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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화:뉴에이지와 그 음악

From Han Wiki

당신은 뉴에이지와 그 음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저자 : 곽용화

출판사: 낮은울타리


태양은 가득히

당신은 뉴에 이지와 그 음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시대를 꿰뚫고 들어오는 사탄의 음모에 대해 얼만큼의 지식과 경계심을 갖고 있습니까?

혹, 그룻된 축복사상, 이기적 신앙관계에만 빠져있는 게 아닙니까? 알아야 할 것을 바로 알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게 신앙이라면 우린 어영부영하면서 허탄한 이야기나 나누며 살다 갈 수가 없습니다.

곽용화 목사님의 글을 읽게 되면 참 많은 걸 생각하게 될 겁니다.

교회학교 지도자나 사춘기 나이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더더욱 그러 할 것입니다.

대중매체가 우상인 시대

문화가 신흥종교의 역할을 하는 시대

영적 분별력과 문화의 전문성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

오랫동안 청소년 문화선교를 위해 애써온 곽용화 목사님의 역저를 독자 여러분께 드리게 됨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낮은울타리 발행인 신상언


당신은 뉴에이지와 그 음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서문


대중음악에 파묻혀 살던 시절 하나님은 내 마음에 끊임없이 속삭이셨다. 그러나 어떤 길이 하나님의 뜻인지 깨닫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학대학에 다니면서도 버리지 않았던 대중음악인의 꿈, 군대를 다녀와서 신학대학에 복학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하나님을 외면했을 때의 시간들은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 길이 아님을 말씀해 주셨지만 바로왕처럼 목이 곧고 마음이 완악한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거나 그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더이상 놔두어서는 안되겠다고 하나님은 생각하셨는지 밤늦도록 카페에서 피아노를 치고 새벽 한 시에 추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귀가하던 내 마음에 비수처럼 강한 말씀을 주셨다. 속삭여 주시던 부드러운 말씀이 아니라 좌우에 날선 검보다 더 예리한 말씀이었다. 결국 그 말씀에 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리고 그 날밤 하나님께서는 고등학교 이학년 시절에 내게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깨닫게 해주셨는데 그 사명은 다름 아닌 문화사역자였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문화사역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나를 부르신 것이다.

그날 이후 다시 신학대학교에 복학해서 신학공부와 함께 대중문화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대중문화가운데 특히 대중음악을중점적으로 연구했다. 그 동안 모았던 자료들을 모두 버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 자료들이 연구에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깨닫고 재헌신한지 벌써 십년이 넘었다. 그동안 몇 번 책을 쓰려고 시도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비슷한 내용의 책들이 몇권 출판되기도 해서 망설였다.

그러던 중 국내에 뉴에이지 음악을 분석한 책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뉴에이지 운동에 대한 책들도 단순히 외국의 책들을 번역하거나 국내 상황이 전혀 다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선 그동안 모았던 자료들을 정리해서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원고들을 정리하여 내놓게 되었다

이 책은 우선 삼 년여 동안 낮은울타리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았고 책을 내기 위해 틈틈히 써놓았던 원고들을 묶은 것이다. 그래서 다소 중복되는 글들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내용에 있어서 뉴에이지 운동이나 음악으로 확실한 것은 그렇게 밝혔고 불확실한 것은 그 나름대로 자료를 제시하면서 그 위험성을 밝혔다. 다만 외국의 뉴에이저들은 그 이름을 명확히 제시하였으나 국내의 뉴에이저들 가운데 몇가지 어려운 사정으로 이름을 밝히지 못한(예, 뉴에이지 음악을 만드는 김모씨) 사람들이 있으므로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이 책을 내도록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우선 기도와 격려와 물질로 지금까지 큰 힘이 되어 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드린다. 신상언 집사님과 낮은울타리 가족들, 송근집 목사님과 정순자 사모님, 송용민, 송은경, 김웅광 집사님, 하덕규 집사님,CANA 클럽의 연구회원들, 유진호 권사님과 그 가족, 대만에서 선교하시는 김학천 선교사님 , 박옥자 선교사님과 요한이, 항상 기도로 힘이 되어준 용전침례교회 교우들과 임곡침례교회 교우들, 한충우 목사 님과 한국중앙침례교회의 영원한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 동안 많은 분들이 자료를 요청하셨는데 그 분들에게 이 책이 좋은 자료가 되기를 바라며 뉴에이지 운동을 물리치며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작은 불꽃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천구백구십오년 오월

목사 곽용화


차례

추천사

서문

뉴에이지 운동에 대한 이해

인간이 창조자

문화를 통한 혼란 - 뉴에이지 운동

뉴에이지의 의미

뉴에이지 혁명, 어떤 혁명인가?

영적으로 타락하는 사람들

뉴에이지 운동과 신비주의

귀신놀이가 유행하고 있다

영적인 진화론

영적인 진화의 단계

(1) 여행의 입구

(2) 구도의 단계

준비단계

음악이라는 도구

(3) 통합의 단계

내면의 스승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

(4) 공모의 단계

제삼의 눈과 앵크십자가

오쇼 라즈니쉬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

라즈니쉬의 산야신

뉴에이지 운동, 반젤리스 그리고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국내에 잠입한 사단숭배그룹

아난다 마가를 찾아서


2. 뉴에이지 운동의 음악들

(1)뉴에이지 음악의 특징

창세기 3장에 나타난 뉴에이지

환경보호운동을 활발하게 펼치는 뉴에이저들

(2)뉴에이지 음악의 개념

(3)뉴에이지 음악의 영적인 목적

(4)뉴에이지 음악의 역사적인 배경

60년대의 대중음악과 뉴에이지 운동

비치 보이스와 뉴에이지 운동

비틀즈와 뉴에이지 운동

우드스탁 페스티발(Woodstock Festival)과 뉴에이지 운동

록음악 속에 숨은 뉴에이지 운동

대중음악 시나리오

록음악, 뉴에이지 음악 그리고 C C M

(5)뉴에이지 음악에 심취하는 단계

초기단계

신비주의적이고 환상적인 음악을 듣는 단계

정신질환 단계

영적인 부작용

(6) 데이비드 란쯔(David Lanz)의 '지평선에서의 불춤' (The Skyline

Firedance)을 중심으로

(7) 뉴에이지 음악과 명상

(8) 뉴에이지 음악 매니아들의 반응

(9) 뉴에이지 음악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10)뉴에이지 음악에 대한오해

(11)조지 윈스턴, 12월 그리고 자연주의의 함정

(12) 리믹스(remix)와 샘플링 (sampling) 그리고 뉴에이지 음악

뉴에이지 송(New Age Song)

(1)뉴에이지 송의 개념

(2) 뉴에이지 송의 분류

(3)우주적인 영가(Cosmic Chants)

(4) 뉴에이지 송의 용도

(5)뉴에이지 송을부르는뮤지션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스티브 바이(Stive Vai)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 Fire)

비틀즈(Beatles)

에이스 오브 베이스(Ace of Base)

그외의 뮤지션들

클래식 뉴에이지 음악

(1)클래식 뉴에이지 음악의 개념

(2) 조지아 캘리 (Georgia Kelly)와 스티븐 킨들러(Stiven Kindier)의

Fresh Impression'을 중심으로

(3) 빌 퀴스트(Bill Quist)의 'Piano Solos of Erik Satie'를 중심으로

(4) 스크랴빈과 뉴에이지 운동

치료용 뉴에이지 음악

결 론

부 록 - 청소년 문화진단

한국교회와 청소년 그리고 대중문화

돌더미 가운데 핀 꽃이 되라

신세대들의 방황 - 나는 누구인가

영화평 -로렌조 오일

음악에 대한 영적인 분별력

음악이라는 도구

영적인 분별력

음악적인 선교전략

슬픈 사랑, 가슴 아픈 사랑

삶의 열매?그럴 수도 있지


이 책을 부모님이신 곽대웅 목사님과 정순철 사모님께 바칩니다.


1. 뉴에이지 운동에 대한 이해

결국 뉴에이지의 혁명은 인간이 신이 된다는 거짓 이론을 담은 뉴에이저들의 허황된 꿈이고 이교적인 영성이며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뉴에이저들의 주장 한 가지만 제외하고는 모두 거짓된 이론인데 그 한 가지는 새로운 의식개혁운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의식개혁운동이 바로 뉴에이지 운동이다 그러나 이 의식개혁운동은 사단이 주도하는 것이며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 행위대로 심판받고 불못에 던지우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1. 인간이 창조자?

"창조의 힘이라는 게 뭐지요?"

그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인들은 모르지만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내부에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 무한한 힘‥‥ 그것이 바로 창조의 근원이에요."

스위스의 마이어라는 소년과 우주에서 온 여인인 셈야제의 이야기로 된 「안녕하세요? 지구 어린이」라는 책에 나오는 한 부분이다. 이책은 어린이를 위한 뉴에이지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셈야제의 말에 따르면 인간 내부에 무엇인가 창조의 근원이 될만한 것이 자리잡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리고 우주 만물을 육일만에 창조했다는 하나님의 이야기는 거짓이라는 말인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거짓말을 할 수있지?

이 책을 읽어본 크리스천 아이들이 갖게 되는 의문이다. 교회에서 배워왔던 성경의 이야기들이 거짓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이 책뿐이 아니다. 부적을 이용한 마술이나 주문을 중얼거리면서 온갖 신기한 능력을 행하는 소설이나 만화영화는 이미 우리주변에 널려있다. 주문을 외우면서 볼펜을 돌리다가 귀신으로부터 자동필기로 대답을 듣는 귀신놀이도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것들이 이미 문화의 한 부분으로 우리 주변에 가까이 다가서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학교 교사를 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으로 교사의 사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말씀을 삶 속에 적용시키면서 살아가는 것까지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니까 아이들이 속한 문화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그 문화를 성경에 비추어 보아 분별해내야 하고 대안을 생각해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셈야제라는 우주여인의 이야기를 읽은 한 어린이가 교사에게 와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상담을 요청해 오는 일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 그럴 때 책을 읽지 않은 교사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히려 아이에게 셈야제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상담을 요청해야 하니까 누가 상담자고 누가 피상담자인지를 모르게 되는 것이다 아이는 하나님이 창조자가 아니라 인간이 바로 창조자라고 하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계속해서 물어오고 교사는 그에 대해 대답을 하는데 성경적인 지식은 교사가 많지만 이미 세상적인 책을 통해 인간이 창조자이고 하나님도 인간이 진화한 존재라는 식의 정보를 많이 가진 아이와의 상담은 격렬한 토론이나 논쟁으로까지 이어지다가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는 지금 주일학교 교사뿐만이 아니라 청소년을 담당하는 교사들이나 청년 대학부를 담당하는 영적 지도자들이 겪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2. 문화를 통한 혼란 --뉴에이지 운동

사단은 문화라는 수단을 사용해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방법을 사용한다. 문화를 통해 신앙양심을 저울질하기도하고 그로 인한 갈등과 혼란과 고통을 경험하게 만든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러한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롯이 바로 대표적인 사람이다. 아브라함이 선택권을 주자 도시를 택했던 롯은 음란하고 타락한문화속에 갇혀 심각한고민에 빠져 있었다. 당시에 만연하던 동성연애라든가 폭력들이 난무하고 어지러운 문화는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이기를 소원하던 롯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베드로는 이러한 롯의 고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벧후2:7,8)


성경은 롯이 고통받았다는 표현을 쓰고있다.

아브라함이 마므레 수풀 근처를 택하고 말없이 롯으로 하여금 그가 택한 도시로 가게했을 때 롯은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삭막한 들판보다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혜택도 염두에 두었을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세상을 선택하면 그만큼 고통도 선택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롯은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나도 타락한 문화 가운데서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고통을 경험하였다.

롯이 경험했던 문화를 통한 혼란과 갈등과 고통. 그것은 오늘날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갖고 있는 문제들이다.

사단은 문화를 통해서 크리스천들이 어려움을 겪도록 만든다. 또한 문화를 통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 문화를 통한 사단의 이러한 시도는 역사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육십년대이다.

육십년대는 세속문화가 하나님 없는 문화를 창출해 내려고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시기다. 또한 기독교의 정통성을 말살하고 하나님 없는 유토피아,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 사랑과 평화의 낙원을 이룩하려고 시도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켄 마이어스는 「대중문화는 기독교의 적인가/동지인가?]라는 책에서 육십년대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지옥은 한 세기 이상 무대 옆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가 되자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켄 마이어스는 문화에 대한 기독교의 영향력이 점점 쇠잔해지고 동양종교들의 영향력이 점점 강력해지면서 하나님에 대한 저항문화가 고개를 들고 나타난 시기가 육십년대이기 때문에 지옥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한 세기 이상'이라는표현을쓴 이유는 18세기에 나타난 세속주의나 19세기의 낭만주의와 같은 흐름이 동양종교의 신비주의와 만나 폭발했기 때문이다.

세속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동양종교의 신비주의가 결합된 것. 켄 마이어스가 지옥이라는 표현까지 써야했던 반기독교적인 모습. 이것의 이름은 다름아닌 뉴에이지 운동이다.


3. 뉴에이지의 의미


뉴에이지 운동가들은 지금의 시대를 위기와 기회의 시대라고 평가한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기아의 문제, 전쟁, 생태계의 파괴로 인한 인류 생존의 위기, 폭풍과 가뭄으로 인한 자연재해, 인간성의 상실 등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볼 때에 지구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왜 지구가 이러한 위기들을 맞고 있는 것일까?

뉴에이지 운동의 저술가이며 전도가인 셜리 맥클레인은 인간이 자신의 내면의 능력을사용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인간에게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이 있는데 이 능력을 무지와 망각으로 인해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무한한 존재인데 인류의 사상을 지배해왔던 전통적인 종교적 가치관들이 인간을 스스로 나약하고 유한한존재로 만들어 버렸다는 뜻이다.

자신을 바그완(신)이라고 부르도록 강요했었던 오쇼 라즈니쉬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비판하면서 지금까지 기독교가 인간을 가장 낮은 곳으로 끌어내리며 죄인으로 취급하고 무조건 신을 가장 높은 경지로 끌어 올렸기 때문에 인간이 가치없는 존재로 평가되어 스스로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셜리 맥클레인과 오쇼 라즈니쉬의 이 말은 마치 지구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기독교가 져야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뉴에이저들은 이처럼 자신들의 사상을 주장하면서 종종 기독교를 비판한다. 그들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의 배후에 기독교가 서있는 것처럼 말한다.

사실 뉴에이지 운동은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기독교의 신론, 기독론에 대한 비판과 반항으로 이루어진 이들의 이론은 창세기 3장으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지구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그 원인을 생각하면서 뉴에이저들이 기회의 시대라고 말하는 이유는 인간이 무한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뉴에이저들은 기독교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New Age)가 도래한다고 주장한다. 점성술로 말하면 기독교의 시대를 의미하는 물고기자리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를 의미하는 물병좌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새로운 시대가 오면 지구의 위기는 사라져 버리고 인류는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뉴에이저인 월리엄 어윈 톰슨은 "하나의 세계 체제에서 또 다른 체제로의 이동이 지체되느냐 아니면 완전히 붕괴되느냐의 여부는 대체적으로 뉴에이지 운동의 성패에 달려있다. 지금 우리는 거대한 변혁의 자락에 서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마릴린 퍼거슨의 「물병자리 음모」를 「뉴에이지 혁명」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뉴에이저 김용주씨는 뉴에이지 운동은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하나로 묶어 민족주의와 국가적 이기주의를 떠나 진정으로 행복한 세상을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셜리 맥클레인은 자아숭배를 통해 자신에 대한 지식이 심화되면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사회에 공헌한다고 말하면서 뉴에이지 운동이 지구문제의 해결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과연 이들의 주장대로 뉴에이지는 실현될 것인가? 그리고 인류의 문제가 자아숭배와 같은 인류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No'다. 하나님의 도움없이 인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언제나 오류에 빠지고 실패하게 된다. 육십년대 히피들이 꿈꾸며 추구했던 이상주의가 실현되지 못했음을 생각해야 한다. 과학문명이 발달하면 인간이 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지금 오히려 인간성의 상실과 생태계 파괴로 인한 존재 위기마저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유한한 인간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는 말인가?뉴에이지 운동은 또 하나의 바벨탑일뿐이다. 반드시 무너지고야 마는 썩어질 수밖에 없는 헛된 소망으로 쌓아가는 바벨탑인 것이다.

지금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전 세계로 번져가고 있는 뉴에이지 운동은 기독교를 초토화시키고 그 자리에 사단의 기지를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인류에게 밝은 미래를 가져다 주고 행복을 가져다 줄 새로운 시대, 즉 뉴에이지를 설명하면서 헛된 꿈을 심어넣고 있다.국내에서도 뉴에이저들이 증가하고 있고 여러 단체들이 조직되어 활동하면서 점점 더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여름이나 겨울에 마치 기독교에서 수련회를 하듯이 캠프를 열어 어린이들로부터 기성세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대를 설명하면서 뉴에이지 운동에 동참시키고 있다. 특히 문화를 이용해 뉴에이지의 이론을 전염병 처럼 퍼트리고 있다.

이러한 지금 기독교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지금처럼 문화에 관심도 없이, 문화사역자도 양성하지 않고, 뉴에 이지 운동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반 뉴에이지를 말하는 것이 몰문화주의요 반문화주의라고 엉뚱한 오해만 계속하고 있을 것인가? 답답하기만 하다.


4. 뉴에이지 혁명, 어떤 혁명인가?


최근에 정신세계사에서 「뉴에이지 혁명」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다.이 책은 천구백팔십년에 쓰여진 마릴린 퍼거슨(Marilyn Ferguson)의 「물병자리의 음모」 (The Aquarian Conspiracy)를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은 이미 천구백팔십이년에 민지사에서 「의식혁명」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적이 있다. 필자는 이 책의 내용 가운데 인간에게 변혁이 일어나는 네 가지 단계를 분석, 비판하여 '뉴에이지 운동의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낮은울타리 구십사년 삼월호부터 네 번에 걸쳐 연재한 적이 있었다 이제 다시 이 책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러한 내용의 책들이 국내에서 출판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림원에서 출판된 뉴에이지 소설인 제임스 레드필드의 「천상의 예언」도 같은 내용의 책이다.

이 책들은공통적으로 '혁명'이라는 단어를사용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혁명이란 어떤 혁명을 의미하는가? 「천상의 예언」에서는 이십 일세기를 앞둔 마지막 십년부터 일종의 의식개혁운동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종교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영적인 변화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와 의식개혁운동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에 지금까지 가져왔던 가치관이나 세계관에 얽매여 생각해왔던 것과는 다른 무엇 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초기 단계를 마릴린 퍼거슨은 진입(의식혁명에서는 여행의 입구)의 단계라고 말한다. 마릴린 퍼거슨은 낡은 세계관, 낡은 가치관을 흔들어 놓을 사건은 진입을 유발한다고 하면서 인간의 삶에는 더 깊은 차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간이 깨닫게 되는 단계가 진입의 단계라고 말한다. 이러한 단계를 제임스 레드필드는 그의 책에서 최초의 통찰력을 갖는 시기라고 주장한다.

뉴에이지 운동에서 말하는 이 첫 번째 단계는 혁명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혁명가로서의 자신을 인식하는 첫번째 단계이며 마릴린 퍼거슨에 의하면 네 번째 단계인 공모의 단계를 위한 가장 중요한 기초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러한 초기단계를 위해서 환각제 사용을 권장한다. 마릴린 퍼거슨은 환각제를 복용하는 것이 뉴에이지 혁명을 위한 초기단계를 위해 좋은 수단이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단계를 경험한 사람으로는 신비주의자인 올더스 헉슬리 (Aldous Huxley, 1894-1963)를 들 수 있다. 궁극적인 실재는 존재하며 모든 문제는 세계의 근본적인 진실의 빛으로 밝혀질 수 있다고 뉴에이지 사상을 주장했던 그는 환각제를 통해 초기 단계를 경험했었다. 영국태생의 비교종교학자이며 동양종교를 연구하고 있는 앤 밴크로프트(Anne Bancroft)는 그의 책 「20세기의 신비사상가들」 (Twentieth Century Mystics and Sages)에서 "헉슬리의 '각성'에서는 메스칼린과 LSD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인체에 해로운 환각제를 사용하면서까지 뉴에이저들이 일으키려는 혁명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이 신(God)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뉴에이저들은 이십일세기를 앞둔 지금부터, 점성술로는 물고기 자리를 지나 물병자리로 진입하는 시기부터 인간에게는 변혁이 일어나고 이러한 변혁을 통해서 결국 인간이 신으로 진화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뉴에이지 혁명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존재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창세기 삼장에서 뱀을 통해 하와를 유혹했던 사단의 유혹과 같은 내용이다.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창3: 5)


뉴에이저들이 말하는 변화나 혁명에 가장 큰 거침돌이 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비판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우선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단순한 인간이며 오늘날 뉴에이저들이 주장하는 신의 존재로 변화하는 원리를 깨달은 부처나 공자와 같은 인류의 스승일 뿐 삼위일체 하나님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동양사상과 기독교를 비교하면서 기독교를 비판했던 신비주의자인 앨런 왓츠(Alan Watts, 1915-1973)는 그의 책 「신학을 넘어서」(Beyond Theology)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도대체 어떤 형태로 세계의 여러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는가 ...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하는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빌린 기억도 없는 이상한 부채를 1900년전에 청산해 주었다는데, 그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렇게 비판하는 뉴에이저들이 어떤 영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뉴에이저들의 잘못된 영성을 비판한 진리를 찾을 수 있지만 특별히 한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 이니라" (요일4:3)


결국 뉴에이지의 혁명은 인간이 신이 된다는 거짓 이론을 담은 뉴에이저들의 허황된 꿈이고 이교적인 영성이며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뉴에이저들의 주장은 한 가지만 제외하고는 모두 거짓된 이론인데 그 한 가지는 새로운 의식개혁운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의식개혁운동이 바로 뉴에이지 운동이다. 그러나 이 의식개혁운동은 사단이 주도하는 것이며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 행위대로 심판받고 불못에 던지우는(계20: 13,14)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5. 영적으로 타락하는 사람들


우선 자아각성이 필요하다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자아각성을 통해서 우주와 조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신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설명하고 보니까 인간이 신이 되는 방법이 매우 간단하고 쉬운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신이라고 자기암시를 주면서 우주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요가나 선을 수행하면서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통해 우주와 조화를 이루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신이 되는 것이니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 일인가?

이러한 사상은 최근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할 정도로 오래된 것이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신이 되었다는 인간들의 주장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신이 된 인간은 단 한 명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신으로 진화한다는 영적인 진화론은 지금 전세계에 퍼져나가고 있다. 그리고 세계 각처에서 그동안 여러 다른 이름으로, 다른 형태로(종교적이든 문화적이든) 존재하고 있었던 비슷한사상들과 접목되어 가고 있다 마치 종이 위에 하나의 그림을 점으로 표시해 놓고 그 점들을 이어나가면서 그림이 완성되듯이 뉴에이지 운동의 형태가 전세계를 바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무한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은 유한한 인간에게 당연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날아가는 새를 보고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을 이루기 위해 비행기를 만들었던 것처럼 무한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신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있다고 해서 신이 되는 곳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일 뿐이다. 하나님의 세련되고 오묘한 창조의 솜씨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인 것이다. 피조물이 어떻게 창조자가 될 수 있겠는가? 뉴에이저들에게는 냉정하고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무튼 인간은 인간일 뿐 절대로 신이 될 수 없다. 방에서 또는 화원에서, 산에서 강가에서 가부좌를 하고 자연 속에 묻혀 명상을 한다고 해도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수십년 동안 토굴 속에서 수행을 하든 면벽을 하고 수십년을 지낸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포기일 뿐 부처나 신이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신이 되려고 노력하며 몸부림치는 사람들은 점차 늘어만 가고 있다. 어느 유아원에서는 아이들의 집중력을 좋아지게 하고 건강하게 만든다는 구실로 기공체조를 도입하고 심지어는 교회에서 요가를 선전하고 강의하기도 한다. 교회에서 직분 맡은 사람들 중에 요가나 기공을 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아마 어느 교회든지 찾아보면 한 명씩은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물어보면 단순히 건강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만일 그 교회가 영적으로 뜨겁고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는 살아있는 교회라면 그 사람은 영적인 갈등을 수없이 겪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왜 그런 갈등을 려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요가나 기공을 포기하기 전까지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 비록 그러한 뉴에이지의 방법들이 신이 되기 위해 만들어진 영적으로 타락한 방법이고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모른채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 한다고 하더라도 영육간의 강건함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육체의 건강만을 위해서 영적인 타락의 길로 걷는사람들도 역시 신이 되기 위한몸부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 영적인 타락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안타깝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호4:6)


이러한 안타까움 속에 탄식하는 성령의 소리를 듣는 크리스천들은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들인가. 그들은 영의 귀가 열린 사람들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7)


6. 뉴에이지 운동과 신비주의


수많은 청소년들이 방황하고 있다. 자신의 설자리를 잃어 버리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몰라 이리 휩쓸리고 저리 횝쓸리고 있다. 그들은 취미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감탄할 마음의 여유도 얼다. 대학이라는 문을 향해 떠밀려 가면서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쳐서 상처뿐인 그들. 그러니 마음속은 늘 텅 비어있다.

빈마음을 채우기 위해 어떤 연예인에게 열중해 본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유명한 운동선수에 깊이 빠져본다. 어떤 아이들은 부탄가스를 마시거나 본드를 흡입해서 강제적으로 환각을 경험하기도 한다 머리 속에 뇌세포가 파괴되어 백치가 되어가는 줄도 모른채....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속의 빈 공간은 채워지지 않는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에게 빠지면 마음속엔 늘 그리웅과 아쉬움이 남아있어 ,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무지개를 향해 안타깝게 손짓을 하듯이 몸부림치지만 그들은 항상 저만치 가고 있어 도저히 닿을 수 없다. 부탄가스나 본드를 이용해 환각에 빠지지만 깨어나면 여전히 답답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 공간을 채울 수가 있고 갈등과 번민과 방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요한복음 14장 27절에 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 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 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청소년들의 마음속에 있는 빈 공간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참 평안으로만 채워질 수 있다. 이 평안이 마음속에 차고 넘칠 때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수1 :7)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참 평안을 가지지 못한 청소년들로 하여금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도록 만드는 영적인 흐름이 흐르고 있다.귀신을 불러내어 자동필기로 점을 치고 멀어지도록 만드는 영적인 흐름이 흐르고 있다. 귀신을 불러내어 자동필기로 점을 치고 앞일을 물어보는 귀신놀이나 오백원짜리 동전을 이용해 귀신으로부터 대답을 얻는 큐비트의 점과 같은 영적인 타락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그것뿐이 아니다. 염력이나 독심술, 마인드 콘트롤, T.M.(초월명상)과 같은 신비주의적인 방법들에 심취하는 청소년들도 늘어나고 있다.영화나 음악, 스포츠 등으로 대리만족을 얻는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반기독교적인 신비주의에 빠져서 영적인 타락의 길로 달려가는 청소년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문화를 무기로 삼고 있는 뉴에이지 운동의 영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서점에 가면 온갖 신비주의 서적들이 범람하고 있고 신비주의적인 영화들도 극장이나 비디오 테잎 대여점을 통해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시내 곳곳에 붙어 있는 기공이나 단,요가에 대한 선전 포스터들과 미스터 마릭쇼 와 같이 E.S.P.(초감각적 감지력)를 선전하는 것과 같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신비주의적인 방법들이 청소년들을 유혹하고 있다.그것뿐이 아니다. 인간에게 마치 무한한 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만화들이나 컴퓨터 게임들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 범람하는 신비주의적인 방법들을 뉴에이지 운동이라고 부른다. 뉴에이지 운동은 동양의 신비주의와 서양의 신비주의가 결합된 반기독교적인 영적 흐름이다. 신비주의는 철저하게 사단과 관련되어 있다. 사단은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하듯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도록(창3:6) 신비주의적인 방법들을 포장해서 유혹한다. 그리고 그 유혹에 빠진 사람들을 영적인 타락으로 유도하여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러한 신비주의를 가증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절대로 용납하지 말라고 명령(신18:9-14)하신다

청소년들이 신비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초능력과 영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인간에게 마치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초능력자들은 청소년들의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전자오락 게임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초능력자들이 겉으로만 보이는 신비한 능력에 감탄하기에 앞서 반드시 그들의 영적인 상태가 어떠한지를, 그리고 그러한 능력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알아야만 한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초능력자들의 영적 상태가 반기독교적이고 귀신과 관련이 되어 있으며 결국 그들의 영혼은 멸망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스터 마릭이 보였던 것처럼 염력으로 수저를 휘는 능력을 갖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

영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는 청소년들은 심령서적에 심취하거나 접신이나 강령술 같은 것들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 또한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러한 것들에 빠져 성격이 난폭해지거나 우울증에 걸리고 염세주의자가 되어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청소년들은 결코 영적인 덫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뉴에이지 운동은 지금 신비주의적인 방법을 통해 청소년들을 유혹한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은 이러한 것들에 관심을 갖고 심취하는 위험한 삶을 사는 것보다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골2:7) 결코 흔들리지 않는 바른 영적인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7 귀신놀이가 유행하고 있다.


