宣威沙漠 馳譽丹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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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威沙漠[注 1]하고 馳譽丹靑[注 2]이라 (宣威沙漠●하고 馳譽丹靑◎이라)
(註)威力을 사막에 펼치고, 畫像에 얼굴을 그려 명예를 전파하였다.
沙漠은 朔北[注 3]極邊之地니 言爲將者能宣揚威武於沙漠也라
丹靑은 圖其形貌라 樹功則圖形하여 而馳名譽於永久하니 如漢宣帝圖畫功臣於麒麟閣[注 4]이 是也라
沙漠은 朔北의 맨 끝 변방의 지역이니, 장군이 된 자가 위엄과 무용을 사막에 능히 펴 드날림을 말한 것이다.
丹靑은 그 얼굴과 모양을 그린 것이다. 공을 세우면 얼굴을 그려 명예를 영원히 전파하니, 漢나라 宣帝가 공신들을 麒麟閣에 그려놓은 것이 그것이다.
[節旨] 이는 여러 영재들이 武功을 세운 것을 말하였다.(≪釋義≫)
[節解] 이는 이 네 사람이 군대 운용을 매우 잘하여 威嚴을 북방 사막의 땅에 펼치고, 그 名譽가 멀리 달려 나가 심지어 그 화상을 그려서 잊지 않게 됨을 말한 것이다.(≪釋義≫)
이상 4節은 모두 여러 영재들의 성대함을 말하였으니 예컨대 殷나라의 伊尹ㆍ傅說이 있고, 주나라의 周公ㆍ太公望이 있고, 한나라의 四皓가 있는 것과 같다. 또 확충하여 말하였으니, 예컨대 五霸ㆍ七雄의 謀臣ㆍ策士가 있고, 명분과 법률을 담당한 이에 蕭何ㆍ韓非와 같은 이가 있고, 武功을 세운 이에 白起ㆍ王翦ㆍ廉頗ㆍ李牧과 같은 이가 있어 이루 다 셀 수 없다고 한 것이다.(≪釋義≫)
宣威沙漠
(韓) 장수로서 그 위엄은 멀리 사막에까지 퍼졌다.
(簡) 베푸는 것은 모래와 같이 많아야 하며
장수로서 그 위엄은 멀리 사막에 까지 퍼졌다.
여기에서 선(宣)하면 선전포고를 의미함이니 전쟁
터에서는 장수의 위엄이 云云되며, 장수가 모래땅에 선 위엄이 사막에 퍼졌다.
宣 沙,砂 威 漠
1 3 2 4
베풀 선(宣).선전(宣戰), 펼 선(宣), 밝힐 선(宣).선명(宣明),보일 선(宣).선시(宣示), 말할 선(宣). 임금이 스스로 말함,
위엄 위(威), 세력 위(威). 위세(威勢), 거동 위(威). 위의(威勢),
모래 사(沙), 사막 사(沙). 넓은 모래벌판, 돌의 부스러기.사석(沙石), 물가 사(沙). 물가의 모래땅,
아득할 막(漠), 사막 막(漠), 넓을 막(漠).광막(廣漠), 쓸쓸할 막(漠).막(寞)과 같이 쓰인다
한자 유래
선위사막(宣威沙漠)은 명장(名將)들의 위엄(威嚴)이 멀리 사막(沙漠)까지 떨쳤다는뜻이다. 선위(宣威)는 '위엄(威嚴)을 떨치다'는 뜻이고, 사막(沙漠)은 아득히 넓은모래벌판을 말한다. 여기서 명장(名將)이란 앞서 소개한 명장(名將)들인 진(秦)나라의 백기(白起)와 왕전(王翦),조(趙)나라의 염파(廉頗)와 이목(李牧)을 말한다. 이들의 명성은 멀리 사막까지 알려져 위세를 떨쳤다는 뜻이다.
