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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陽明은 이와 같이 明德을 天地萬物과 一體가 되는 길로서의 「커다란 仁」으로 풀이했다.
王陽明은 이와 같이 明德을 天地萬物과 一體가 되는 길로서의 「커다란 仁」으로 풀이했다.


(more coming soon)
明德의 해석에 대한 학자들의 見解는 위와 같이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대립이 아니라 같은 바탕 위에서 보여 주는 작은 차이일 뿐으로 明德은 사람에게 天賦的으로 주어져 있다는, 그리고 밝은 것 (순수하고 깨끗한 것)이 그 本然의 모습이라는 데 근본적으로 一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태어난 뒤에는 그 氣稟 (生理的, 體質적 要素) 關係, 살아가는 동안의 習俗, 物慾등 후천적 영향으로 因하여 본래의 明德은 흐려지고 만다. 明德이 흐려지면 惡이 行하여질 가능성이 생긴다. 흐려진 明德을 밝게 하여 제 본색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 바로 明明德인 것이다. 인간은 자기 본성 속에 生의 眞理를 가지고 있다. 이 진리는 인간의 無自覺한 蹈襲的, 惰性的 생활 속에서 그 빛을 잃어 버리기 쉽다.
 
하늘로부터 얻어 온 虛靈不昧한 것이 明德이라고 본 朱憙는 그의 《大學或問》에서 明明德에 대하여 말하기를 「다만 氣稟에 拘碍되고 人欲에 가리워지면 때로 昏昧해진다. 하나 그 本體의 밝음은 息滅되지 않는 것이므로 배우는 者는 반드시 그것이 發하는 바에 근거하여 밝히어 가 그 原初의 상태에 回復해야 할 것」이라 했다. 그러니까 氣稟과 人欲등은 明德을 昏昧하게 하는 것이고 그것들은 없애 나가는 것이 明明德이라는 말이다.
 
明德을 거울에 比喩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거울에 먼지가 끼면 본래의 밝음이 가리우고 어두워진다. 그러나 본래의 밝음이 아주 상실된 것이 아니므로 조금 이라도 빛이 發하는 데를 根據하여 닦아 나가며는 이내 본래의 밝음이 드러나게 된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빛이 發하는 데」 곧 앞에서 引用한 朱憙의 「그것이 發하는 바」라는 것은 사람이 外界의 事象에 接했을 때 나타나는 明德의 反應을 일컫는다. 그 반응의 대표적인 端緖가 「四端」, 즉 惻隱之心, 羞惡之心, 辭讓之心, 是非之心 등이다.
 
明德은 한마디로 말해서 理性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른바 칸트의 實踐理性의 성격이 강한 것이다. 유교 철학은 인간의 理性위에 수립된 것으로 이성을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 보고 氣質과 人欲의 가림을 헤쳐내고 그 본연으로 돌아가 그것을 體認, 최대한 實現하는 것으로 인간 완성을 期하고 있다. 이렇게 밝은 본연의 自我로 回歸함으로써 인간 완성에의 길로 精進하는 것이 바로 明明德인 것이다.
 
(more to come)


== 弟二節 ==
== 弟二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