K양은 친구들이 귀신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한심스러워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미래를 한번 알아보고 싶은 충동을 누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 번을 망설인 끝에 붉은 색 볼펜을 들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일본말로 된 주문을 외우면서 볼펜을 돌리는데 갑자기 팔에 이상한 힘이 들어옴을 느꼈다. 먼저 해본 아이들이 그런 증상을 느끼면 귀신이 온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K양은 떨리는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왔어요?"

그랬더니 갑자기 자신의 손이 움직이면서 볼펜이 저절로 0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서움이 몰려왔지만 한번 시작했으니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다음 질문을 계속했다.

"이 다음에 처와 결혼할 남자에 대해 알고 싶은데 가르쳐 주시겠어요.?"

볼펜은 0표를 그렸다. 그리고는 이름과 키와 생김새를 가르쳐 주었다.

"그 사람이 대학생이예요?"

"0"

"어느 대학이예요?"

'Y대 법대"

K양은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일류대학 법대생이라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았던 무서움과 불안감을 털어버리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질문했다. 그러나그 다음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코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그 남자 직업이 뭐예요?"

"실업자."

"그럼 나는 어떻게 돼요?'

"돈을 벌어서 남편을 먹여 살린다 "

K양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사건 이후로 K양의 얼굴에서는 웃음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성격도 날카롭게 변하고 말았다.

K양의 이야기는 요즘 중고등학교에 유행하고 있는 이른바 '귀신놀이' 의 한 작은 예에 불과하다.

지금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가정에서 귀신놀이를 하고있고 그로인해 여러가지 정신적 , 육체적인 피해를 입고있다

귀신놀이는 천구백팔십년대 초반에 재일동포 여학생이 퍼뜨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놀이는 미국의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영응반과 비슷한데 자동필기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영응반은 문자판 위에 놓인 조그마한 판 위에 손을 얹고 귀신을 불러내서 질문하면 그 판이 움직여 문자를 가리키는 점괘놀이판이다.

쿠르트 코흐는 이 점괘판이 1967년 북아메리카에서만 400만개가 생산되어 팔려나갔다고 하면서 기독교인의 가정에까지 파고든 것은 속임수를 구사하는 사단의 전략이 올린 일대의 개가라고 하면서 이 점괘판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사단으로부터 메시지를 받는 방법인 영응반과 흉사한 귀신놀이는 지금 전국에 다 퍼져있다. 귀신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처음에 믿지도 않던 아이들이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는 것이 비교적 정확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부터 호기심을 가지고 이 놀이에 빠져들고 있다.

예를들어 서울의 C고등학교에서 2학년 아이들 중에 한 명이 며칠후에 있을 교련 시험의 답을 물었다.

'교련시험 1번 답이 뭐 예요?"

"3"

며칠 후에 교련시험을 보았는데 1번 문제의 답은 3번이었다.

그리고 어떤 선생님의 전화번호와 생년월일을 물어보았는데 자동 필기된 숫자가 나중에 알아본 결과 정확했음이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놀이의 자동필기는 어떤 힘에 의해서 정확한 대답을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사단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영응반이라는 점괘놀이판을 사단이 주도하고 있듯이 지금 한국에서는 귀신놀이라는 것을 사단이 주도하고 있다

서울의 K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남녀공학인 이 학교는 고3에 한해서 밤에 자율학습을 시키고 있는데, 어느 날 밤에 공부하기에 싫증이 난 몇 명이 귀신놀이를 하게 되었다. 각 반에는 이 귀신놀이가 특별하게 잘되는 영매역할을 하는 아이가 꼭 한 명씩 있다 그래서 영매역할을 하는 아이가볼펜을 잡고 주문을 외우고 난 다음에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귀신이 여기 왔어요?"

" 0 "

"지금 어디 있어요?"

질문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이 아이는 어떤 힘에 이끌려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한쪽에서 귀신놀이를 보고있던 한 아이에게로 다가갔고, 볼펜을 잡은 손이 그 아이 얼굴을 가리키더니 볼펜이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기 교실에 귀신이 있다는 생각에, 그리고 눈앞에서 벌어진 현상에 겁이나 울거나 떨기 시작했다. 결국 집에 전화를 걸어 식구들을 학교로 오게 했다. 왜냐하면 겁이 나서 교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서울의 C고등학교 2학년인 K양은 "한번은 주문을 건 애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안다고 그러는데 하나님은 무섭다고 그랬어요"라고 하면서 "영매역할을 하는 애가 귀신놀이를 할 때 옆에서 복음성가를 부르거나 하나님께 기도해보면 어떨 까라고 말했더니 갑자기 그애 얼굴이 변하면서 만일 그렇게 하면 귀신 때문에 자기가 미치게 된다고 했어요" 라고 말했다.

또 3학년인 L양은 주문을 새로 외울 때마다 귀신이 바뀐다고 하면서 귀신들에게 물어보면 모두 다 하나님을 몹시 싫어한다고 말했다

필자가 구십 이년에 제주도에서 강의한 적이 있는데 그때까지 제주도에는 귀신놀이가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 놀이가 유행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경계하라고 강의를 했었다. 그런데 필자가 이 책을 쓰고 있던 구십삼년 10월에 제주도에 사는 한 여고생으로부터 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목사님, 저는 저번에 목사님 강의를 들은 학생인데요. 지금 우리 학교에 귀신놀이가 유행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그래서 기독반 선생님을 찾아가 그 놀이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못하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다음날 다시 그 여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목사님, 3학년 언니 중에서 지금 귀신놀이를 하다가 귀신이 들어가 미친 언니가 있어요. 어떻게 하면 돼요?"

서울에서도 귀신놀이를 하다가 귀신이 들려 미쳐버린 아이들이 있어서 매우 안타까웠는데 이젠 제주도에서까지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그 아이에게 목사님을 찾아가 기도받으면 깨끗하게 나을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몇시간 후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목사님, 어떤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바쁘다고 하시면서 안 해 주신데요."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목사님이 기도만 하면 귀신은 쫓겨날 것이고 그 이야기가 순식간에 학교에 퍼져나가 귀신놀이도 중단되고 아이들을 전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하다니....

그 목사님은 뉴에이지같은 것은 몰라도 된다고 평소에 말씀하였다는데‥‥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금 귀신놀이는 전국에 퍼져있다. 강원도 원통, 원주, 대구,부산, 제주도 등등 울룽도와 독도를 제외하고는 전국에 다 퍼져있다. 미국에서 영응반과 같은 점괘놀이를 통해서 심각한 영적인 문제들이 발생했듯이 지금 한국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뉴에이지 사상으로 이루어진 영화들이나 서적들이 범람하고 있는 것도 문제인데 더 나아가 직접적으로 영적인 접촉을 경험하는 청소년들, 무당이나 영매의 역할을 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아무런 비판도 없이 확산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궈신놀이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다. 이 놀이는 자신의 영혼을 걸고 하는 도박이다 어떤 청소년은 이 놀이를 통해서 시험답을 알 수 있고 자신의 미래를 알수 있으니 팬찮은 것이 아니냐고 하는데 이 놀이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더구나 이 놀이는 오래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쉽게 탈진해 버리기 때문이다.

C고등학교 3학년인 K군은 "원래 이 놀이는 빨간 볼펜으로 하는 겁 다. 아이들이 이 놀이를 하다가탈진하는데 그 이유는 빨간볼펜에서 나오는 잉크가 바로 귀신놀이를 하는 아이의 피인데 피가 많이 빠지기 때문에 탈진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영혼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어 멸망으로 유도하려는 사단의 계략이 바로 귀신놀이다. 영혼을 걸고하는 도박, 이 도박의 딜러는 사단이며 결국 청소년들은 패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은 필자와 상담을 했던 아이들의 이야기들이다.


K군

잘 아는 자매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야기를 하던중 그 자매가 귀신 놀이를 하다가 미친 애도 많고 죽은 애도 많다고 이야기했어요.

J양

아이들에 따라서 귀신이 강하게 오는 경우도 있고 잘 오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한번은 어떤 몸이 약한 아이가 귀신놀이를 하다가 쓰러져서 교장 선생님 차를 타고 집에 실려가서 링겔을 맞기도 했어요.

L양

외국귀신도 오는데 한번은 교실 안에 귀신이 몇 명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200명이 있다는 대답이 나왔어요

C양

얼마전에 집에 오는 길에 한 친구를 만났는데 운동을 많이 하고 난 뒤처럼 몹시 힘이 없었어요.그래서 물어보았더니 학교에서 귀신놀이를 해서 힘이 빠졌다고 그랬어요.

L양

주문을 거는 애의 눈을 보면 평상시와는 틀려요. 진짜 무당같애요

K군

귀신놀이를 하면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친구들이 그래요

H군

하나님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귀신들이 다 안다고 대답해요. 그러면서 전부터 하나님을 죽어라고 싫어한다고 그래요.

S양

제일 싫어하는 아이들이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아이들 앞에 점을 찍는데 모두 기독교 써클에 가입한 아이들이었어요.

0군

제 친구 중에 두 형제가 귀신놀이를 하다가 형이 심장마비로 죽었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흥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흔자를 너의중에 용납하지 말라 무룻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너는 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 (신18:골13)


8. 영적인 진화론


'원숭이 골요리'

수없이 많은 요리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살벌한 이름을 가진 요리 중의 하나이다. 그 맛이 어떠한가를 따지기에 앞서 왠지 거부감이 느껴진다. 이러한 거부감은 원숭이의 골을 먹는 장면을 상상할 때도 생기지만 진화론을 생각했을 때도 느껴진다.

진화론에 의하면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데 그렇다면 인간이 조상의‥‥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우리는국민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진화론을공부해 왔다 생명의 기원에 대해 자연발생설, 생물속생설, 화학진화설을 배우면서 미생물로부터 현재의 인간에 이르는 과정을 공부했다. 그것이 허황된 이론인지도 모른채 그저 가르치는대로 배웠다.

교회에서는 창조론을 학교에서는 진화론을 배우면서 혼란도 많이 겪었다. 창조론이 옳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험을 볼 때 답안지에 진화론을 써넣어야 하는 갈등도 業었다. 그래야 점수가 나오니까‥‥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로 믿어야 하는 모순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학교 교과서에는 진화론만이 나와 있고 창조론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인류의 출현에 대해 창조론과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진화론이 인류의 출현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이양림 교수의 「진화론의 실상과 창조」에서 살펴보자,

"인류는 분류학적으로 Homo Sapiens라는 학명을 가진 단일종으로서, 척색동물 중의 척추동물아문의 포유강, 영장목 (Vertebrata, Mammalia Primata)에 속한다. 영장목에 속하는 동물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눈이 얼굴의 측면에 있지 않고 전면에 위치하며 , 영장류는 손가락, 발가락의 납작한 손톱, 발톱을 가진다는 것이다.

고생물학자들은 이러한 해부학적 특징에 근거하여 최초의 영장류는 몸무게가 28.3g정도밖에 되지 않는 식충 포유류(shrew)나 여우원숭이(lemur)를 닮은 원시 영장류 조상으로부터 7500만 년의 진화과정을 통해 지구상에 출현했을 것이고, 원시 영장류는 나무에서 살면서 곤충, 나뭇잎, 나무열매 등을 먹으며 생활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진화론자들은 이 최초의 원시 영장류는 크게 세 갈래로 진화하였다고 추정한다. 즉 첫번째 갈래는 식충 포유류, 여우 원숭이, 안경원숭이를 포함하는 부류이고, 두번째 갈래는 원숭이 부류, 그리고 세번째 갈래는 유인원과 인류를 포함하는 부류로 추정되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비교해부학적, 고생물학적 및 생화학적 연구에 기초하여 인류와 유인원 사이에 대단히 밀접한 유연관계가 있다고 결론짓고, 일반적으로 유인원과 인류는 공동조상으로부터 진화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


인류의 조상은 누구인가?

아메바인가? 원숭이인가?

지금 창조과학회에서는 진화론이 얼마나 허구로 가득찬 이론인가를 증명하고 있다. 인간은 창조되었지 진화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지은 피조물이 바로 인간인 것이다 진화론은 인간의 기원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그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또하나의 무지의 산물일 뿐이다.

이러한 허구로 가득찬 진화론은 과학에서 뿐만이 아니라 뉴에이지 운동에서도 나타나는데 영적인 진화론이 바로 그것이다.

영적인 진화론은 인간이 하나님으로 진화해 간다는 이론을 말한다. 뉴에이저들의 강연이나 저서들을 보면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용어가 바로 '의식의 성장'이라는 것이다. 이 용어는 단순히 인간이 무지에서 깨어나 계몽의 단계로 접어드는 문화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진화론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무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유한한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망각에서 차츰 벗어나 자신이 무한한 존재임을 깨닫는 과정이 바로 영적으로 진화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회의 신부인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뎅은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인 신성, 즉 극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그리스도로 변화하는 진화가 계속 이루어질 것이라고 1950년대 말에 주장했다.

캐나다 정신과 의사인 리처드 버크는 1901년에 신과 같이 우주의식을 갖는 방법으로 진화해 가는 우월한 종족에 대한 이론을 주장했다. 이러한 이론을 담은 「우주의식」이라는 그의 저서는 지금 뉴에이지 운동의 고전이 되어 있다.

셜리 맥클레인은 자신이 신임을 믿고 그대로 염송하면 신이 된다고 주장하면서 그녀 자신이 말리부 해안에서 뛰어다니면서 "나는 신이다"라고 외치기도 하였다.

인간이 신으로 진화해 간다는 영적인 진화론은 뉴에이저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며 목표인데 일원론과 범신론에 기초한 이 거짓 이론은 사단이 에덴동산에서부터 인간에게 속삭이던 거짓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날 모든 뉴에이저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영적인 진화론. 뉴에이지 운동의 또다른 거짓말이다.


9. 영적인 진화의 단계


뉴에이저들.

그들은 영적으로 타락한사람들이다. 그들이 타고 있는 영적 타락이라는 이름의 기차가 도달할 곳은 멸망이라는 종착역이다.

성경은 이들이 도달해 영원토록 머무를 곳을 '불못' (계20:14)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신이 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영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이 영원토록 후회하며 고통을 받게 될 곳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인 것이다.

하나님이 되는 것이 아니라 멸망의 늪에 빠지게 된다는 진리를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영적으로 진화한다는 뉴에이저들의 이론은 사실 영적으로 타락하는 이론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인간이 신으로 진화한다는 영적인 진화론은 전세계에 퍼져나가고 있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미혹당하고 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1

뉴에이저들의 영적인 진화론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자료가 있지만 그 중에서 마릴린 퍼거슨의 「물병자리의 음모」(The Aquarian Conspiracy)를 참조하기로 한다.

이 책은 천구백팔십이년에 「의식혁명」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이 되었고 천구백구십사년에는 「뉴에이지혁명」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의식혁명이나 뉴에이지혁명이라는 제목보다는 물병자리의 음모라는 원제목이 더 정확하다. 왜냐하면 단순한 의식혁명이 아니라 물병자리 시대에 일어날 인간의 변화에 대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릴린 퍼거슨은 이 책에서 인간에게 단계적으로 변혁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여행의 입구,구도,통합그리고 공모의 네 가지 단계를 말한다.

이 네 가지 단계는 인간이 어떻게 영적으로 진화하는가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다. 물론 거짓 이론이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몽상이지만 뉴에이저들의 헛된 꿈인 영적 진화론을 설명하는데 적당한 이론이다.

인간이 '투명지성을 갖춘 존재'가 되기 위한 단계라는 설명이 붙은 네 가지 단계를 하나씩 살퍼면서 뉴 에이지의 영적인 진화론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여행의 입구

이 단계는 시작, 깨달음 그리고 갈등의 단계이다 마릴린 퍼거슨은 이 단계를 설명하면서 LSD를 예로 든다 LSD가 육십년대에 사람들을 깨달음의 단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투명지성으로의 길을 조사해 보면 전에는 LSD에 의존했던 사람도 이제는 그러한 방법을 선(Zen)이나 인도의 명상 등에서 찾고 있는 경우가 실제로 많아졌다.

이 말은 LSD가 선이나 명상으로의 여행을 시도하는 입구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의미이다

마릴린 퍼거슨은 LSD가 육십년대에 좌측뇌를 사용했던 사람들이 상상력이 풍부한 우측뇌를 사용하도록 만들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측뇌를 강조하는 이유는 인간이 투명지성을 가진 존재(좀 더 쉽게 말하면 신적인 존재를 말한다)가 되기 위해서 우측뇌가 개발되어야 한다는 이론 때문이다

뉴에이지 운동의 초점이 인간의 우측뇌를 개발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뉴에이지 음악도 인간의 우측뇌를 자극시켜 명상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LSD를 통해 우측뇌를 개발하여 의식의 확장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바로 첫단계인 여행의 입구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일반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엇인가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단계가 바로 첫단계이다. 그리고 깨달음과 그 과정에 대한 걱정과 불신으로 인한 갈등의 단계이기도 하다. LSD를 복용하기에 앞서 걱정을 하고 한편으로는 잘못될까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LSD로 인한 환각을 경험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무엇인가 다른 영적인 측면이 있음을 깨달았고 그 세계를 신비의 세계라고 부르면서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화학약품에 의지한 자각은 미약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좀더 강렬하고 영적인 것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 유행하기 시작했던 동양종교는 너무나 유혹적인 것 이었다. 그래서 명상과 요가, 선에 심취하게 되면서 뉴에이지라는 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세계에 빠지게 된 것이다.

첫단계인 여행의 입구에 들어선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영성에 대한 갈구 때문이다 육십년대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뉴 에이지에 빠져들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영적으로 방황하는 그들 앞에 신선한 충격으로 와닫는 뉴에이지의 영성 때문이었다.

뉴에이지 운동은 분명한 영성을 가지고 있다.

고신대의 김성수 교수는 '뉴에이지 운동, 그 영향과 평가'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운동은 현대 물질 문명의 찌든 사회 속에서 메마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성 (spirituality)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고‥‥ 뉴에이지가 추구하고 있는 영성은 분명히 이교적 영성(pagan Spirituality) 이다. "


뉴에이지가 가지고 있는 영성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는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올무에 빠지도록 만든다. 그런데 이런 이교적인 영성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매우 유혹적인 것이 될 수 있는가?

육십년대 뿐만이 아니라 지금 현대인들은 참된 영성을 간절하게 찾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로부터의 탈출을 위해서이다.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사회의 문제 더 나아가서는 지구의 문제들로부터의 탈출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의 구름을 헤쳐 나가기 위해 참된 영성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사람들 앞에 신비주의를 포함한 뉴에이지의 이교적 영성은 매우 달콤하게만 보인다. 더구나 인간의 잠재력을 개발하여 무한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가장한사단의 계교는 더할 나위없이 먹음직도 하고 보임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만(창3:6)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이 참된 영성을 갈구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마음 속에 있는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 속에 공간을 가지고 있는데 그 공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요14:27)이 들어갈 자리이지 세상의 그 무엇으로 채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세상의 것으로 공간을 채우려고 한다. 물질, 권력, 명예와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이러한 것들은 만족함이 없고 평안을 주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유한함을 느끼게 되고 허탈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이때 눈앞에 던져지는 '무한한 존재가 되는 비결'은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창세기 3장에서 하와를유혹했던 사단의 유혹의 소리가 지금도 현대인들에게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뉴에이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공간을 채을 수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참된 영성을 찾아야 할 사람들이 거짓 영성, 이교적 영성을 붙잡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참된 영성을 제시하고 가르쳐야 할사명을 가진 것이 교회인데 과연 그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뉴에이지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뉴에이지 음악에 관심과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 뉴에이지에서 사용하는 방법들, 즉 요가, 선, 명상 기공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천들이 바로 여행의 입구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의심이 가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결국 멸망의 늪에 빠지게 될 이 여행의 입구에 지금 많은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다 여행을 선전하는 포스터 앞에 모여서서 웅성거리고 수근거리며 마음이 들떠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예쁘게 차려 입은 미녀로 변장한 사단은 한 손에는 꿀단지를 다른 한 손에는 가시로 된 몽등이를 들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 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영을 분별하는 영적인 분별력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여행의 입구에 서 있는 것이 잘못인지 아닌지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무리 속에 크리스천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성경말씀을 묵상하며 무엇이든지 영적으로 분별하기만 하면 쉽게 알 수 있을 터인데 지금 안타깝게도 여행가방을 들고 멸망으로 끝날 여행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세상에 있는 이보다크심이라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요일4: 1-6)


(2) 구도의 단걸


준비단계

뉴에이지의 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초기단계에서 온몸의 긴장을 이완시킨다. 구도의 단계가 바로 그런 단계이다. 마릴린 퍼거슨은 편안한 마음을 갖게되면 저절로 내면의 지식이 밖으로 흘러나온다고 말한다

이 단계는 절대로 서둘러서는 안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비가 하늘에서 내려 지표에 흡수된 다음 마침내 지하수가 되듯이 서서히 변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구도의 단계는 명상이나 요가, 선, 기공과 같은 방법들을 시작하는 단계이다 이것들을수행하기에 앞서 온몸의 긴장을 이완시킨 다음에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내면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래서 이 단계를 준비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음악이라는 도구

명상이나 기공, 선과 같은 방법들을 수행하기에 앞서 준비단계에서 해야할 일은 음악을 준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명상음악은 명상에 깊이 빠지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기공사들이 기가 들어있다는 명상음악을 틀어놓고 기를 전수하고 명상에 잠기듯이 음악은 아주 훌륭한 도구로서 사용된다.

이처럼 음악은 뉴에이지 운동에 있어서 아주 좋은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사실은 뉴에이지 운동에서는 그저 듣고 즐기는 음악의 기능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을 위한 하나의 보조도구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우측뇌의 개발을 위한 도구, 깊은 명상을 위한 도구 자아각성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뉴에이지 음악을 단순한 음악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뉴에이지 음악을 일반장르의 대중음악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뉴에이지 음악은 분명한 영적인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여기에 대해서는 '뉴에이지 음악의 영적인 목적' 에서 다루기로 한다.

구도의 단계는 뉴에이지 음악에 관심을 가진 크리스천들이 음악을 선택하고 들을 준비를 마친 후에 편안한 자세를 갖고 카세트 레코드의 재생(play) 스위치를 막 눌러 듣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단순한 음악의 한 장르로 여기고 듣든지 아니면 그저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듣든지 아무튼 뉴에이지 음악에 막 빠져드는 단계인 것이다.

음악뿐이 아니라 뉴에이지의 방법들을 수행하기 시작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크리스천들 중에 구도의 단계에 와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영혼을 위해 그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참된 영성을 발견했으면서 이교적인 영성을 따르려고 하는지 , 그리고 왜 다른 도를 구하려고 하는지‥‥

지금 이시간에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서, 집중력이 좋아지기 위해서, 머리가 좋아지기 위해서, 심지어는 몸의 군살을 빼기 위해 뉴에이지에 빠져들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선교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이교적인 영성을 따르려고 한다. 이는 영적인 분별력이 없어서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구도의 단계에 와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그길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완전해야만 할 것이다.


"너는 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 (신18: 13)


(3) 통합의 단계


내면의 스승

구도의 단계에서는 비판과 의심과 무지와 호기심으로 인해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만 통합의 단계에서는 안정되고 내향적으로 된다. 그리고 뉴에이지의 방법들에 깊이 빠져서 내면의 스승을 만나는 단계까지 들어가게 된다.

내면의 스승이란 바로 사단을 의미한다 뉴에이지의 방법들을 수행하면 어느정도 수준에 이르러 유체이탈이니 환상을 통해 영적인 존재를 만나는데 그 존재가 바로 사단이다. 통합의 단계에 속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러한 일들을 경험한다.

셜리 맥클레인은 그녀 스스로 가 대자아(Higher Self)라고 부르는 내면의 존재를 만난 경험을 「내면세계의 탐험」 (Going Within)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힘찬 모습으로 나의 내면의 중심에 조용히 서서, 전적인 사랑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키가 매우 크고 긴팔을 가진 양성적인 존재였으며 ,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것 가운데 가장 친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머리털은 붉은 빛이 도는 금발이었고,풍채는 독수리와도 같았다. 그는 팔을 벌리고 내가 확인하는 것을 환영하면서 '내가 참된 당신이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

셜리 맥클레인은 대자아를 통해 자신이 알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서 물어보고 대답을 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그 만남을통해 타인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켰고 우주의 영과의 일치감이 만들어졌고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라는 생각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통합의 단계에서 일어나는 환각이다.

특히 이 단계에서는 셜리 맥클레인이 말한 것처럼 우주와의 조화를 맛볼수 있다. 일원론의 개념도 알수 있다. 사단의 거짓말과환각 때문에 느끼는 것들이다. 그래서 뉴에이지의 사상인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라는 사상에 물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환각들이 없다면 마치 낚시를 할 때 미끼없이 낚시바늘만 물 속에 담그는 것과 같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 유혹에 빨려들지는 않을 것이니까.

깊은 명상에 빠진 사람들은 종종 신비한 체험을 하기도 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의 세계를 보기도 한다


물리학자인 프리쵸프 카프라는 해변에서 에너지의 우주적인 춤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의 거대한우주적 춤을 추는 모

습을 보았던 것이다


"나는 그 리듬을 느꼈고, 그 소리를 들었으며 ,그리고 그 순간그것이 바로 힌두교도들이 숭배하는 춤의 신인 시바의 춤 (Dance of Shiva)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마릴린 퍼거슨은 어느 임상심리학자가 경험한 것을 예로 들어 말하기도 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명상을 끝마치고서 잠들어버린 그는 한밤중에 눈을 뜨고서 원통형의 이미지가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날 곧장 그 이미지를 뎃상했다. 나중에 그 이미지는 실은 동양에서 명상할 때에 사용되는 만다라와 동일한 것이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


카프라나 임상심리학자가 경험한 것 외에도 뉴에이저들은 명상을 통해 여러 가지 경험을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사단의 거짓말인 뉴에이지 사상을 더욱 더 신뢰하게 만든다.

그러나 명상을 통해서 언제까지나 활홀경을 체험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명상이 언제나 좋은 경험을 하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명상의 본질에는 사단의 간교한 계략이 숨어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려는 계획이 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좋은 것 같아도 명상에 빠져들면 들수록 영적인 부작용을 경험하게 된다

정신과 의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초월명상과 같은 것에 빠져드는 사람들 중에 정신적인 도착상태가 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거의가 회복불가능이라고 한다. 특히 부부가 명상을 하게 될 때는 이혼율이 특별히 높다고 한다. 또한 명상을 할 때 경험하는 황홀경과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큰 괴리감으로 인해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없다고 한다.

