좌변에 주로 놓인다. 준(夋)은 진실로 윤(允)과 사람이 아주 천천히 걷는 모양의 천천히 걸을 쇠(夊)로 구성되었다. 윤(允)은 사람(儿)의 입과 코에서 어떠한 기운이 나오는 모양(厶)을 나타내 ‘진실’ ‘믿음’이란 뜻과 함께 ‘맏아들’이란 뜻을 부여(附與)하였다. 이에 따라 준(夋)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는(夊) 믿음직한 사람(允)이란 뜻을 함유(含有)하고 있다. 따라서 준(俊)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믿음직한 모습(模襲)으로 늘름(凜凜)하게 걸어가는(夋) 사람(亻)이란 데서 ‘준걸(俊傑)’ ‘뛰어나다’ ‘높다’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준걸 준(俊)자의 준걸(俊傑)은 '뛰어난(傑) 호걸(俊)'이란 뜻이다. '준수(俊秀)하다'는 낱말 외에는 거의 사용(使用)되지 않지만, 남자 이름에는 많이 사용된다.

벨 예(乂)자는 삐침 별부(丿部) 글자로 삐친 것에 자르는 것을 가리켜 ‘베다(乂)’라는 뜻이다. 그리고 ‘벨 예(乂)’자는 ‘다스리다’라는 뜻으로 확장(擴張)된다. 예(乂)는 상형자(象形字)로, 풀을 베는 가위를 본뜬 모양(模樣)이다. 풀을 베는 뜻을 나타내어 '베다'의 뜻을 나타낸다. 불필요한 풀을 깨끗이 베는 것은 잘 다스려진 것이기에 '다스리다'의 의미(意味)가 있고, 잘 다스려지는 것은 어진이가 하는 일이기에 '어진이'를 뜻하게 된 것같다. 예(乂)는 낫을 이용(利用)하여 풀을 좌우로 베는 모양(模樣을 그려낸 자형으로 은유적(隱喩的)으로 풀을 베는 행위(行爲)는 곧 ‘다스림’을 뜻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낫을 좌우로 움직여 풀(艹)을 베는(乂) 행위 곧 민초(民草)를 ‘다스린다’는 뜻으로 뿐만 아니라 ‘쑥’이란 의미로 가차(假借)되었다.

빽빽할 밀(密)의 구성(構成)은 집 면(宀)과 반드시 필(必), 그리고 세 개의 산봉우리를 본뜬 뫼 산(山)으로 이루어졌다. 갑골문(甲骨文)에 그려진 宀(면)은 지붕뿐만 아니라 양 벽면을 길게 늘어뜨려 그려내고 있어 깊숙하고 은밀(隱密)한 내부모양(內部模樣)을 암시(暗示)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신전(神殿)과 같은 사당(祠堂)을 뜻한다. 필(必)의 초기글자인 갑골문(甲骨文)을 살펴보면 긴 자루가 달린 국자와 함께 몇 개의 물방울이 그려져 있는데, 아마도 제사를 지낼 때 술을 퍼 담는 기구로 보인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제사를 지낼 때는 술은 반드시 필요한 제수(祭需)였다는 점에서 술을 담는 국자 역시 반드시 함께 있어야할 용품이기에 ‘반드시’라는 의미(意味)를 가차(假借)한 것이다. 이에 따라 밀(密)은 수풀이 우거진 산(山) 속의 비밀스러운 사당(宀)에서 술을 올리는 모양(必)을 그려낸 것으로, 이러한 신당은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숲 속에 있다는 데서 ‘빽빽하다’ ‘고요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말 물(勿)자는 칼(刀)로 물건을 자르거나 베서 나누는 그림인데, 여기서 칼(刀)은 단순히 베고 자르는 도구(道具)가 아니라 나누고 더하면서 문제(問題)를 해결(解決)할 수 있는 권리(權利)와 능력(能力)을 상징(象徵)한다. 즉, 칼(刀)은 지배자(支配者)가 정성(精誠)을 다해 문제를 살펴서 바로잡거나, 없애거나, 하지 못하게 금지(禁止)시킬 수 있는 능력의 상징이다. 결국 물(勿)자는 '금지(禁止)'와 '독려(督勵)'라는 상반(相反)된 총체적(總體的) 능력을 담고 있다. 따라서 물(勿)자는 '없다, 말다, 아니다, 정성스럽다, 힘쓰다(勿)'라는 뜻이다. 그런데 절단(絶斷)하여 제거(除去)하는 칼의 기능은 손에 빗자루를 들고 흙먼지를 떨어내서 없애는 불진(拂塵)이나 총채로 흙먼지나 티끌을 떨어서 없애는 소진(掃塵) 기능과 유사(類似)하다. 물(勿)자는 이런 기능을 반영(反映)하면 '몰'로 전음(轉音) 되어 '털다, 총채(勿)'라는 뜻이다. "설문(說文)"에서는 “물(勿)은 큰 고을이나 작은 마을에 세운 깃발을 말한다. 깃대의 모양(模樣)을 본뜬 것으로 세 개의 깃발이 있는데, 여러 색의 천을 사용(使用)하며 깃 폭의 상하를 다르게 한다. 이것으로써 사람들을 모이게 하기 때문에 다급히 모이는 것을 ‘勿勿’이라 한다.”고 하였다. 갑골문(甲骨文)에도 보이지만 학자들의 해석(解釋)이 각양각색(各樣各色)이다. 그러나 현재 주로 ‘부정(否定)’과 ‘금지(禁止)’의 뜻으로 쓰이는 것으로 미루어 신성(神聖)한 장소의 출입(出入)을 금(禁)하는 깃발로 여겨지기도 한다.

