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俶載[注 1][注 2][注 3]하고 我藝黍稷[注 4]하니라 (俶●載◑南畝◯하고 我◯藝◑黍◯稷◉하니라)

()비로소 앞밭에서 일하고, 내가 기장과 피를 심는다.

詩小雅大田篇之詞니 言始事於南畝也라
詩小雅楚茨篇之詞[注 5]니 有田祿而奉祭祀者가 自言種其黍稷也라

≪詩經≫ 〈小雅 大田〉의 가사이니, 비로소 남쪽 이랑에서 일함을 말한 것이다.
≪詩經≫ 〈小雅 楚茨〉의 가사이니, 田祿(采田의 봉록)이 있어 제사를 받드는 자가 기장과 피를 심음을 스스로 말한 것이다.

俶載南畝

俶載南畝

(韓) 비로소 남양의 밭에서 농작물을 배양한다.

(簡) 남쪽 이랑의 수확의 짐이 숲을 이루는데

(밭이랑 묘) 비로소 남양의 밭에서 농작물을 배양한다. 지을 숙(俶),밭 이랑 무(畝) 대신 모뜰 묘(描)밭 여기에서 南묘라 함은 남쪽 밭두둑의 뜻이다. 다만 (보)를 두고 말할 경우는 주(周)나라의 제도에 6척(尺)을 보(步)라 하고 100보(步)를 묘라 하였는데, 그러나 진(秦)나라에 와서는 240보(步) 무(畝)라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밭두둑을 가리킨다. 지을 숙(俶), 처음 숙(俶), 정돈할 숙(俶), 실을 재 (載),남녘 남(南), 밭이랑 무(畝); 밭두둑 묘로 쓰임

한자 유래

유가(儒家)에서 사서삼경(四書三經)의 하나로 삼아 경전(經典) 취급하는 "시경(詩經)"이라는 것이, 공자가 편찬(編纂)한 고대 중국의 노래 모음집, 즉 민요집(民謠集)이라는 것은 앞에서 이미 언급(言及)했다. 농경사회의 민요(民謠)에 농사와 관련된 노래가 많이 등장(登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로소 숙(俶)의 구성(構成)은 뜻을 나타내는 사람 인(亻=人) 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숙(叔)이 합(合)하여 이루어진 형성문자(形聲字)이다. "설문(說文)"에서 "숙(俶)은 사람 인(亻) 변에 아재비 숙(叔)을 한 문자로 비롯하다(始), 착하다(善), 짓다(作), 심하다(甚) 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숙(叔)은 또 우(又) 변에 윗 상(上) 아래 작을 소(小)를 한 문자"라고 했다. 즉 숙(叔)자는 주울 습(拾)과 '거두어 들일 수(收)'와 같은 계열(系列)의 글자로 '흩어져 있는 것을 거두어 정리(整理)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숙(俶)자의 자형적 의미는 '가지런히 정리된 사람', 즉 '선한 사람'이 된다. 이로부터 '어지럽게 흩어진 것을 정리하기 사작한다'는 의미(意味)로 발전(發展)하면서 '일을 시작하다'라는 의미가 파생(派生)되었다.

실을 재(載)는 재(縡)와 동자(同字)이다. 수레 차의 뜻을 나타내는 수레 거(車) 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올려 놓는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재(戈)로 이루어진 형성자(形聲字)이다. 수레 위에 물건(物件)을 '싣다'의 뜻을 나타낸다. 적재(積載), 기재(記載), 등재(登載)에 사용되는 실을 재(載)자는 '수레(車)에 싣다'는 뜻으로 만든 글자이다. 실을 재(載)자는 '해, 년(年)'이란 뜻도 있다. 천재일우(千載一遇)는 '천(千) 년(載)에 한(一) 번 만나다(遇)'는 뜻으로 좀처럼 얻기 어려운 좋은 기회(機會)를 이르는 말이다.