라빈드라니스는 요가의 명상을 할 때 신들이 보이고 때로는 지구를 벗어나는 유체이탈을 경험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명상을 통해 목에 코브라를 걸고 있는 파괴자 시바신을 만났을 때 두려움에 떨며 시바 신 발밑에 무릎을 꿇고 앉을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랜들은 그의 저서 「뉴에이지의 악몽」에서 명상을 통해 유체이탈을 했을 때 눈부시게 밝고 환한 빛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빛의 반대편에서 그를 움켜쥐고 있는 어떤 힘을 느졌고 증오와 분노에 가득찬 얼굴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면서 그 악마의 강력한 힘이 조여와서 헤어나을 수 없는 공포로 인해 일주일을 고생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명상의 본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국내에는 요가나 기공을 통한 명상요법이 점점 번져나가고 있다. 크리스천 중에서도 건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인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호4:6)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

통합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이다 범신론이나 일원론에 대한 관심과 확신은 그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줄만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마릴린 퍼거슨은 철학, 양자물리학, 음악, 의미론, 대뇌연구, 심리학 등이 새로운 관심의 대상으로 등장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보다 영적으로 공통적인 분야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신비주의이다 통합의 단계에 있는사람들은 신비주의에 큰 매력을 느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모두 하나의 줄로 연결되어 있고 그 줄을 사단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요가를 통해서든 E.S.P.를 통해서든 뉴에이지 운동에 빠져든 사람들은 신비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신비주의의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사단 숭배에 빠져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뉴에이지 운동의 본질에는 사단숭배라는 그물이 깔려있다.

사단은 분명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영생을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훼방자요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온갖 말로 유혹하는 거짓말장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사단을 숭배할 수 있을까?

국내에 존재하는 사단숭배 그룹에 속해있는 일부 청소년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원래 사단은 사악한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선한 신인 사단을 왜곡시켜놓았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사단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동일시한다.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을 섬기듯이 이들은 사단을 섬긴다.

이들의 결말이 어떨지는 보지 않아도 잘 알 수가 있다 사단에게서 무슨 희망을, 영생을 기대할 수가 있는가?사단의 유혹에 빠져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했던 가룟유다는 결국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

달콤한 유혹과 비참한 최후. 이것이 바로 사단숭배의 공식이며 정석이다.


(4) 공모의 단계

변혁의 단계이다.

여행의 입구, 구도 그리고 통합의 단계를 거치면서 자신을 변혁시켰던 것들이 자신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지구전체를 변혁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변혁을 기다리고 있는자신과 같은사람들과 공모를 한다.

뉴에이지 운동이 지금 수많은 동조자들을 규합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움직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의 변혁 그리고 지구 전체의 변혁.

바실레아 슬링크 여사가 뉴에이지 운동을 다양성 안의 일치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은 각계 각층의 사람들, 즉 개인적으로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단계를 거친 사람들이 공모하여 변혁을 일으키려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다는 의미를 함축시킨 것이다.

지금 뉴에이지 운동은 세계를 변혁시키기 위해 공모의 단계를 거치고 있다.

텍스마스는 그러한 공모가 세계의 모든 종교를 하나로 통합하고, 오십억 인류를 하나의 정부가 통치하려는 엄청난 계획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고 비밀리에 모여 수근거리는 무리들. 바벨탑을 쌓으려는 적그리스도의 무리들이 지금 공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저술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든지 어떤 단체를 통해서 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든지 공통된 목표 아래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음악요법과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음악요법은 지금 뉴에이지 운동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개인의 변혁을 위한 주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지금 음악요법은 확산되어가고 있다 기독교에서도 교회음악을 이용한 음악요법을 개발해서 크리스천들이 선한 본질의 음악을 잘 사용하도록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너무나 미약하기만 하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들여서 뉴에이지 음악을 이용한 음악요법을 이용하고 있다

뉴에이지 음악을 이용한 음악요법의 목표는 변혁이다. 여행의 입구, 구도,통합 그리고 공모의 단계를 거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어느 경우에는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효과는 일시적인 것일뿐 지속적 이지 않다.

또한 뉴에이지 음악은 마릴린 퍼거슨의 주장대로 인간의 우측뇌를 개발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음악의 본질속에 숨은 뉴에이지 사상을 명상을 통해서 세뇌시키는데, 뉴에이지 음악을 듣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변혁에 이르도록 만드는 메시지를 전달받는 것이다.이러한 뉴에이지 음악을 이용한 음악요법이 병원에서 조금씩 호응을 ㅇ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금 뉴에이지 음악을 이용한 명상음악이나 태교음악이 만들어져 보급되고 있다. 이제는 태아에게까지 이교적인 영성을 강요하고 세뇌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이미 변혁을 위한 공모의 단계까지 와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어느 기 강연회에서 서을 삼성동에 국내 최초로 뉴에이지 음악을 이용한 음악요법을 하는 곳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성행하고 있는 일이다. 이러한 곳이 계속 생긴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을 얻어야 할 사람들이 뉴에이지 음악이 주는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거짓 평안을 얻기 위해 몰려들 것이다.

국내의 뉴에이지 흐름을 살펴보더라도 이미 공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G출판사를 중심으로 한 서적분야, S오디오를 중심으로 한 명상음악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음악분야, B방송국을 중심으로 한 방송분야, 각종 요가단체들, 기 강연회 등과 같은 움직임이 보인다. 주로 문화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 뒤에는 인간의 영적인 변화와 변혁 , 즉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이교적 영성을 향한 변혁이 감추어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뉴에이저들의 공모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눅12:2)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뉴에이저들의 공모는 헌신된 크리스천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10, 제삼의 눈과 앵크 십자가


뉴에이지 운동의 상징물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여성들의 악세사리에 사용되는 상징물은 제삼의 눈(The Third Eye)과 앵크(Ankh) 십자가이다.

제삼의 눈은 '모든 것을 보는 눈' (The All-Seeing Eye)으로도 불리우는데 이것은 조화(unity)를 묘사한다. 그리고 이 조화는 주술,단숭배, 힌두교, 불교 그리고 현재 존재하는 모든 불가사의한 현상들과 신비주의에서 나타난다. 여기서 말하는 조화는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다시 말하면 제삼의 눈을 통해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삼의 눈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영적인 방법을 통해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한 존재인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삼의 눈은 또 다른 말로 '호루스(Horus)의 눈' 이라고 불린다. 호루스는 이집트의 여신인 이시스(Isis)의 아들이다. 고대 이집트를 연구하는 뉴에이지운동의 역사학자인 머리 홉(Murry Hope)은 "이집트의 어머니 여신인 이시스의 아들인 호루스 신은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신이 아니라 오늘날 현대인을 위한 유익한 신"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비스러운 현인들이 말하는 물병자리 시대가 바로 다시 돌아을 이시스 신의 아들인 호루스 신이 다스리는 시대이다‥‥모든 인류에게 평화와 빛과 사랑을 가져다 줄 것이다. "


제삼의 눈은 또한 인도의 힌두교에서 말하는 시바의 눈(The Eye of shiva)과 동일시된다 인도의 시바신은 호루스 신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신이다 뉴에이저들은 이 시바신의 눈이 인간의 이마에 있다고 주장한다. 시바신의 눈이 있는 지점은 차크라(뉴에이저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인간에게 있는 일곱 개의 에너지 중심) 가운데 아즈나 차크라(Ajna Chakra)에 해당된다. 뉴에이저들은 아즈나 차크라는 왕관 차크라라고 하는데 머리의 정수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뇌의 상부와 오른쪽 눈을 지배한다고 하면서 이 차크라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신과의 일체화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뉴에이지 운동에서 가르치는 여러 가지 영적인 수행방법들을 통해서 아즈나 차크라를 개발하면 신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과연 인간이 신이 될 수 있을까?하나님은 신이 되기 위해 여러 가지 헛된 꿈을 꾸며 거짓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55:8,9)


이 말씀은 여 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지만 뉴에이지 운동과 연관시켜 생각해 볼 때 유한한 인간은 결코 무한하신 하나님과 비교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삼의 눈은 오늘날 여러 가지 면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앨범 쟈켓에서 흔히 발견되고 있다. 머티어리얼(Material)의 '제삼의 힘' (The Third Power) , 빌 넬슨(Bill Nelson)의 '푸른 달과 웃음의 기타' (Blue Moons and Laughing Guitars) ,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The Alan Parsons Project)의 '하늘의 눈' (Eye In The Sky) 그리고 넥스트(N.E.X.T)의 '존재' (The Being)이다

존재에 대한 의문만을 제시할 뿐 결론이 없는 넥스트의 제이집인 '존재' 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기독교인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음악인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제삼의 눈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넥스트의 리더인 신해철은 앨범의 자켓으로 제삼의 눈을 사용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크는 제가 제안했는데요, 고대에서부터 주술적으로 많이 등장하는 게 눈동자예요. 이집트의 벽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되고 흑마술 쪽에서도 많이 나오는데 눈이 대부분 주술적이거나 그런 마법에서 지혜를 뜻하거든요. 이 눈은 우리쪽에서 사회를 보는 시각으로 의미를 부여했어요."


어떤 이유에서든지 뉴에이지 운동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제삼의 눈을 사용했다는 것은 신해철의 영성을 의심하도록 만들고 있다 신해철 스스로 흑마술이나 주술 그리고 이집트 벽화를 말하는 것을 보면 제삼의 눈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징물을 사용했다는 것은 기독교의 참된 영성과는 다른 뉴에이지의 이교적인 영성과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의심해 보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제삼의 눈과 함께 요즘 많이 등장하는 상징으로 앵크 십자가를 들 수 있다. 앵크 십자가는 영생 또는 불멸을 뜻하는 고대 이집트의 상징이다. 이것은 수세기를 지나면서 신비주의자들에 의해 행운을 가져다 주는 부적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앵크 십자가에서 등근원은 다산을 상징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이 표시는 사단이 예수 그리스도를 능가한다는 신성모독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뜻은 사단이 영생을 준다는 것이다. 사단이 어떻게 영생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영생은 오로지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연예인들이 이 상징을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고 이러한 목걸이를 하고 교회에 나오는자매들도 있다 악세사리를 파는 곳에 가면 이 상징물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뉴에이지 운동이 문화를 이용해 얼마만큼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한다.

제삼의 눈과 앵크 십자가. 분명히 반기독교적인 상징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크리스천들은 이러한 상징물을 목에 걸고 다니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1. 오쇼 라즈니쉬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

뉴에이저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적인 실존인물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기독교와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하나의 인간이며 자신의 내면 세계에 존재해 있던 신의 존재를 발견한 위대한 스승이라고만 이야기할 뿐 삼위일체 하나님임을 결코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석가 공자, 모하메드 등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계열의 인간으로 이야기 한다.

「배꼽」이라는 책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뉴에이저인 오쇼 라즈니쉬는 예수를 다음의 두 가지로 평가한다 첫째는 실패한 혁명가요, 둘째는 불교사상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이다.

「혁명」이라는 책에서 오쇼 라즈니쉬는 예수가 실패한 하나의 혁명가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이유 중의 하나로 "유태인들이 그를 처형하고 기독교인들이 그를 매장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수가 시도했던 혁명은 결국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해 실패로 끝났다는 말이다. 오쇼 라즈니쉬는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도 않고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활에 대해 언급하고 더구나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혁명가 예수의 사역이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 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예수의 부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실제적인 이유는 예수보다 자신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오쇼 라즈니쉬의 글들을 읽어보면 예수나 공자, 석가의 말들을 인용하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논리를 입증하는데 도구로 사용할 뿐 그들을 사실상 높이 평가하지는 않는다는것을 알 수 있다. 설사 높이 평가하는 듯한 말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결국은 자신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상대성을 가지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오쇼 라즈니쉬는 교만으로 가득찬 인물이다. 그의 비리를 파헤친 「타락한 신」(여러분!출판사)을 읽어보면 이러한 사실을 더 잘 알 수 있다 그는 스스로를 '바그완' (신)이라고 칭했으며 자신을 더욱 더 신비하고 위대한 인물로 보이기 위해 여러 가지 인위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었다. 자신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아들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실패한 혁명가로 혹평을 가하며 자신의 교만함을 위해 이용했던 오쇼 라즈니쉬도 결국 죽음을 이길 수는 없었던지 1990년 1월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으리라

오쇼 라즈니쉬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알려지지 않은 십팔년이라는 기간 동안 인도에서 살았다고 하면서 예수가 불교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 중의 하나로 그는 예수가 가르친 말씀들을 내세운다. 예를 들어 '원수를 사랑하라' (마5:44)는 말씀은 도저히 유태인의 사고와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유태인의 신은 질투의 신이며 철저하게 악을 미워하는 신이라고 하면서 그러한 신이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논리는 오히려 불교의 태도이며 이러한 태도가 '내면의 연금술' 이라고 말한다. 오쇼 라즈니쉬의 이러한 논리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얼마나 무지하고 답답한가를 잘 나타내고 있다. 라즈니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이 바로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며 죄많은 인간을 미워하지 않으시고 독생자를 보내셔서 화목제로 삼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대는 자신의 존재 안에 자신만의 신을 창조해야 한다. 그대는 신이 되어야 한다" (혁명 130쪽)고 말하며 인간이 바로 신이라는 대단한 착각에 빠져 있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해할 수가 있겠는가! 뉴에이지 운동은 인간을 마치 유한이라는 그물로부터 자유를 얻도록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더욱더 유한이라는 그물 속에 고립되도록 만드는 사단의 계략이다 오쇼 라즈니쉬는 바로 이러한 계략에 빠져 있기 때문에 엄청난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오쇼 라즈니쉬의 오류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견해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에 선한 사람들도 살고 있었는데 유태인의 신이 악한 사람을 멸망시키기 위해 선한 사람까지도 멸망시켰다고 주장한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요청대로 선한 사람이 열 명이라도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말씀들은 소돔과 고모라에 선한 사람이 없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악에 찌들은 도시가 소돔 과 고모라였으며 그 가운데서 날마다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의로운 심령을상하고 고통당했던 롯(벧후2:7,8)의 가족만이 생명을 건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오쇼 라즈니쉬의 저서들이 지금 계속해서 출판되고 있다. 그리고 오쇼 라즈니쉬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시인 L씨, 전위무용가 H씨 등)이 TV나 서적을 통해 그의 위대함(?)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단순한 인간, 심각한 영적 오류에 빠져있었던 무지한 인간이 지금 성인으로 추앙되고 있다. 오쇼 라즈니쉬의 저서를 읽고 있는 크리스천들의 영적인 분별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12. 라즈니쉬의 산야신

일천구백팔십일년 팔월에 "나는 미국이 기다려왔던 구세주다'라고 외치며 자신만만하게 미국땅을 밟았지만 사년만에 미국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추방을 당했던 오쇼 라즈니쉬는 스스로 바그완(신)이라고 부르며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기독교 신앙을 왜곡시키는 등 반기독교적인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다. 현대 뉴에이저 중 한 사람인 그는 수많은 제자들을 양육했고 지금 그 제자들이 계속해서 라즈니쉬의 사상을 가르치며 공동체를 이끌어가고 있다. 라즈니쉬의 제자들은산야신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오렌지색 로브를 입고 목에는 말라 (Mala)라고 부르는 백팔개의 알이 달린 염주목걸이를 걸고 다니는데 그 목걸이 끝에는 작은 사진틀이 있고 그 속에는 라즈니쉬의 사진이 들어있다. 일반적으로 산야신들은 라즈니쉬 공동체에서 사무적인 일, 책을 편집하는 일, 매점을 운영하고 도서관을 관리하는 일, 청소하는 일 등을 하떠 기본적인 침식을 제공받고 한 달에 오십루피의 용돈을 받는다. 공동체를 떠나서는 세계 곳곳에 라즈니쉬 공동체를 형성하고 명상법을 가르치며 라즈니쉬 사상을 전하는 일을 한다. 국내 에도 이러한 일을 하는 라즈니쉬 명상센터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라즈니쉬 아슈람(수도원이라는 뜻)과 연계해서 라즈니쉬의 책을 발간하거나 강의가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보급하고 라즈니쉬 명상음악 테이프를 판매한다. 그리고 갖가지 명상법을 보급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있기도 하다. 필자가 이 공동체를 찾아갔을 때 말라를 목에 건 한 청년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청년과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몇몇 남녀와의 대화를 통해 한국인으로 산야신이 된 사람들이 라즈니쉬 공동 체의 핵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인으로 라즈니쉬의 산야신이 된 첫번째 사람은 바로 전위무용가 홍신자씨이다. 칠십삼년 구월에 제례, 사다리, 오베른 언덕의 노래 등 여섯 가지의 레퍼토리로 전위무용을 발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홍신자씨는 칠십육년 칠월 이십육일에 인도에 있는 푸나 아슈람에서 라즈니쉬에게 산야스(戒)와 말라 그리고 라즈니쉬의 머리카락이 있는 나무상자를 받음으로 산야신이 되었다. 「푸나의 추억」이라는 책에서 그녀는 라즈니쉬를 '우주의 심원한 신비를 아는 분' 이라고 표현한다 이 두 권의 책은 홍신자씨가 뉴에이지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데 그 중의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종교관을 살펴보면 다원주의를 볼 수 있다.


"진리는 한 뿌리에서 만나는 것, 어느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다른 하나를 반대한다는 것은 결국 모순이 되고 만다. "(「푸나의 추억」 59쪽)


그리고 신관과 인간관을 살펴 보면 뉴에이지의 범신론임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 모든 신은 한 신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신은 오직 하나이며 오직 하나의 신은 어쩌면 바로 내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싶었다. " (「푸나의 추억」 72쪽)


"우리 인간이 지상에 살며 , 신을 경배하다가 마침내 신의 경지에 이르는 것, 그것이 바로 신의 뜻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 (「푸나의 추억」 268쪽)


"개체란 본디 없다. 우리가 개별적인 존재라고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는 것은 다만 개개의 육신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데서 생긴 착각일 뿐이다. 우리가 개체라고 믿고 있는 그것은, 오직 전체로서 하나인 우주의 크나큰 생명 , 저 유일하고 영원한 우주적 실체를 부분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아주 작은 거울일 뿐이다 모든 잘못은 우리가 어디에 포함된 부분이 아니라 완전히 분리되어 나와있는 독 립된 실체라고 자신을 오해하는데서 비롯된다. " (「자유를 위한 변명」 126, 127 쪽)


홍신자씨가 두 권의 책에서 말하고 있는 뉴에이지 사상들은 기독교의 진리들을 정면으로 공박하는 거짓 이론들이다. 종교관에서는 모든 종교를 하나로 보면서 기독교가 아닌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음을 주장하여 예수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과 구속사역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신관과 인간관에서는 인간이 결국에는 영적으로 진화하여 신이 된다는 뉴에이지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사상을 나타낸다. 특히 개체란 없고 우주의 모든 만물이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하나의 우주적 실체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반대하는 말로서 세상의 모든 것을 범신론이라는 거짓 이론 속으로 집어 넣으려는 영적인 음란을 행하고 있다

뉴에이지 운동이 더욱 더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국내에도 뉴에이저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특히 문화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뉴 에이지 운동에 가담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홍신자씨가 지은 두 권의 책을 발간한 G출판사 역시 뉴에이지 서적들을 발간하면서 뉴에이지 운동을 주도하는 핵심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라즈니쉬의 산야신들은 늘어가고 있고 뉴에이지 운동은 문화를 이용해 더욱더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금 이에 대한 전 기독교적인 대응이 절실하게 필요하기만 하다.

13. 뉴에이지 운동, 반젤리스 그리고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몇 년 전 무척이나 더운 여름날에 늘 하던대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순례의 길이라는 표현을 써서 굉장한 의미를 갖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하루에 15∼20여 레코드 가게를 돌면서 반기독교적인 앨범들을 찾는 것을 나름대로 거창한 이름을 붙여본 것 이다.

외국잡지나 서적들을 보면서 작성한 블랙 리스트를 들고 레코드 가게를 뒤지기 시작한지 세 시간이 지났을 때 당시에는 쉽게 구할 수 없어 내 리스트 제일 윗 부분에 항상 자리잡고 있던 앨범을 발견하게 되었다.

알파벳 순으로 정리되어 있는 몇백 장이나 되는 앨범들의 제목을 읽어가다가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Aphrodite's Child)의 '666' 을 발견한 것이다.

붉은색 표지, 검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쓰여있는 '666'이라는 앨 범 제목과 노란색 글씨로 써있는 요한계시록 13장 18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한정판(limited edition)으로 발매되었기 때문에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았으리라는 기대감(?)과 자료로 구해서 조사해야 하는 의무감, 호기심이 묘하게 어우러져서 갈등을 느끼게 만들던 앨범인 '666'을 꺼내드는 순간의 그 기분은 아마 클래식이든 팝이든 희귀한 앨범을 찾아다니는 음악 매니아들은 조금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천구백육십팔년에 반젤리스(Vangelis)와 데미스 루소스(Demis Roussos)를 중심으로 결성된 아프로디테스 차일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이름을 따서 그룹 이름을 만든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의 다른 이름이다.

악의 도성인 바벨론 성을 건축하였고 어린아이들을 불 속으로 던지는 등 사단숭배의식을 주도했던 사악한 여인인 세미라히스는 남편 리므롯이 암살당하자 죽은 것이 아니고 하늘에 올라가 태양신이 되었다고 하면서 숭배하도록 했었고 자신은 달의 여신으로 섬기도록 했었다. 그 이후로 동양과 서양에서 각 나라마다 다른 이름으로 숭배되어 오고 있고 클래식 작품들 가운데에서도 등장하기도 한다. (모짜르트의 '마적' 과 칼오르프의 '카르미나 브라나' 에서도 등장한다. )

'666'은 시인 코스타스 페리스(Costas Ferris)의 작품인 'Sahlep' 을 가지고 만든 컨셉트 앨범 (concept album:하나의 사상 이나 주제를 중심으로 모든 곡들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만들어진 앨범)이며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마지막 앨범이다. 모두 24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만들었다.

이 앨범에 들어있는 메시지나 사상이 만일 바벨론의 사악함과 하나님의 심판의 장면들을 그리고 있다면 크리스천들이 한번쯤은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혼돈과 허무, 절망과 아픔과 음란이 앨범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이 그러한 내용으로 되어있는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진정한소망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이 절망과 혼돈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요한계시록은 만군의 하나님께서 모든 악을 멸하시고 그의 자녀들에게는 영원한 평화와 생명을 주시는 소망과 감격과 기쁨을 주는 것이다.

아프로디테스 차일드가 '666' 을 통해서 요한계시록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여신 숭배를 부각시키는 등 반기독교적인 누더기를 입혀놓았다는 것은 노래들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A면의 끝곡인 '일곱째 인' (The Seventh Seal)에서는 반젤리스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존 포스트(John Forst)의 음성이 요한계시록 8장 1절을 낭독한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동안쯤 고요하더니"


이 말씀은 기독교의 성윤리를 비판하는 마이클 클레투의 이니그마(INIGMA,) B면에 있는 '믿음의 강들' (The Rivers of Belief)에서도 인용하고 있는 구절이다. '666' 에서는 공포로 묘사되고 이니그마에서는 모욕과 비웃음으로 낭독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레코드에 있는 곡들 중 '무한대' (oo)는 굉장히 음란한 곡이다. 간지에 써있는 해설에는 '흥분의 절정,즉 오르가즘' (orgasm)을 나타내는 듯 싶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성적 쾌락의 흥분이랄까?'라고 써있다. 이레네 빠빠스(Irene Papas)의 음란한 절규는 마치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직전 가장 추악하고 음란한 행동들이 절정에 다다른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에 대해서 다루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뉴에이지 운동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달의 여신으로숭배받는 아프로디테는 뉴에이지 운동의 역사적 배경에 놓여 있고 지금도 뉴에이저들이 숭배하고 있다 '666'에서는 절망과혼돈이 기독교로 나타나는 반면에 아프로디테는 그 가운데서 그러한 심판들을 즐기는 주인공으로 나타난다.

뉴에이지 운동과의 연관성은 또한 반젤리스라는 키보디스트 때문이기도 하다. '666'의 작곡자인 반젤리스는 키스 에머슨, 릭 웨이크먼(프로그래시브 그룹Yes의 멤버였고 지금 뉴에이지 음악을 만들고 있는데 국내에 세 개의 앨범이 이미 들어와 있다),장 미셀 자르(뉴에이지 음악가)와 함께 세계 4대 키보디스트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영화 '불의 전차'의 주제곡인 '불의 전차' (Chariote of Fire)로 아카데미 영화상인 오스카상을 받기도 했고 국내에서는 M 쿠키와 K 주방기구 세트 선전에 사용된 뉴에이지 음악인 '찬송' (Hymn)을 통해서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발매되고 있는 영화 '1492콜럼버스` 의 사운드 트랙 앨범의 음악도 반젤리스가 맡았다.

뉴에이지 운동, 반젤리스 그리고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다양성 안의 일치'라고 뉴에이지 운동을 표현한 바실레아 슬링크 여사의 말이 생각난다.

서로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목적과 뿌리는 하나인 뉴에이지 운동은 거미줄처럼 망(network)을 만들어 우리를 감싸고 있다.시간이 지날수록 뉴에이지 운동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고 뉴에이지 음악도 그럴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이 처음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음악 평론가들은 다른 장르의 음악처럼 스타가 없기 때문에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지만 지금 어떠한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록 음악이 40여년이라는 시간동안 여러 형태들로(하드록, 헤비메탈,프로그래시브, 얼터너티브 록 등) 바꾸어 가며 그 기새를 몰아가고 있듯이 뉴에이지 음악도 다른 장르의 음악를을 흡수해 가면서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다.

이미 국내의 방송에도 뉴에이지 음악을 많이 사용하고 있고 심취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뉴에이지 운동이나 뉴에이지 음악은 결코 한 시대에 나타났다가사라질 것들이 아니다. 종교적인 배경 하나만을 봐도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가 있다.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들의 연관성)

반젤리스라는 이름은 앞으로 우리 귀에 자주 들릴 것이다. 이미 '666'은 한정판이 아니라 카세트 테이프로 제작되어 이제는 레코드점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해졌다. 반젤리스의 솔로 앨범들도 많이 들어와 있다. 만일 영화를 볼 때 'Music by Vangelis'(음악 담당 반젤리스)라는 자막이 나오거든 그 영화 속에는 반드시 뉴에이지 음악이 몇 곡 나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반젤리스의 테잎이나 혹시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앨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Rain & Tears'나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과 같은 곡들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친근감을 느끼는 크리스천이 있다면 아프로디테스 차일드라는 그룹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반드시 뉴 에이지 운동과 관계가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 그냥 음악으로 들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지만 그런 만용보다는 과감하게 버리는 용기가 오히려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14. 국내에 잠입한 사단숭배그룹


일반적으로 사단숭배(Satan Worship)는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 그리고 동남아의 일부 지역이나 아프리카에서만 존재할 뿐 국내에는 아직 들어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필자가 단언하는 바는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이미 국내에도 사단숭배는 들어와 있는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단숭배는 두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는 흉내만 내는 유형이다. 주로 메탈그룹에서 나타나는데 이들은 미국의 사단숭배를 표현하는 메탈그룹의 흉내를 내면서 별로 충격적이지 않은 쇼크 락(shork rock)을 연주한다.

