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Difference between revi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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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明德이란 무엇인가? 물론 明德을 밝힌다는 말이다. 明明德은 字意대로 이미 「밝은 德」인데 왜 「밝은 德」을 또 밝힌다는 것인가? 明德을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德字의 뜻부터 풀어 본다. 德의 古字는 悳이다. 悳字는 直과 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直心, 곧 곧은 마음을 德이라 했다. 孔子는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直으로 사는 것이다」라고 했다. 삶의 외부적 현상은 食, 色으로 살아가는 것이지만, 삶의 내부적 본질은 直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孔子의 人生觀이라고 말할 수 있다. 孔子가 말한 「直한 마음」이 곧 悳이다. 그것은 사람이 모두 공동으로 가지는 마음이므로 뒤날에 文字사용할 때 悳字에다가 두 人偏(久)을 加하여 德字가 되었다. 또한 그것은 사람이 태어날 때에 하늘로부터 얻은 것이라 하여 德字는 得의 뜻도 갖게 되었다. 《周易》 繫辭에 「天地의 큰 德을 生이라 한다」고 했다. 사람은 天地의 큰 德인 生을 얻어서 자기의 德을 삼았다. 그러므로 孔子가 말한 直은 곧 生의 德이라고 할 수 있다. 生의 德인 直은 단순한 正直의 뜻만이 아니다. 孔子가 말한 直은 自然한 것, 인간의 本性에서 나온 것, 사람의 「眞情의 흐름」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연한 진정의 흐름을 孔子는 仁이라고 생각했고 孟子는 좀 더 나아가 仁義라고 하여 이것은 하늘이 준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인간이 본성으로 지니고 있는 이 生의 德은 본래 순수하고 깨끗하다 하여 明德이라 했다.
明明德이란 무엇인가? 물론 明德을 밝힌다는 말이다. 明明德은 字意대로 이미 「밝은 德」인데 왜 「밝은 德」을 또 밝힌다는 것인가? 明德을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德字의 뜻부터 풀어 본다. 德의 古字는 悳이다. 悳字는 直과 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直心, 곧 곧은 마음을 德이라 했다. 孔子는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直으로 사는 것이다」라고 했다. 삶의 외부적 현상은 食, 色으로 살아가는 것이지만, 삶의 내부적 본질은 直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孔子의 人生觀이라고 말할 수 있다. 孔子가 말한 「直한 마음」이 곧 悳이다. 그것은 사람이 모두 공동으로 가지는 마음이므로 뒤날에 文字사용할 때 悳字에다가 두 人偏(久)을 加하여 德字가 되었다. 또한 그것은 사람이 태어날 때에 하늘로부터 얻은 것이라 하여 德字는 得의 뜻도 갖게 되었다. 《周易》 繫辭에 「天地의 큰 德을 生이라 한다」고 했다. 사람은 天地의 큰 德인 生을 얻어서 자기의 德을 삼았다. 그러므로 孔子가 말한 直은 곧 生의 德이라고 할 수 있다. 生의 德인 直은 단순한 正直의 뜻만이 아니다. 孔子가 말한 直은 自然한 것, 인간의 本性에서 나온 것, 사람의 「眞情의 흐름」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연한 진정의 흐름을 孔子는 仁이라고 생각했고 孟子는 좀 더 나아가 仁義라고 하여 이것은 하늘이 준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인간이 본성으로 지니고 있는 이 生의 德은 본래 순수하고 깨끗하다 하여 明德이라 했다.


「」 《》
일찌기 學者들은 明德의 해석에 대하여 각기 다른 見解를 보였다. 漢代 鄭玄은 明德을 「至德」이라 풀이했고 孔穎達은 「자기의 光明한 德」이라 했다.
일찌기 學者들은 明德의 해석에 대하여 각기 다른 見解를 보였다. 漢代 鄭玄은 明德을 「至德」이라 풀이했고 孔穎達은 「자기의 光明한 德」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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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王陽明은 《大學問》에서 明德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다음 王陽明은 《大學問》에서 明德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大人은 天地萬物로써 一體를 삼는 者라서 天下를 한 집같이 보며 中國을 한 사람같이 보나니 저 形骸로 사이하고 너, 나를 나누는 者는 小人이다. 大人이 能히 天地萬物로써 一體를 삼는 것은 그렇게 하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仁이 원래 이렇듯이 천지만물과 더불어 하나가 되니, 어찌 大人만이 이러하겠는가. 小人일지라도 마음은 그러하지 아니함이 없는데, 제 스스로 적게 만들었을 뿐이다.
<blockquote>「大人은 天地萬物로써 一體를 삼는 者라서 天下를 한 집같이 보며 中國을 한 사람같이 보나니 저 形骸로 사이하고 너, 나를 나누는 者는 小人이다. 大人이 能히 天地萬物로써 一體를 삼는 것은 그렇게 하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仁이 원래 이렇듯이 천지만물과 더불어 하나가 되니, 어찌 大人만이 이러하겠는가. 小人일지라도 마음은 그러하지 아니함이 없는데, 제 스스로 적게 만들었을 뿐이다.<br><br>이러므로 철모르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고 반드시 惻隱한 마음이 드는 것도 이는 그 仁이 어린아이와 더불어 一體가 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같은 인간이므로 그렇다고 하자. 鳥獸가 슬피 울고 벌벌거리는 것을 보아도 반드시 不忍한 마음이 드는데 이는 그 仁이 鳥獸와 더불어 一體가 되기 때문이다. 鳥獸는 知覺이 있기 때문이라 하자. 草木이 꺾어지는 것을 보아도 반드시 애틋한 마음이 드는데 이것도 그 仁이 草木과 더불어 一體가 되기 때문이다. 草木은 차라리 生意가 있기 때문이라 하자. 瓦石의 毁壞를 보고도 애틋한 마음이 드는데 이것도 그 仁이 瓦石과 더불어 一體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一體의 仁은 비록 小人의 마음일지라도 반드시 있으니 이것은 실로 天命의 性으로 좇아 우러나 자연히 靈昭不昧한 것이다. 그래서 明德이라 한다」</blockquote>
王陽明은 이와 같이 明德을 天地萬物과 一體가 되는 길로서의 「커다란 仁」으로 풀이했다.


