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軻敦素 史魚秉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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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軻[注 1]敦素하고 史魚秉直[注 2]이라 (孟◑軻敦素◑하고 史◯魚秉◯直◉이라)

()孟子는 수양을 두터이 하였으며, 史魚는 곧음을 지녔다.

孟子는 名軻니 幼被慈母之敎하고 長遊子思之門하여 厚其素養也하시니라
史魚는 衛大夫니 名鰌요 字子魚니 有尸諫[注 3]하니라 孔子曰 直哉라 史魚여 邦有道에 如矢하며 邦無道에 如矢라하시니라

맹자는 이름이 軻이니, 어려서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고 장성해서는 子思의 門下에서 공부하여 평소 수양을 두터이 하였다.
史魚는 춘추시대 衛나라 大夫이니, 이름이 鰌(추)이고 字가 子魚인데 죽어서도 시신으로 간하였다. ≪論語≫ 〈衛靈公〉에 공자는 말하기를 “곧기도 해라, 史官 魚여!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도 화살대처럼 곧았으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도 화살대처럼 곧았다.” 하였다.

孟軻敦素

孟軻敦素

(韓) 맹자는 그 모친의 교훈을 받아 자사문하에서 배웠다.

(簡) 맹자의 가르침이 근본을 두텁게 하고

맹자는 그 모친의 교훈을 받아 자사 문하에 배웠다. 1.맹자는 3.도탑고 인정 많은 어머님의 2.교훈이 4.바탕을 이루었다. 맏 맹(孟), 성 맹(孟), 맹가(孟軻:전국시대의 철인 즉 孟子), 우두머리 맹(孟),맹후(孟侯;한 주의 제후 중에서 우두머리), 때 못 만날 가(軻), 높을 가(軻), 굴대 가(軻), 도타울 돈(敦), 돈후(敦厚:인정이 많음), 흴 소(素), 바탕 소(素):소질(素質), 소식(素食:고기반찬이 없는 밥), 흰빛 소(素).소의(素衣:흰옷)

한자 유래

맹자(孟子)는 바탕(素)을 도탑(敦)게 하였고, 사어(史魚)는 올곧음(直)을 굳게 지녔다. 이 글귀부터 군자(君子)의 바람직한 몸가짐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돈소(敦素)', 곧 '사람 본바탕인 착함(善)을 더욱 도탑게 해야 한다'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과, '병직(秉直)', 곧 '자신이 맡은 일을 늘 살펴보며 곧게 지켜야 한다'는 공직자(公職者) 자세를 말하고 있다. 맹자의 이름은 가(軻)이니, 어려서는 자모(慈母)의 가르침을 받고 장성(長成)해서는 자사(子思)의 문하(門下)에서 공부하여 소양(素養)을 두터이 하였다.

맏 맹(孟)의 구성(構成)은 아들 자(子)와 그릇 명(皿)으로 이루어졌다. 맹(孟)자에는 고대인들의 맏아들에 대한 인식(認識)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글자 중의 하나이다. 자형의 변화(變化)는 없었지만 글자에 담긴 이야기 자체가 곧 역사(歷史)적 인식을 함께 하고 있다. 자형의 상부를 이루고 있는 자(子)는 강보(襁褓)에 싸인 아기를 본뜬 상형글자로 머리와 두 팔 그리고 하나의 다리로 묘사(描寫)하고 있다. 다리를 하나로 그린 것은 아직 서서 걷지 못하는 ‘갓난아이’임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명(皿)은 음식을 담을 수 있는 넓은 그릇을 본뜬 상형글자다. 본디 제기용(祭器用) 그릇이었지만 일반적인 ‘그릇’의 대표명사(代表名詞)가 되었다. 이에 따라 커다란 그릇(皿)에 아기(子)를 담고 있는 것으로 그림이 그려지는데, 그 내용(內容)을 알고 나면 참으로 끔찍한 생각이 든다. 고대 중원(中原)의 일부지역에서는 맏아들을 잡아먹는 상상(想像)하기 어려운 풍속(風俗)이 있었다. 그러한 내용이 묵자(墨子)에 기록(記錄)되어 있다. 약탈혼(掠奪婚)이 아닌 정해진 배필(配匹)과 만나 맏아들(子)을 낳으면 제기용의 큰 그릇(皿)에 올려 조상신에게 안녕(安寧)을 빌 뿐만 아니라 맏아들을 중심(中心)으로 가문(家門)이 이어지고 번성(繁盛)하기를 기원(祈願)하였다는 점에 ‘맏아들’이란 뜻을 갖게 되었다.