예를 들어, 엘리스 쿠퍼가 시체처럼 분장을 하고 나와 병아리의 내장을 던지거나 오지 오스본이 인육을 먹는 모습을 연출해내는 것과는 달리 이들은 손가락으로 사단숭배표시를 하거나 반기독교적인 액세서리를 달고 나와 요란하게 메탈을 연주할 뿐이다

두번째 실질적으로 사단을 숭배하는 그룹이다. 첫번째 유형과는 달리 메탈그룹 중에 실제로사단을 숭배하고 의식을 갖는 그룹이 있다.이들은 주로 신비술과 연관되어 있으며 또한 뉴에이지 운동의 방법인 명상, 마인드 콘트롤. 초능력 , 염력 등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필자는 이들이 메탈음악의 특성으로 인한 정신적인 갈등과 방황의 해결처럼 찾기 위해 자연히 신비술이나 밀교, 뉴에이지 운동의 방법에 빠져들다가사단을 숭배하거나 찬양하는 자리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사단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늘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회원을 모집하여 점차 확산되어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그냥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방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단순한 추측으로 끝나지 않고 사실로 확인되는 경우 거기에서 받는 충격이 얼마나 큰지‥‥

어느 날 제보가 하나 들어왔다. 내용이 상당한 사실성을 띠고 있어서 필자는 즉시 제보자를 만나기로 하였다

서을 시내에 거주하는 고등학생으로 청소년 사단숭배그룹의 일원이었다가 그 실체를 알고 두려워서 빠져나왔다는 J모군. (그 학생의 안전을 위해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

서울시내의 청소년들로 구성된 그 모임의 이름은 000학생연합 (사정상 이름을 밝히지 못한다)이었다. 이들은 그 이름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장소를 바꾸어가며 모임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룹의 특성상 정확한 회원수와 이름들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자기가 알기로는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역시 같은 모임에 속한 다른 제보자를 통해 천 명 이상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000학생연합모임은 회장이 있고 그 밑에 부회장과 회계 등의 상부조직과 여러 파트의 임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파트는 UFO,사단숭배, 심령학 파트로 구성되어 있고 각 파트마다 간부라고 불리는 임원들이 있다.

임원들은 어깨에 작은 문신을 하고 있다. 그림 ① 은 역삼각형인데 일반적으로 명상이나 깨달음을 향한 내면의 노력을 뜻하는 뉴에이지 운동의 상징이다.

그림 ②는 바로 모든 것을 보는 눈(all-seeing eyes)으로 뉴에이지 운동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문신의 색은 초록색 계통인 붉은 색이다.

UFO그룹은 굵은 실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큰 피라미드 주위를 돌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는 한국말로 된 주문이다. 그리고 빙 둘러 앉아서 명상을 하며 UFO에 대한 자료를 본다. J군에 따르면 이들은 자료를 어떤 어른들로부터 얻는다고 하는데 작년 11월 말과 12월 초에 이집트의 기제 피라미드에서 있었던 뉴에이저들의 모임에 대한 자료도 보았다고 한다.

000학생연합모임이라면 분명히 모체가 되는 그룹이 있을 것이고 그 그룹을 통해서 자료와 교육을 받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여기에 대해서는 계속 조사하면 드러날 것이다.

이들 사단숭배그룹은 미사의식도 갖는다.

그들은 빙 둘러서서 노래를 부르거나 사단을 찬양하는 주문을 외운다. 또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거나울기도 하면서 의식을 갖는다. 어떤 제보에 따르면 작년 12월 25일에 인간을 제물로 드리는 의식을 가졌다고 하는데 직접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제물로서 대상자를 손가락으로 찍는 의식을 거행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 조사를 통해서 알 수 있었던 분명한 점은 이 그룹 이 유치한 흉내만 내는 소극적인 그룹이 아니라 분명히 사단을 숭배 하는 적극적 그룹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사단의 실재를 인정하며 그에게 자신들의 영혼을 서슴없이 바치고 정기적인 의식을 갖는다.

그들 중에는 자신들의 실체를 숨기기 위해 교회에 다니는 회원도 있다. 철저한 비밀조직으로 매번 장소를 옮겨가며 모임을 갖고 간부들은 독심술, 염력,초능력 등을 소유하고 있어 모임 때마다 그 능력들을 보인다는 것이다.

J군은 어떤 여학생 간부와 함께 서서 그 눈을 바라보았는데 자신의 육체는 가만히 있고 영혼이 그 간부의 눈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사단숭배를 통한 영적인 현상들이 모임 때마다 일어난다고 한다.

귀신놀이나 큐피트의 점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영혼을 파는 도박을 하거나 신비한 능력에 흥미를 느끼고 접근하는 청소년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이런 놀이나, 직접적으로 사단을 숭배하는 의식들이 번져가고 있는 현실을 통해서 발견되는 중요한 점은 이런 영적인 현상들의 매개체가 바로 뉴에이지 운동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뉴에이지 운동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목회자나 교회들이 있어서 안타까움을 가질 때가 많다.

필자가 제주도에서 세미나를 가질 때 서귀포의 어느 교회 목사님께서는 "나는 청소년 사역에 관심이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이런 부분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주던 모습이 생각난다. 서울을 중심으로 해서 청소년들 사이에 심상치 않은 조짐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뉴에이지 운동이나 청소년 사역에 관심이 없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뉴에이지의 위험을 경고한다고 해서 세상 문화를 다 외면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뉴에이지 운동에 대해 무관심하고 방관할 때 그 피해 사례가 서서히 드러날 것을 예상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단숭배 비밀결사그룹.

그런 것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걸 누가 상상이라도 하겠는가? 하나 둘도 아닌 여러 명의 제보자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웃기는 일이라고 비웃기만 할 것인가? 실체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교회에 나간다는 얘기에 어떤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는가?

비록 이런 학생, 이런 청년, 이런 어른이 아직까지는 소수라 해도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저 못 본척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복음의 빛은 아프리카나 인도같이 먼 나라뿐 아니라 바로 이 땅에도 비추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미 서울에만 천 명 이상이 가입했다니 그들중에 이 글을 읽는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귀신놀이든, 큐피트의 점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아니면 비밀 모임이든 사단을 따르고 숭배하는 일의 결말은 분명히 파멸이라고 경고한다.

지금까지 그런 일들의 끝이 좋게 끝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단은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서 파멸에 이르도록 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보면 너무도 분명히 나타나는 거짓 영의 궤계가 실패로 끝나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의 권세(눅10 : 17-20)와 관심 (눅12 : 2)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15. 아난다 마가를 찾아서


동숭동 대학로에 있는 모 출판사 전시장에 갔다가 '아난다 마가`(Ananda Marga:축복의 길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라는 명상협회에서 나온 명상음악 테잎들을 보게 되었다 두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대만에서 제작된 것으로 쟈켓과 라벨이 있는 테잎이고 다른 하나는 복사테잎이었다. 전시장 담당자에게 이 테잎들을 어떻게 구입하느냐고 묻자, 아난다 마가 사람들이 와서 놓고 간다고 하면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뉴에이지 음악에 관심이 많은데 아난다 마가를 찾아가 그들의 음악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얘기하며 일러주기를 요청하자 위치는 자기들도 모르지만 전화번호만 적어주겠다고 하면서 마지못해 메모지 한 장을 주는 것이었다

이틀 뒤에 그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였다. 처음에는 외국 사람, 그리고 이어서 청년 하나가 전화를 넘겨받는 게 들렸다.

역시 뉴에이지 음악에 대해서 좀더 깊이 알고싶고 특히 명상음악에 대한자료를 많이 얻고 싶다고 말하자 그 청년은 홍대 지하철역에서 전화를 하면 자기가 나갈테니 거기서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홍대 지하철역 앞에서의 전화. 10분 뒤에 나타난 헝크러진 머리의 사내, 머리뿐만 아니라 수염도 깍지 않은 상태이고 낡은 쉐타에 안경을 걸쳐서 약간은초췌해 보이기까지 하던 청년 하나 그와함께 찾아간 '아난다 마가 명상센터'는 홍대 지하철역으로부터 약 200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는 낡은 회색빛 이층 건물이었다. 명상센터라는 간판이나또 다른 표시가 없었기 때문에 만일 혼자 찾아갔으면 쉽게 찾지 못했을 정도로 지극히 평범한 개인 집이었다

밖으로 난 계단으로 해서 이층으로 올라갔는데 거실에 들어서자 이상한 냄새가 났다. 명상을 할 때 피우는 향인지 아니면 낡은 집에서 나는 냄새인지는 모르지만 그리 좋은 냄새는 아니었다. 방은 모두 네칸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넓은 방은 여럿이 함께 모여서 명상하도록 되어 있었다. 한 쪽에는 단이 차려져 있었는데 그 위에 아난다 마가의 상징이 그려져 있었다 이 상징은 '프라틱'이라고 부르는데 요가의 이상을 상기하는 것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유대인의 별 안에 스와스티카(불교표시 卍)가 그려져 있고 그 주위를 반 타원형의 태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 방의 맞은편에는 조그마한 국산 오디오 세트가 놓여진 작은 방이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명상음악 테잎들을 복사해 내고 있었다.또 다른 방에는 외국에서 온 요기 (요가 수행자)들이 묵고 있었다. 내가 갔을 때는 두 명의 인도 요기가 있었는데 한 명은 다음 날이 한국어 시험보는 날이라고 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명상 서적을 읽고 있었다.

방 한쪽 구석에는 작은 녹음기가 있고 음악이 흘러 나오고 있었는데 얼핏 듣기에도 뉴에이지 음악가인 마이클 헤지즈의 음악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직접 방문했던 흥대 근처의 아난다 마가

그곳의 한 방에서 나는 명상서적을 읽고 있던 요기와 명상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주에는 소리(sound)가 있는데 우리는 평소 그것을 듣지는 못한다. 그러나 눈을 감아 색의 세계를 닫고 귀를 막아 소리의 세계를 닫아서 정신을 집중하면 누구나 들을 수가 있다. 그 소리는 작은 벌레가 우는 소리인데 전혀 파장이 없다 또 우주의 소리와 함께 인간의 내부에도 소리가 있다. 그리고 그 소리를 주관하는 것이 바로 뒤에 있는 비쉬다 차크라다. (힌두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몸 에 있는 일곱 개의 에너지 중심으로 비쉬다 차크라는 다섯번째 차크라)

뉴에이지 음악을 하려면 우주의 소리와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기타로나 조지 윈스턴이 산에서 명상하면서 뉴에이지 음악을 만드는 것도 바로그런 이유다 가부좌를 하고 가슴을 펴고 힘이라는 소리를 내보라. 목에서 내지 말고 배 밑에서부터 내어라. 그것이 내면의 소리를 느낄 수 있는 한 방법이다. 명상과요가 수련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신의 본질을 깨달으며 발견하라. 그러면 좋은 명상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들이 말하는 우주의 소리는 사단의 계략 중 하나라는 사실이었다. 대전 신생정신병원의 유진호 박사는 인간의 몸 어디에든 에너지의 중심이라 불리는 '차크라' 는 없다고 말한다. 차크라는 인간이 신적인 능력을 낼 수 있는 부분인데 이것 역시도 사단의 고차원적인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약 한 시간 반 동안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영적인 중압감을 느꼈다. 매우 불쾌하고 두통이 왔지만 계속해서 속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자 점차 중압감이 사라졌다. 이들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신의 본질을 깨우기 위해 아난다 마가가 조직되었다고 한다.

'자아실현과 인류봉사'라는 표어를 내세우면서 먼저 내면에 있는 지고의 의식을 깨닫고 그에 대해 모든 사랑과 성심을 다해 경배한 다음에 인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가르침으로 봉사한다는 것이다.

아난다 마가는 80년대 중반에 국내에 들어와서 지금은 서울, 광주 부산, 대구, 전주에 지부가 있다고 한다. 이들은 대외적으로는 절대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치 않고 몇 명씩 포섭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아난다 무르디가 만든 요가단체인 아난다 마가는 지금 이 시간에도 흥콩, 대만 등 동남아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곳에 있는 인도 요기와 이야기하면서 뉴에이지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신의 본질을 발견하게 하는 음악이지만 자신들이 주로 듣는 인도 명상음악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음악이 명상을 통해 나온 음악이기 때문에 아주 좋다는 것이다. 책꽃이에 복음성가책이 한 권 꽃혀있길래 물어보니 자기들은 모든 종교를 초월하기 때문에 갖다 놓았을 뿐 직접 부르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레코드 회사를 차리고 싶은데 그 방법을 알고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다 아는 얘기지만 대부분의 뉴에이지 그룹들처럼 이들도 엄청난 돈을 축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돈을 이용해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활동하고 있었다.

만약 이들이 국내에 대규모 레코드 회사를 세운다면 그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 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이들이 비공식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명상음악 테잎들은 내놓기가 무섭게 팔리고 있는데 레코드 회사까지 만들어 명상음악을 대대적으로 보급한다면 뉴에이지 음악 이 대중음악 가운데 부상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볼 때에 그 확산 속도는 엄청나리라는 게 뻔한 이치인 것이다. 더구나 이들이 방송국 설립까지 계획하고 있다니 그 실현 가능성은 둘째치고 그 사회 진출 을 위한 야망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홍대 부근에 있는 이 명상센터는 외국에서 오는 요기들이 거쳐가는 곳이었다. 그들은 먼저 이곳에 와서 상황설명을 들은 뒤에야 지방으로 내려가게 된다. 필자를 만나준 인도 요기는 며칠 뒤에 미국과 호주의 요기들이 여러 명 찾아을 거라고 하면서 그들 중에 뉴에이지 음악을 하는 요기가 있으니 만나보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이곳은 국내에 있는모든 아난다마가조직의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곳을 통해서 수많은 요기들이 정보를 얻 고 수련을 쌓기도 하는 것이다.

아난다 마가뿐 아니라 국내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 오쇼 라즈니쉬의 명상센터들.

뉴에이지 음악이 사단적 요소를 띠고 있거나 사단을 만나게 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며 명상이나 요가, 마인드 콘트롤이나 단과 기 등이 거짓 영들의 힘을 빌려 특수 체험을 하려는 그릇된 욕구들임을 지금까지 소상하게 밝혀왔거니와 그런 목적으로 방문한 인도 요기들의 거처가 되고 명상을 위한 합숙소로 이용되는 이들의 은신처는 여타의 자료를 종합해 볼 때 생각 이상의 규모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대학로 근처의 출판사로부터 시작된 아난다 마가에의 여행. 말세에 일어나게 될 반 진리적 유혹의 몸짓들

할 수만 있으면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 하고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이외의 또다른 대안을 제시하여 유혹의 손길을 벨치려 하는 그들에 대해, 그러나 또 한번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일꾼을 통해서 간교한 술책들을 방지하려 하신다는 것이니,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달라고 우리는 기도할 수밖에 (눅 10: 19) 없는 것이다.


2

뉴에이지 운동의 음악들.


뉴에이지 운동에서 사용하는 음악들은 그렇게 간단하고 단순하지 않다

뉴에이지 운동에서는 여러 음악장르들을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음악장르에 뉴에이지 사상으로 이루어진 음악들이 있다.

그러므로 뉴에이지 운동의 음악들을 구분하려면 뉴에이지 음악이라는 하나의 장르만 보아서는 안 된다.

다른 장르에도 뉴에이지 사상으로 이루어진 음악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수많은 음악들


이 세상에는 음악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어쿠스틱 악기나 전자악기를 연주하는 음악이나 사람이 목소리로 부르는 음악 뿐이 아니라 현대음악에서 시도하는 것처럼 물방울 튀기는 소리나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소리와 같은 미세한 음을 발생시키는 소리들도 음악으로 여긴다면 음악에 묻혀 산다고 할 수 있다.

대중음악만 보더라도 수많은 장르들을 볼 수 있다.

록음악, 고고, 랩, 발라드, 헤비메탈, 가스펠, 리듬 앤 블루스, 웨스턴 컨츄리 등등.

클래식 음악만 보더라도 낭만주의, 인상주의, 고전주의 등등 수많은 조각으로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음악들, 음악의 홍수 속에서 사는 인간의 귀는 항상 흘러들어오는 음악들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인간의 뇌는 음악 속에 들어있는 메시지를 분류하고 저장하는 매우 복잡한 과정을 반복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들이 우리 주위에 흐르듯이 수많은 음악들이 우리 주위에 있는 것이다

모든 음악들이 우리가 듣기에 좋은 음악이라면 문제는 너무나 간단하다. 음악 때문에 고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좋지 않은 음악들이 얼마나 많은지.


좋지 않은 음악들


비디오 영화 가운데 '닥터 M' 이라는 영화가 있다.

집단자살 증후군에 대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 디스코 텍과 같은 곳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춤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흐르는 음악들이 전위음악들이다. 그것도 뉴에이지 계열의 음악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장면이 나올 때 보는 사람들은 환각에 대한 묘한 충동을 느낀다. 정신이 산만해지고 두통이 오고 어지러움을 느낀다. 아마 영화 전체가 그러한 음악으로 되어 있다면 다보고난 다음에 구토를 심하게 할 것이다. 아니 영화를 다 보기도 전에 비디오를 꺼버려야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 주위에 좋지 않은 음악들이 많이 있다.

그런 음악들은 선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만든다. 예를 들면 육십년대 중반과후반에 미국에서 유행했던 '애시드 록' (Acid Rock,환각 록)을 들 수 있다. 당시 애시드 록커들은 LSD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약물을 복용했었다. 그 음악을 선호하는사람들중에서도 역시 약물을복용하는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지금 사회적으로 마약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처럼 당시에도 이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했었다. 삶의 열매가 아름답지 못했던 것이다. 추한 열매들이 얼마나 많이 맺혔는지 아직까지도 미국은 마약으로 인한 더러운 열매들로 인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때 이후로 문제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는 것이다.

좋지 않은 음악은 좋지 않은 열매를 반드시 맺는다 왜냐하면 음악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음악이든지 반드시 하나 이상의 메시지가 들어있으며 그 메시지는 듣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작곡자가 자살에 대한 충동을 느끼면서 작곡을 했다면 그 곡을 듣는 사람들도 자살에 대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1985년 12월 23일에 미국의 네바다에서는 레이와 제이라는 20살의 두 청년이 서로를 향해 총을 쏘아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이는 자살하기 전에 죽음에 대한 회망을 쥬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에게서 얻었다는 내용의 유서 다섯장을 남겼다. 이 유서를 보면 맥주로 취한 뒤에 쥬다스 프리스트의 음악을 들었는데 그 음악에서 '죄가 가득찬 삶을 떠나라'는 음성을 듣고는 삶에 대한 유일한 대답이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아 레이와 자살하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사건은 음악이 잘못사용되었을 때 어떤 열매를 맺는가를 잘 보여준다.


음악을 이용하는 사단


'데스메탈' (Death Metal) 혹은 '사단의 메탈' (Satanic Metal)이라는 음악장르가 있다. 킹 크림슨(King Crimson)과 블랙 사바스 (Black Sabbath), 세플투라(Sepultura), 케세드랄(Cthedral),카르카스(Carcass) , 베놈(Venom) 등이 대표적인 그룹이다.

죽음의 메탈이라는 뜻의 데스메탈이나사단의 메탈은 그렇게 큰 차이점이 없다. 왜냐하면 모두 사단에 관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기독교적 인 음악이기 때문이다.

사단은 음악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음악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고 헌신된 추종자들의 음악을 통해서 경배받고 있다.

원래 1950년 전까지만 해도 노골적으로 사단을 드러내는 대중음악은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록 음악이 나온 뒤부터는 특히 헤비메탈음악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사단 숭배음악이 노골적으로 대중음악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노골적으로 사단을 찬양 하는 음악들은 대중들에게 크게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앨범 쟈켓에 그려져 있는 사악한 그림들은 그 음악에 빠져 영적으로 방황하는 사람들 말고는 인기가 없다. 그리고 쉽게 분별이 되기 때문에 크리스천들이 멀리할 수가 있다.

그러나 좋은 포장지에 잘 포장된 독약처럼, 회칠한 무덤처럼 겉과속이 다른 음악들은 쉽게 분별할 수가 없다 사단적이지 않은 듯한 모습을 갖추면서도 사단의 계략이 숨어있는 음악들이 사실상 매우 위험한 음악인 것이다.

사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단의 음악. 그것이 바로 뉴에이지 운동에서 사용하는 음악들이다. 이러한 음악들에 대한 특징적인용어를 찾기가 매우 힘이 들지만 굳이 표현한다면 '뉴에이지 운동의 음악들' 이 맞을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의 음악 분류


일반적으로 뉴에이지 음악은 뉴에이지 운동에서 사용하는 음악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A출판사에서 나온 뉴에이지 운동에 대한 책을 보면 록음악과 같은 음악은 뉴에이지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추측한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에서 사용하는 음악들은 그렇게 간단하고 단순하지 않다. 뉴에이지 운동에서는 여러 음악장르들을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음악장르에 뉴에이지 사상으로 이루어진 음악들이 있다. 아마 오쇼 라즈니쉬 명상센터에서 나온 라즈니쉬의 음악테잎을 들어 본 사람들은 록이나 고고, 컨츄리와 같은 음악장르들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뉴에이지 운동의 음악들을 구분하려면 뉴에이지 음악이라는 하나의 장르만 보아서는 안된다. 다른 장르에도 뉴에이지 사상으로 이루어진 음악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류법은 대중음악에서는 전혀 시도되지 않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영적인 면이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동안 반기독교적인 음악들을 연구해 오면서 크리스천들이 쉽게 분류하고 구별해 내는 방법들을 찾아왔다. 그런데 사타닉 메탈이나 데스메탈과 같은 음악들은 앨범쟈켓이나 곡의 분위기를 통해 쉽게 구별할 수 있지만 뉴에이지 운동에서 사용하는 음악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어 존 덴버의 '록키 마운틴 하이' (Rocky Mt. High)는 대중음악에서는 간단하게 컨츄리 송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이 곡은 뉴 에이지 사상이 담긴 곡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뉴에이지 음악으로 구분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컨츄리와 뉴에이지 음악은 서로 다른 대중음악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설명하고분류하는 방법 이 매우 애매했었다

그래서 우선 뉴에이지 음악과 여러 다른 장르의 음악들 가운데 뉴에이지 사상으로 이루어진 곡들을 분류해 보았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 가운데 뉴에이지 사상으로 이루어진 곡들과 뉴에이지 사상을 가졌던 음악가들을 분류하였고 최근들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뉴에이지 운동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운드 헬스 음악, 다르게 표현하자면 치료용 음악으로 분류해 보았다.

그렇게 분류해 놓았더니 다음의 네 가지로 분류됨을 알 수 있었다.

뉴에이지 음악, 뉴에이지 송, 클래식 뉴에이지, 치료용 음악(사운드 헬스 음악). 이것을 도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1. 뉴에이지 음악(New Age Music)


일반적으로 대중음악에서 뉴에이지 음악으로 알려진 음악장르를 말한다. 레코드 가게에서나 DJ들을 통해서 뉴에이지 음악으로 소개되는 음악을 말한다.1964년 토니 스콧(Tony Scott)의 '선 을 명상하기 위한 음악' (Music for Zen Meditation)을 비롯해서 스티븐 핼펀, 폴 혼 등에 의해 하나의 실험음악으로 시작된 음악이다. 명상, 요가와 같은 동양종교의 자아각성 , 잠재력 개발의 방법들에 빠져있던 초기 뉴에이지 음악가들이 음악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들이다. 엘리트들이 듣는 수준높은 음악, 조용히 음미하면서 육체적 ,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 듣는 음악으로 알려진 음악을 말한다.

60년대 중반에 처음 선을 보였을 때는 사람들이 비틀즈를 선두로 해서 시작된 록음악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뉴에이지 음악에는 무관심했었다. 그래서 건강식 상점이나 신비술이나 심령술에 관한 책을 파는 서점에서만 다루어졌다. 1975년에 뉴에이지 운동이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면서부터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한 뉴에이지 음악은 1976년에 월리엄 액커먼(William Ackerman)을 중심으로 윈댐 힐(Windham Hill) 레이블이 설립되면서부터 체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다가 1987년 초에 히피 명상가인 조지 윈스턴 (George Winston)의 '12월' (December)이 백만장 이상 팔리는 성과를 거두면서부터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국내에도 이 앨범을 통해서 알려지기 시작해 지금은 다른 음악장르만큼이나 인기를 얻고 있고, 레코드 가게의 전시대에서 한부분을 차지할만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TV드라마에서 배경음악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가 하면 각종 광고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이나 경음악들이 주로 사용되던 시기가 불과 2,3년 전이었는데 어느새 뉴에이지음악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신디사이저의 발달이다


(1) 뉴에이지 음악의 특징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그 음악이 뉴에이지 음악인가 아닌가 구별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음악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은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졌다는 것이다. 60년대에 나온 초기 뉴에이지 음악의 대표적인 특징인데 요즘 신디사이저를 이용해서 많이 표현되고 있다. 폴 혼의 '방랑자' (Nomad)같은 경우 어쿠스틱 악기인 플룻을 이용하여 매우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퓨전재즈의 효시인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의 음악풍과 같이 복잡하면서도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폴 혼의 음악은 방랑자가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과 경험을 하는 듯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데니스 앤드류(Dennis Andrew)의 '체류'(Sojourn)나 에디 좁슨(Eddie dobson)의 '비밀의 주제' (Theme of secrets) 중 '체류' (The Sojourn)와 같은 곡들은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데 이러한 곡의 특징은 마치 블랙홀과 같은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불협화음들이 섞여 나는 소리는 그 음악 속에 무엇인가 들어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만드는데 그러한 느낌들은 바로 인간의 내면세계 속에 신(God)의 본질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간은 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인간의 내면 속에는 신의 본질이 없다. 신의 본질이 있다는 것은 뉴에이지 운동에서 내세우는 깨어질 환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 에이지 음악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끊임없이 인간들이 자신의 내면 세계를 여행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려고 노력한다 과연 무엇이 있을까? 인간의 내면세계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면세계의 탐험」(Going Within)이라는 책에서 뉴에이지의 마녀인 셜리 맥클레인(Shirley Maclaine)은 '대자아' (Higher Self)가 있다고 말한다. "대자아는 인간의 영혼인데 어떤 사람들은 또 성령, 신의 중심, 내면의 신, 신과의 대면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셜리 맥클레인은 말한다. 내면세계에 들어갔을 때 만날 수 있는 대자아를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뉴에이저들은 종종 성경말씀을 가지고 자신들의 허황된 이론을 합리화시키기도 하는데 셜리 맥클레인은 성령을 내면 속에 존재하고 있는 신의 본질로서 내면에 들어갔을 때 만날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성령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인데 셜리 맥클레인은 인간의 영혼이며 인간이 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신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신이 신임을 명상할 때 자신은 그대로 신이 된다"고 주저함 없이 말하는 것이다. "개개인은 자기가 속한 교회의 권위와 상관없이 내면의 신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한다.

