劍號巨闕 珠稱夜光: Difference between revi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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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闕은 劍名이니 歐冶子<ref group="注">歐冶子 : 春秋時代 越나라의 칼 제작자. 越王을 위해 巨闕ㆍ湛盧ㆍ勝邪(승사)ㆍ魚腸ㆍ純鉤의 5검을 만들고, 楚王을 위해 龍淵ㆍ泰阿ㆍ工布의 3검을 만들었다 한다.(≪越絶書≫ 卷11)
巨闕은 劍名이니 歐冶子<ref group="注">歐冶子 : 春秋時代 越나라의 칼 제작자. 越王을 위해 巨闕ㆍ湛盧ㆍ勝邪(승사)ㆍ魚腸ㆍ純鉤의 5검을 만들고, 楚王을 위해 龍淵ㆍ泰阿ㆍ工布의 3검을 만들었다 한다.(≪越絶書≫ 卷11)
5검의 명칭에 대하여는 異說이 있어 그 표현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ref>所造라 越王句踐<ref group="注">句踐 : 春秋時代 越나라의 왕이다. 섶에서 자는 臥薪을 했던 吳나라 왕 夫差와 會稽山에서 교전하여 항복한 이후, 그 치욕을 씻기 위해 쓸개를 맛보는 嘗膽을 하여 오나라를 멸망시켰다.(≪史記≫ 卷41 〈越王句踐世家〉)</ref>이 滅吳하고 得寶劒六하니 吳鉤湛盧干將莫邪魚腸이요 此其一也라
5검의 명칭에 대하여는 異說이 있어 그 표현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ref>所造라 越王句踐<ref group="注">句踐 : 春秋時代 越나라의 왕이다. 섶에서 자는 臥薪을 했던 吳나라 왕 夫差와 會稽山에서 교전하여 항복한 이후, 그 치욕을 씻기 위해 쓸개를 맛보는 嘗膽을 하여 오나라를 멸망시켰다.(≪史記≫ 卷41 〈越王句踐世家〉)</ref>이 滅吳하고 得寶劒六하니 吳鉤湛盧干將莫邪魚腸이요 此其一也라<br>
夜光은 珠名이라 春秋時에 隨侯<ref group="注">隨侯 : 隋侯로도 혼용하였는바, 隨나라 諸侯의 칭호이다.</ref>活龍子한대 報以徑寸珠하니 照夜如晝라 獻于楚王하니 王大悅하여 數世에 不加兵於隨하니라
夜光은 珠名이라 春秋時에 隨侯<ref group="注">隨侯 : 隋侯로도 혼용하였는바, 隨나라 諸侯의 칭호이다.</ref>活龍子한대 報以徑寸珠하니 照夜如晝라 獻于楚王하니 王大悅하여 數世에 不加兵於隨하니라
巨闕은 보검의 이름이니, 歐冶子가 주조한 것이다. 越王 句踐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보검 여섯 자루를 얻었는데, 吳鉤ㆍ湛盧ㆍ干將ㆍ莫邪(막야)ㆍ魚腸이며, 이 巨闕도 그 중의 하나이다.
 
巨闕은 보검의 이름이니, 歐冶子가 주조한 것이다. 越王 句踐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보검 여섯 자루를 얻었는데, 吳鉤ㆍ湛盧ㆍ干將ㆍ莫邪(막야)ㆍ魚腸이며, 이 巨闕도 그 중의 하나이다.<br>
夜光은 진주의 이름이다. 춘추시대에 隨나라 임금이 용의 아들을 살려주자, 용은 지름이 한 치가 넘는 진주를 주어 그 은혜에 보답하니, 진주가 빛나 밤에도 대낮과 같이 환하였다. 이것을 楚王에게 바치자, 초왕은 크게 기뻐하여 몇 대가 지나도록 수나라에 전쟁을 걸어오지 않았다.
夜光은 진주의 이름이다. 춘추시대에 隨나라 임금이 용의 아들을 살려주자, 용은 지름이 한 치가 넘는 진주를 주어 그 은혜에 보답하니, 진주가 빛나 밤에도 대낮과 같이 환하였다. 이것을 楚王에게 바치자, 초왕은 크게 기뻐하여 몇 대가 지나도록 수나라에 전쟁을 걸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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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注 1]號巨闕이요 珠稱夜光[注 2]이라 (劍◑號◑巨◯闕●이요 珠稱夜◑光◎이라)

() 칼은 巨闕이 이름났고, 구슬은 夜光이 일컬어진다.