베풀 宣(선)의 구성(構成)은 지붕과 벽면을 그려낸 집 면(宀)과 베풀 선(亘, 뻗칠 긍)으로 이루어졌다. 갑골문(甲骨文)과 금문(金文)에 새겨진 선(宣) 자는 면(宀) 아래에 나선형(螺旋形)의 무늬로 그려져 있었는데, 소전(小篆)을 거치면서 현재자형이 된 긍(亘)으로 변해버렸다. 긍(亘)의 본래 자형은 긍(亙)이었는데, 가운데 달 월(月)이 날 일(日)로 변화(變化)되었다. 자형 아래의 일(一)은 해나 달이 떠오르는 동쪽의 지평선(地平線)을 뜻하고, 위쪽의 일(一)은 해(日)나 달(月)이 지는 서쪽의 지평선(地平線)을 의미(意味)한다. 바로 낮밤을 번갈아가며 해와 달이 뜨고 지면서 천지(天地)를 밝혀준다는 데서 ‘뻗치다’ ‘베풀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선(宣)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임금이 궁궐(宀)에서 백성들에게 널리 선정(善政)을 베푼다(亘)는 데서 ‘베풀다’ ‘펴다’ ‘공표(公表)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위엄 위(威)의 구성(構成)은 도끼 월(戉)의 변형인 개 술(戌)과 여자 여(女)로 이루어져 있다. 월(戉)은 부족 내의 큰 의식(儀式)을 치를 때 그 위엄(威嚴)과 권위(權威)를 나타내기 위해 장식용(裝飾用)으로 활용(活用)했던 ‘큰 도끼’ 모양(模樣)의 무기를 말한다. 여(女)는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모아 신(神)에게 기도(祈禱)하는 사람을 그려낸 상형글자(象形字)이다. 모계사회(母系社會) 때 만들어진 글자로 당시에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중심이 되어 제사(祭祀)를 주도(主導)하게 되었는데, 이후 부계사회(父系社會)로 넘어오면서 여자를 지칭(指稱)하는 대명사로 남게 되었다. 따라서 위(威)는 모계사회 때의 유풍(流風)을 담은 글자로 그 의미(意味)는 가정 내의 모든 일을 관장했던 여자(女) 가장의 위엄(威嚴)을 나타내기 위해 거실과 같은 곳에 큰 도끼(戉)를 걸어두었던 것을 그려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위엄은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는 다만 ‘시어머니’로서의 역할로 축소(縮小)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위엄’을 뜻하면서도 ‘시어머니’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모래 사(沙)자는 형부(形部)인 물(氵)과 성부(聲部)인 '적을 소(少)'자가 '사'로 전음(轉音);된 형성자(形成字)이다. 그러니 사(沙)자는 물(氵)이 적어서(少) 드러난 '모래(沙)'를 뜻한다. 성부(聲部)인 소(少)자는 '모래 사(沙)'자의 본의(本意)를 담고 있다. 소(少)자는 네 점을 찍어 작은 물체(物體)가 흩어진 것을 나타내어 '적다, 약간, 조금(少)'라는 뜻이다. 그런데 소(少)자는 형부(形部)인 작은(小) 물체(物體) 및 보조형부(補助形部)인 삐쳐나감(丿)과 성부(聲部)이기도 한 '작을 소(小)'로 된 형성자(形成字)이다. 그러니 소(少)자는 작은(小) 물체가 삐쳐(丿) 나와 흩어진 양(量)이나 크기가 '적다(少)'라는 뜻이다. 따라서 물 옆에 작은 점들이 찍힌 사(沙)자는 물(氵)이 적어서(少) 드러나는 '모래, 모래알, 사막(沙)'를 뜻한다. 그리고 모래가 드러나 있는 '물가(沙)'를 뜻하기도 한다. 모래(砂)는 물살에 의해 돌(石)이 잘게(少) 부서진 것이다. 강 하류(下流)에는 사천(沙川)이 있고, 바다 해변(海邊)에는 백사장(白沙場)이 생성된 것이다. 모래가 많은 곳에서는 모래찜질로 일컫는 사욕(沙浴)을 하며, 주변의 푸른 소나무와 어우러진 청송백사(靑松白沙)의 아름다운 해안 경치(海岸景致)까지 만끽(滿喫)할 수 있다. 그리고 나루 정자(亭子) 밑 주막(酒幕)>에서는 백토(白土)를 구워만든 사기질(沙器質) 술잔(酒盃)과 술병(酒甁)에서 반짝이는 질감(質感)과 함께 텁텁한 막걸리를 들이켜 여정(旅情)을 달래기도 하였다. 또한 물가에는 모래 속에서 사금(砂金)을 거르기도 했으며, 나룻배를 젓는 사공(沙工)도 한 폭의 그림에 늘 등장(登場)할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운치(韻致)들이다. 지금은 자연(自然)이 모래를 만드는 속도(速度)보다 사람들이 가져다 쓰는 양(量)이 너무 많아서 심한 불균형(不均衡)을 이루고 있다. 물(氵)이 적어서(少) 드러나는 모래(沙) 땅에 그늘을 만들고 물을 붙드는 나무를 심어 사막(沙漠)이 녹지(綠地)로 바뀌는 그 날이 올 것이다.