뉴에이지 음악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명상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단순히 책상에 앉아서 악상을 떠올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명상을 통해서 악상을 얻는 것이다. 오쇼 라즈니쉬(Osho Rajneesh)는 음악가와 명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음악 속에 명상이 없다면 음악가는 단순한 테크니션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음악가는 위대한 테크니션은 될 수 있어도 음악 속에 영혼을 담을 수는 없다. 음악가가 깊은 명상가일 때 영혼은 음악을 통해 흘러 나온다. "


여기서 말하는 명상은 악상을 떠올리기 위한 단순한 명상이 아니라 뉴에이지의 명상, 다시 말하면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험하는 명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가들이 명상을 한다는 것은 뉴에이지 음악치료로 유명한 스티븐 핼펀(Steven Halpern)의 아티클인 '뉴 에이지 음악이란 무엇인가?'(What Is New Age Music)에서도 잘 나타난다


"뉴에이지 음악가들은 다른 장르와는 달리 명상, 전인치료(Holistic Health), 우주적인 각성 (Cosmic Awareness)과 같은 여러 가지 형태들을수행하고 있다·명상이나요가,자연과의 대화 등을통해서 그자신의 음악을 작곡하는 것이다. 많은 레코딩 아티스트들은 그들이 영감받는 한 방법으로 채널링(channeling, 명상 이나 영매를 통해서 갖는 영적인 교통을 뜻함:필자 주)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인정한다. "


이러한 명상을 통해 만든 음악들은 연주자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 음악을 연주할 때 깊은 명상 속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조지 윈스턴, 데이비드 란쯔와 같은 피아니스트나 월리엄 액커먼,마이클 맨닝과 같은 기타리스트를 비롯한 많은 뉴에이지 연주자들이 음악을 연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음악의 영적인 면에 굉장히 신경을 쓴다. 오쇼 라즈니쉬는 이러한 면에 대해 '위대한 순례자'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타(인도의 전통악기:필자 주)를 연주할 때 연주자는 시타 뿐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흐르는 교감(alterness)도 연주한다. 시타 소리는 바깥으로 흐르고 연주자는 강한 각성이 자신의 내부를 흐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연주자를 깊은 삼매에 빠지게 하며 엑스타시를 불러온다. 바로 이것이 의식의 가장 높은 정점이다. "


대중음악에서는 흔히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른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러한 모습들은 댄스 음악들보다는 발라드나 포크음악 등 에서 많이 발견된다 헤비메탈과 같은 음악에서는 혼신의 힘이 아니라 켄 마이어스(Kenneth Myers)의 표현대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망치로 고급문화의 벽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문화적 폭력을 볼 수 있을뿐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는 노래.

음악의 영적인 면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음악은 작곡자나 연주자의 의식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얼굴에 땀을 흘리며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모습에서 음악에 담긴 연주자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의미한 가사나 단순한 사랑타령, 책상에 앉아 가볍게 긁적거린 가사로 된 노래를 열정적으로 부르는 모습에서는 역겨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대중가요가 사랑에 대한주제를 다룬다고 해도 국내 대중가요를 보면 어느 경우엔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름다운 가사를 만들 수는 없을까? 멋진 시에다 훌륭한 곡을 붙일 수는 없을까?남녀간의 슬픈사랑이야기 말고는 가사의 소재가 전혀 없는 것인가?

뉴에이지 음악이 고급음악으로 인식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연주자.

통속적인 사랑타령이 아니라 우주적인 각성이나 아름다운 자연, 인간성의 회복을 음악에 담아내는 작곡자의 의식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밥 라아슨(Bob Larson)은 뉴에이지 음악에 대해 '소프트 재즈나 수년간 우리 주변에 있었던 똑같은 기계적인 분위기의 음악들이 그저 단순히 재순환되는 것이다'라고 과소평가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뉴에이지 음악은 기존의 음악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그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대중음악장르들의 목표는 육체적인 만족이나 위로였다. 그 타겟이 인간의 영혼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러한 음악을 이용하는 사단이 인간의 영혼에 그 목표를 두었지만 음악장르 자체로 보아서는 육체적인 만족을 위한 것이었다. 영혼에 대해 언급하는 대중음악 장르는 뉴에이지 음악밖에는 없다.

인간이 바로 신이라고 주장하는 음악도 뉴에이지 음악뿐이다. 육십년대 록음악이 의식의 전환을 주장하기는 했었지만 그것이 인간 영혼의 구원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순한 이상주의에 대한 희망이었다 록음악은 육체적인 음악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남김없이 발산하는 음악이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 음란,자살, 혁명,사단주의 등을 쉽게 담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뉴에이지 음악은 다른 장르와는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신비스러운 분위기 .

이러한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어디에서 나타나는 것일까?

바로 동양종교다. 뉴에이지 음악에서 나타나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바로 동양종교의 분위기다. 서양과 동양과의 만남에서 이루어진 독특한 양식인 것이다. 뉴에이저들은 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결점을 찾기 위해 동양에 눈을 돌리고 있다. 동양의 신비주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뉴에이지 운동이다. 동양의 신비주의에서 해결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세계적인 물리학자이며 뉴에이저인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의 글에서도 볼 수 있다 「물리학 의 도」 (The Tao of Physics)에서 카프라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나는 이론 물리학의 분야에서 오랜 수련기간을 가졌고, 수년동안 그 연구에 종사해왔다. 그와 동시에 동양의 신비주의에 강한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그것이 현대 물리학과 유사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물질 세계의 가장 진보된 이론이 적용될 수 있는 일관성 있고 아름다운 철학적 체계를동양의 신비주의가 마련해 줄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마릴린 퍼거슨(Marilyn Ferguson)은 「물병자리의 음모」(Aquarian Conspiracy)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동양을 향하는 것은 완전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미국시인 월드 피트맨은 그것을 '마음의 회귀, 인도를 넘어서의 나그네 집'이라고 불렀다. 헤르만 헷세는 '동양 즉 고향을 향한 인간의 영원한 노력' 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


폴혼의 음악이나 데니스 앤드류의 음악 등에서 나타나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바로 동양적인 것이다. 과연 동양에 인간에 대한 해답이 있을까? 불교, 힌두교, 선, 도교 등과 같이 동양종교에 인류의 미래에 대한 해답이 있을까?윤회가그 해답일까?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을 뿐이다. 동양의 신비주의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구원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 16)


둘째는 유난히 자연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자연에의 관심은 현대사회에서 사물의 본질을 정확하게 보기 위한 것이다. "


윈댐힐 레이블의 설립자인 월리엄 엑커먼의 말이다. 1976년에 설립된 윈댐힐 레이블의 기본정책은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이다. 어쿠스틱 악기와 전자 악기들을 이용해서 인간의 마음과 자연의 평화를 접목시켜 조화와 융합을 그려내고 있다.

뉴에이지 음악이 현대인들의 관심을 끄는 가장 주된 이유가 바로 자연을 묘 사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거칠은 감성을 자연의 부드러움을 통해 치유하는 음악 이라는 인식이 뉴에이지 음악에 대해 강한 애정이 일어나도록 만든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견해들에서도 이러한 관점은 나타난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음악

순수한 자연으로의 복귀를 소리없이 부르짖으며 태동하기 시작한 음악

뉴에이지 음악의 제목들을 보아도 이런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데니 헤니스의 '태양과 물'(Sun and Water), 마이클 맨닝의 '위대한 달' (Huge Moon), 리차드 돌스키의 '장미가 있는 아침' (A Morning with the Roses), 소지로의 '겨을 눈' (Frosty Flower), 조지 윈스턴의 '여름' (Summer)과 '가을' (Autumn), 쇤베르츠와 스코트의 '소망을 주는 샘' (Wishing Well) , 나이트 노이즈의 '언덕 위의 눈' (Snow on班ighh Ground), 월리엄 액커먼의 '달빛교감'(Conferring with the Moon) , 스코트 코슈의 '보라빛 산' (Purple Mountain) 등.

뉴에이지 음악이 유난히 자연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뉴에이지 음악에서 말하는 자연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거기에 대한 대답은 명상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에서 강조하는 명상을 말한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험해서 신의 본질을 발견하기 위한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다.

명상을 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자연이라고 뉴에이저들은 말한다. 오쇼 라즈니쉬는 「지혜의 책」(The Book of Wisdom)에서 명상을 하기 위한 장소를 자연이라고 강조한다.


"명상에 도움이 되는 장소를 찾아내야 한다. 영화관 앞이나 기차역 같은 곳보다는 나무 아래에 앉아 명상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자연 속이나, 산 속이나, 나무들이 있는 곳이나, 강이 있는 곳들이 명상에 적합한 장소들이다·아름다운 새들이 노래하는 나무 가까이 , 공작들이 무리지어 춤추는 곳, 강이 흐르는 곳,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곳,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아름다운 폭포곁·.이런 곳에 앉아서 명상을 한다면·.."


뉴에이저들은 자연 속에서 산림욕을 하면서 맑은 산소를 들이마시기 때문에 명상하기에 가장좋은 장소라고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상의 의미를 두고 있다. 셜리 맥클레인은 「내면세계의 탐험」 (Going Within)에서 자연은 무한한 진동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명상을 할 때 우주 그 자체와 맺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연에는 프라나(Prana)가 흐른다고 말한다. 오쇼 라즈니쉬도 자연 안에는 도(Tao)가 흐른다고 했다.

프라나는 무엇이고 도는 무엇인가? 점점 더 복잡해져 가는 듯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모두다 뉴에이지 사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연관을 가지는 표현들이다 셜리 맥클레인은 프라나와 같은 용어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명상을 하는 동안에 미묘한 우주에너지 파동을 느끼게 된다. 그 것을 인도인들은 프라나(Prana) 중국인들은 기, 이집트인들은 카, 빌헤름 라이히는 오존 에너지라고 부른다. "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기나 프라나라는 것은 고대 힌두교에서 주장해온 것차럼 공기 속에 흐르는 우주의 에너지를 의미한다. 자연 속에서 명상을 할 때 프라나를 마음껏 호흡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우주와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이 신이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뉴에지지 운동에서는 우주가 신이기 때문이다. 우주와 우주의 모든 것이 신이라는 범신론에 따른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사상인 범신론에 의하면 도무지 신이 아닌 것이 없다. 실질적인 신이 있고 우주 만물은 그 신의 일부분이라는 범신론은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려는 사단의 전략 가운데 가장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바로 하나님이다 "


에덴 동산에서 하와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실과를 따먹도록 부추겼던 말이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


창세기 3장에 나타난 뉴에이지

아담과 하와에 대한사단의 유혹은 자연을 이용한 것이었다. 지금 뉴에이지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다가서고 있는 방법의 근원이 바로 창세기 3장인데 그 방법이 바로 자연을 이용한 것이었다. 하와에게 다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나무실과를 따먹게 한 것이다. 자연 속에 마치 무한한 존재가 될 수 있는 비밀이 있는 듯이 말을 해서 순간적으로 유혹에 넘어가도록 만들었다.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나무실파를 한입이라도 먹게끔 만들어서 에덴 동산에서 누리는 평화와 안정을 깨뜨리고 싶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무실과 하나에 무한한 존재가 되는 비밀이 들어있는 듯이 거짓말을 했다.

자연 속에 숨은 비밀.

자연 속에 어떤 비밀이 있을까7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엄청난 비밀이 들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비밀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보면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과연 오묘한 자연을 누가 만들었겠는가? 저절로 생긴 것인가? 저절로 생겼다면 어떻게 질서를 가지고 있을까?

빅뱅 우주론을 주장하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박사는 "우주의 기원에 관한 나의 연구는 과학과 종교의 경계에 놓여있지만 나는 과학쪽에 머무르려고 노력합니다· 기실 어떤 신이 우리를 돌본다고 믿기는 어려운 노릇입니다. "라고 말했다. 스티븐 호킹과 셜리 맥클레인이 만났을 때 "박사님은 우주를 창조하셨고 당신의 창조물을 지배하시는 신의 존재를 믿으세요?"라는 셜리 맥클레인의 질문에 스티븐 호킹은 "아니오."라고 대답했었다.

셜리 맥클레인이 말하는 신이란 하나님이 아니라 뉴에이지 운동에서 말하는 비인격적인 신을 의미한다. 범신론을 의미하는 것인데 범신론이든 기독교의 유일신론이든 그 무엇이든간에 스티븐 호킹은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다.

한 사람은 신의 존재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신의 존재를 부인한다. 이러한 어리석음에 대해 하나님은 욥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 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누가 지혜로 구름을 계수하겠느냐·." (욥기38장)


계절의 변화나 성좌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운행하는 것이나 자연 현상들이 모두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도덕적이고 물리적인 법칙에 의해서 통치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자연 현상이나 우주의 질서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마저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 자연을 이용해 하와를 유혹했던 사단은 지금 같은 방법을 뉴에이지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연을 통해서 우주의 에너지를 받아 신이 될 수 있다고 속삭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우리에게 잘 다스리라고 선물로 주신(창1-:28-30) 것이 바로 자연이다. 그런데 어떻게 자연이 신의 일부분이며 자연 속에 신의 에너지가 흘러 그 에너지를 받아 신이 될 수 있겠는가?

뉴에이지 음악 앨범에 써있는 글들을 잘 읽어보면 자연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뉴에이지 사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 와서 연주를 하기도 했던 뉴에이지 음악 피아니스트 마이클존스(Michael Jones)는 '비가 온 후에' (After the Rain)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After the Rain에는 단순한 영이 들어있습니다. 각 음표 사이에 있는 공간을 통해서 이러한 영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


어느 뉴에이저 여성댄서의 춤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이 곡을 통해 영적인 교감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인데 어떤 영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것일까?

'뉴에이지 음악의 진정한 영' (The True Spirit of New Age Music)이라는 아티클에서 뉴에이지 아티스트인 데이비드와 스티브 고든(David & Steve Cordon)은 자연을 묘사하는 뉴에이지 음악 속에 어떤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의 음악은 그들이 명상이나 자연을 접하면서 발견한 내면의 평화와 확대된 자각을 반영하고 있다. 뉴에이지 음악은 단순한 음악적 흥미의 한 종류가 아니라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본질을 발견하기 위한 도구다·뉴에이지 음악의 본질은 우리 몸의 정신적인 에너지 중심을 흥분시키고 우리의 인식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소리의 강력한 능력에 있다 "

환경보호운동을 활발하게 펼치는 뉴에이저들

그들이 자연에 두는 의미는 하나님이 만드시고 우리에게 주신 자연이 아니라 범신론으로부터 나온 신적인 의미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뉴에이저들의 소망이 이 땅에 있기 때문에 자연을 소중하게 여긴다. 유토피아가 지구에 건설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신이 되어 사는 세상을 기대하는데 과연 그 소망이 이루어질 것인가? 확실한 것은 그 소망이 깨어질 환상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없고 신이 될 수도 없는 유한한 존재인 데 어떻게 무한한 존재가 될 수 있겠는가?

뉴에이지 음악이 자연을 그린다고 해서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추구한다고 해서 그 말을 그대로 믿어서도 안된다. 지금은 대중음악을 마음놓고 들을만한 시기가 아니다 음악의 본질, 작곡자의 사상, 가수나 그룹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 알고 난후에 선택해야하는 어려운 시기다 그러기에 영적인 분별력이 필요한 것이다

(2) 뉴에이지 음악의 개념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개념은 아직까지 대중음악에서 정리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장르로 각광받는 음악이나 기계문명 속에서 나타난 자연주의 음악으로 평가받고 있을 뿐 뉴에이지 음악의 본질에 대한 개념은 정리되지 않고 있다.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개념을 정리하는 것은 마치 수박의 겉을 핥는 것과 같다.

일반적으로 뉴에이지 음악을 평가하는 소리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성의 회복과 자연으로의 복귀를 소리 없이 부르짖으며 나타나기 시작한 뉴에이지 음악."

"명상음악에서 파생되어 생긴 음악장르."

"재즈, 프로그레시브, 클래식, 포크음악의 요소들이 혼합되고 아티스트의 개성이 혼합된 음악."

"자연으로 돌아온 듯한 서정적이고 정적인 멜로디와 느린 템포, 명상적인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는 음악."

자연이나 명상 또는 음악적인 요소들의 복합체로 뉴에이지 음악을 보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뉴에이지 음악의 본질에 가깜게 접근한 평가는 "듣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가정적이거나 현실도피적 또는 진보적인 음악"이라는 것이다. '듣는 이의 관점'이라는 평가는 비교적 정확하게 본 것이다.

지금 대중음악에서 나타나고 있는 뉴에이지 음악에 대해 일반적으로 정리된 개념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뉴에이지 음악이 연주형태나 스타일 등 외적인 요소보다는 의식의 전환을 표현하거나 심리적인 상태를 음악을 통해서 나타내려고 하는 음악가의 내적인 요소로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을 잘못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외적인 요소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연주 스타일이나 형태들, 어떤 음악장르의 요소들이 복합되어 있는가를 보기 때문이다 사실 외적인 요소는 음악장르를 구분짓는데 필요한조건이다. 그러나 록음악이나 고고, 댄스음악 등이 외적인 요소로 인해 하나의 장르로 구분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뉴에이지 음악은 외적인 요소로는 그 개념을 파악할 수가 없다.

둘째는, 듣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치유효과나 의식의 전환을 가져다 주는 목적론을 가지고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뉴에이지 음악을 음악치료를 위한 도구로 보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지금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음악치료가 성행하고 있고 클래식 음악과 함께 뉴에이지 음악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음악치료에서 뉴에이지 음악은 외적인 요소가 아니라 환자의 내적인 상태를 중요시한다. 이러한 점은 반드시 음악치료에서 뿐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나타난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기분전환을 위해서 음악을 듣기도 하는 것이다 책상 위에 따끈한 커피 한잔이 놓여있고 촛불을 켜고 안락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다. 헤비메탈을 들으면서 내부에 쌓인 좋지 못한 요소들을 폭발시키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러한 방법은 역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조용한 음악을 선택해서 듣는다. 요즘 뉴에이지 음악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사실 음악치료는 국내에서 그리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음악을 내적 치유용으로 선택해서 듣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늘고 있다. 뉴에이지 음악을 들을 때 마치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처럼 느끼고 마음 속에 평안이 찾아드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많이 듣고 있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의 부작용'에서 다를 것이지만 이러한 효과는 마치 그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지 실제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뉴에이지 음악이 진정한 평안을 주지는 못한다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으며 그 분을 통해서만 진정한 치유가 있기 때문이다

위의 두 가지 관점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부분이 바로 명상음악 이라는 점이다. 명상음악이라는 것은 작곡자가 명상을 통해서 곡을쓰고 연주자가 명상을 통해서 그 곡을 표현하며 듣는 사람들이 음악을 를으면서 명상을 할 수 있다는 음악을 말한다. 요즘 명상음악이라고 써있는 뉴에이지 음악테잎이나 클래식 음악테잎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발라드나 경음악을 모아서 명상음악이라고 이름붙인 엉터리 테잎들도 많이 나와있다. 엉터리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조건 조용한 곡이면 모두 명상음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뉴에이지 음악이 나타나면서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대중음악에서의 명상음악이란 내적 문제의 치유라는 개념이 들어있다 명상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데 단순히 사랑타령으로 이루어진 대중음악들은 이러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뉴에이지 음악에 거의 가사가 들어있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명상음악은 음악을 들으면서 그 음악 속으로 빠져들어 가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기분전환을 시도한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음악이 바로 명상음악인 것이다.

자신의 내면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명상

힌두교의 방법들을 이용한 명상.

이 명상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신(god)의 본질을 발견해서 무한한 존재가 되기 위함이다. 오쇼 라즈니쉬는 이러한 명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명상이란 무엇인가? 명상은 모험이다. 인간의 의식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모험이다 명상은 어떠한 행동이나 사념 혹은 감정도 없이 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를 말한다. " ( 자유를 즐기고 있는 부처들 음악앨범에서)


우리는 흔히 마음을 비운다는 말을 많이 한다. 명상이 바로 그런 것이다. 욕심을 갖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그 자체인 자신의 내면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욕심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바바 하리다스의 「성자가 된 청소부」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다. 욕심을 갖지 않아야 부처가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욕심을 갖지 않으려는 것도 바로 욕심이다. 인간은 욕심에 둘러싸여 있고 그 욕심을 벗어버리려고 할수록 마치 거미줄에 걸린 파리가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더 감기듯이 욕심의 거미줄에 매이는 것이다.

오쇼 라즈니쉬가 명상을 모험에 비유하면서 의식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모험이라는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바로 신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내면에 있는 신의 본질을 발견하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 본질을 발견하는 순간 바로 신이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존재 그 자체를 숭요시하는 이유는 범신론 때문이다. 모든 것이 신이라는 사상. 진정한 신은 하나인데 그 신은 비인격적(it)이며 세상 만물은 모두 그 신의 일부분이라는 범신론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이 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무한한 존재가 되려면 반드시 명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이 명상을 통해서 만들어지며 듣는 사람들을 명상으로 유도한다는 것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다. 자연 속에 묻혀 우주의 에너지를 받으며 우주와 자신이 일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명상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 악상을 얻는다. 자신이 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한 과정에서 악상을 얻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음악속에 과연 어떤 사상이 담겨 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토 알 수 있다

음악은 영적인 것이다. 작곡자가 어떤 영적 상태에서 곡을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듣는 사람도 같은 영향을 받는다. 사단이 음악을 이용하는 부분도 바로 이런 영적인 부분이다

작곡자가 뉴에이지 운동의 명상을 통해서 음악을 만들었다면 그 음악에는 반드시 뉴에이지 사상이 들어있다. 그래서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그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만일 이러한 영적인 면이 없다면 음악을 듣다가 자살을 기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단도 음악을 이용할 가치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음악은 사람을 조종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음악은 어떤 메시지를 담아 전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그릇이다.

뉴에이지 음악의 개념을 위의 두 가지 개념을 놓고 정리하면 작곡자의 내적인 요소와 듣는 사람들의 내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완전하지가 않다

셋째는 단순히 뉴에이지 음악을 대중음악 속에 하나의 새로운 음악 장르로만 보는 것이다. 이것은 록음악이나 블루스 음악처럼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만 구별하는 것이다. 내적인 요소든 외적인 요소든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심각하게 볼 필요없이 단순한 음악장르로만 보아야 한다는 견해인데 이 주장은 너무 책임감이 없어 보인다. 음악을 보다 정확히 구별하고 파악하려는 대신에 간단하게 정의하려는 성급함이 엿보인다. 사실 뉴에이지 음악이 이렇게 간단히 정의된다면 굳이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뉴에이지 음악은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음악이 아니다. 단순한음악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더 있을 것만 같은 음악이다.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개념이 정리되지 않고 있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뉴에이지 음악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면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뉴에이지 음악을 살펴보면 다른 음악 장르와는 분명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악은 일반적으로 작곡자나 음악인들 중심으로 되어있다. 라이브(live)공연에서 그 진가가 나타나는 록음악도 연주하는 음악인들이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달려있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을 표출하는 매우 단순한 구조를 가 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음란이나 폭력 등 육체를 쉽게 자극하는 내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뉴에이지 음악은 작곡자나 청중 모두에게 하나의 분위기를 제공하는데 그것은 작곡자의 의식과 듣는 사람들의 의식이 일치되는 것이다. 보통 이것을 기가 전달된다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필자가 서울 올림픽 유스호스텔에서 있었던 기 강연회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일본인 강사가 강연을 끝낸 후에 모두 기를 받는 순서가 있었다. 눈을 감고 명상을 하라고 하면서 명상을 할 때 일본인 강사를 생각하면 기를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갑자기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신디사이저로 만든 명상음악이었다. 명상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지부장의 부인에게 다가가 이 음악이 무슨 음악이냐고 물었더니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기가 들어가 있다고 하면서 모두에게 기를 불어넣어주는 음악이라고 설명을 했다. 작곡자가 기를 넣어 만든 음악을 들으면 듣는 사람들도 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매우 어처구니 없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들이 말하는 기라는 것이 사실 음악 속에 들어있는 메시지이고 그 메시지에 의해 조종당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기가 아니라 메시지에 의한 것이다.

록음악과 같이 즉흥적인 육체의 자극이 아니라 의식과 의식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뉴에이지 음악을 단순한 음악으로 보지 말고 의식을 변화시키려는 하나의 도구로 보아야 한다 뉴에이지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그 음악 속에 담긴 작곡자가 보내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의식의 각성을 일으키는 그 메시지는 사실 잠재 의식 메시지라는 매우 졸렬한 방법이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게 되는 편안함과 평안을 통해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뉴에이지 음악에 담긴 잠재의식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당연히 뉴에이지 사상이다. '인간이 신'이라는 사상. 의식의 전환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내면세계에 존재한 신이라는 본질을 얻게 된다는 사상. 마치 비소처럼 우리의 의식을 파고들어 멸망으로 인도하는 음악이 바로 뉴에이지 음악인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은 이러한 영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개념을 정리할 수 없는 것이다. 더 자세한 것은 영적인 목적에서 다루기로 한다.

(3) 뉴에이지 음악의 영적인 목적

뉴에이지 음악이 가진 영적인 목적은 인간이 신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인간이 신이라는 말을 기독교적으로 표현하면 인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의미다 과연 인간이 하나님일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피조물(창1 :27)일 뿐 결코 하나님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이라고 속삭이는 입술은 누구의 것인가? 창세기 3장에서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금하신 나무실과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속삭이던 입술의 주인인 사단이다. 하와는 결국 유혹에 넘어가 순간적인 만족감은 누렸지만 벗은 몸에 대한 수치를 알게 되었고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하여 해산의 고통까지 받게 되었다. 하와가 나무실과를 따 먹었을 때의 그 순간적이 만족감이 바로 뉴에이지 음악을 들을 때 느낄 수 있는 평안이다.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 같고 마음속에 평화가 찾아드는 것 같지만 그것은 순간일 뿐 다시 쌓이는 스트레스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순간적인 처방을 통해 더 깊이 빨려들어가는 것보다 진정한 평안을 얻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요14:27)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평안은 뉴에이지의 명상을 통해서 얻을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일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진정한 평안이 필요할 뿐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평안, 다시 말하면 참평안과 거짓 평안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참평안은 지속적이고 거짓 평안은 순간적이다. 참 평안은 삶을 변화시키지만 거짓 평안은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마약을 먹으면 마약에 빠져들어 계속해서 마약을 필요로 하듯이 거짓 평안은 순간적이기 때문에 만족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복음성가를 기억한다.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볼 때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 분을 볼 때 나는 만족하였네"


뉴에이지 음악은 순간적인 만족감을 제공한다. 처음에 받는 평안은 마음 속에 매우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횟수가 계속될수록 작은 부분은 보다 큰 부분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래서 뉴에이지 음악에 빠지는 단계도 처음에는 가벼운 음악을 듣다가 점점 명상음악과 같은 깊이 있고 무거운 음악을 듣게 되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의 반기독교적인 영적인 목적은 듣는 사람들에게 거짓 평안을 주는데서부터 시작한다. 인간이 신이라는 사상에 빠져들게 되기까지 순간적인 거짓 평안은 계속된다.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 자기 자신이 바로 신이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되면서 뉴에이지 음악은 단순히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도구로 인식된다.

의식의 변화또는 의식의 전환을 이야기하는데 어떤 의식의 변화가 필요한가? 뉴에이저들의 주장을 보면 우선 모든 것이 하나라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티브 고든(Steve Cordon)은 "뉴에이지 음악의 진수는 사람의 심령 중심부를 실제로 흥분시키고 우리들의 인식을 완전히 변화시키는소리의 힘에 있다. 이 세상에 있는사람들의 활기와 모든 것의 단일성을 우리 안에서 깨닫게 하는 그런 것이다"라고 '뉴에이지 음악의 진정한 영' (The True Spirit of New Age Music)이라는 아티클에서 말한다. 모든 것이 하나라는 단일성은 뉴 에이지의 핵심사상이다. 궁극적인 신이 하나 있는데 그 신은 비인격적이며 우주만물은 그 신의 일부분이고 다른 측면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과 하나라는 사상, 인간과 우주와 자연은 모두 하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비인격적인 신을 주장하는 뉴에이지 운동에서 사랑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신의 사랑을 표현하려고 애쓰며 거의 모든 글에서 사랑을 언급한다. 과연 비인격적인 신에게서 사랑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사랑이 비인격적인 신에게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랑은 인격적이며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에게만 존재한다.