巨闕은 劍名이니 歐冶子[注 3]所造라 越王句踐[注 4]이 滅吳하고 得寶劒六하니 吳鉤湛盧干將莫邪魚腸이요 此其一也라
夜光은 珠名이라 春秋時에 隨侯[注 5]活龍子한대 報以徑寸珠하니 照夜如晝라 獻于楚王하니 王大悅하여 數世에 不加兵於隨하니라

巨闕은 보검의 이름이니, 歐冶子가 주조한 것이다. 越王 句踐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보검 여섯 자루를 얻었는데, 吳鉤ㆍ湛盧ㆍ干將ㆍ莫邪(막야)ㆍ魚腸이며, 이 巨闕도 그 중의 하나이다.
夜光은 진주의 이름이다. 춘추시대에 隨나라 임금이 용의 아들을 살려주자, 용은 지름이 한 치가 넘는 진주를 주어 그 은혜에 보답하니, 진주가 빛나 밤에도 대낮과 같이 환하였다. 이것을 楚王에게 바치자, 초왕은 크게 기뻐하여 몇 대가 지나도록 수나라에 전쟁을 걸어오지 않았다.

[節旨] 윗글에서는 天時가 구비된 뒤에 땅의 이로움이 일어남을 말하였다. 땅이 만물을 내는데 보배보다 귀한 것이 없으므로 우선 말하였다.(≪釋義≫)

劍號巨闕

劍號巨闕

(韓) 거궐은 칼 이름이며 구야자가 지은 보검(조나라 국보)이다.

(簡) 큰 칼은 궁궐의 상징이다.

巨闕은 칼 이름이고 구야자가 지은 보검이다.즉 조 나라의 국보다. 칼 검,(劍), 이름 호(號), 클 거(巨), 집 궐(闕)