굴대 가(軻)의 구성(構成)은 뜻을 나타내는 수레 거(車) 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옳을 가(可)가 합(合)하여 이루어진 형성문자(形聲字)이다. 또한 가(可)자는 형부인 입(口)과 성부인 ‘막힐 하(丅)’자가 ‘가’로 전음 된 형성자이다. 그러니 막혔던() 입(口)이 말을 튀어나게 하는 것은 가늠해본 후 옳아서 허락(許諾)하는 것이니 ‘옳다, 허락하다, 가늠하다(可)’라는 뜻이다. 성부인 하(丅)자는 ‘옳을 가(可)’자의 본의를 담고 있다. 하(丅)자는 고(丄)자를 좌우로 뒤집은 꼴로, 고(丄)자는 기(氣)가 편안(便安)하게 나오려는데 위‘一’에서 방해(防害)를 하여’ 꼴이 되어 ‘막히다(丨)’라는 뜻이다. 여기서 막혔던 말을 튀어나오게 하는 입의 동작을 나타내는 가(可)자는 입(口)이 막혔던(丅) 말을 튀어나게 하는 것은 가늠해본 후 옳아서 허락하는 것이니 ‘옳다, 허락하다, 가늠하다(可)’라는 뜻이다. 그리고 차(車)자는 위아래 두(二) 바퀴와 물건을 싣는 차체(曰)를 꿰뚫는(丨) 수레 꼴을 본뜬 상형자(象形字)로 '수레(車)'라는 뜻의 글자이다. 거(車)자는 고대에는 주로 전차(戰車)의 뜻으로 사용(使用)하였다. 군사 군(軍)은 후대에 사람, 말, 소 따위의 힘으로 움직이도록 한 바퀴 달린 운송수단(運送手段)이다. 인력거(人力車), 마차(馬車), 기차(汽車), 자동차(自動車), 둥근 바퀴가 달린 회전 기구(機具), 풍차(風車), 수차(水車), 치차(齒車=톱니바퀴), 거(車)자는 동자이음(同字異音)으로 '차', '거'로 읽히는 따위로 쓰인다. 따라서 전체적 의미(意味)는 수레 가(軻)자는 뜻을 나타내는 수레 차(車)자와 소리를 나타내는 옳을 가(可)자가 합쳐진 글자이다. 주로 사람의 이름에 사용(使用)된다. 맹가(孟軻)는 맹자(孟子)의 이름이다.

도타울 돈(敦)의 구성(構成)은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의 뜻을 나타내는 등글월문(攵=攴) 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누릴 향(享)으로 이루어진 형성자(形聲字)이다. 그러니 돈(敦)자는 회초리 같은 매(攵)가 높은 곳에서 산양을 몰며 누리려면(享) 아주 많아야 하니 '도탑다(敦)'라는 뜻이다. 여기서 성부인 향(享)자는 '도타울 돈(敦)'자의 본의(本意)를 담고 있다. 향(享)자는 두부(亠部) 글자로 종묘(宗廟)를 그린 상형자(象形字)이다. 그런데 종묘의 축소판(縮小版)처럼 제사(祭祀)를 모실 때 신위(神位)의 모습인 지방(紙榜)의 형상도 연상시킨다. 돈화문(敦化門, 창덕궁의 정문), 돈의문(敦義門, 서대문) 등에 들어가는 도타울 돈(敦)자는 원래 '때려서(攵) 다스리다'는 뜻이다. 이후 '다스리다, 힘쓰다, 노력(努力)하다, 도탑다' 등의 뜻이 생겼다. '도탑다'는 '서로의 관계(關係)에 사랑이나 인정(人情)이 많고 깊다'는 뜻이다. 돈독(敦篤)은 '도탑고(敦) 도탑다(篤)'는 뜻이다.

흴 소(素)의 구성(構成)은 드리울 수(垂)의 생략형인 ‘주(主)’모양(模樣)과 가는 실 사(糸)로 짜여 있다. 垂(수)는 땅(土)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초목(草木)이 꽃잎이나 잎사귀를 아래로 드리운 모양(模樣)을 그려내, ‘늘어뜨리다’ ‘드리우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사(糸)는 누에고치(蚕茧)에서 막 뽑아 잣아 놓은 실타래(络纱)를 본뜬 상형글자(表意文字)이다. 따라서 素(소)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누에고치(蚕茧)에서 막 뽑아 잣아 놓은 실타래(糸)를 물에 빨아서 줄에 늘어뜨린(垂) 모양으로 아직 흰색 그대로 이기 때문에 ‘희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태(狀態)는 다른 색(色)으로 물을 들일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에 ‘바탕’ ‘질박(質朴)하다’는 뜻이 파생(派生)되었다.