전세계에 뉴에이지 음악을 판매하고 흥보하는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레코드점인 Only New Age Music을 운영하면서 심리학이나 음악치유법을 연구하고 음악활동을 하는 수잔 도셋(Suzanne Doucet)은 뉴에이지 음악의 영적인 목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뉴에이지 음악의 목적은 오염되고 더러워진 이 세상의 영기를 순화시키고 정화시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내적인 평화와 하모니, 내적인 이해에 대한 지구촌의 필요를 채우도록 돕는 것이다. "

이 말에서 뉴에이지 음악이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도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염되고 더러워진 이 세상의 영기를 맑게 순화시킨다는 것은 인간이 신이라는 의식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무한향 존재라는 의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더러워진 영기에는 기독교도 포함된다. 왜냐하면 기독교 사상과 뉴에이지 사상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신이며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유한한 존재라고 하지만 뉴에이지는 인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세상의 오염되고 더러워진 영기를 정화시키는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뉴에이저들의 소망이 이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 유토피아가 세워질 것을 바라고 있다. 자연보호를 주장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뉴에이저들에게 있어 자연은 어머니와 같은 것이다. 자연 속에서 에너지를 받는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생각으로 자연이 훼손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1992년 6월 1일부터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개최되었던 유엔환경개발회의에 셜리 맥클레인, 올리비아 뉴튼 존, 조지 해리슨 등의 뉴에이저들이 참가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표면상으로는 지구를 살리자고 주장하지만 그 목적이 순수하지 는 않다. 예수 없는 지상천국을 이루려는 목적이 들어있는 것이다

유토피아가 건설될 지구의 환경보호는 뉴에이지 운동 전략 중의 하나다. 환경음악 가운데 뉴에이저들의 작품이 들어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지금 환경음악을 만들고 있는 뉴에이저들은 조지 해리슨, 올리비아 뉴튼 존 그리고 오노 요꼬 등을 들 수 있다.

환경음악이란 지구를 보호하기 위한 메시지 송이라고 할 수 있고 국내에도 작곡자나 가수들이 있다. 환경음악 자체가 뉴에이지 음악은 아니다. 그러나 환경음악 가운데 뉴에이저들의 작품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환경음악이라고 해도 일반 작곡가들의 순수한 곡과 뉴에이저들의 곡들은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잘 선택해서 들을 필요가 있다.

환경음악의 의도는 아주 좋은 것이지만 그 가운데 들어있는 뉴에이지 운동을 경계해야만 한다. 환경음악 가운데 있는 뉴에이저들의 곡을 분별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곡의 작곡자나 가수를 보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가수들의 이름이 있으면 분명히 뉴에이지 환경음악이다. 둘째는 가사를 살펴보는 것이다. 가사의 내용중에서 자연을 묘사할 때 마치 모든 힘의 근원이며 또는 신인 것처럼 표현하고 우주의 에너지를 주는 것처럼 한다면 그것은 뉴에이지 환경음악이다. 그리고 자연과 하나가 된다든지 노골적으로 자연을 인격화해서 찬양하는 곡은 조심해야 한다. 셋째는 앨범자켓을 살펴보는 것이다. 우선 그림을 보아야 한다. 그림 속에 명상하는 모습이나 태양이 지나치게 의인화되어 있고 초생달이 그려져 있는 것은 뉴에이저들의 곡이다 피라미드나 수정 등 뉴에이지운동의 상징물들이 그려져 있는 것도 있다. 그림을 살펴보았으면 자켓에 쓰여있는 글들을 보아야 한다. 곡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나 감사의 글들을 보면 우주의 신에게 감사를 드린다든지 무한한 신에게 감사를 드린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모든 것이 하나며 선과 악도 하나이고 사랑과 미움도 하나라는 글이나 정치와 종교의 통합을 말하는 글이 적혀있다. 어떤 경우에는 신의 사랑이나 사랑의 신이라는 표현이 있기도 하는데 이것은 기독교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뉴에이저들의 신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나타나지 않는 음악이라고 해도 만일 들었을 때 심한 불쾌감이나 두통 등 어떤 거부감을 느꼈다면 멀리해야 한다. 물론 이런 경우는 크리스천 에게만 한정된다.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뉴에이저들의 음악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영적인 눈으로 보아야 할 음악들이 그들에게는 복음 그 자체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동양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은 서로 일치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뉴에이지 운동과 통하는 내용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고 우주의 에너지를 받는다는 것도 전혀 낯설지가 않은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의 가장 주된 목표는 바로 크리스천들이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찬양과 경배를 자신이 받기를 원하는 사단에게 크리스천들의 모든 행동은 눈엣가시와 같이 작용한다. 뉴에이지 운동의 음모를 연구하고 파헤치는 텍스마스(Texe Marrs)는 그의 책 「뉴에이지 운동의 흑색 비밀」 (Dark Secrets of The New Age)에서 뉴에이지 운동의 열세 가지 전략을 밝히는데 그중 열세 번째 전략이 "뉴에이지 운동의 계획을 반대하는 크리스천들은 모두 제거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그들을 몰살시켜서라도 세계를 정화할 것이다"(Christians who resist the Plan will be dealt with. If necessary, theywill be exterminated and the world purified.)라고 말한다.

뉴에이지 음악의 영적인 목적은 성경과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인간이 하나님이냐 아니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피조물인가 하는 상반된 입장이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인간이 절대로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진화해서 하나님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찬양받으시기 위해서, 경 배받으시기 위해서 지으신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무한하신 분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이 명백한 사실은 영원히 변함이 없을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의 앨범자켓에 써있는 글을 한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은 뉴에이지 음악이 어떤 음악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뉴에이지 운동의 사상을 하늘에 크게 써놓는다고 해도 모를 것이다. 오쇼 라즈니쉬의 배꼽을 읽으면서 그 내용들이 기독교를 무시하고 인간이 하나님인 것처럼 쓰여있는 것을 깨닫지 못해 다른 크리스천에게 권하거나 선물을 하기도 하는 것처럼 철저하게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는 확성기를 대고 소리쳐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 적당한 환경 속에서 번식하는 곰팡이처럼 자라나고 있는 뉴에이지 운동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발견하기가 힘이 든다.생활 자체가 뉴에이지화 되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뉴에이지 음악은 이제 국내에서도 더 이상 낯선 음악이 아니다. 이미 TV나 라디오를 통해서 수없이 우리의 귀를 자극하고 있다 예전에는 잔잔한 경음악이나 클래식음악을 사용했었지만 지금은 뉴에이지 음악이나 뉴에이지 풍의 음악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필자가 강원도에서 세미나를 했을 때의 일이다. 세미나를 마치고 난 다음 어떤 자매가 상담을 요청했다. 방송국에서 음악을 담당하고 있는데 경음악이나 클래식 음악 등과 함께 뉴에이지 음악을 선별해서 PD에게 가지고 가면 유독 뉴에이지 음악만을 고른다고 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 이렇듯 뉴에이지 음악이 방송에서 많이 사용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전자악기들의 발달 때문이다. 신디사이저의 발달이 특히 뉴에이지 음악의 붐이 일어나도록 만들었다. 지금 국내 방송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뉴에이지 음악의 대부분이 신디사이저로 연주한 것들이다.

반기독교적인 영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뉴에이지 음악이 방송을 타고 흐르고 있고 레코드점의 진열대위를 장식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해 무관심한 크리스천들이다. 무관심보다 더 큰 문제가 있는데 오히려 뉴에이지 음악이나 뉴에이지 영화들을 권하는 크리스천들이다.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적극적으로 권면하고 있는데 크리스천에게 중요한 것은 예술이냐 아니냐 이전에 성경적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다. 크리스천이 아닌 대중음악평론가들이나 영화평론가들은 작품성을 따진다. 그들이 크리스천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천 평론가들은 작품성이나 예술성 이전에 성경에 반드시 비추어 보아야 한다.

낮은울타리에서 모이고 있는 기독교 영상모임은 수없이 많은 영화들 가운데서 크리스천들이 볼 수 있는 영화들을 선별하고 있는데 작품의 완성도를 놓고 볼 때 권장할만한 작품들도 비성경적이어서 제외시키는 일이 많이 있다 윤회사상이 들어있는 등 뉴에이지 사상이 들어있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건전비디오를 선별해서 권장하는 단체들이 여럿 있지만 기독교 영상모임은 건전한 비디오 가운데서도 크리스천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들을 선별해낸다. 왜냐하면 영적인 목적을 분별해내기 때문이다 영화에 들어있는 영적인 목적은 틀림없이 관객들의 의식 속에 들어간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음악 속에 들어 있는 메시지가 의식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반기독교적인 음악이나 영화들을 누가 선별해야 하는가? 크리스천밖에는 없다 그러나 자기가 크리스천이라고 밝히면서도, 성경구절을 상황에 맞게 합리화시키면서 뉴에이지 영화들이나 음악들을 권장하는 잡지와 오리스천 단체도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뉴에이지 음악에는 분명한 영적인 목적이 들어있다. 그리고 그 영적인 목적은 반기독교적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인간이 어떻게 무한한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사상을 주장하는 뉴에이저들 중에 아직까지 창조의 능력을 보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뉴에이지의 마녀라고 불리는 영화배우 셜리 맥클레인의 세미나에서 일어난 일이다. 셜리 맥클레인은 말리부 해안에서 자기가 신이라고 소리치면서 뛰기도 했었고 여러 권의 책도 저술하고 가장 활발하게 뉴에이지 세미나를 열고 있다. 미국의 어느 곳에서 그날도 셜리 맥클레인의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 비용은 400달러(약32만원)였는데 200여명이 참가했다. 인간이 바로 신이라는 셜리 맥클레인의 강의가 진행되던 도중에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조금 있으면 전기가 들어오겠지 싶어서 기다렸지만 한번 나간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 하는 수없이 촛불을 켠채로 강의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셜리 맥클레인은 자신에게 창조의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병을 만들기도 하고 치유하기도 한다고 「내면세계의 탐험](Going Within)에서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간이 신이라면 그 자리에는 200여명의 신이 있었는데 누구하나 전기가 들어오도록 하지 못했다. 전깃불 하나 켜지 못하면서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이 글을 읽고있는 지금 만일 뉴에이지 음악앨범이 있다면 그 안에 쓰여있는 글을 주의깊게 읽어보기 바란다. 그러면 작곡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떤 영적인 목적이 들어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대중음악을 함부로 들을 시기가 아니다. 그만큼 세상이 악해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음란, 폭력, 이단사상,무의미한 가사,허무, 자살, 신비주의 등의 가사로 이루어진 곡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건전한 음악들 그리고 크리스천들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선별해서 들어야만 한다.

(4)뉴에이지 음악의 역사적인 배경

대중음악의 각 장르들을 보면 여러 장르의 요소들이 복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록음악 같은 경우에는 리듬 앤 블루스와 웨스턴 컨츄리가 복합되어있고 요즘 국내에서 인기있는 댄스음악이나 랩음악을 보아도 록이나 펑크, 테크노가 복합되어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들은 그 장르의 음악에 대한 배경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도 마찬가지다. 재즈, 프로그레시브, 클래식 , 그리고 일렉트릭 음악이 복합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뉴에이지 음악이 처음에 만들어질 때부터 이런 요소들이 의도적으로 복합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뉴에이지 음악에서 나타나는 것들이 타 장르의 특징과 일치한다는 이야기다. 필자는 뉴에이지 음악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사람들이 다른 장르를 조금씩 모방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자라온 음악적인 배경이나 음악을 만들 당시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상태 가 음악을 특징짓도록 했으리라 추측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당시에 선이나 요가 등 동양종교에 심취하여 있었고 명상을 통해서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에 서양의 음악들을 의도적으로 모방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록음악이나 뉴에이지 음악의 해악성에 대해서 연구하고 강의하는 크리스천들에게 대중음악을 연구하려면 반드시 60년대의 음악을 연구할 것을 권한다. 왜냐하면 60년대의 대중음악을 모르고는 현재의 대중음악을 연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대중음악은 사실 그 뿌리가 거의 60년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록음악도 마찬가지다. 록음악이라는 용어는 6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 다. 50년대의 용어는 록 앤 롤이었다. 60년대에 거의 모든 록음악의 장르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뉴에이지 음악도 60년대에 나온 것이다. 솔로 중심에서 그룹음악이 인기를 얻은 것이나 싱어 송 라이터 (직접 곡을 쓰고 부르는 음악인)가 나타난 시기도 이 때다. 60년대 이후의 음악은 모두 변형이나 모방에 불과하다. 전자기기의 발달로 매우 새롭게 변형된 테크노 음악도 사실은 60년대의 기원을 두고 있다.

60년대의 대중음악에서 뉴에이지 운동의 그림자를 엿볼 수가 있다. 1975년부터 노골적으로 표면에 나타나기 시작한 뉴에이지 운동이지만 이미 60년대의 대중음악에 들어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60년대의 대중음악과 뉴에이지 운동

60년대의 대중음악을 '비트(beat)의 시대' 또는 '의식혁명을 일으킨 시대'라고 표현한다. 음악을 통해서 의식혁명이 일어났었고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강한 비트의 음악이 난립했었다는 얘기다. 이 말들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었다. 에베레스트 산 주변의 기후처럼 매우 변화무쌍한 시대였고 복잡한 시대였다.

필자는 60년대의 대중음악을 '혼란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청교도 정신이 도전받는 시대, 음악뿐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윤리와 도덕이 도전받는 시대였다. 의식혁명은 반기독교적인 방향으로 흘러갔고 젊은이들의 문화는 반사회적인 모습을 갖고 있었다. 지금 말하고 있는 내용은 미국의 상황이다. 대중음악의 중심지였고 뿌리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건너온 대중음악인들이 이러한 흐름에 기폭제가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비틀즈다. 긴 머리의 헤어스타일에 성적인 매력까지 갖춘 이들이 대중음악의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 활기를 더했던 것이 바로 뉴에이지 운동이다. 60년대 중반에 아시아인들에 대한 이민법이 개정되면서부터 수많은 인도의 구루(Guru)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힌두교 사상을 전했고 서양의 신비주의와 함께 문화에 접목되기 시작했다. 1959년에 미국 공립학교에서 행해지던 기도와 성경공부가 금지된 이후였기 때문에 학교에까지 침투하게 되었다.

동양종교의 중심은 인본주의였고 서양은 세속적 인본주의로 흘러가 하나님의 존재마저 부인하게 되었다. 이렇게 두 인본주의의 만남은 당시의 문화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CANA클럽의 연구회원이며 이화여대 교수인 이양림 교수는 뉴에이지 운동에 나타난 세속적 인본주의 라는 아티클에서 이렇게 말한다


"동양의 인본주의적 종교에서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였지만, 뉴에이지 운동이 부상하기 전까지 그 인본주의는 그 종교권 테두리 내에서만 작용하였다. 그러나 서양의 인본주의는 처음에는 단순한 인본주의였으나 세속적 인본주의의 형태로 발전하면서 하나님을 부인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졌다‥‥1960년대 중반 아시아인들에 대한 미국 이민법이 개정됨에 따라 미국으로 이민오는 아시아인들 중에도 힌두교 지도자들인 구루들이 섞여 있었다. 이민후 구루들은 포교활동을 하면서 인간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다는 방법을소개하였다 그때까지 말로만부르짖던 인간잠재력 개발법을 구체적으로 동양 신비주의에서 나온 심령술에서 찾게 되면서 오랫동안 동과 서에서 모양은 다르지만 같은 색깔을 가지고 발전해 온 두 가지 인본주의가 드디어 서구 문명사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수 천년 동안 미신에 불과했던 동양 신비주의가 서구 문명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수용되면서 뉴에이지 운동은 출발하였다. "


인간잠재력 개발을 선두에 내세운 동양종교의 방법들은 자연스럽게 학교로 들어가게 되었고 영적인 삶을 위한 커리클럼이 없어진 학교에서 마치 잡초처럼 끈질기게, 곰팡이처럼 꾸준히 번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동양의 인본주의와 서양의 세속적 인본주의의 만남은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큰 호응을 얻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60년대에 히피운동이 일어나 마치 거센 파도처럼 쉽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중음악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양종교에 심취하는가 하면 노래 속에다 그런 사상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서프 음악(surf music)으로 유명한 비치 보이스(Beach Voice)다.


비치 보이스와 뉴에이지 운동

비치 보이스는 비틀즈와 마찬가지로 T.M. (Transcendental Meditation, 초월명상)을 미국에 보급시킨 대표적인 그룹이다 TM은 1965년에 마하리쉬 마헤쉬 요기(Maharish Mahesh Yogi)에 의해 미국에 소개된 명상법이며 뉴에이지 운동의 한 줄기가 되는 것으로 비틀즈가 최초의 제자들이었다. 비치 보이스 멤버 중 기타리스트인 알 자딘(Al Jardin)과 리드보컬인 마이크 러브(Mike Love)는 점성술에도 깊이 빠져 있었고 영매를 통해서 자신들의 전생을 알기 위해 몸부림 치기도 했었다.

1961년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 후손이라는 마을에 살던 데니스 월슨(Dennis Wilson)으로부터 시작된 서프음악의 대명사로 잘 알려져 있고 서핀 유 에스 에이 (Suran U.S.A.)로 유명한 비치 보이스는 1978년에 T.M.을 보급시키기 위한 앨범인 M.1.U.(Maharishi International University)를 만들기도 했었다. 비록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이 앨범을통해 비치 보이스가 얼마나T.M.에 빠져 있었 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앨범에서 비치 보이스는 T.M.이 '여러분 인생의 한 부분이 되게 하라' 고 권유한다.


비틀즈와 뉴에이지 운동

1964년은 뉴에이지 운동에 있어서 음악적으로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뉴에이지 음악이 나타났다는 것이고 둘째는 비틀즈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비틀즈는 대중음악만이 아니라 뉴에이지 운동사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데 그 이유는 60년대의 사상과 의식의 흐름을 타고 음악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뉴에이지 사상을 전염시켰기 때문이다

1964년 2월에 미국 순회공연이 시작되면서부터 영국에서 건너온 네 마리의 풍뎅이는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뉴에이지라는 전염병을 뿌리기 위한 날개짓을 시작한다. 1966년부터 이들의 노래 가사가 초현실주의적인 성향과 함께 반기독교적인 모습을 노골적으로 나타내는데 그 원인은 서양의 신비주의, 이교사상과 인도의 힌두이즘이 이들에게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독교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강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틀즈를 취재하기 위해 같이 다녔던 테일러 기자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거부감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그것을 보는 일이 내게는 쉽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존 레논은 1966년 3월 21일자 뉴스위크지에서 "기독교 시대는 종말을 맞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예수보다 더 유명하다"라고 주장했었다.

비틀즈가 기독교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뉴에이지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발표한 노래를 보아도 쉽게 알수 있다. 여러 곡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비평가들에게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는 앨범 '페퍼상사의 고독 씨 클럽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이하 페퍼상사)를 보기로 하자.

이 앨범은 1967년의 뉴에 이지적인(반사회적 , 반기독교적 이라는 표현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다) 시대적 성향을 잘 나타내준다. 앨범 표지에서부터 이 사실은 확연히 드러나는데, 살펴보면(사진) 네 명의 비틀즈를 비롯해서 그 주위로 마릴린 먼로, 애드가 알란 포우 등 여러 명이 둘러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들 중 제일 위 왼쪽에서 두번째 인물을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바로 영국의 유명한 사단주의자인 크로울리(Aleister Crowley) 이다.

링고스타는 앨범 표지 인물 모두가 "당시 우리가 좋아하고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앨범을 열어보면 안에 비틀즈가 앉아 있는 사진이 있는데 폴의 왼쪽 어깨 밑에 OPD라는 글자가 보인다."공식적으로 확실하게 죽었다" (0ffcially Pronounced Dead)라는 뜻이다. 폴이 죽었다는 의미인데 이런 방법을 통해서 앨범을 더 많이 팔려는 시도는 1968년 11월에 발표된 앨범 '비틀즈' (The Beatles)에서도 나타난다. 일명 화이트 앨범이라고도 불리는 이 앨범에서 '무척 피곤해' (I'm So Tired)라는 노래를 거꾸로돌리면 "폴은 죽었으니 그리워해라" (Paul is a Dead Man, Miss Him)라는 말이 나온 다. 잠재의식 메시지를 이용한 졸렬한 방법을 쓴 것이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앨범의 '제9혁명' (Revolution No.9)을 거꾸로 돌리면 "죽은 시체여, 나를 흥분시켜라"(Turn Me On Dead Man,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말이다)는 말이 들어있다.

다시 '페퍼상사'로 돌아보자. B면의 첫 곡인 '당신의 안과 밖에서' (Within You Without You)는 조지 해리슨의 작품으로 뉴에이지 사상으로 이루어진 곡이다. (비틀즈 멤버 중 하나인 조지 해리슨은 가장 먼저 힌두교에 물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1968년초에 비틀즈가 전부 인도에 건너가 마헤쉬 요기에게 초월명상을 배우기 전부터 록음악 속에 뉴에이지 사상을 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


"당신이 당신 자신을 초월하여 볼때 그곳에 기다리고 있는 마음속의 평안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될 때 그 시간이 올겁니다. "


어떤 평론가는 이 가사가 단순히 자아의식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하지만 인도의 전통 악기인 시타르를 라비샹카에게서 배워 직접 연주 하는 조지 해리슨은 이미 범신론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뉴에이지 사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이곡은 분명한 뉴에이지 송 이다.

'페퍼상사' 에서 또하나의 문제점은 '루시는 다이아몬드와 함께 하늘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는 곡이다. 매우 환상 적인 곡으로 루시가 바로 루시퍼를 뜻한다고 해서 크리스천에게 거부감을 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L.S.D.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곡 제목의 이니셜을 잘 살펴보면 L(Lucy), S(Sky), D(Diamond)가 분명하다. 타임지는 이 앨범에 대해서 '마약 속에 흠뻑 젖어 있는' (drenched in drugs) 앨범이라고 논평했었다 1968년에 개봉된 사이키델릭한 영화인 노란 잠수함' (Ye11ow Submarine)의 사운드트랙에서 비틀즈는 마을 사람 모두가 마약(노란 잠수함) 속에서 즐겁게 산다고 노 래하였다. 당시에 법적으로 제재를 받지 않았던 L.S.D.를 비틀즈가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그들도 여기에 빠져 있었으며 노래의 소재로도 다루었던 것이다.

비틀즈는 마약과 섹스, 신비주의, 이교사상의 물결을 일으킨 살아 있는 신화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60년대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 수 가 있었다. 만약 이들이 매우 건전한 그룹이었다면 비틀즈라는 그룹은 한순간 반짝이는 불빛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비틀즈가 유명해 질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뉴에이지 사상과 음악적인 성향이 당시의 시대적 흐름과 맞물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폴과 존 레논의 리더쉽에 대한 불화 때문에 비틀즈는 1974년에 해체되었다. 만일 이들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면 1976년부터 노골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뉴에이지 운동의 선두에 서 있을 것이 분명하다. 존 레논을 제외한 세 명은 지금 개인적으로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는데, 존 레논은 아내인 오노 요꼬와 함께 활동하다가 저격당해 사라졌다. 조지 해리슨은 지금도 뉴에이지 송을 만들면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비틀즈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 환상이 어느 정도 깨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알아야 할 분명한 사실은 이 세상의 우상이나 환상은 반드시 깨진다는 것이다. 인간이 신이라는 뉴에이지 사상도 반드시 깨어질 환상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은 그것과 다르다. 그것은 깨어질 환상이 아니라 이루어질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과 뉴에이지 운동

자유, 평화, 혼란, 방황, 마약.

60년대 대중문화를 특징짓는 단어들이다. 이때의 문화는 록음악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 60년대 중반에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하는 '꽃의 시위' (flower movement)와 '마약 무브먼트' (drug movement)가 마마스 앤 파파스의 '꿈속의 캘리포니아' (California Dreaming) , 스코트 맥킨지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 리에 꽃을' (San Francisc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에 담겨서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국내에서도 흘러간 명곡으로 잘 알려진 이 두 곡은 마약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곡이다.

L.S.D.라는 마약에 취하거나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는 것이 젊은이의 표상으로까지 부각되기도 했었고 반사회적인 감정이 충격적인 록음악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었는데 최근에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도어스의 주인공인 짐 모리슨을 리더로 하는 그룹 도어스(Doors)와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라는 그룹이 충격적인 록의 대명사였다.

도어스는 섹스와 죽음을 그리는 초현실주의적인 곡들이나 무정부주의적인 노래를 불렀으며 벨벳 언더그라운드 역시 마약, 섹스 그리고 죽음을 소재로 상식을 넘어선 자유분방하고 전위적인 연주를 했었고 사이키델릭 록(환각 록)을 주도했었기 때문에 히피들의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었다.

60년대 중, 후반의 대중음악과 문화를 특징짓는 단어가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뉴에이지다. 당시 이러한 흐름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아시아인에 대한 이민법이 개정되면서 물밀듯이 미국으로 건너간 인도의 구루(Guru)들이었다. 특히 T.M.(초월명상)을 보급시킨 마하리쉬 마헤쉬 요기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나님 없는 명상으로 유도하며 인간이 바로 신(God)이라고 착각하는 영적인 환각 증세를 일으키는 뉴에이지는 서양의 신비주의와 접목되어 그 세력을 확장시켜 나가면서 마약으로 인한 환각 문화와 함께 수많은 젊은이들을 미혹하였다.

우드스탁 페스티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맥스 예스리라는 낙농업자의 땅인 경사진 언덕에서 1969년 8월 15일부터 17일까지 우드스탁 아트 앤 뮤직 페스티벌(Woodstock Arts & Music Festival)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 행사는 록문화의 전설이라고까지 일컬어진다. 존 바에즈, 조 카커, 더 후(1979년 미국 신시내티에 있는 리러프론트 콜리세움에서 가진 콘서트에서 무려 11명의 젊은이가 죽는 콘서트를 가졌던 그룹으로 당시의 상황을 목격했던 제프 가드윈은 미친듯이 날뛰고 흥분했던 모습을 보면서 사단이 주도했 었다고 말했다. 이 그룹은 75년에 휴스톤에서 섹스파티를 갖기도 했었는데 당시의 사진은 공개하지 못할 정도로 음란한 장면들이다) , 제퍼슨 에어플레인, 그레이트풀 데드, 지미 헨드릭스, 산타나 등 유명한 록음악가들이 연주를 했었고 40여만명이 미국 전역에서 몰려들었다.

대중음악계에서는 이 페스티벌을 하나의 전설이라고까지 극찬을 하지만 184분짜리 다큐멘타리 필림과 여러 가지 자료들을 조사하면서 그때 추구했던 이상주의가 마치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곳곳에서 발견되는 뉴에이지적인 요소들로 인해 뉴에이지가 문화 속에 얼마만큼이나 개입되어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60년대의 이상주의를 60년대의 바벨탑이라고 표현한다. 자유와 평화라는 이름 아래 철저한 세속적 인본주의가 들어있는 이상주의는 결국 하나의 환상에 불과했다

처음에 우드스탁으로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은 감격과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구닥다리 차를 몰고 가족들과 함께 몰려들어 웃도리를 벗고 일광욕을 하거나 몇몇이 모여앉아 통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거나 마리화나를 피우고 L.S.D.를 복용하면서 자유와 이상과 사랑에 대해 토론하면서 앞으로 사흘간에 이루어질 이상주의의 한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은 육체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첫날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음식공급이 끊어졌으며 좁은 길에 늘어선 수많은 차들 때문에 재공급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폭우가 쏟아졌으며 간이화장실이 비울 틈도 없이 차고 넘쳐흘러서 지방행정관리들이 이 지역을 재난구역으로 상부에 보고할 정도였다. 환자가 생겨도 속수무책이었다. 이상을 담은 노래와 가수들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었다. 그들도 역시 나약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사랑과 평화, 자유라는 그런 모습들은 연약하고 가여운 인간을 보여줄 뿐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인간의 삶. 무한한 존재이기를 원하며 발버둥치는 유한한 인간의 모습. 스스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어리석은 인간 이 모든 어리석음을 부채질하는 뉴에이지.