사막 막(漠)자는 형부인 물(氵)과 성부인 '없을 막(莫)'자로 된 형성자(形聲字)이다. 막(漠)자는 물(氵)이 없는(莫) '사막(漠)'을 뜻한다. 성부인 막(莫)자는 '사막 막(漠)'자의 본의를 담고 있다. 막(莫)자는 해(日)의 위쪽 양옆과 아래쪽 양옆에 풀(艹)을 각각 그린 상형자(象形字)이다. 그런데 후에 아래쪽 풀(艸)이 '大'자로 변하면서 가운데 해와 더해져 '햇빛 대(旲)'자가 되었다. 즉 풀(艹)과 해(日)와 '풀(艹=艸) 해(日) 큰 풀(大)' '풀'과 '햇빛'의 변화 과정(變化過程)을 거쳤으며 '풀숲에 해가 숨어 사라지다'는 개념(槪念)에서 '없다, 아득하다, 막막하다(莫)'라는 뜻이 되었다. 따라서 풀숲 속으로 해가 사라지니 어두워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물이 그렇다는 막(漠)자는 물(氵)이 없는(莫) '사막(漠)'을 뜻한다. 해양(海洋)이 한없이 펼쳐진 물의 세계라면, 사막(沙漠)은 모래가 아득하게 펼쳐진 광막(廣漠)한 세계이다. 그러니 해양이든 사막이든 넓고 아득하여 막막(漠漠), 망막(茫漠)하고 저 멀리 무엇인가 보이더라도 어렴풋하니 막연(漠然)한 세상이다.
馳譽丹靑
(韓) 그 이름은 생전뿐 아니라 죽은 후에도 전하기 위하여 초상을 기린각에 그렸다.
(簡) 칭찬은 한없이 많아야 한다.
그 이름은 생전 뿐 아니라 죽은 후에도 전하기 위하여 초상을 그린 각에 그렸다. 여기에서 [초상을 모신 각에 하면 초상(肖像)을 기리는 비각(碑閣)을 지칭함에는 누각의 뜻도 포함이 된다.] 1.馳 3. 丹 2.譽 4.靑 後世에 전하기 위하여 성실함을 기리고 칭찬을 하는 내용을 초상(肖像),비석 등에 기록하고 (丹靑:彩色)碑閣에 세우다. 달릴 치(馳). 질주함. 수레나 말 등을 빨리 모는 것 .마음을 그 방면으로 빨리 돌림, 전할 치(馳), 칭찬할 예(譽), 기릴 예(譽), 붉을 단(丹). 붉은 채색을 함, 성실(誠實)내용에서는 성실할 단(丹). 태도나 언행이 정성스럽고 단정함, 푸를 청(靑). 단청(丹靑):건축물 (옛날식 건물)등의 벽. 기둥.천장 등에 여러 가지 그림과 무늬의 채색. 단벽(丹碧). 채색(彩色) painting. 적(赤)과 청(靑). red and blue, 學習考:1.선인들의 천자문 글 句와 節의 풀이 내용에서 이해가 불편하다 하여 함부로 평을 하면 절대로 아니 되며 評을 할 생가에 앞서 漢字의 多樣한 뜻을 辭典이나 大玉篇을 중심으로 파악을 먼저 해야 함을 再考反省 합이다. 이것이 진지한 공부를 하는 자세 임을 알게 된다. 본 節(對句)에서 공부한 내용과 역사적 배경 중 장수들은 진(秦)나라 백기(白起)와 왕 전(王剪) 이나, 조(趙)나라의 염파(廉頗)와 이목(李牧)같은 명장들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그 위력을 사막 끝에 까지 떨쳤다. 제왕(帝王)중심적 정치시대의 지세 관리(地勢管理)와 중국의 九州등의 시세(地勢)를 양(梁)나라 무제(武帝)시대의 천자문 내용관계(關係)를 푼다.