한자 유래

거궐(巨闕)은 검(劍, 칼)의 이름이다. 이 검은 '담로(湛盧), 승사(勝邪), 어장(魚腸), 순구(純鉤)'와 '간장(干將), 막야(莫耶)' 등과 함께 고대 중국 최고의 보검(寶劍)으로 불린다. '거궐(巨闕), 담로(湛盧), 승사(勝邪), 어장(魚腸), 순구(純鉤)' 등의 검(劍)은 춘추시대 월(越)나라의 명장인 구야자(歐冶子)가 만든 것이고, '간장(干將), 막야(莫耶)' 등의 검(劍)은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명장 부부였던 간장(干將)과 막야(莫耶)가 만든 명검(名劍)이다. 특히 이 검들 가운데 '거궐(巨闕)'은 그 단단함과 예리함으로 큰 명성(名聲)을 얻었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거궐(巨闕)로 청동(靑銅)이나 쇠그릇을 찌르거나 베면 잘린 곳에 기장쌀만한 구멍이 곳곳에 뚫렸다고 한다. 검(劍)의 날이 워낙 예리하고 잘 들어 쇠붙이 속의 공기 거품이 눌리지 않고 잘려나가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얘기다. '거궐(巨闕)'이라는 검의 이름도 이 때문에 생겨났는데, 즉 '속이 비어 크게 구멍이 났다'는 뜻이다. 칼 검(劍)의 구성(構成)은 다 첨(僉)과 칼 도(刂)로 이루어졌다. 첨(僉)은 모일 집(亼)과 사람의 입을 뜻하는 두 개 입 구(口)와 두 개의 사람 인(人)으로 짜여 있는데,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한다하여 ‘모두’ 혹은 ‘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도(刂)는 도(刀)의 간략형(簡略)으로 한 쪽 날만을 세운 칼이다. 따라서 검(劍)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한 쪽 날만을 세운 도마용 칼과는 달리 양 날(僉)을 세운 칼(刂)이라는 데서 ‘검’ ‘칼로 찌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부르짖을 호(號)는 부를 호(号)와 범 호(虎)로 구성(構成)되었다. 지금이야 통신수단(通信)이 발달(發達)해 수백리가 떨어져 있어도 의사전달(意思傳達)이 가능(可能)하지만, 옛날에는 호랑이(虎)처럼 포효(咆哮)하듯 불러야(号)만 강 건너편이나 들판 저편의 사람과 의사전달(意思傳達)이 가능(可能)했다. 예전에는 이름을 소중(所重)히 여겨 함부로 부르지 않았던 관습(慣習)이 있었다. 시집을 온 색시를 안성댁, 울산댁 등 고향 이름으로 부른 것도 그런 이유(理由)다. 이름은 부모(父母)나 스승이 그 아들이나 제자(弟子)를 부를 때 사용(使用)하였고, 자신보다 높은 위치(位置)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금기시하였다. 이런 관습(慣習)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본래(本來)의 이름 이외에 호(號)를 지어 불렀다. 김정식(金廷湜), 박영종(朴泳鍾), 이백(李白)이란 이름은 잘모르지만, 이 사람들의 호(號)인 김소월(金素月), 박목월(朴木月), 이태백(李太白)은 잘 알려져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클 거(巨)는 가운데에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자인 곡척(曲尺)을 본떠 ‘크다’ ‘많다’는 뜻을 부여(附與)했다. 금문(金文)에 보이는데, 工(공) 자 모양(模楊)의 커다란 자를 사람(大)이 손을 뻗어 잡고 있는 모양(模樣)이다가 소전(小篆)으로 오면서 현재(現在)의 자형(字形)을 이루었다. 거인(巨人), 거대(巨大) 등에 들어가는 클 거(巨)자의 상형문자(象形字)를 보면 목수(木手)들이 사용(使用)하는 '곱자(曲尺, 직각(直角)을 확인(確認)하기 위해 만든 자)'를 손으로 들고 있는 사람을 본떠 만든 글자다. 하지만 큰 대(大)자 모양(模樣)의 사람은 사라지고, 자와 손만 남았다. 거(巨)자에서 감출 혜(匸) 자의 모습(模襲)이고, 중간(中間)에 있는 입 구(求)는 손의 모습(模襲)이다. 나중에 가차(假借)되어 '크다, 많다'는 뜻이 생기면서, 원래의 뜻을 분명(分明)히 하기 위해 화살 시(矢)자를 붙여 곱자 구(矩)자가 되었다. 거문도(巨文島)는 '문장가(文)가 많은(巨) 섬(島)'이란 뜻으로, 전남 여수(麗水)와 제주도 중간 지점(地點)에 위치(位置)한 섬이다. 거문도(巨文島)라는 이름은 중국 청(淸)나라 제독 정여창(丁汝昌)이 섬에 학문(學文)이 뛰어난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거문(巨文)'으로 개칭(改稱)하도록 건의(建議)하여 거문도(居文島)가 되었다고 한다

대궐 궐(闕)의 구성(構成)은 두 짝의 문과 문중, 일가의 뜻을 나타내는 문 문(門) 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모자라다', '비다'의 결(缺)을 나타내는 숨찰 궐(欮)로 이루어진 형성문자(形聲字)다. 즉 '임금이 거처(居處)하는 곳'의 통틀어 일컫는 궁궐(宮闕)이란 궁(宮)과 궐(闕)이 합쳐진 말이다. 왕족(王族)이 가득 모여 사는 규모(規模)가 크고 웅장(雄壯)한 건물(建物)이 궁(宮)이라면, 출입문(出入門) 좌우에 설치(設置)하였던 망루(望樓)를 지칭(指稱)하는 말이 궐(闕)이다.