결국 필자는 인간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뉴에이지가 추구하는 것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곳곳에서 자신이 신임을 자각하기 위해 요가를 배우는 모습이나 명상하는 모습들, 마하리쉬 마헤쉬 요기가 참석해서 당시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인도의 정신적인 사상이라고 주장하고 자신이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러한 변화를 사람들에게 전한다고 하면서 우드스탁의 의미를 설명하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수풀 사이에 두 남녀가 옷을 모두 벗고 사랑의 행위를 하는가 하면 옷하나 걸치지 않고 호수에서 남녀들이 혼욕을 하는 모습은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60년대의 이상을 억지로 실천하려는 역겨움만 느끼게 한다. 마리화나(대마초)를 서로 돌려가면서 피우거나 컨트리 조 앤 더 피쉬 가 등장했을 때 마리화나 라고 외치는 군중들을 보면서 당시에 마약문화가 얼마나 뿌리깊은지를 알 수 있었다.

40여만 명이나 모인 페스티벌.

인간들이 모여 스스로 자유와 평화라는 이상주의를 실천하려 했던 우드스탁 페스티벌 속에서 엿보이는 뉴에이지.

요가와 명상과 마약에 심취해 이상주의에 대한환각을 경험했지만 결국 환각은 환각일 뿐 현실은 아니었다. 과연 인간 스스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을까? 배설과 같은 육체적인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면서 살아갈 터전인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편리함을 추구하는 욕망을 가졌으면서 어떻게 이상주의를 실천할 수 있을까?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대중 음악적으로는 큰 가치가 있다. 40여만 명의 관중, 유명한 록음악가들이 함께 참여한 페스티벌, 당시의 문화를 잘 표현했던 역사적인 행사 등등. 그러나 육체적,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 스스로의 삶의 모습을 잘 보여주며 뉴에이지가 이루어지지 못할 환각이라는 것을 가장 잘 증명한다는 점에 필자는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삶은 어떨까?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록음악 속에 뉴에이지 운동

1980년 6월, 레이프 가렛이 내한 공연을 할 때의 일이다. 공연이 시작되고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공연장에 모인 소녀들의 함성과 열기는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여학생들의 비명소리와 레이프 가렛을 외치는 소리, 그리고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는 악기와 노래소리가 뭉쳐서 공연장은 마치 기름이 끓고 있는 도가니 속과 같았다.

마침 그 자리에는 어떤 공연인지도 모른채 아는 사람이 선물로 준 초대권을 가지고 들어갔던 장로님 한 분이 계셨다. 공연장의 뜨거운 열기와 함성과 비명소리에 몹시 당황해서 나가고 싶었지만 초대권을 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그냥 공연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인내심도 오래가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눈 앞에서 벌어지는 차마 눈뜨고볼수 없는 광경 때문이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비명을 지르던 소녀들이 치마를 걷어올리고 팬티를 벗어 무대로 던지는 것이 아닌가? 그 소녀들은 부끄러움도 잊었고 수치심도 버렸는지 대담하고 음란한 행동을서슴지 않고하는 모습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냥 밖으로 나와버렸다.

얼마전에 모 TV의 아침 방송에서 어떤 팝평론가가 나와서 그 당시에 팬티를 벗어던졌다고 하는 말은 와전된 것이고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아마 공개적으로 그 사건을 언급하기가 싫어서 그런 말을 했으리라.

록음악 공연장에서 이런 모습들은 종종 발견이 된다 굳이 속옷을 벗어던지지는 않더라도 그러한 충동을 느끼도록 만들기도 한다. 가슴을 짜릿하게 만드는 흥분을 느끼기기도 하고 어떤 것에 온 몸을 맡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집합적인 흥분이 일어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억제하지 못할 정도까지 흥분해서 큰 소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대기해 있던 소방차에서 물을 뿌려서 진정시키기도 하며 무대 밑에 대기해 있던 경호원들과우격다짐이 일어나기도 한다. 1969년 12월 6일에 앨터몬트에서 열렸던 롤링 스톤스의 공연에서 살인과 무자비한폭력사건이 일어났던 사건이 이를 말해준다 롤링 스톤스가 '악마를 위한 연정' (Sympathy for the Devil)을 연주하는 동안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무대 위로 올라서던 흑인 청년이 칼에 찔려 죽었고 경비를 서고 있던 '지옥의 천사들' (Hell's Angels)이라는 모터사이클족에 의해 관중들이 폭행을 당하고 30여 만명의 관중들 중 많은 숫자가 몽둥이로 얻어맞는 등 최악의 폭력사 태가 벌어졌었다.

이러한 사건들을 보면 단순히 다른 나라의 일로만 생각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뉴키즈 온더 블럭이라는 그룹의 공연에서 한 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었기 때문이다.

록음악 공연장에서 벌어지는 음란,폭력,마약 자살,신비술,사단주의 등 반기독교적인 요소들이 나타나는 사건들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왜 록음악이 반기독교적인 요소들을 다루고 있으며 왜 록 공연장에서 좋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인가?

우선 록음악이 어떤 음악인가를 살펴보자.

록음악은 매우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음악이다. 이것은 1950년대 초반에 나타난 록음악의 초기 용어인 록큰롤이라는 이름이 '성행위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던 속어라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록음악이 처음 나타났을 때 당시의 스탠다드 넘버들(당시에 유행하던 영화나 연극의 주제가들)에 싫증을 느끼는 백인 젊은이들을 쉽게 공격할 수 있었던 무기가 바로 음란이었다

음란은 록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요소다. 50년대를 장식했던 가장 유명한 록가수는 당연히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그는 록음악의 요소인 음란함을 가장 잘 표현함으로 엄청난 인기를 모을 수 있었다.

팝컬럼니스트인 이양일씨는 엘비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엘비스 프레슬리야말로 록큰롤을 가장 잘 해석해낸 가수라고 할 수 있다. 육감적으로 하체를 떨며 다리를 꼬고 비벼대고 흔들어대던 엘비스는 록큰롤의 의미를 가장 잘 정확하게 이해했던 가수로 록큰롤의 제왕이라는 칭호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란 생각이다. "


록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무기가 음란이라는 말은 단순히 이성간의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록음악의 음란한 주제들에는 동성연애가 포함되어 있다. 데이비드 보위,믹 재거, 앨튼 존, 후레디 머큐리, 루 리드와 같은 세계적인 록음악가들이 공개적으로 자신이 동성연애자임을 외치며 노래한다 엘튼존은 동성연애는 전혀 나쁜 것이 아니라고 했으며 데이비드 보위는 여성과 함께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과 동성연애는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동성연애자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고린도전서 6장 9,10절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인데 왜 록음악에서 이를 권하고 선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인가? 음란함을 추구하는 본질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구약성경을 보면 음란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것이 또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상숭배다 록음악에서 나타나는 음란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상숭배와 관계된 것이다. 신비술, 이단사상, 사단주의와 같은 음란함이 많이 나타난다.

그런데 록음악의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특징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아라는 것이다 록음악은 철저하게 이기주의적인 음악이다. '당신'에 대해 노래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나'를 노래한다. 중심이 나에 맞추어져 있다. 그것도 미래의 자신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미래를 노래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현재의 자신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록음악은 현재의 나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 에 록음악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음악을 듣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발산하면서 듣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자신을 음악에 내어맡기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록공연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다 공연장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들을 억제하지 않고 그대로 발산하는 것이다. 사실 억제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날 때가 더 많다. 왜냐하면 록음악에 들은 에너지가 그냥 놔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록음악 속에 들어있는 에너지는 무엇인가? 로버트 패티슨은 '자아를 몰아치는 에너지'라고 말하고 있으며 , 켄 마이어스는 '자아를 추구하는 데 불을 당기는 에너지' 라고 말한다.

록음악은 자아를 추구하토록 만든다. 아니 만든다는 표현보다는 몰아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특성이 40여년이 흐르도록 록음악이 전 세계의 음악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아를 추구하도록 만드는 록음악의 본질은 무엇일까? 록음악의 가장 흔한 주제인 음란을 놓고 볼 때 본질을 알 수가 있다. 로버트 패티슨의 이야기다.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여 그 자리에 자아를 대신 앉히려는 범신론적인 욕구는 에로틱한 것일 수밖에 없다. 성적 충동은 자아를 그 영역 밖으로 확산시키려는 가장 명백한 사례이다. "


범신론, 바로 그것이다.

록음악 속에 숨어 있는 뉴에이지 운동이 바로 록의 범신론인 것이다. 록음악은 철저하게 자아를 추구하는 음악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것을 범신론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범신론이 자아의 실현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범신론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이며 모든 것이 신이다 자연을 비롯한 우주만물이 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주를 이야기하고 자연을 이야기하면서 결국에는 인간이 신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되돌아온다

범신론의 가장 중심된 사상은 비인격적인 신이 아니라 인간이 신이 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신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신이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가. 자아를 추구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범신론이다. 신이라는 무한한 존재를 이야기하는 것 같으면서 결국은 인간의 유한한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범신론인 것이다. 우주를 이야기하고 윤회를 거창하게 이야기하면서 결국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다.

록음악이 바로 그령다고 할 수 있다. 록음악은 정치나 세계정세,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노래하기도 하지만 해답이 없다. 그러다보니 프로그레시브 록처럼 초현실주의를 노래하는 허무주의 음악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한때 록음악이 마치 인류의 미래를 위한 음악이고 해답이 들어있는 음악인 것처럼 행세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60년대다. 60년대는 대니얼 벨의 표현처럼 폭력과 잔인한 것에 대한관심,성적 변태에 대한 몰두, 소음을 만들어 내려는 욕구, 반인식적이고 반지성적인 분위기 ,예술과 삶 사이의 경계를 단번에 지워버리려는 시도, 예술과 정치의 융합이 나타나던 시기였다. 그리고 영적이고 정신적인 배경으로 범신론이 등장했었다. 서양의 신비주의와 동양의 범신론이 맞물려 나타났으며 이러한 흐름은 록음악에 의해 주도되었다. 록음악이 가지고 있었던 범신론과 동양의 범신론은 너무나 잘 어울리는 파트너였다. 히피를 비롯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범신론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를 형성했는데 거기서 나온 것이 바로 이상주의였다. 그리고 이 이상주의는 인간이 다시 쌓아올리기 시작한 바벨탑이었다. 요가, 명상, 신비술 등이 난무했었고 힌두교 구루들이 영적인 스승으로 인식되었으며 범신론을 바탕으로 한 이데올로기가 형성되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으로 여겨졌었다.

당시의 록은 하나의 신화였다.

록의 신화

켄 마이어스는 이러한 록의 신화를 록의 낭만적 신화라고 표현한다. 그는 록음악에서 19세기의 낭만주의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록의 낭만적 신화의 본질은 록음악이 어떤 우월한 형태의 지식을 제공해줌으로써 일종의 영적 구원을 제시한다는 것이라고 한다.그리고 이 영적 구원이 즉각적인 것이고 육체적인 것이며 감정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젠 마이어스의 견해는 옳은 것이다. 록음악은 인간의 구원의 문제까지 다루었다. 그러나 록음악이 인간에게 말해줄 수 있었던 구원은 즉각적이고 육체적이고 감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록의 본질이 범신론이기 때문이다. 자아를 추구하는 범신론.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하나님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자아를 앉히려는 록음악이 어떻게 구원의 길을 제시할 수가 있었겠는가?

마치 구원을줄 수 있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교만에 빠진 록음악이 구원의 한 방편으로 무엇을 주었는지 한번 살펴보면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록음악은 구원의 대안으로 마약을 제시했다. 그래서 당시에 마약은 지혜와 영적 구원의 힘으로까지 추앙되었다. 수많은 록 음악가들이 마약을 복용했으며 L.S.D.같은 마약을 복용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었다 지미 헨드릭스의 말을 들어보자.


"마약이 육체적인 죄인의 상태로부터 나의 정신을 해방시켰고 우주적인 힘과 사차원 세계의 신들에 대한 전자교회음악(electric church music)을 창조하도록 허락했습니다. "


마약은 복용하면 즉각적으로 마치 구원을 얻은 듯한 착각에 빠지도록 만들었지만 약의 효력이 떨어지면 다시 더 강한자극을 필요로 하도록 만드는 중독성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해져 갔다. 구원의 길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파멸의 지름길을 가르쳐 준 것이었다. 많은 록음악가들이 마약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록음악이 60년대를 주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록의 본질인 범신론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범신론은 19세기 낭만주의의 본질이었다. 켄 마이어스는 "낭만주의는 본능, 비합리성에의 성향, 그리고 범신론과의 공감을 강조하는 태도를 조장했다"고 하면서 낭만주의자들의 자연 신비주의(nature mysticism)에 범신론이 뚜렷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19세기의 낭만주의가 바로 록음악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한다.

이제 여기서 록음악과 뉴에이지 운동의 공통점을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우선 범신론을 들 수 있다. 범신론은 뉴에이지 운동의 기본 사상이다. 범신론에 의해서 뉴에이지 운동은 인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60년대에 록음악이 하나의 영적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던 원인이 당시에 힌두교 구루들을 통해 급속도로 번져나갔던 뉴 에이지 사상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19세기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록음악의 범신론과 힌두교의 범신론이 만났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렇게 보면 동양의 범신론이나 서양의 신비주의에 숨어있는 범신론의 뿌리가 하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며 그 뿌리를 바로 성경에서 찾을 수가 있다. 창세기 3장에서 하와에게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속삭이는 사단의 유혹이 바로 그것이다.

록음악과 뉴에이지 운동의 또하나의 공통점은 해답이 없는 점이다.

60년대를 살펴보면 뉴에이지 운동이 실패로 끝날 환상이라는 사실을 잘 알수 있다 범신론이 바탕이 되었고 인류가 인류의 문제를 하나님 없는 사랑과 평화(뉴에이지 운동에서 강조하는 것)로 스스로 풀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이상주의는 비참한 종말을 맞고 말았다. 롤링 스톤스의 앨터몬트 공연의 비극이 바로 60년대 이상주의의 종말을 고하는 마침표였다.

록음악은 지금도 끊임없이 인간의 자아를 강조한다. 육체적인 것들을 노래한다. 음란, 폭력, 변태적인 성범죄, 자살, 허무 등을 노래한다. 또한 신비술이나 이단, 사단주의의 독기를 마구 내뿜는다. 록음악이 나타난 이후로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를 살펴보면 록음악의 본질을 알 수 있다. 60년대가 바로 그 증거다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면서도 해답이 없는 음악이 바로 록음악인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도 마찬가지다. 육체의 건강이라는 미끼로 사람들을 미혹한다.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꾸민다. 그러나 답이 없다 어떻게 인간이 신이란 말인가?뉴에이지 운동의 모순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의 하나는 바로 그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이다. 뉴에이지 운동은 실제적인 신인 인격적인 신이 하나가 있고 우주만물은 그 신의 다른 측면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실제적인 신이 인격적인 신이 아니라 비인격적인 신이라고 주장한다 어떻게 비인격적인 신에게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보았을 때 뉴에이지 운동은 사단의 거짓말로 이루어진 계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 록음악 가운데 뉴에이지 사상을 담은 노래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필자는 그런 음악들을 뉴에이지 송으로 분류한다. 앞으로 록음악이 다루게 될 주제는 육체적인 것들에서 점차로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들로 다시 바뀔것으로 예측된다 60년대에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원인을 보완해서 나타날 것이다. 스티브 바이나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어스 윈드 앤드 화이어, 조지 해리슨이나 존 덴버가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뉴에이지 사상으로 이루어진 록음악들이 보다 많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기독교를 비판하는 곡들도 더 많이 나올 것이다 핑크 플로이드나 오지 오스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록음악과 뉴에이지 운동의 접목은 이미 시도되고 있다. 인도 뿌나의 오쇼 라즈니쉬 공동체에서 시도되고 있고 뉴에이지 사상을 가진 록음악가들에 의해서도 만들어지고 있다. 국내에 오쇼 라즈니쉬 공동체에서 나온 음악 앨범들 가운데 뉴에이지 사상을 담은 록음악들이 들어 있다. 얼마전 밤 11시 이후에 어떤 크리스천 복음가수가진행하는 라디오 프로에 뉴에이지 사상을 담은 록음악인 조지 해리슨의 '나의 사랑하는 주님' (My Sweet Lord, 인도의 힌두교 신들을 찬양하는 대표적인 뉴에이지 송)이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을 때 정말 안타까웠다. 방송을 통해서 뉴에이지 송들이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록음악 속에 숨은 뉴에이지 운동이 지금 그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기독교 음악은 어떠한가? 모든 기독인들이 함께 대안을 생각할 때가 왔다.


대중음악 시나리오

대중음악의 역사를 살펴보면 뉴에이지 운동의 대중음악 시나리오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육십년대 중반부터 팔십년대를 살펴보면 이러한 시나리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뉴에이지 운동의 메신저 역할을 담당했던 비틀즈의 등장과 뉴에이지 음악의 시작은 같은 해에 이루어졌다 천구백육십사년 이월에 영국에서 비틀즈가 미국으로 날아와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에 뉴에이지 음악의 공식적인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토니 스콧(Tony Scott)의 '선을 명상하기 위한 음악' (Music For Zen Meditation)이 출반되었다. 그러나 비틀즈로부터 시작된 록음악은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지만 상대적으로 뉴에이지 음악은 관심을 끌지 못한채 심령서적을 다루는 서점이나 신비주의적인 상점에서만 취급될 뿐이었다.

이렇게 뉴에이지 음악이 푸대접을 받았다고 해서 대중음악적인 가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사실 뉴에이지 음악은 시기적으로 비틀즈를 주축으로 록음악과 같이 시작되었지만 육십년대를 겨냥한 음악은 아니었다. 육십년대부터 팔십년대 초반까지는 록음악이나 여기서부터 갈라져 나온 장르들의 음악이 적당한 시기였다 그리고 비틀즈 하나만으로 반문화 운동을 등에 업고 뉴에이지 사상을 전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뉴에이지 음악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도 없었다 또한 시대 흐름도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욕구를 위한 음악을 필요로 했었고 대중음악 역시 교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런 방향으로 흘러 나갔다. 비틀즈는 노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교를 비판했고 이것은 그들의 앨범에도 공공연하게 나타났다. 인도에서 건너온 구루들은 활개를 치고 다녔으며 명상과 요가, 초월명상과 같은 것들이 인기를 얻었다.

이렇게 요란하고 시끄러운 음악과는 달리 뉴에이지 음악은 감각적이고 자극적이고 시끄러운 음악에 싫증을 느낄 때를 위해 준비되고 있었다. 온몸을 흔들며 음악에 파묻혀 욕구를 발산하는 것에 싫증을 느끼고 보다 새로운 음악을 필요로 할 때를 위한 음악이 바로 뉴에이지 음악이다. 실제로 팔십년대 들어 대중들은 새로운 음악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을 열광케 했던 비틀즈는 해체된지 십여년이 지났고 감각적인 디스코도 시들해졌고 요란한 헤비메탈 음악도 그리 큰 인기를 얻지 못하자 조용한 음악을 원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이유로 이십여년동안 침묵하며 기다렸던 뉴에이지 음악이 드디어 비틀즈의 바톤을 이어 받아 뉴에이지 운동의 도구로 대중음악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팔년대의 비상을 위해 사실상 천구백칠십육년에 윈댐 힐이라는 레이블이 탄생하면서 뉴에이지 음악은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윈댐 힐은 우선 초기 뉴에이지 음악이 장르에 있어서 제한적인 약점이 있었기에 다양한 장르들을 받아들이는 크로스 오버 작업을 시도했다. 그리고 묻혀있던 뉴에이지 음악가들을 발굴해 내어 그들의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략적인 면을 살펴보면 비틀즈의 음악이 다양한 계층을 위한 보편화에 기초를 둔 음악이라면 뉴에이지 음악은 화이트 칼라를 위한 고급화에 기초를둔 음악이다 비틀즈는 처음부터 보다 많은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한 전략을 가지고 있었지만 뉴에이지 음악은 소위 화이트 칼라로 분류되는사람들의 인기를 얻어 고급음악으로 인식되도록 만드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뉴에이지 음악은 고급문화로 분류되는 클래식 음악과 저급문화(일부 문화평론가들에 의 해)로 분류되는 대중문화 사이에 있는 준고급음악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보다수준높은 정신세계를 꿈꾸며 영성을 찾는 현대인들에게 뉴에이지 음악이 아주 적당한 음악이 되도록 만들었다. 또한 클래식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나 대중 음악의 수준을 낮게 보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음악이 되게 하였다. 이런 면에서 뉴에이지 음악이 시도한 고급화 전략은 맞아 떨어졌다.

비틀즈의 록음악과 뉴에이지 음악은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지만 비틀즈는 육십년대를 위한 주인공이었고 뉴에이지 음악은 팔십년대 이후를 위한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나리오대로 뉴에이지 운동은 대중음악적인 전략을 실행해왔다.

인간의 음악적인 성향을 잘 알고 있는 사단은 대중음악의 역사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만들고 주인공을 설정하고 시대에 맞게 등장시켰다.

어떤 사람들은 데스 메탈이나 사타닉 메탈만이 사단의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음악들은 노골적으로 죽음과 사단을 찬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단이 노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모습을드러내지 않는 그러면서도 인간들의 기호에 맞는 음악들 속에서 역사하는데 뉴에이지 음악이 바로 그것이다.


록음악, 뉴에이지 음악 그리고 C C. M

지금까지 록음악을 중심으로 해서 대중음악에 나타나는 뉴에이지적인 성향을 설명해 보았다. 그런데 록음악의 부정적인 측면을 다루었다고 해서 선교적인 측면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록음악에서 범신론적인 요소가 나타나고 육십년대에 뉴에이지 운동의 도구로 사용되었다고는 하나 세상문화를 향한 기독교 문화의 선교전략적인 측면에서 볼 때 록음악은 선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음악이다 필자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반대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어떻게 사악한 록음악이 선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사실 록음악은 그 발생 시기부터 온갖 문제를 일으켜왔고 인간의 가장 육체적인 주제들을 다루는데 놀랄만한 성능(?)을 보여왔다 그러나 록 음악은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장르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음악을 사용하는 가수들이 인간적인 측면만 부각시켜 부정적이고 반기독교적인 주제들을 다루는데만 사용하였기에 선교전략적인 특성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록음악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선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은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국교회내에서 입증되었다. 경배와 찬양을 비롯해 여러 형태의 C.C.M.들이 복음성가라는 이름으로 교회내에서 불려지고 있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록음악을 이용한 C.C.M.이 과연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인가에 집중하여왔다. 왜냐하면 전에는 필자 역시 C.C.M.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던 사람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C.C.M.을 연구하면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리듬이 록리듬이라 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과연 그 결과가 어떠한가를 주시해 보았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C.C.M.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음의 선한 열매들이 C.C.M.을 통해서 열리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C.C.M.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바뀌게 되었다. 특히 하덕규 집사와 공개적으로 C.C.M.에 대한 논쟁을 하기로 한 다음 C.C.M.을 구체적으로 연구하던 중 C.C.M.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록음악을 비롯한 세속음악 장르들이 지금 C.C.M.이라는 이름으로 선교에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비록 대중음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순화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선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C.C.M.을 반대하는 의견들은 그 나름대로 타당하고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그 의견들이 지적하는 위험성을 C.C.M.이 안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내에서 세속음악적인 장르들로 만들어진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보면 일찍부터 교회가 비록 논쟁들이 있었지만 세속문화를 순화시키는 일을 음악을 통해서 계속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 한 예로 찬송가 안에는 당시의 대중음악으로 분류되던 음악스타일로 만들어진 곡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당시의 대중음악은 지금의 대중음악만큼 악한 음악이아니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지금의 대중음악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중음악이 모두 나쁜 주제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밝고 건전한 내용의 가사를 가진 노래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왜 대중음악하면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나쁜 이미지만 떠올리는 것일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교회내에서 대중음악에 대한 강의들이 진행될 때 주로 대중음악의 나쁜 측면만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강사를 초청할 때 대중음악의 반기독교적인 것만 연구한 강사들을 초청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중음악을 교회가 어떻게 순화시키고 도구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필자 역시 그런 강사로 초청되었던 적이 많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런 강의들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강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강의도 중요하지만 교회가 대중음악을 어떻게 순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강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C.C.M.의 진가를 알게된 다음부터 필자는 대중음악에 대한 대안으로 C.C.M.을 이야기해왔다.현재 한국교회가 신세대들의 쇼킹한 문화에 대해 입을 벌리고 비판만 하고 있는데 이제는 대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할 때다. 그리고 그 생각에 가장 어울리는 도구가 바로 C.C.M.이다

그런데 C.C.M.을 생각하면서 필자스스로 한가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것은 과연 뉴에이지 음악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과연 뉴에이지 음악을 C.C.M.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뉴에이지 음악을 깊이 연구하면서 필자는 대중음악 장르들과는 다른 음악적인 특징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뉴에이지 운동의 도구로 사용되는 뉴에이지 음악의 영적인 특징을 살펴보았을 때 뉴에이지 음악을 C.C.M.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너무 문제가 많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물론 지금 일부 C.C.M.에서는 부분적으로 뉴에이지 음악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뉴에이지 음악이 명상으로 유도한다면 복음적인 뉴에이지 음악을 만들어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다른 장르에 비해 뉴에이지 음악은 너무나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음악적인 특징이나 영적인 특징에 있어서 C.C.M.으로 사용하기에 적당치 않다는 생각이다. 대중음악의 그 어느 장르도 인간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 어떤 음악도 하나님이 되기 위한 음악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오직 뉴에이지 음악만이 인간이 하나님이며 음악을 들음으로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누군가 뉴에이지 음악을 C.C.M.으로 사용한다면 필자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주시해볼 생각이다. 그처럼 하나님을 향해 인간이 신이라고 용감하게(?) 반항하는 음악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지 말이다.


(5) 뉴에이지 음악에 심취하는 단계


비소와 같은 음악.

비소라는 극약이 있다. 나폴레옹을 죽게 만들었던 극약이다. 이 약은 매일 조금씩 먹으면 점점 쇠약해져서 결국은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다. 음악에도 비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헤비메탈 음악이 그것이다.

헤비메탈 음악은 증오와 파괴라는 두 가지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텍사스 대학의 음악교수인 조 스튜어시(Joe Stuessy)는 헤비메탈 음악의 중심 사상이 '증오` (Hatred)라고 말한다. 인간의 감정 중에서 증오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헤비메탈인 것이다

헤비메탈, 트레쉬 메탈, 쇼크록과 같은 음악들.

몹시 기분이 상하거나 누군가를 싫어하는 마음이 폭포수처럼 밖으로 쏟아지려고 할 때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음악들이다.

마이클 잭슨이 1991년에 발표한 '흑과 백' (Black or White)의 뮤직 비디오를 보면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볼륨을 크게하고 음악을 듣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소리치면서 음악을 끄라고 말한 뒤에 거실로 가서 TV를 본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지 못하게 되자 화가난 아들은 대형 스피커를 거실에 설치하고 볼륨을 최대한으로 높인다. 어느 정도 높이는가 하면 '크게' (loud),'더 크게' (louder)의 단계를 지나 '정신나갔냐?'(Are You Nut?)의 단계까지 끌어올린 뒤에 전기기타를 연결하고는 힘차게 친다 그 소리에 소파에 앉은 아버지는 지붕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 대기권을 통과해서 아프리카에 떨어지게 된다. 득의만만해 하는 아들의 표정과 대수롭지 않게 혀를 차는 어머니의 모습.

여기서 아들로 열연(?)하는 배우는 영화 '나 흘로 집에' 로 잘 알려진 매컬리 컬킨이다. 마이클 잭슨이 가장 귀여워한다는 아역 배우다.

음악을 못듣게 한다고 아버지를 지구 밖으로 날라가게 만들 정도의 증오심을 일으키는 음악이 바로 헤비메탈인 것이다.