이러므로 철모르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고 반드시 惻隱한 마음이 드는 것도 이는 그 仁이 어린아이와 더불어 一體가 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같은 인간이므로 그렇다고 하자. 鳥獸가 슬피 울고 벌벌거리는 것을 보아도 반드시 不忍한 마음이 드는데 이는 仁이 鳥獸와 더불어 一體가 되기 때문이다. 鳥獸는 知覺이 있기 때문이라 하자. 草木이 꺾어지는 것을 보아도 반드시 애틋한 마음이 드는데 이것도 그 仁이 草木과 더불어 一體가 되기 때문이다. 草木은 차라리 生意가 있기 때문이라 하자. 瓦石의 毁壞를 보고도 애틋한 마음이 드는데 이것도 그 仁이 瓦石과 더불어 一體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一體의 仁은 비록 小人의 마음일지라도 반드시 있으니 이것은 실로 天命의 性으로 좇아 우러나 자연히 靈昭不昧한 것이다. 그래서 明德이라 한다」 王陽明은 이와 같이 明德을 天地萬物과 一體가 되는 길로서의 「커다란 仁」으로 풀이했다.
明德의 해석에 대한 학자들의 見解는 위와 같이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대립이 아니라 같은 바탕 위에서 보여 주는 작은 차이일 뿐으로 明德은 사람에게 天賦的으로 주어져 있다는, 그리고 밝은 것 (순수하고 깨끗한 것)이 本然의 모습이라는 데 근본적으로 一致하고 있는 것이다.


(more coming soon)
그러나 인간이 태어난 뒤에는 그 氣稟 (生理的, 體質적 要素) 關係, 살아가는 동안의 習俗, 物慾등 후천적 영향으로 因하여 본래의 明德은 흐려지고 만다. 明德이 흐려지면 惡이 行하여질 가능성이 생긴다. 흐려진 明德을 밝게 하여 제 본색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 바로 明明德인 것이다. 인간은 자기 본성 속에 生의 眞理를 가지고 있다. 이 진리는 인간의 無自覺한 蹈襲的, 惰性的 생활 속에서 그 빛을 잃어 버리기 쉽다.
 
하늘로부터 얻어 온 虛靈不昧한 것이 明德이라고 본 朱憙는 그의 《大學或問》에서 明明德에 대하여 말하기를 「다만 氣稟에 拘碍되고 人欲에 가리워지면 때로 昏昧해진다. 하나 그 本體의 밝음은 息滅되지 않는 것이므로 배우는 者는 반드시 그것이 發하는 바에 근거하여 밝히어 가 그 原初의 상태에 回復해야 할 것」이라 했다. 그러니까 氣稟과 人欲등은 明德을 昏昧하게 하는 것이고 그것들은 없애 나가는 것이 明明德이라는 말이다.
 
明德을 거울에 比喩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거울에 먼지가 끼면 본래의 밝음이 가리우고 어두워진다. 그러나 본래의 밝음이 아주 상실된 것이 아니므로 조금 이라도 빛이 發하는 데를 根據하여 닦아 나가며는 이내 본래의 밝음이 드러나게 된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빛이 發하는 데」 곧 앞에서 引用한 朱憙의 「그것이 發하는 바」라는 것은 사람이 外界의 事象에 接했을 때 나타나는 明德의 反應을 일컫는다. 그 반응의 대표적인 端緖가 「四端」, 즉 惻隱之心, 羞惡之心, 辭讓之心, 是非之心 등이다.
 
明德은 한마디로 말해서 理性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른바 칸트의 實踐理性의 성격이 강한 것이다. 유교 철학은 인간의 理性위에 수립된 것으로 이성을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 보고 氣質과 人欲의 가림을 헤쳐내고 그 본연으로 돌아가 그것을 體認, 최대한 實現하는 것으로 인간 완성을 期하고 있다. 이렇게 밝은 본연의 自我로 回歸함으로써 인간 완성에의 길로 精進하는 것이 바로 明明德인 것이다.
 
(more to come)


== 弟二節 ==
== 弟二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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