史魚秉直

史魚秉直

(韓) 사어라는 사람은 위나라 태부였으며 그 성격이 매우 강직하였다.

(簡) 역사는 바르게 잡아야 하며

사어라는 사람은 위나라 태부였으며 그 성격이 매우 강직 하였다. 1.歷史에 남은 3.秉權者인 2.史魚는 그 4.强直함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위나라의 태부(太傅)하면 (우리 나라 고려 때에 三師의 하나.정 일품, 고려 때 동궁의 종 일품의 벼슬. 大傅)와 같은 높은 관직 자을 지칭 함이며 전구(前句) 의 孟子 云云의 後句에 언급은 사어라는 사람은 맹자와 연관이 있는 그 시대의 인물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글의 뜻 풀이를 깊게 공부 할 수 없음이 아쉽다. 역사 사(史),사관 사(史). 사관(史官:역사를 편수하는 벼슬 직), 사기 사(史).사승(史乘:역사의 기록 즉 史書), 고기 어(魚), 고기 잡을 어(魚). 어(漁와 통용), 잡을 병(秉).손에 쥠. 병권(秉權:정권의 고동을 잡음), 자루 병(秉).병(柄)과 통용, 곧을 직(直), 번들 직(直).당직(當直)

한자 유래

사어(史魚)와 동시대를 살았던 공자(孔子)는 훗날 이 '시간(屍諫) 사건'에 대해 말하면서, 사어는 나라가 잘 다스려질 때에도 화살처럼 곧게 나아갔고 또 나라가 어지러울 때에도 화살처럼 곧게 나아갔다고 했다.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사어(史魚)를 통해, 제자(弟子)들에게 어떤 상황(狀況)과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올바른 말과 행동(行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한 것이다. 사어병직(史魚秉直)에서 사어는 올곧음을 끝까지 지켰다'는 '사언의 유언(遺言)'를 두고 한 말이다.

역사 사(史)는 글 쓰는 도구를 손으로 잡고 있는 모습(模襲)이다. 사(史)의 갑골문(甲骨文)에서 윗부분이 글 쓰는 도구(道具)를 나타낸 부분이다. 붓일 수도 있고, 거북이 배딱지나 동물(動物)의 뼈에 점치는 내용(內容)을 새기던 조각도(彫刻刀)일 수도 있다. 이것을 오른손으로 쥐고 있다. 그 옛날에도 오른손잡이가 많았던 모양(模樣)이다. 무언가를 기록(記錄)하는 모습, 이것이 사(史)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解釋)이다. 이와 다른 풀이도 있다. 축문그릇을 나무에 매달아놓은 것으로, 나라의 중대사(重大事)를 앞두고 제사(祭祀)를 지내며 점을 치는 모습을 담은 한자라는 것이다. 제사를 지내며 점친 결과는 소중(所重)하게 보관(保管)했고 이것이 곧 역사가 됐다. 한자에서도 역사는 기록과 같은 의미였다. 사(史)에 한 일(一)자를 더한 관리 리(吏)는 기록하는 일을 맡아서 하던 사람을 뜻한다. 사(吏)에 사람 인(人)을 붙인 시킬 사, 하여금 사(使)는 점을 친 결과가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하게 한다는 데에서 ‘시킨다’는 뜻으로 쓰인다.

물고기 어(魚)자는 물고기의 뿔(角)처럼 뾰족한 주둥이의 머리, 밭(田)고랑 같은 몸통의 비늘, 불(灬)꽃 같은 지느러미 꼴을 본뜬 상형자(象形字)로 '물고기(魚)'라는 뜻의 글자이다. 그런데 어(魚)자는 물고기의 삶의 터전이 물 속이므로 '물 속에 사는 동물의 통칭(統稱)'으로 쓰이기도 한다. 또한 어(魚)자는 '물고기'와 연관(連關)된 인간들의 생활사와 연관하여 '물고기를 잡는 사람(魚)'을 뜻하기도 사용(使用)된다. 이들 뜻이 스민 어(魚)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들은 "어물의 종류, 부위, 특성"에 관한 의미(意味)들이 떠오른다. "설문(說文)"에서는 “어(魚)는 물에서 사는 동물로 상형글자(象形字)이다. 어(魚)의 꼬리와 연(燕)의 꼬리는 모양(模樣)이 서로 비슷하다.”고 하였다. 갑골문(甲骨文)의 자형은 물고기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즉 자형상부의 ‘쌀 포(勹)’모양은 물고기의 머리를, 중간의 ‘밭 전(田)’모양은 몸통을, 그리고 하변의 ‘불 화(灬)’는 지느러미를 나타낸 것이다. 일반적으로 물속에 사는 물고기의 총칭(總稱)으로 쓰이고 있다. 글자의 초기형태인 갑골문의 자형이 비교적 잘 유지(維持)되고 있다.