주역

문자 풀이

金生麗水에 연계된 문구로 품질 좋은 쇳덩이를 캐내어 정련(精練)한 명검 중 거궐을 예시하였다. 거궐(巨闕)이라는 칼은 옛날 구야자(區冶子)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월(越)나라 임금 구천(句踐)이 오(吳)나라와 싸워 이기고 여섯 자루의 보검을 얻었는데, 그 이름은 각각 오구(吳鉤), 담로(湛盧), 간장(干將), 막야(莫耶), 어장(魚腸), 거궐(巨闕)이었으며, 이 중 거궐(巨闕)이 가장 훌륭한 보검으로 전해내려 온다.

글자 풀이

劍은 僉(다 첨)과 刂(선칼 도). 등과 날로 나뉜 刀(칼 도)와 달리 양쪽 다 날이 세워진 칼을 이른다. 僉은 모인(亼 모을 집) 사람들이 한 목소리(口+口)를 내어 쫓아감(从→從) 즉 일을 완수하고자 단합한다는 뜻이다(合+合: 異口同聲).

號는 唬(범이 울 호)와 丂(막힌 숨이 돌연 터져 나옴). 범(虎)이 아가리(口)를 벌려 부르짖는 것에서 우렁차게 외친다는 뜻이며 号는 그 속자이다. 자신을 떳떳이 세상에 알리는 號 외에 부모가 지어 함부로 부를 수 없는 名(이름 명)과 성인의식을 치를 때에 받는 字(시집갈 자)가 있는데, 모두 兌( : 기쁠 태, 바꿀 태, 서방 태, 말씀 태)와 관련된다. 연못의 수증기나 입김을 표상한 兌가 서방 백호(白虎), 해지는 저녁, 씨(자식)를 거두는 가을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巨는 자(工)를 손( 에서 一을 뺌)으로 움켜쥔 모습으로 물건을 만드는 데 공구의 힘이 크다는 뜻이다. 대목들이 쓰는 도구인 직각자와 그 손잡이를 본뜬 工(장인 공, 이을 공)은 천지(二)의 기운이 교통하여(丨) 만물을 만듦 또는 사람이 천지이치를 통하여 물건을 만든다는 뜻도 된다. 대학(大學)에는 평천하(平天下)의 요체를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혈구지도(絜矩之道)로 표현하였다. 잣대를 균제방정(均齊方正)하게 활용하여 큰일을 감당한다는 뜻에서다.

闕은 門(문 문)과 欮(쿨룩거릴 궐). 천자의 대궐(궁궐)을 말하며, 보궐(補闕)의 용례에서 보듯이 빠짐을 뜻하기도 한다. 인원수를 셀 적에 만백성의 중심인 천자는 빼놓기 때문이다. 임금과 귀인의 이름은 공경하는 뜻에서 글자획을 줄여 쓰고 한두 글자 쓸 자리를 비우거나 줄을 바꾸는데, 이를 궐획(闕畫) 궐자(闕字)라고 한다. 欮은 떠받쳐(凵) 되받아내는 屰(거스를 역→逆)과 기력이 떨어져 하품한다는 欠(하품 흠, 부족할 흠)을 합쳐, 쿨룩거림을 나타낸다.

珠稱夜光

珠稱夜光

(韓) 구슬의 빛이 낮같으므로 야광이라 일컬었다.

(簡) 옥 구슬은 야광처럼 빛난다.