多士寔寧

多士寔寧

(韓) 준걸과 재사가 조정에 많으니 국가가 태평함이라.

(簡) 준걸한 사람이 말할 수 없이 많으니

1.준걸과 재사가 조정에 많으니 국가가 태평 합니다 .語助辭 活用 大 많을 다(多), 선비 사(士), 이 식(寔), 편안할 녕(寧) 2.많은 진실한 선비가 있으니 나라가 편안 하다.語助辭 活用 中 3.많은 진실한 선비로 편안 하다. 語助辭 活用 小 많을 다(多), 뛰어날 다(多).다재능자(多才能者):뛰어난 재주와 능력 있는 자, 아름다울 다(多), 선비 사(士):벼슬길에 나아 간자, 이 식(寔), 진실로 식 (寔) 시(是)와 뜻이 같다, 편안할 녕(寧), 또 여기에서 발견한 것이 있다면 천자문은 과연 어조사(語助辭)에 관한 뿌리 공부라 할 수 있는 사실과 어조사(語助辭)를 대폭 생략하고, 표기된 한자(漢字) 그대로를 풀어 쓰면 위의 1, 2, 3 과 같은 표기를 볼 수 있다. 千字文은 第1句과 第2句을 合하여 하나의 글귀로 對句을 構成하면 뜻 풀이 亦是 앞 句을 意息 하면서 뒷 句를 풀이 하는 것이 正常임을 알 수 있다.

한자 유래

다사식녕(多士寔寧)는 수많은 선비들이 있어 나라는 실로 편안(便安)했다는 뜻이다. 여기서다사(多士)는 앞 절의 준예(俊乂)들이다. 많은 현사(賢士)들을 말한다. 앞에서 거론(擧論)한 인물들이다. 식실야(寔實也)라 했으니 식(寔)은 '실(實)로, 참으로'의 뜻이다. 따라서 식녕(寔寧)은 '실로 편안하다, 참으로 편안하다'는 뜻이다. 조정(朝廷)에 재주와 지혜(智慧)를 갖추고 높은 도덕성(道德性)을 함양(涵養)한 뛰어난 현사(賢士)들이 많다면 나라는 실로 태평성세(太平盛世)를 누릴 것이다.

많을 다(多)는 두 개의 고기 육(肉)의 간략형인 육달월(月)로 이루어졌다. 다(多)에 대해 한대(漢代)의 문자학자 허신(許愼)은 "설문(說文)"에서 “다(多)는 포개어졌다는 뜻이다. 석(夕)이 포개어진 모양(模樣)으로 구성(構成)되었다. 저녁이란 어둠이 계속 이어져 있기 때문에 다(多)라 한다. 석(夕)이 포개어지면 다(多)가 되고, 일(日)이 포개어지면 첩(疊)이 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甲骨文)과 금문(金文)의 자형(字形)을 살펴보면 고기육(肉)의 모양(模樣)이 ‘다(夕)’과 비슷한 모양(模樣)으로 그려져 있고 다(多)자 역시 두 개의 고깃덩어리(夕)가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에 따라 ‘많다’라는 뜻이 생겨났다.