잡을 병(秉)의 구성(構成)은 곡식의 뜻을 나타내는 벼 화(禾) 부(部)와 부수(部首)를 제외(除外)한 글자 오른손 우(又)로 이루어진 회의문자(會意字)이다. 즉 '벼를 한 줌 갖다'의 뜻인데 전(轉)하여 '잡다'의 뜻을 나타냈다. 또한 병(秉)은 벼 화(禾) 변(邊)에 고습도치 머리 계(彐)를 한 문자로 잡다(把), 웅큼(木束), 벼 묶음(木束), 손으로 잡다, 용량의 단위로 16곡(十六斛), 마음으로 지키다 등의 뜻이 있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인 잡을 병(秉)자는 벼(禾)의 한 포기를 손(彐)으로 잡은 모습인 반면, 겸할 겸(兼)자는 벼 두 포기(秝)를 손(彐)으로 잡은 모습에서, 겸하다는 뜻이 생겼다.

곧을 직(直)자는 눈 목(目)자 위에 수직선(|)을 하나 그어, '눈(目)으로 똑바로(|) 보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만든 글자이다. 이후 모양(模樣)이 변형(變形)되어 현재의 글자가 되었다. 이후 '곧다, 바르다, 바로' 등의 뜻이 생겼다. 직선(直線)에서는 '곧다', 정직(正直)에서는 '바르다', 직접(直接)에서는 '바로'라는 뜻으로 사용(使用)된다. 곧을 직(直)자는 값 치(直)자도 되는데, 값을 매기려면 눈으로 바르게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뜻을 분명(分明)히 하기 위해 사람 인(亻)자가 추가(追加)되어 값 ;치(値)자가 되었다. 사람이 값을 매긴다. 또 곧을 직(直)자가 3개 모이면 곧을 촉(矗)자가 되는데, 논개가 빠져 죽은 진주 남강에 있는 누각이 촉석루(矗石樓)이다. 直(직)에 대한 갑골문(甲骨文)의 자형(字形)을 살펴보면 눈(罒) 위에 수직으로 세운 막대(丨)를 상형한 모양(模樣)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수직의 막대는 측량(測量)을 위해 세운 것이다. 현재의 자형(字形)은 소전(小篆)에 와서 이루어진 것으로 인문학(人文學)적인 해석(解釋)을 가하면, 여러 사람(十)의 눈으로 보더라도(目) 곧고(丨) 바르게(一) 되어있음을 형상화(形象化)한 글자가 바로 直(직)이다.

  1. 孟軻 : ≪釋義≫에는 軻를 某로 쓰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원본에는 孟子의 이름 軻를 지적해 써서 후학들이 읽기에 온당치 않아 지금 외람되이 고쳐서 某(어느 분)라 하고, 주석 속에 이 말을 쓴다.(≪釋義≫) 현재는 臨文不諱의 입장에서 ‘軻’로 해야 할 것이다.
  2. 孟軻敦素 史魚秉直 : 敦은 높인다는 뜻이다. 素는 정결하며 순수함이다. 史는 官名이다. 秉은 잡는다는 뜻이다.(≪釋義≫)
  3. 尸諫 : 시체를 늘어놓고서 간언함이다.(≪漢≫) 史官 魚의 尸諫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衛나라 대부 史官 魚가 병들어 죽으려 할 적에 그 아들에게 말하였다. ‘〈임금께서는〉 내가 蘧伯玉의 현명함을 자주 말씀드렸으나 등용시키지 못하셨고, 彌子瑕의 부족함을 말씀드렸으나 물리치지 못하셨다. 신하가 되어 살아서는 현인을 등용시키지 못하며 부족한 자를 물리치지 못하였으니, 내가 죽거든 〈규정적인 곳인〉 正堂에서 상을 치르는 것은 부당하고 〈비규정적인 곳인〉 室에다 殯所를 차리면 족하다.’ 위나라 임금 靈公이 그 까닭을 묻자, 아들은 아버지의 말로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임금은 즉시 거백옥을 불러서 귀하게 해주고 미자하를 물리쳤으며, 정당으로 옮겨 빈소를 차리게 하고 조문 예를 마친 뒤에 떠나갔다. 살아서는 몸으로 간언하였고 죽어서는 시신으로 간언하였으니, 곧다고 이를 만하다.”(≪韓詩外傳≫ 卷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