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bers/Utmost/10-1: Difference between revi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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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믿음의 분별 ==
== 한글: 산 정상의 영역 ==


''마 17:20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막 9: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상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믿음의 초기 단계에서는 그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에 의해서는 아무 것도 벌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성도라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과 접하도록 하기 위해 종종 당신의 삶의 밑바닥을 흔들어 놓으실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주님의 축복만을 누리는 감상적인 삶을 살지 않고 믿음의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 생활의 초기에는 약간의 태양 빛이 내리쬐는 체험에 자리를 잡고 그 안에 믿음이 있다는 느낌과 함께 좁고 뜨거운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때는 빛이 가득하고 달콤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음으로만 걷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주의 뚜렷한 축복들을 거두십니다. 이제 당신은 오직 믿음으로 걷게 되는데 이때 당신은 과거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해 기쁨을 느꼈던 때와 스릴 넘치는 간증의 때 보다 훨씬 하나님께 귀중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모두 정상에 있었던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볼 있었으며 그곳에 거하길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기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영적 삶의 시험은 내려올 줄 아는 능력입니다. 만일 우리가 오르는 능력만 있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함께 변화산 정상에 머무는 것도 위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곳에 이르게 되는 이유는 마귀로 가득찬 이 세상에 내려와 이 세상 사람들을 영적으로 들어올리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변화산 정상에서의 체험, 해 돋는 새벽, 아름다움에 대한 애착 같은 것들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자가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오직 영감을 얻기 위한 순간들일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계곡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곧 일반적인 삶 속에서 우리의 실력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 이기심은 언제나 정상에만 머물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천사처럼 말을 하고 천사처럼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면서 계속 산 꼭대기에만 있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상의 시간들은 특별한 시간으로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특별한 의미를 지닌 때입니다. 그러나 영적 이기심은 우리의 모든 시간을 그러한 예외적인 시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를 유의하십시오.


믿음은 그 본질상 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믿음의 실제 시험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발견하는 데 있지 않고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성품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역사하는 믿음이 되려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고립된 기간들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때 믿음의 시험을 일상적인 삶의 훈련과 혼동하지 마십시오. 사실 우리가 믿음의 시험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에는 삶 가운데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것들도 많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과 모순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시더라도 여전히 나는 주를 의지하리라.” – 이것이 성경 전반에 걸쳐서 말하는 가장 고상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유익한 교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일들은 교훈 이상의 것을 줍니다. 즉 인격을 빚어낸다는 사실입니다. 산 위의 정상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뭔가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이 경험이 무슨 유익이 있지?”라는 질문은 가장 위험한 함정을 안고 있습니다. 영적인 세상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답이 없습니다. 산 정상의 순간들은 드문 기회들이며 그 기회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Latest revision as of 22:20, 15 October 2018

주님은 나의 최고봉 | ⇐ 9月30日 | 10月2日 ⇒


10月1日

Classic: The Sphere Of Exaltation

Jesus…leadeth them up into a high mountain apart by themselves. — Mark 9:2

We have all had times on the mount, when we have seen things from God’s standpoint and have wanted to stay there; but God will never allow us to stay there. The test of our spiritual life is the power to descend; if we have power to rise only, something is wrong. It is a great thing to be on the mount with God, but a man only gets there in order that afterwards he may get down among the devil-possessed and lift them up. We are not built for the mountains and the dawns and aesthetic affinities, those are for moments of inspiration, that is all. We are built for the valley, for the ordinary stuff we are in, and that is where we have to prove our mettle. Spiritual selfishness always wants repeated moments on the mount. We feel we could talk like angels and live like angels, if only we could stay on the mount. The times of exaltation are exceptional, they have their meaning in our life with God, but we must beware lest our spiritual selfishness wants to make them the only time.

We are apt to think that everything that happens is to be turned into useful teaching, it is to be turned into something better than teaching, viz., into character. The mount is not meant to teach us anything, it is meant to make us something. There is a great snare in asking — “What is the use of it?” In spiritual matters we can never calculate on that line. The moments on the mountain tops are rare moments, and they are meant for something in God’s purpose.


Updated: The Place of Exaltation

…Jesus took…them up on a high mountain apart by themselves… —Mark 9:2

We have all experienced times of exaltation on the mountain, when we have seen things from God’s perspective and have wanted to stay there. But God will never allow us to stay there. The true test of our spiritual life is in exhibiting the power to descend from the mountain. If we only have the power to go up, something is wrong. It is a wonderful thing to be on the mountain with God, but a person only gets there so that he may later go down and lift up the demon-possessed people in the valley (see Mark 9:14-18). We are not made for the mountains, for sunrises, or for the other beautiful attractions in life— those are simply intended to be moments of inspiration. We are made for the valley and the ordinary things of life, and that is where we have to prove our stamina and strength. Yet our spiritual selfishness always wants repeated moments on the mountain. We feel that we could talk and live like perfect angels, if we could only stay on the mountaintop. Those times of exaltation are exceptional and they have their meaning in our life with God, but we must beware to prevent our spiritual selfishness from wanting to make them the only time.

We are inclined to think that everything that happens is to be turned into useful teaching. In actual fact, it is to be turned into something even better than teaching, namely, character. The mountaintop is not meant to teach us anything, it is meant to make us something. There is a terrible trap in always asking, “What’s the use of this experience?” We can never measure spiritual matters in that way. The moments on the mountaintop are rare moments, and they are meant for something in God’s purpose.


한글: 산 정상의 영역

막 9: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우리는 모두 정상에 있었던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으며 그곳에 거하길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기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영적 삶의 시험은 내려올 줄 아는 능력입니다. 만일 우리가 오르는 능력만 있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함께 변화산 정상에 머무는 것도 위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곳에 이르게 되는 이유는 마귀로 가득찬 이 세상에 내려와 이 세상 사람들을 영적으로 들어올리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변화산 정상에서의 체험, 해 돋는 새벽, 아름다움에 대한 애착 같은 것들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자가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오직 영감을 얻기 위한 순간들일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계곡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곧 일반적인 삶 속에서 우리의 실력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 이기심은 언제나 정상에만 머물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천사처럼 말을 하고 천사처럼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면서 계속 산 꼭대기에만 있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상의 시간들은 특별한 시간으로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특별한 의미를 지닌 때입니다. 그러나 영적 이기심은 우리의 모든 시간을 그러한 예외적인 시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를 유의하십시오.

우리는 이 세상에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유익한 교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일들은 교훈 이상의 것을 줍니다. 즉 인격을 빚어낸다는 사실입니다. 산 위의 정상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뭔가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이 경험이 무슨 유익이 있지?”라는 질문은 가장 위험한 함정을 안고 있습니다. 영적인 세상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답이 없습니다. 산 정상의 순간들은 드문 기회들이며 그 기회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