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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


온라인 법첩

서예의 五書

  • 전서(篆書)
    춘추전국시대 이전에는 도량형은 물론이고 문자도 서로 통일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의 문자를 대전大篆이라고 한다고 한다. 이 대전을 묶어 하나로 정리한 이가 바로 진나라의 진시황 그리고 초대 재상이었던 이사. 이렇게 정리된 문자를 소전小篆이라고 했고, 이 글씨를 쓰는 법을 전서라고 부른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전서의 폭은 워낙 넓어 한정하기 어렵기는 하다. 상형에 가까운 갑골문자들이 거의 그림이나 기하학적 기호처럼 표현된 글씨가 전서라고 보면 된다. 실용적인 언어에 쓰이기보다는 의식용으로 많이 쓰인 듯하다.
  • 예서(隸書)
    전서가 하나하나 그리는 데에 시간이 너무 오래걸렸기 때문에 이를 간소화한 서법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 때 예서가 등장했다고 한다. 현재 식으로 따지자면 '옛체'에서의 한자서체와 비슷한 형태. 전서보다 약간 옆으로 퍼져서 정사각형에 가까운 서체.
  • 해서(楷書)
    아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반듯한 서체. 통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궁서체'의 글씨가 해서와 비슷하다. 표준이라는 의미에서 '진서眞書'나 '정서正書'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당나라의 안진경이 이 해서의 달인이었다고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는 안평대군이 해서에 대단히 능했다고 한다. 몽유도원도에 안평대군이 발문한 글씨가 해서의 표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 행서(行書)
    이름도 비슷-_-하기도 하고 해서를 약간 흘려쓴 것 같은 느낌인데다 밑에 나올 초서보다는 또렷해서 해서와 초서 사이에 등장한 서법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생겨난 시기는 오히려 초서보다도 뒤. '해서를 흘려쓴' 것이라기 보다는 '초서를 똑바로 쓴' 글씨에 가깝다. 서예를 하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서법 자체가 해서보다는 행서에 기초한다고 한다. 해서는 너무 범생이같고 초서는 알아볼 수가 없어서 일종의 절충안인 이 행서가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후기의 대표적인 명필 김정희가 행서의 대가였다고.
  • 초서(草書)
    영어의 필기체라고 보면 된다. 나같은 문외한이 알아보기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지만 하나의 그림으로서의 심미성은 뛰어나다. '언어로서의 글씨書'라기보다는 '회화예술藝'로서의 기능에 충실한 느낌. 동진시대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의 초서가 가장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한호, 김정희와 더불어 조선시대 3대 명필로 이름을 알린 양사언이 초서에 능하다고 한다. (큰 글씨에도 능했던 양사언의 글씨는 금강산 만폭동바위에 아직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붓글씨


기본


관리법


서예가

  • Mò Yǒu Zhī (莫友芝, 막우지), 1811 - 1871, 청(淸)나라 말기
  • Huáng Tíng Jiān (黄庭坚, 황정견), 1045 - 1105, 송代
  • Zhào Bǐng Wén (赵秉文, 조병문), 1159 - 1232, 금代
  • Mengfu Zhao (趙孟頫, 조맹부), 1254 - 1322, 원代
  • 董其昌 (동기창)
  • Xǔ Shèn (許愼, 허신), 30 - 124, 東漢代
  • 米芾 (미비)
  • 王铎 (왕탁)
  • 清人 (청인)
  • 歐陽詢/欧阳询 (구양순), 해서, 행서
  • 敬世江 (경세강)
  • 何绍基 (하소기)
  • 丰熙 (봉희)
  • 王羲之(왕희지), 307 ~ 365, 초서
  • 蘇軾(소식), 1036 ~ 1101
  • 智果(지과)
  • 薛曜(설요), 698 ~ 700
  • 孫過庭(손과정), 648 ~ 703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