남녘 남(南)은 고대인(古代人)들이 살았던 천막(天幕)과 같은 움집의 출입구(出入口)가 해가 잘 드는 남쪽을 향해 난 모양(模樣)을 본뜬 것으로 지금도 집을 지을 때 남향을 선호(選好)하는 이유(理由)다. 갑골문(甲骨文)과 금문(金文)에도 보이는 자형(字形)으로 일부에서는 남쪽에 배치된 악기를 모양(模樣)을 상형(象形)하였다고 하나, 글자모양(模樣)을 보았을 때 남쪽을 향해 난 출입구(出入口)를 갖춘 움집이라는 데서 ‘남쪽’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이랑 묘(畝)의 구성(構成)은 묘, 무의 뜻을 나타내는 밭 전(田) 부(部)와 음(音)을 나태내는 매 무(每)로 이루어진 형성문자(形聲字)이다. 땅 넓이의 단위(單位)이다. 즉 경묘법(頃畝法)은 백제(百濟)에서 밭이랑을 기준(基準)으로 토지 면적(土地面積)을 정하는 방법(方法)이다. 경묘(頃畝)는 옛날 중국에서 토지를 측량(測量)할 때 쓰던 면적 단위다. 1경(頃)은 100묘(畝)이고, 1묘(畝)는 100평(坪)의 면적이다. 이랑은 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볼록한 부분)과 한 고랑(오목한 부분)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我藝黍稷

我藝黍稷

(韓) 나는 기장과 피를 심는 일에 열중하겠다.

(簡) 나는 기장과 피만 키운다.

나는 기장과 피를 심는 일에 열중 하겠다. 나 아(我), 재주 예(藝), 심을 예(藝), 기장 서(黍) 메 기장. 오곡의 하나이다, 피 직(稷)찰 기장. 黍나 稷은 모두 기장이다, 여기에서 메 기장 하면 찐 매밀 을 약간 말린 다음 찧어서 껍질을 벗긴 맵쌀(방언:方言), 차 기장 하면 찹쌀의 뜻에서 사람의 식량으로 선호함이요, 서직(黍稷)의 질(質)은 [식물]포 아 풀과에 속하는 일년초,키는 1.2~1.6m 이며 곡류의 일종이다. 열매는 담황색, 떡. 술. 빵. 과자 등의 원료로 선호, 메 기장은 가축의 사료로 활용되다. [我藝黍稷]은 나는 기장을 심는다는 뜻이다. 옛날에 중국에서는 서직(黍稷)을 오곡의 으뜸으로 꼽았던 것이다. 곡식을 생산 하는 일이 시작되면 남쪽 밭에서부터 행함이 넓은 나라의 남쪽부터 농사에 힘쓴다는 앞 구(句)의 말이고 뒷 글 구(句)에 서는 오곡의 으뜸인 서 직(黍稷)을 심는다는 것이다.

한자 유래

숙재남무(俶載南畝)하니 아예서직(我藝黍稷)하니라. '남쪽 이랑에서 일을 시작하니, 나는 기장과 피를 심네'는 바로 "시경(詩經)"에 나오는 농사와 관련(關聯)된 노래,즉 농요(農謠)라고 할 수 있다.

나 아(我)의 구성(構成)에 대해 "설문(說文)"에서는 “아(我)는 자기 자신을 이르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설명(說明)하기를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는 뜻으로 보기도 하였다. 과(戈)와 수(垂)의 옛글자인 ‘수(手)’로 구성(構成)되었다. 일설에는 살(殺)의 고문(古文)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갑골문(甲骨文)의 자형을 보면 긴 자루 끝에 세 갈래의 칼날이 달린 일종의 무기(武器)를 뜻한다. 또한 손(手)에 창(戈)을 들고서 자기를 방어(防禦)함을 나타내 ‘나’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고도 한다.