구슬의 빛이 밤에도 낮 같은 고로 야광이라 칭했다. 구슬 주(珠), 일컬을 칭(稱), 밤 야(夜),빛 광(光), 여기에서 巨闕 이라는 명검이 있는데, 巨闕은 고대의 명검이라 하며 四大名劍中의 하나로 <<순자(荀子)>> 성악편(性惡篇)에 [간장](干將). 막야(莫耶). 거궐(巨闕). 벽려(僻閭)는 모두 옛날의 양검 이다. (干將莫耶巨闕僻閭 此皆古之良劒也)라고 했다. 여기에서 놀 날만 한 것은 비록 천자문이라고는 하나 광범위한 지식의 깊이에 이르니 보통의 공부로서는 천자문의 경지에 따라가기 어렵도다. 주칭야광(珠稱夜光)에 관하여 주(珠)는 합중정음(蛤中精陰)이라 했는데 본래의 뜻은 곧 조개 속에 있는 진주인 것이다 . 칼 검(劍), 이름 호(號), 클 거(巨), 집 궐(闕), 구슬 주(珠), 일컬을 칭(稱), 밤 야(夜), 빛 광(光) 뒤에 알아보기:벽 려(閭).

한자 유래

珠稱夜光(주칭야광)에서 '야광(夜光)'은 어두운 밤에도 빛을 발(發)하는 구슬을 뜻한다. 이때 구슬은 진주 혹은 옥(玉)을 말한다. 곤륜산(崑崙山)이 옥(玉)의 명산지(名産地)라면, 강한(江漢, 양자강과 한수 유역)은 진주(眞珠)의 명산지(名産地)다. 또 옥(玉)에 대한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고사(故事)가 있듯이, 진주(珍珠)와 관련해서는 '수후지주(隨侯之珠)'라는 고사(故事)가 있다. 춘추시대 수(隨)나라의 군주(君主)였던 수후(隨侯)는 어느 날 자신의 궁전(宮典)에서 몹시 괴로워하고 있는 큰 뱀을 구해주었다. 그런데 그 뱀은 용(龍)의 아들로, 뒷날 양자강(揚子江)에서 보옥(寶玉)을 물어다가 수후에게 은혜를 갚았다. 앞서 얘기했듯이 양자강은 진주의 명산지(名産地)로, 그 보옥(寶玉)은 다름 아닌 진주(珍珠) 구슬이었다. 그것도 보통 진주(珍珠)가 아니라 밤에도 대낮처럼 환하게 빛을 발하는 보물 중의 보물, 야광주(夜光珠)였다. 이때부터 세상 사람들은 그 구슬을 '수후지주(隨侯之珠, 수후의 야광주)'라고 불렀다. 이것을 초왕(楚王)에게 바치니 초왕은 크게 기뻐하여 몇대가 지나도록 수나라를 침략(侵略)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두 고사(故事)를 보면 중국인들은 옥(玉)이든 진주(珍珠)든 구슬이라면, 반드시 야광(夜光)이어야만 진짜 보배라고 여겼던 듯하다. 화씨지벽(和氏之壁) 역시 야광주(夜光珠)였다.

구슬 주(珠)의 구성(構成)은 구슬 옥(玉)과 붉을 주(朱)로 이루어져 있다. 옥(玉)자는 옥으로 만든 둥근 구슬 세 개(三)를 실에 꿰어(丨) 놓은 모습(模襲)인데, 다른 자형(字形)에 더해질 때는 점(丶)을 생략(省略)한 채 왕(王)자처럼 쓴다. 주(朱)의 갑골문(甲骨文)은 나무 목(木)의 중심부에 점(丶)을 표시(表示)한 모양(模樣)이다. 나무를 자르고 중심부(中心部)를 살펴보면 ‘붉은색’이 드리워 있는데, 바로 이러한 색깔을 표시(表示)한 지사글자(指事字)라 할 수 있다. 현재자형을 인문학적(人文學的)으로 살펴보면 자형상부(丿+一)의 모양(模樣)은 나무(木)를 자를 때 사용(使用)하는 ‘톱’의 모양(模樣)으로 보인다. 이러한 흔적(痕迹)은 나무를 베고 난 그루터기를 뜻하는 ‘그루 주(株)나 형벌(刑罰)의 하나인 ‘벨 주(誅)’에 남아 있다. 따라서 주(珠)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붉은색(朱)을 띈 옥(玉)을 갈아 둥글게 만든 ‘구슬’을 뜻하게 되었으며 또한 ‘진주(珍珠)’나 ‘방울’이란 뜻도 지니고 있다.