한자 유래
치예단청(馳譽丹靑)은 그들의 명예(名譽)를 단청(丹靑)하여 드날렸다는 뜻이다. 치예(馳譽)는 '명예(名譽)를 말이 달리듯이 드날리다, 명성(名聲)을 마치 말이 달리듯이 전하게 하다'의 뜻이다. 단청(丹靑)은 도상(圖象)을 말한다. 도상(圖象)이란 화상(畵象)이라고도 하는데 그림으로 그린 사람의 모습(模襲)을 말한다. 단청(丹靑)이란 일반적으로 궁궐(宮闕)이나 사찰(寺刹) 전각(殿閣)에 여러 가지 빛깔로 그린 그림이나 무늬를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뜻한다.
달릴 치(馳)는 뜻을 나타내는 말 마(馬) 부(部)와 소리를 나타내는 어조사 야(也)로 이루어진 형성자(形聲字)로, '야(也)'는 '넘실거리게 하다'의 뜻이니, '말이 등을 넘실거리게 하면서 빨리 달리다'의 뜻이다. 치(馳)는 말 마(馬) 변에 말 이이를 야(也)를 한 문자로 달리다(疾驅馳騖), 거동하는 길(御路馳道), 전하다(傳達) 등의 뜻이 있으며, 야(也)는 새 을(乙) 부수에 있다. 즉 치(馳)는 달리는 것을 바로 말임(馬也)을 그렸다. 여기서 치(馳)와 구(驅)의 차이점(差異點)이 있다. 둘은 동의어(同義語)로서, 모두 '말이 빨리 달린다', '재빨리 말을 몬다'는 뜻이다. 그러나 '치(馳)'와 '구(驅)'는 명확한 구분이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시경(詩經) 용풍(鄘風) 재치(載馳)'의 '재치재구(載馳載驅)' 부분은 말이 빨리 달리는 것을 뜻하는 반면, '시경(詩經) 대아(大雅) 판(板)'의 '무감치구(無敢馳驅)'부분은 말을 빨리 달리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함부로 행동(行動)하는 것을 뜻함이다. 그렇지만 훗날 '치(馳)'자는 주로 '쾌포(快跑)'와 함께 쓰여, 그 의미가 '빠르다', '유포(流布)되다' 등으로 발전(發展)하였다. 반면 '구(驅)'는 '말을 빨리 달리도록 한다'는 의미(意味)에서 점차 '말을 채찍질하여 달리게 하다', '마음대로 부리다', '몰아내다', '제거(除去)하다' 등으로 그 의미(意味)가 확장(擴張)하였다. 따라서 이 두 글자는 명확(明確)하게 구분(區分)이 된다.
기릴 예(譽)의 구성(構成)은 줄 여(與)와 말씀 언(言)으로 이루어졌다. 여(與)의 구성(構成)은 마주 들 여(舁)와 짚이나 끈 등으로 꼬아 만든 새끼줄을 본뜬 여(与)로 이루어졌다. 여(舁)는 네 손을 사용(使用)하여 무언가를 함께 들어 올리는 모양(模楊)을 본뜬 상형글자다. 자형상부의 두 손으로 무언가를 들어 올리는 모양(模楊)은 본래는 절구를 뜻하는 구(臼)가 아니라 밑변이 떨어져 있는 ‘국’이었는데, 많은 자형에서 혼용(混用)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전(字典)에서 찾을 때도 구(臼)부수에서 찾아야 할 만큼 원래의 뜻이 무시(無視)되고 있다. 자형의 하부는 두 손으로 뭔가를 받들어 올린다는 ‘두 손으로 받들 공(廾)’이다. 그래서 여(舁)의 의미(意味)는 두 사람이 양손(臼 + 廾)을 사용(使用)하여 어떤 물건(物件)을 마주 들고 있는 모양(模楊)을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여(與)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여러 사람이 양 손(舁)을 이용(利用)하여 부족(部族)의 결속(結束)을 다지기 위해 함께 꼬아 만든 동아줄(与)을 들어 올린다는 데서 ‘더불다’ ‘참여(參與)하다’ ‘함께하다’의 뜻이 생겨났으며, ‘주다’의 뜻은 확장(擴張)된 것이다. 