심을 예(藝)의 구성(構成)은 풀 초(艹)와 심을 예(埶) 그리고 구름 운(云)으로 짜여 있다. 예(埶)는 언덕 육(坴)과 둥글 환(丸)으로 구성(構成)되었는데, 그 뜻은 나무를 심을 때는 묘목을 중심(中心)으로 흙을 둥글게(丸) 언덕(坴)처럼 북돋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초목(艹)을 심을 때는 씨앗이나 묘목(苗木)을 중심으로 둥그렇게(丸) 흙을 북돋아 가장자리를 두툼하게 언덕(坴)처럼 쌓아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밭이랑을 두리둥실 구름(云)처럼 만들어 물 빠짐이 잘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러한 일들은 상당(相當)한 기능(技能)이 필요(必要)하기 때문에 ‘재주’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기장 서(黍)자는 벼(禾) 같은 곡식이 스며든(入) 물기(水)로 자란다는 뜻이 모인 회의자(會意字)로 '기장(黍)'을 뜻하는 글자이다. 기장은 볏과의 일년초로 조보다 살짝 큰 알맹이가 몽땅 맺히는 곡물(穀物)이다. 기장은 쌀, 보리, 조, 콩 등과 함께 오곡(五穀)의 하나이며, 보리와 쌀을 심기 이전의 시절에는 가장 중요한 곡식(穀食)이었다. 기장의 곡식으로서의 역사와 함께 술을 담근 제일 첫 번째 곡류(穀類)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인지 기장은 중국 동북부 지역(地域)에서 황주(黃酒)를 만드는데 이용(利用)한다. 기장은 기름지지 못하고 메마른 땅에서도 잘 견디며 조보다 성숙(成熟)이 빠른 이점(利點)이 있어 경상북도와 강원도 및 각 지방의 산간(山間) 지대(地帶)에서 재배(栽培)된다. 하지만 수확량(收穫量)이 적고 주식(主食)으로 이용(利用)하기도 부적합(不適合)하여 재배(栽培)가 그리 많지는 않다. 서(黍)자가 부수로 쓰이면 글자의 왼쪽 변(邊)에 놓이며, 기장의 특성인 "검다, 차지다"라는 의미(意味)가 끈적인다.

피 직(稷)의 구성(構成)은 뜻을 나타내는 벼 화(禾) 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날카로울 측(畟)으로 이루어진 형성문자(形聲字)이다. 따라서 직(稷) 후직(后稷)으로서 제곡(帝嚳)의 아들이다. 순(舜) 임금의 신하(臣下)이다. 옛적에 농사를 맡은 벼슬. 주(周) 나라 시조(始祖) 기(棄)의 별명이다. 그가 농사를 맡았으므로 이름을 뜻한다. 사직(社稷)은, 고대 중국과 그 제도(制度)를 모방(摸倣)한 주변의 왕조에서 군주(君主)가 토지의 신(神)에게 제사(祭祀)지내는 제단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을 제사지내기 위해 만든 단(壇)을 함께 어우르는 말이다. 하늘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천단(天壇), 땅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지단(地壇)이나 왕실의 조상신에게 제사지내는 종묘(宗廟) 등과 함께 고대 중국의 국가 제사의 중추(中樞)를 이루었으며, 후대(後代)에는 종묘와 함께 국가 그 자체를 의미(意味)하는 것으로 단어의 의미가 바뀌었다.

  1. 俶載南畝 我藝黍稷 : 俶은 비로소이다. 載는 일하다는 뜻이다. 南은 방향 이름이다. ≪司馬法≫에 이르기를 “6척이 步이고 100步가 畝이다.” 하였다. 秦나라 제도는 240步로 畝를 삼았는데 지금 그것을 따른다. 我는 자기이다. 藝는 심는다는 뜻이다. 黍ㆍ稷은 모두 곡식 이름이다. 곡식은 5가지가 있는데 稻ㆍ黍ㆍ稷ㆍ麥ㆍ菽이다. 이 두 구절은 모두 ≪詩經≫의 가사인데 작자가 인용한 것이다.(≪釋義≫)
  2. 南 : ≪光州千字文≫ㆍ≪石峰千字文≫에서는 ‘앏 남’으로 풀이하였다. 남쪽을 ‘앞’으로 나타낸 것이다.
  3. 畝 : 古字는 ★{田+十+乆}(이랑 묘)이다.(≪中≫) 音을 과거에는 ‘무’라 하다가 현대에는 ‘묘’로 바뀌어가고 있다.
  4. 黍稷 : 곡식 이름으로, 구체적 곡물 이름은 여러 가지로 풀이되는바, 차진 정도에 따라 ‘찰기장’과 ‘메기장’으로 구분한 주석이 있다. 稷과 黍는 1부류이면서 2종자이다. 차진 것은 黍이고 차지지 않은 것은稷이다.(≪本草綱目≫ 穀2 〈稷〉)
  5. 楚茨篇之詞 : ≪詩經≫의 ‘我藝黍稷’을 鄭箋은 “내가 장차 서직을 심겠다.”로, 集傳은 “장차 우리에게 여기에서 黍稷을 심게 하려 한다.”로 풀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