일컬을 칭(稱, 저울 칭)의 구성(構成)은 벼 화(禾)와 둘을 한꺼번에 들 칭(爯)으로 이루어졌다. 화(禾)의 자형은 갑골문(甲骨文)에도 보이는데, 곡식(穀食)의 이삭이 익어 수그러진 모습(模襲)을 본뜬 상형글자(象形字)이다. 즉 고개를 숙인 이삭(丿)과 좌우로 뻗은 잎사귀(一), 그리고 줄기(丨)와 뿌리(八)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벼는 곡식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점을 감안(堪案)하여 모든 곡식(穀食)의 총칭(總稱)으로 쓰이기도 한다. 칭(爯)은 손가락을 이용(利用)해 뭔가를 집는 모양(模樣)을 상형(象形)한 손톱 조(爫)와 어떤 물건(物件)을 꾸려놓은 모양(模樣)의 자형하부로 구성(構成)되었는데, 즉 손으로 그 꾸러미를 ‘든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칭(稱)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벼와 같은 곡식(禾)을 들어 올려(爯) 무게를 가늠한다는 데서 ‘저울’이라는 뜻을 지님과 함께 곡식(穀食)을 들어 올려 저울에 무게를 달 때마다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소리친다는 데서 ‘일컫다’ ‘설명(說明)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밤 야(夜)는 또 역(亦)의 생략형(省略形)과 저녁 석(夕)으로 구성(構成)되었다. 역(亦)에 대해 허신(許愼)은 "설문(說文)"에서 “역(亦)은 사람의 팔 아래 겨드랑이를 뜻한다. 대(大)로 구성(構成)되었으며, 좌우 두 획은 겨드랑이 모양(模樣)을 본뜬 것이다.”고 하였다. 갑골문(甲骨文)의 자형은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서있는 사람(大)의 팔 아래 두 개의 점을 표시(表示)해 겨드랑이를 나타내고 있다. 본뜻은 ‘겨드랑이’였으나 ‘또’라는 의미(意味)로 쓰이자 ‘겨드랑이 액(腋)’을 별도(別途) 제작(制作)하였다. 석(夕)은 해가 서산으로 지고 반달이 동쪽 산허리에 걸친 모양(模樣)이라 할 수 있다. 갑골문(甲骨文)에는 반달 모양(模樣)으로 그려져 있어 월(月)이나 석(夕)의 구분(區分)이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다 후대(後代)로 오면서 월(月)은 달 자체를, 석(夕)은 밤을 뜻하다, 밤을 뜻하는 야(夜)의 등장(登場)으로 석(夕)은 또다시 해질녘으로 세분화(細分化) 되었다. 따라서 야(夜)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또(亦) 다시 동쪽 산으로 달(夕)이 떠오르니 ‘밤’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빛 광(光)은 불 화(火)의 변형부수와 어진사람 인(儿)으로 구성(構成)되었다. 화(火)는 타오르는 불꽃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象形字)이다. 갑골문(甲骨文)과 금문(金文)을 참조(參照)해 볼 때, 광(光)자를 이루는 자형상부의 모양(模樣)에서 세 점으로 된 것은 불 화(火)의 변형(變形)이며 일(一)은 불을 담은 화로로 보인다. 또한 자형하부는 사람이 꿇어앉은 모양(模樣)이다. 따라서 광(光)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어둠을 밝히기 위해 사람(儿)이 머리 위로 불꽃(火)이 타오르는 횃불이나 화로 들고 있는 모양(模樣)으로 인위적으로 밝힌 빛을 뜻한다. 또 한편으로 우리 인체 중에 빛의 입자(立子)인 광자(光子)가 가장 많이 발현(發現)되는 곳이 머리부위인 점을 감안(堪案)해 보면, 성인(聖人)에게 나타난 후광(後光)과도 전혀 무관(無關)하지는 않을 것이다.