선비 사(士)의 갑골문(甲骨文)을 보면 청동(靑銅)으로 만든 도끼모양(模樣)을 그렸다. 그러나 한(漢)나라의 문자학자(文字學者)인 허신(許愼)은 인문학적(人文學的)인 지식(知識)을 더해 “사(士)는 어떤 일(事)을 뜻한다. 숫자는 일(一)에서 시작하여 십(十)에서 끝나며, 사(士)자의 구성(構成)은 일(一)과 십(十)으로 짜여있다.”라고 하였다. 동양학(東洋學)에서 십(十)은 사물(事物)의 이치(理致)를 통달(通達)한 지극(至極)한 경지(境地)를 의미(意味)한다. 따라서 사(士)자의 의미(意味)는 하나(一)에서 열(十)까지 모든 일에 통달(通達)한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요즘에도 사(士)자가 들어가는 바둑의 기사(棋士)나 도사(道士)와 같이 해당분야(該當分野)에서 뛰어난 사람에게 붙여주는 칭호(稱號)로 쓰이고 있다.

이 식(寔)은 집 면(宀)과 바를 시(是)의 형성자(形聲字)이다. 시(是)는 '똑바로'의 뜻이다. 이는 무엇을 바르게(是) 집(宀)안에 둠의 뜻을 나타낸다. 식(寔)은 '시(是)'와 뜻이 같기에 '이, 이것'을 뜻하며, 또 식(寔)은 실(實)과 통하여 '진실로'의 뜻을 나타낸다. 식(寔)의 전문 자형은 면(宀)과 시(是)의 합자(合字)이다. 집 면(宀)은 집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집 우(宇), 집 실(室), 집 택(宅)에서처럼 집 뜻을 나타내기도 하며, 다른 글자의 요소(要所)로 사용될 경우(境遇)에는 '처해 있는 상태(狀態), 입장(立場)' 등의 어기(語氣)를 나타낸다. 정(正)이 '바르다'의 뜻에서 면(宀)를 덧붙인 정(定)은 '정(正)의 상태', '정(正)에 처해지다'로 '정하다'의 뜻을 나타낸다. 식(寔)도 시(是)에 접사가 덧붙여진 형태(形態)로 '밭다'의 소릿값을 나타내는 것이다. 상기 예문의 식(寔)을 기존의 풀이에서는 지시사(指示詞)인 '이, 이것'의 뜻으로 본다. 다음에 이어지는 '시인(是人)'을 '이 사람'으로 풀이한다. 하지만 이는 둘 다 오류(誤謬)이며, 식래(寔來)'란 '바투 오다'로 망설이거나 지체함이 없이, 기다렸다는 듯이 왔다는 뜻이며, '시인(是人)'에서의 시(是)도 지시사(指示詞)가 아니라 부사 '(바로/곧장, 그대로)'의 뜻으로 사용(使用)된 것이다.

편안할 녕(寧)은 본래 자형인 편안할 녕(寍)과 장정 정(丁)으로 구성(構成)되었다. 녕(寍)은 벽면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模襲)과 지붕을 본뜬 집 면(宀)과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며 심장을 상형(象形)한 마음 심(心), 그리고 음식물(飮食物)을 담은 그릇을 상형한 그릇 명(皿)으로 구성(構成)되었다. 이는 제사(祭祀_와 관련한 글자다. 즉 종묘나 사당(宀)에 그릇(皿) 가득 제물(祭物)을 차려 올리니 마음(心)이 놓여 ‘편안(便安)하다’는 뜻이 발생(發生)했다. 여기에 보다 사실적인 의미(意味)를 드러내기 위해 우뚝한 제단모양의 정(丁)을 첨가(添加)하였다.

  1. 俊乂密勿 多士寔寧 : 1천 사람 중의 英傑을 俊이라 하고 1백 사람 중의 영걸을 乂라고 한다. ≪書經≫ 〈皐陶謨〉에 이르기를 “俊乂가 관직에 있다.” 하였다. 密勿은 노력한다는 뜻이다. ≪詩經≫ 〈小雅 十月之交〉에 이르기를 “힘써 일을 따른다.” 하였는데, ≪漢書≫ 〈劉向傳〉에서 이것을 인용하여 “힘써 일을 따른다.” 하였다. 多는 많다는 뜻이다. ≪漢書≫ 〈食貨志 第4〉에 이르기를 “학문하여 벼슬에 있는 이를 士라 한다.” 하였다. 寔은 ≪韻會≫에 이르기를 “이것[是]이다.” 하였으니, ‘진실로[實]’와는 같지 않다. 寧은 편안하다는 뜻이다. ≪詩經≫ 〈大雅 文王〉에 이르기를 “가득히 많은 학사들이 있어 文王이 이들로 해서 편안하다.” 하였다.(≪釋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