언(言)은 입(口)에 나팔모양의 악기(辛)를 대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을 담았는데, 언(言)이 들어가는 글자는 입을 통해 소리로 묘사(描寫)하는 다양(多樣)한 행동적(行動的) 양식(樣式)을 나타내게 된다. 따라서 예(譽)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여러 사람이 더불어(與) 떠받들며 말한다(言)는 데서 ‘기리다’ ‘칭찬(稱讚)하다’ ‘이름나다’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붉을 단(丹)은 통나무로 형틀을 짠 ‘우물 난간’의 모양(模樣)을 본뜬 우물 정(井)의 변형(變形)과 광물(鑛物)을 뜻하는 점 주(丶)로 구성(構成)되었다. 정(井)에 대해 허신(許愼)은 "설문(說文)"에서 “정(丼)은 여덟 가구가 하나의 우물을 사용(使用)한다는 뜻이다. 우물 위에 나무로 짜 얹은 형틀을 본떴으며 가운데 점(丶)은 두레박의 모양(模樣)이다.”고 하였다. 여기서 정(井)은 우물이 아니라 광석(鑛石)을 깨내기 위해 판 갱도를 의미(意味)한다. 즉 갑골문(甲骨文)과 금문(金文)에 그려진 자형을 보면 광산의 갱도(井)에서 광물(丶)을 깨내는 모양인데, 땅속 깊은 곳에서 얻을 수 있는 붉은 주사(朱砂)를 나타내 ‘붉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옛사람들은 나무의 중심부가 붉은색임을 朱(주) 자로 나타냈고, 또한 땅속 깊은 곳의 중심부 역시 붉다고 보았는데 바로 ‘붉을 丹(단)’으로 표현(表現)하였다. 즉 丹(단)이란 어떤 사물의 중심부(中心部)를 가리킨다.
푸를 청(靑)에 대해 허신(許愼)은 "설문(說文)"에서 “청(靑)은 동쪽 방향(方向)을 나타내는 색(色)이다. 목(木)은 화(火)를 낳는다는 오행의 상생관계(相生關係), 목생화(木生火)를 뜻한다. 생(生)과 단(丹)으로 구성(構成)되었다.”고 하였다. 갑골문(甲骨文)에는 보이지 않지만 금문(金文)에 그려진 자형을 보면 광산의 갱도(井)에서 광물(丶)을 깨내는데, 자형(丹)이 형성(形成)된 시대적인 배경(背景)으로 보아 구리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붉은 뜻을 갖은 단(丹)은 안료(顔料)로 쓰이는 주사(朱砂)나 진사(辰砂)를 의미(意味)하기도 하지만, 구리(銅)를 나타내기도 했다. 따라서 구리(丹)가 산화(酸化)되면 푸른빛을 낸다(生)는 점에 착안(着眼)하여 ‘푸를 청(靑)’이라 하였다. 따라서 정(情)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깊은 마음(忄)속에서 우러나는 푸른 하늘처럼 맑고 깨끗한(靑) ‘사랑’이나 ‘정’을 말한다.
注
- ↑ 宣威沙漠 : 宣은 펼친다는 뜻이다. 威는 군대의 위엄이다. 沙는 ≪說文≫에 이르기를 “돌이 물에 부서진 것이다.” 하였다. 漠은 광대하다는 뜻이다. 북방의 땅은 모두 모래에다 초목이 나지 않아 한 번 바라봄에 광대하므로 사막이라고 한다.(≪釋義≫)
- ↑ 馳譽丹靑 : 馳는 말이 빨리 달려감이다. 譽는 명성이다. 丹靑은 모두 채색이니, 그림에 쓰는 것이다. 이는 그 명성을 그림 속에 전파한 것으로 예컨대 한나라 宣帝가 공신들을 麒麟閣에 그려놓고 後漢 明帝가 공신들을 雲臺*에 그려놓은 것과 같은 부류라고 말한 것이다.(≪釋義≫)
- 雲臺 : 臺 이름이다. 漢나라 궁중의 높은 대인데 南宮 안에 있다. 後漢 永平 연간에 明帝가 功臣들을 추념하여 鄧禹 등 28장군의 화상을 그 위에 그려놓았다.(≪中≫)
- ↑ 朔北 : 북방 邊塞 밖의 지역이다.(≪中≫)
- ↑ 麒麟閣 : 漢나라 때의 전각 이름으로 未央宮 안에 있다. 한나라 宣帝 때 일찍이 霍光 등 11공신의 화상을 기린각 위에 그려놓아 그 공적을 나타내 드날렸다.(≪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