주역

문자 풀이

주칭야광(珠稱夜光)은 옥출곤강에 연계된 문구이며, 곤륜산에서 캔 뛰어난 옥 가운데 어두운 밤중에도 대낮같이 영롱하게 붉은 빛을 뿜는 진주(珍珠)를 일컫는다. 오행 중 어둠을 밝히는 불(火)은 남방에 속하는데, 그 신령스런 짐승이 봉황(鳳凰)의 일종인 주작(朱雀)이다. 밝은 덕을 숭상하는 뜻에서 옥 또한 붉은 광채를 내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따라서 주칭야광은 구슬 중에는 밤에도 빛나는 야광주가 제일이라는 말이다. 야광주에 얽힌 고사는 상당히 많은데, 대표적인 것으로 춘추시대에 수(隨)나라 임금이 용(龍)의 아들을 살려주자 그 용은 길이가 한 치 넘는 진주를 그에게 주어 은혜에 보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진주는 빛이 나서 밤에도 낮과 같이 환하게 비쳤다. 수나라 임금은 이것을 초(楚)왕에게 바쳤고, 초왕은 크게 기뻐하여 몇 대가 지나도록 약소국인 수나라를 침공하지 않았다고 한다.

글자 풀이

珠는 玉(구슬 옥)과 朱(붉을 주). 붉은 빛을 내뿜는 옥을 뜻한다. 株(그루터기 주)와 制(지을 제) 등에서 보듯이 朱는 본래 잘라낸 나무 밑동을 나타내며, 그 표면이 붉다는 뜻이다.

稱은 禾(벼 화)와 爯(들 승). 秤은 속자이다. 쌓은 볏단을 들어올려 무게를 다는 저울을 뜻하며, ‘달다’ ‘일컫다’ 등의 동사로도 쓰인다. 저울 눈금을 보아 근량(斤兩)을 헤아리듯이 대상물을 정확히 파악하여 지목(指目)하는 것이다. 爯은 爪(손톱 조)와 再(두 재, 거듭 재) 즉 차곡차곡 쌓아 들어올린다는 뜻이다.

夜는 亠(머리 두) 밑에 亻(人)과 月(달 월)을 변형한 夂(뒤져서올 치)와 丶(점 주). 달(月)이 천천히 올라와서 모든 이(亻)가 집에 들어가(亠→入) 잠자는 밤을 뜻한다. 낮과 밤을 해와 달이 밝히므로 주야(晝夜)에 각기 日月이 들어있다.

光은 하늘의 밝은 빛을 뜻하며, 元(으뜸 원) 先(앞 선) 등과 글자형태와 의미상 맥을 같이한다. 위는 해와 달과 별의 빛살을 나타내고 아래 兀(우뚝할 올)은 높은 하늘을 가리키는데, 땅(一) 밑에 씨(儿)가 뿌리내리고 줄기(丨)와 가지(丷)를 뻗는 모습이기도 하다.

※ [참조] 천지를 낳는 태극(太極)은 광명(光明)하며, 역(易)은 이 태극을 보유하고 있다. 易은 삼천양지(參天兩地: 하늘은 셋, 땅은 둘)를 기본수리로 하는데, 光의 위(小)는 하늘의 3, 아래(儿)은 땅의 2, 중간(一)은 삼천과 양지를 낳는 태극의 1에 상응한다.

아호(雅號)를 쓰는 의미에 대하여

사람이 태어나서 부모에게서 받는 이름을 ‘명(名)’, 자라서 성인의식을 치를 때에 받는 것을 ‘자(字)’, 사회적으로 자신을 떳떳이 알리기 위해 자신의 의지나 취향을 나타내어 스스로 짓는 것을 ‘자호(自號- 퇴계退溪 이황)’, 집에 대한 것을 ‘택호(宅號- 여유당與猶堂 정약용)’, 죽은 후 나라에서 그 공덕을 기려서 내려주는 것을 시호(諡號 – 충무공忠武公 이순신)라 하며 존경하는 스승이나 친한 벗들이 그 사람에게 어울리게 지어주는 것을 ‘아호(雅號 – 阮堂 김정희)’라 한다.

명(名)이라 함은 흔히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말한다. 보통은 부모와 같은 어른만이 자식 같은 아이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부모님이 지어준 명(名)은 어둠에 덮이듯 삼가야 하므로 함자를 ‘귀로는 들을지언정 입으로는 말하지 않는다(耳可得聞, 口不可言也)’라고하여 소중히 여겼다.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諱(꺼릴 휘)’라고 하여 함부로 웃어른의 함자를 부르지 않았다. 여기에서 연원되어 명(名)은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이름이라 하여 자(字)와 호(號)로써 대신하였다.

자(字)가 관(冠)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호(號)는 입(口)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갓으로써 성년(成年)이 되었음을 표시한다면 입으로써 인격체(口實, 成果)를 헤아리게 되는 것이다.

호(虎)를 보통 청룡(靑龍)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백호(白虎)라고 부르는데, 백호는 방위로는 서쪽에 속하며 계절로는 오곡백과가 영글고 단단히 열매 맺는 가을철에 해당한다. 때문에 호(號)는 봄, 여름 동안 자신을 갈고 닦으며 때를 기다리다가 때가 무르익어 가을이 되면 口가 글자 위에 있어서 범이 포효(咆哮)하듯 세상에 내놓고 널리 쓰는 것이다.

오곡백과도 가을이 되면 제각기 그 호칭(號稱)대로 열매를 맺는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가을시기에는 몸과 마음이 모두 성숙하여 자기의 뜻과 공부한 바를 세상에 널리 펴 마침내 나도 바꾸고 세상도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또 이름과 호를 놓고 말하면 다같이 입으로 부르는 것이지만, ‘이름 명(名)’자는 저녁 석(夕) 밑에 입(口)이 가려져 있어 부르기 어렵고(諱), ‘부를 호(號)’자는 입이 위로 드러나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부를 수 있다. 때문에 평등(平等)을 강조 하는 지금은 부르는 이와 듣는 이에게 수평(大同)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호가 널리 쓰일 수 있는 시대이다.

지금 익히는 천자문 또한 각각 나름대로의 사연과 의미가 잠장된 천개의 호칭이 주어진 글자들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1. 劍 : 異形同字로 劒ㆍ劎은 劍의 籒文, 劔은 劍의 俗字이다.(≪中≫)
  2. 劍號巨闕 珠稱夜光 : 劍은 병기이다. 巨闕은 보검의 이름이다. 越王 允常이 歐冶子를 시켜 보검 5자루를 주조하였는데, 巨闕ㆍ純鉤․湛盧ㆍ莫邪ㆍ魚腸이다. 珠는 조개의 정기이니, 珠의 아름다운 것은 밤이 되어서도 광채가 있다. ≪搜神記≫에 말하였다. “隋侯는 상처난 큰 뱀을 구해주었는데 뒤에 뱀이 구슬을 물어 와서 보답하였다. 밤에 빛이 나서 집을 비출 수 있으므로 시대를 내려오면서 그것을 일컬었다.”(≪釋義≫)
  3. 歐冶子 : 春秋時代 越나라의 칼 제작자. 越王을 위해 巨闕ㆍ湛盧ㆍ勝邪(승사)ㆍ魚腸ㆍ純鉤의 5검을 만들고, 楚王을 위해 龍淵ㆍ泰阿ㆍ工布의 3검을 만들었다 한다.(≪越絶書≫ 卷11) 5검의 명칭에 대하여는 異說이 있어 그 표현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4. 句踐 : 春秋時代 越나라의 왕이다. 섶에서 자는 臥薪을 했던 吳나라 왕 夫差와 會稽山에서 교전하여 항복한 이후, 그 치욕을 씻기 위해 쓸개를 맛보는 嘗膽을 하여 오나라를 멸망시켰다.(≪史記≫ 卷41 〈越王句踐世家〉)
  5. 隨侯 : 隋侯로도 혼용하였는바, 隨나라 諸侯의 칭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