파괴를 일으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미 헨드릭스가 공연 도중에 기타를 바닥에 메어쳐서 부수어 버리고 그때 나는 요란한 소리에 열광하는 관중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파괴에 대한 감정들. 증오나 파괴에서 비롯되는 온갖 더러운 감정들은 헤비메탈 음악을 통해서 표현되고 발산하게 된다 그래서 음악의 특징들도 반기독교적인 것들뿐이다. 테네시 대학의 의학교수인 폴 킹(Paul King) 박사는 헤비메탈 음악과 청소년들의 마약남용 (Heavy metal music and drug abuse in adolescents)이라는 논문에서 헤비메탈 음악의 특징이 "폭력을 미화하고 여성을 추행하는 것, 비정상적인 성행위, 신비주의 , 명백한 사단숭배"라고 하였다.

헤비메탈 음악을 듣게 될수록 가치관이 변하고 정신상태마저 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음악은 영적이기 때문이다. 음악 속에 들은 본질에 따라서 영향을 받게 되기에 헤비메탈 음악에 심취하면 할수록 비정상적인 행위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주위에 헤비메탈 음악에 깊이 빠진 사람이 있다면 쉽게 그러한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사이코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다. 필자에게 상담을 해온 학생이나 교사들, 부모들의 공통적인 의견들이 바로 이 사이코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파괴와 증오가 본질인 음악을 계속 들었으니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이처럼 잘못된 음악은 마치 비소와 같다. 들으면 들을수록 정서도 메말라지고 감정도 불안해져서 주위 사람들과 거리가 생기고 결국에는 마약이나 범죄행위 , 신비주의나 이단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헤비메탈과 같은 음악은 모든 사람이나 계층에게 어필하지는 못한다. 그 예를 국내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80년대 말에 조금 인기를 얻기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다른 음악장르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헤비메탈 음악이 맞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뉴에이지 음악은 다르다. 뉴에이지 음악은 매우 동양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시끄럽지도 않고 요란하지도 않으며 추하고 끔찍한 패션을 유행시키지도 않는다. 악기를 부수지도 않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는다. 앨범표지도 끔찍한 사진들이나 음란한 그림들이 아니라 자연의 평화로운 모습들로 그려져 있다. 그래서 거부감이 일어 나지 않는 것이다.

헤비메탈이나 록이라는 비소보다 더 새롭게 포장된 신제품 비소.

바로 뉴에이지 음악이다. 뉴에이지 음악은 영적인 비소라고 할 수 있다. 들으면 들을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어 결국은 멸망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르게 만드는 영적인 비소인 것이다.

그동안 뉴에이지 음악애 대해 분석하고 연구하고 강의를 해오면서 많은 사람들과 상담을 하였는데 거의 대부분이 뉴에이지 음악을 통해서 경험했던 영적인 부작용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상담의 내용들을 정리하면서, 그리고 필자가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정리하면서 뉴에이지 음악에 심취하는 단계를 네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차례대로 적용되는 순서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영적인 부작용을 경험하게 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초기단계

가볍고 부드럽고 경쾌한 뉴에이지 음악을 듣는 단계다. 일반적으로 처음으로 뉴에이지 음악을 접하는 사람들이 뉴에이지 음악의 입문을 위해 들어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주로 듣는 음악은 조지 윈스턴이나 데이비드 란쯔와 같은 사람들의 음악이다. 이런 음악들은 듣기에도 부담이 없어서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계열의 음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마치 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기도 하는데 초기 뉴에이지 음악의 복잡한 음계나 화성, 연주기법 , 그리고 신비주의적인 모습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인 것이다. (시끄러운 헤비메탈, 이해할 수 없는 재즈,웬만해서는 깊이를 느끼지 못하는 클래식 음악에 비해 가볍고 경쾌하고 듣기 편하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게 한다. )

그러나 이런 음악이라고 해서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① 음악은 주로 명상이라는 단계를 거쳐서 만들어진 것들이고, ②뉴에이지 사상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볍고 부드러운 외모 속에 날카로운 뉴에이지의 칼날이 숨어 있는 음악인 것이다. 조지 윈스턴은 히피 명상가이고 데이비드 란쯔는 뉴에이지 사상을 음악 속에 담아서 전하는 대표적인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이다.

초기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되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들은 순간적인 것일뿐 지속되지는 않는다.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서 평안함을 느낀다고 하는데 이것은 거짓 평안이다. 하나의 미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낚시를 하기 전에 뿌리는 떡밥인 것이다. 거짓 평안은 순간적인 것이어서 마치 마약과 같다. 평안을 느끼지만 지속되지 않고 삶을 변화시키지도 못하며 오히려 더욱 더 불안 하게 만들고 불안정한 삶을 살도록 만드는 것이다.

초기단계에서 많이 듣는 음악들로 인해서 영적인 부작용을 경험하 는 사람들도 있다

수원에 사는 어느 집사가 경험했던 일이다

조지 윈스턴의 디셈버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차 안에서나 집에서 늘 듣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차를 몰고 가면서 디셈버를 들었다. 맑은 날씨였는데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면서 됫자석에 무엇인가 나타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급히 차를 길가에 세우고 뒤를 돌아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 다시 차를 몰고 가기 시작했는데 몇 분도 못되어 다시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어서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기도하는 도중에 갑자기 음악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음악을 끄고 테이프를 버린 후에 다시 운전을 시작했고 그 후로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집에 가서 조지 윈스턴의 테잎을 모두 버린 것은 물론이고 뉴에이지 음악을 다시는 듣지 않았다.

서울에 사는 어떤 자매가 역시 조지 윈스턴의 '디셈버'를 듣다가 경험한 일이다.

'디셈버'를 들으면서 잠을 자는 것이 습판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날도 음악을 듣다가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는 중에 갑자기 숨이 막혀 오면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소리를 지르려고 해도 목에 걸려서 나오지가 않았다. 가위에 눌린 것이다. 얼마 후에 겨우 몸을 움직일 수가 있었는데 그날 밤에 몇번 더 그런 경험을 한 후로 매일 밤마다 가위에 눌리게 되었다. 나중에는 너무 무서워서 부모님과 함께 잠을 자야만 했다.

조지 윈스턴의 '여름' (Summer)을 듣다가 무력증에 걸리는가 하면 심한 두통과 함께 구역질을 했다는 상담도 있었다.


신비주의적이고 환상적인 음악을 듣는 단계

두번째 단계는 가볍고 단순하고 경쾌하고 부드러운 음악이 아니라 신비주의적이고 환상적인 뉴에이지 음악을 듣는 단계이다. 이 단계가 되면 조지 윈스턴이나 데이비드 란쯔의 음악보다 장미셀 자르, 데니스 앤드류, 마크 아이샴, 반젤리스 기타로나 소지로의 음악에 심취하게 된다. 이들의 음악은 톤이 굉장히 무겁다. 처음 듣는 사람은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몇번 듣게되면 음악의 묘한 맛(기분)에 이끌려 계속해서 듣고 싶어지게 된다.

마약에 빠질 때 처음에 대마초와 같은 것에서 점점 코카인을 비롯한 더 독한 마약에 빠져 들게 되듯이 가벼운 음악에서 보다 무겁고 환상적인 음악을 듣고 싶어지는 것이다. 장 미셀 자르의 '랑데뷰'(Rendez-V7us)나 기타로의 '실크로드' (Silk Road)를 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굉장히 무겁고 신비적인 환상감을 맛보게 되는 음악이다. 이런 음악들을 들으면 큰 돌이 전실을 누르는 듯한 중압감을 느끼거나 어떤 경우엔 자신의 몸이 공중에 뜨는 듯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음악들은 듣고난 후에 자신의 내면에 신비로운 기운이 넘치게 됨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이런 효과는 명상을 할 때 자신이 마치 무한한 존재가 된듯한 느낌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이런 경험은 마약하고 공통점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착각에 빠지는 만큼 육체나 영혼이 멸망으로 달려간다는 것이다

명상을 하는 뉴에이저들이 듣는 음악이 바로 이런 음악들이다. 주로 신디사이저를 이용해서 연주하는 음악들인데 명상을 위한 보조도구로 음악을사용하는 것이다. 셜리 맥클레인은 "음악을 병행하여 명상하는 방법은 내면의 조화가 외부세계의 파동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이용될 수 있다'고 하면서 음악이 명상의 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오쇼 라즈니쉬 명상센터에서도 명상을 할 때 음악을 도구로 사용한다. 기공사들도 마찬가지다. 이 들은 기가 들어있다는 음악을 틀어놓고 명상을 한다.

신비주의적이고 환상적인 뉴에이지 음악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건강문제나 신비술, 밀교 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E.S.P.계열의 신비술을 비롯해서 인간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능력을 개발하는 방법들을 시도하기도 하는 것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러한 것들에 빠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음악 자체가 바로 그러한 것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영매나 마법사들이 신비로운 능력을 행할 때 흐르는 음악을 생각해 보라 경쾌한 행진곡이나 부드러 운 발라드가 흐르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음악들은 화면에 흐르는 장면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신비로운 음악이 잘 어울리는 것이다. 신비주의적이고 환상적인 뉴에이지 음악은 서양의 신비술과 동양과 신비술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음악이다.

SBS TV에서 방영했던 미스타 마릭 쇼를 본 사람들은 마릭이 신비로운 능력을 행할 때 흐르는 음악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흐른 음악들이 바로 뉴에이지 계통의 음악인 것이다. 만일 기독교의 예배 시간에 그런 음악을 사용한다고 가정해 보라. 이방신에게 드리는 신제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음악은 나름대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서양파 동양의 신비술이 내포된 신비주의적이고 환상적인 뉴에이지 음악은 바로 뉴에이지 사상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음악에 심취하는 사람들이 눈을 돌리는 분야도 바로 뉴에이지에서 내세우는 방법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스터 마릭이 보여주었던 능력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었다. 숟가락을 휘게하거나 피라미드 안에서 전기도 없이 선풍기가 돌아가게 만드는 등 여러 가지 능력들은 마침 흐르는 음악의 효과에 따라 매우 신비롭게만 보였을 것이다. 미스터 마릭이 보여주었던 것들은 E.S.P.라는 것들이었다 '초감각적 감지력' (extra sensory perception)이라는 것이다.

로드니 데이비스(Rodney Davies)가 만든 ESP 워크북(The ESP Workbook)을 보면 ESP라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심령력 (psychic power)을 뜻한다. 이 책의 부제를 보면 '당신의 심령력을 깨워 사용할 수 있는 방법' (How do awaken and use your psychic powers)이라고 되어있다.

데이비스는 머리말에서 "이 책의 목적은 시각, 청각, 미각,촉각 그리고 후각과 같은 평범한 다섯 가지의 감각과는 대조적으로 초감각적 감지력 또는 ESP라는 표제 아래 나타나는 인간 유기체의 여러 능력들을 탐구하고 개발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 라고 말한다.

ESP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수정으로 점치는 법(scrying) , 신비력 (psychometry), 예언(oracle) 천리안(clairvoyance), 예지 (precoghition), 점지팡이로 수맥을 찾는 법(dowing), 염력 (psychokinesis), 사후의 삶(life after death), 동물 ESP(animal ESP) , 최면술(hypnotism) 등이 모두 ESP에 속한다.

미스터 마릭 쇼를 본 사람들은 마릭이 다섯 장의 ESP카드를 가지고 투시의 능력을 보이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 한 무늬를 모 개그우먼의 손등에 새기는 것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매우 궁금하게 여겼을 것이다.

과연 저것이 진짜 인간의 능력일까?

나에게도 저런 능력이 있을까?

이에 대해 쿠르트 코흐(Kurt E. Koch) 목사는 사단의 전술전략 (Occult ABC)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심령력은 하나님의 은사가 아니며, 자연적 재능(a natural gift)도 아니다‥‥이러한 능력들은 심령발생적 (psychogenic)이 아니고 이형발생적( hetrogenic)이다. 다시 말해서 심령력은 정신적 제 능력에 그 연원이 있는게 아니라 외계로부터 오는 힘에 그 연원이 있다. "


여기서 외계로부터 오는 능력은 무엇을 뜻하는가? 외계라는 표현을 써서 외계인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바로 사단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영혼 구원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신비로운 능력들을 이용해서 인간을 유혹해왔던 사단에게로부터 오는 능력일 뿐이다.

뉴에이지 음악의 두번째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바로 뉴에이지라는 포장 속에 들은 신비술이나 심령력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심취하는 음악 속에 바로 그런 것들에 눈을 돌리도록 만드는 본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1992년 12월 주일 오후에 CANA클럽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를 한 사람은 서울 모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제자 중에 사단숭배 그룹에 가입했다가 너무 무서워서 빠져나온 학생이 있다고 하면서 한번 만나보지 않겠느냐는 내용이었다. CANA클럽에서 청소년분야는 필자가 맡고 있기 때문에 약속시간을 정하고 만나게 되었다.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그 학생을 보자 우선 마음이 몹시 아팠다. 얼굴에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방관하는 모습이 확연히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음식을 조금 시킨 후에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그 학생을 통해서 나온 이야기들은 매우 놀라운 내용들이었다. 서울 시내에 거주하는 고등학생 약 천여명으로 구성된 그룹이 있는데 그 이름이 000학생연합모임이라는 것이다 이 그룹은 한달에 한번씩 토요일에 장소를 바꾸어 가면서 모임을 가진다고 한다.

그룹에는 사단숭배, 심령술, UFO의 세 가지 분과가 있고 각 분과마다 회장과부회장 서기와같은 임원들이 있다 사단숭배 그룹은사단을 숭배하는 의식을 가지며 심령술 분과는 여러 가지 심령력을 배우며 UFO분과도 마찬가지인데 각 분과의 임원들은 모두 신비로운 심령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 멤버 중에는 자신들의 실체를 가리기 위해 교회에 다니기도 하는데 철저하게 비밀리에 운영되기 때문에 멤버를 끌어드리는 것도 일대일로 접근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임원들은 다른 어른들로부터 자료를 받거나 교육을 받기도 한다는 말로 미루어 더 큰 조직이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모임을 가질 때마다 명상을 한다고 하기에 음악을 사용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아주 신비로운 음악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바로 뉴에이지 음악인 것이다. 이들의 모임에서는 신비주의적이고 환상적인 뉴에이지 음악이 주로 사용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국내에 존재하는 뉴 에이지 그룹이고 인간의 잠재력을 개발하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마치 무한한 존재나 되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데 이런 음악이 효과적 이기 때문이다.

상담을 한지 약 한 달 후에 그 학생이 새로 가입한 기독학생 수련회에서 필자가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강의를 했었다. 제일 뒤에 앉아서 강의를 듣던 그 학생은 강의가 끝난 후에 녹초가 되어있었다. 강의 도중에 들려준 뉴에이지 음악들 때문에 그리고 강의를 방해하려는 사단과의 영적 싸움 때문에 심한 두통을 일으키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계속해서 기도하고 찬송하면 괜찮다는 말과 함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기도해 주고 필자는 돌아왔다 그 학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로서 선한 군사로서 영적으로 성숙하기를 기도한다.

심령력을 사용하거나 명상을 할 때 사용하는 음악이 바로 뉴에이지 음악 중에서 신비주의적이고 환상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크리스천 중에서 그런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 시도를 하고 있는지를 알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밤에 잠을 잘 자기 위해서 그런 음악을 듣기도 한다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특히 김00의 명상음악 시리즈같은 음악은 크리스천들이 들을만한 음악이 전혀 아님을 강조한다. 이 음악들은 뉴에이지 음악이며 명상음악에 속한다. 왜 찬송가와 같은 좋은 음악을 놔두고 뉴에이지 음악을 듣는가? 그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신앙상태를 다시 점검해야만 한다.


정신질환 단계

서울 G교회에 다니는 중3학생인 K군은 어느날부터인가 뉴에이지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다

부드러운 선율, 마음을 안정시키는 음에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점점 더 깊이 뉴에이지 음악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음악을 듣고난 다음에는 반드시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서부터 시작된 습관이었다.

음악을 들을 때는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좋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음악을 듣고난 후에는 허무함을 느껴서 하늘만 바라보게 된 것이다.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해지기 시작해서 도무지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었다.

기분이 좋다가도 뉴에이지 음악만 듣고나면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생활을 거듭하면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K군은 하기수련회 기간중에 필자의 강의를 듣고 지금까지 자신을 죄어오던 알 수 없는 것들을 떨쳐버리게 되었다.

수련회가 끝난 다음 그 교회에서 발행하는 소식지에 쓴 글을 통해 K군은 '굴레를 벗었다' 는 표현을 썼다

뉴에이지 음악으로 인해 허무함을 느끼고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뉴에이지 음악을 멀리하게 되면서부터 예전의 자신을 찾게된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에 심취하게 되면서 세번째 겪는 단계가 바로 정신질환 단계이다.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 중에 대부분이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고 하였다.

우울증.

정신과 의사가 아닌 필자는 항상 이 문제에 대해서 대전 유진호 정신과 의원의 유진호 권사님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우울증에 걸려서 치료를 받고있다는 뜻은 아니다. 음악을 듣다가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고 호소해 오는 사람들과 효과적인 상담을 하기 위해 도움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우울증에는 ① 신체의 호르몬 변화로 감정이 쳐지는 주요 우울증과 ② 충분한 이유가 있고 나서 생기는 우울증으로 주로 상실(lose)에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반응성 우울증, ③늙어서 오게되는 노인성 우울증으로 나눌 수 있다.

주요 우울증의 증상은 무기력해지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반복하게 되고 식욕이 없고 의기소침해지며 우울한 감정이 심하고 신체 기능이 떨어진다.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증상이 주요 우울증의 증상들인데 유진호 권사의 의견에 의하면 정서의 변화가 호르몬의 변화를 수반한다고 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그에 따른 적절한 호르몬이 작용하고 우울할 때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을 듣다가 우울증에 걸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결론이다.

뉴에이지 음악.

왜 이 음악들을 듣다가 우울증에 걸리게 되는 것일까?

뉴에이지 음악을 듣는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마음이 안정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하면서 점점 깊이 빠질수록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우울증에 걸린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뉴에이지 음악이 거짓 평안을 주기 때문이다. 항상 거짓 평안은 허무와 우울증과 염세주의를 동반한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안정을 시켜준다고 하지만 순간적인 거짓 평안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명상으로 유도하며 뉴에이지 운동의 사상을 담은 것이라면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찾도록 되어 있는 인간이 스스로 무한한 존재라고 여기게 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영적인 모순은 충분히 정신질환을 가져을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영적인 방황과 연결되어 있고 영적인 타락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삶은 의미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을주시고 삶을살도록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의미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의미있는 삶을 절망과 회의의 구덩이로 몰아넣고 심할 경우에는 포기하도록 만드는 음악은 정말 가치 있는 것인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방황하게 만들며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음악이 정말 음악다운 음악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사라져 버릴 세상 음악들.

그런 음악들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 삶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천국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음악들을 그저 세상에 존재하는 단순한 하나의 음악으로 여기지 않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정신적으로 위안을 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소망이 없는 음악,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치있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도록 만드는 음악에 빠져있는 크리스천들도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 방황하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사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에 심취하면 당연히 정신적인 불안정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만큼 뉴에이지 음악이 가치있는 음악은 아니다. 오히려 이 음악은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음악의 노예가 되도록 만들어 버린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군사, 아름다운 자녀가 되길 원하는가 음악으로 인해 죄의 노예가 되길 원하는가?

여전히 두 갈래 길에서 방황하는 크리스천들이 많이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어떤 크리스천은 뉴에이지 음악에 반기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여긴다.

또 어떤 사람은 뉴에이지 음악의 반기독교적인 면을 부각시키므로 뉴에이지 음악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죄악이 성행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귀에 들어오지 않으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안심하는 사람들이다. 왜 죄악이라는 벌집을 들쑤셔서 더 앵앵거리게 만드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은 영혼을 썩게하는 죄악을 방치하는 사람들이다.

목회자 중에도 반뉴에이지 기독교인들이 오히려 뉴에이지 운동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다. 이미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서 곰팡이처럼 빠른 속도로 번식하고 있고 교회로 파고들어 크리스천들의 영적인 삶을 흐리게 만들고 있는데 그저 덮어두면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뉴에이지 음악을 듣다가 정신질환에 걸린 교인이 상담을 요청하면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목자는 양들의 고민을 알아야하며 영적으로 양육하는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양은 자신의 목자에게 상담하고 영적으로 치유받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해하지 못하고 반기독교적인 영적 흐름에 민감하지 못하고 덮어두려는 목회자들, 자신의 교회에는 뉴에이지가 절대로 들어을 수 없다고 방심하는 목회자들로 인해 자신의 목자가 아니라 다른 목자를 찾아 방황하며 영적인상담을하는양들이 있으니 이 얼마나안타까운 일인가?

뉴에이지 음악을 듣다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이 그러한 굴레를 벗어버리는 방법은 뉴에이지 음악을 버리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표현하자면 뉴에이지 음악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복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


영적인 부작용

서울에 사는 어느 삼십대 주부의 이야기다.

일년동안 운영하던 비디오 가게를 그만두면서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다 어느 다방에서 처음 듣는 순간 매력을 느껴 DJ에게 제목을 물어 레코드 가게에서 구입한 기타로의 실크로드를 듣게 되면서 음악에 몰입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안정되고 차분해지고 기분이 좋아져서 점점 더 듣게 되다가 나중에는 음악을 하루종일 듣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를 듣던 중에 매우 신비로운 음악을 듣게 되어 다시 그 음악의 제목을 알아내서 구입하게 되었는데 그 음악은 장 미셀자르의 랑데뷰였다.

이 두 가지 음악을 번갈아 가며 들으면서부터 음악소리가 귀에 들려야 안심이 되고 잠을 잘수가 있었다. 화장실에 가든 부엌에 가든 항상 카세트를 들고 다니면서 음악을 들었다.

항상 죽음을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죽을까, 자살하면 지옥에 갈텐데, 자살하지 않고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금식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 하는 척 하면서 굶어죽으면 설마 하나님이 버리실까?"

시간이 지날 수록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다. 술에다 우유를 타서 네 달 동안 마실 뿐이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음악을 들으면 잠이 오다가 음악이 끝나면 다시 깼다. 두달 동안 전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오로지 음악만이 자신의 삶이고 희망이었다.

그리고 이전부터 가끔씩 나타나던 영적인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편의 형상을 한 시커먼 존재가 자신의 옆에 누워있기도 했다.

영적으로 방황하면서 그 주부의 삶은 엉망이 되어갔다

그러던 중에 힘을 내서 안양에 있는 기도원에 갔지만 마치 초상집에 온 느낌이 들어 견디지 못하고 하룻만에 내려와 버렸다.

그러한 방황의 시간들을 보내다가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회복이 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말씀을 읽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신 것이다.

필자와 상담할 때 완쾌되지 않아 '뇌신' 이라는 독한 약을 복용하고 있었고 눈이 매우 붉은 상태였다. 한때는 이단에 빠질 뻔했지만 다시 나왔다고 하면서 지금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고있고 몸도 많이 회복되었다고 했다.

이 주부는 뉴에이지 음악의 네가지 단계를 차례대로 거친 경우다.

심한 우울증과 영적인 방황을 거듭하다가 다시 신앙을 회복하면서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인간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거시키려는 사단의 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계략이라고도 한다.

이 주부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 없는 인간의 삶의 결과를 잘 살펴볼 수 있다.

뉴에이지 운동의 도구로 사용되는 뉴에이지 음악에 빠져 들었다가 영적인 부작용까지 경험하게 되어 결국 멸망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갔던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은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영적인 부작용을 일으키도록 만든다.

심할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뉴에이지 음악을 통해 영적인 부작용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두통, 역겨움, 가위눌림 등을 경험한다.

대전에 사는 어느 여집사는 M방송의 아침 드라마를 볼 때마다 두통이 오고 구토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드라마는 매우 건전했지만 음악을 들으면 그런 증상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음악이 뉴에이지 음악이었다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온 송모씨가 만든 뉴에이지 음악과 조지 윈스턴의 음악등이 흘러나오는 드라마였다.

이처럼 뉴에이지 음악은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영적인 부작용을 경험하도록 만든다. 특히 말씀과 기도와 찬양의 시간을 가진 뒤에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불쾌해지고 두통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음악에 들어있는 영이 다르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뉴에이지 음악 악보를 펴놓고 연주하는 청년 대학생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단순히 음악에 불과한데 뭐 그렇게 까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걱정하느냐고 이야기 한다.

과연 그럴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교회에서 인간이 무한한 존재라는 사상으로 이루어진 뉴에이지 음악이 흐르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방민족을 점령했을 때 그 신상에 입힌 은과 금을 취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것이 너희로 하여금 올무에 걸리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신7'25)이라고 하셨던 하나님께서 교회안에서 사악한 본질의 음악이 흐르는 것을 기뻐하실까?

진멸할 물건은 손에 대지 말라(신7:26)고 순결을 명하신 하나님께서 허락 하실까?

뉴에이지 음악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분명한 영적인 목적이 있는 음악이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참평안을 얻는 대신 음악을 통해 거짓 평안을 얻도록 유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려는사악한 음악인 것이다.

그것이 진실인지 궁금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에이지 음악가들을 살펴보라. 그들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가를.

어떤 사람들은 뉴에이지 음악을 평가할 때 대중음악 평론가들의 의견만을 고려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대중음악에서 음악을 평가할때는 영적인 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인간의 영적인 삶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크리스천 평론가들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인 삶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매우 자의적이고 세속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서 오히려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바른 영적 생활을 못하도록 방해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다.

신앙안에서 영적으로 문화적인 흐름을 분별해 내는데 도움을 주지 못할 망정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평론가들이 있는 것이다. 영화를 예로 들어 보았을 때 그들은 뉴에이지 사상을 가진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나 예수가 윤회한다는 내용의 비기독교적인 영화인 '아름다운 이야기' 를 호평하면서 그것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욕설을 내뿜는다.

이같은 영적인 소경들이 얼마나 많은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눅6:39)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안타깝기만 하다.

뉴에이지 음악을 듣던 중에 영적인 부작용을 경험하게 된다면 기도하고 찬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음악을 버려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현명한 방법은 그러한 일을 당하기 전에 뉴에이지 음악을 듣지 않는 것이다.


(6) 데이비드 란쯔(David Lanz)의 '지평선에서의 불춤' (The Skyline Firedance)을 중심으로


오케스트라 편곡과 피아노 솔로로 구분되어진 이 앨범은 데이비드 란쯔가 신봉하는 뉴에이지 운동의 사상으로 가득차 있다. 그는 앞으로 십년 내에 이 지구의 모든 인간들이 엄청난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고 말하면서 이 변화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들이 오케스트라처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란쯔가 십년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천년을 십년 앞둔 시점부터 인간에게는 새로운 변혁이 일어나고 새로운 각성의 움직임이 일어난다는 뉴 에이지 운동의 이론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변화라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향한 변화이며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존재가 되어 사는 시대를 의미 한다.

이 앨범의 제목을 살펴보면 겉보기에는 일출부터 일몰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사실은 인간이 마음 속에 있는 신의 본질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앨범 중 '지평선에서의 불춤 모음' (The Skyline Firedance Suite)이라는 곡을 통해 데이비드 란쯔는 사람들이 자신이 신(God)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아각성(introspec-pion)과 신비 (mysticism)를 탄생시키는 두번째 태양이 있는 자신의 내면세계로 들어 가도록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자신이 '고귀한 검은 짐승' (noble dark beast)이라고 부르는 피아노를 사용해서 음악을 만든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란쯔가 인간의 마음 속에 신의 본질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뉴에이지 사상에 빠져있음을 잘 설명해 준다. 뉴에이지 운동에서는 인간이 내면 속에 신의 본질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은 이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수행방법(요가, 기,단,선 ,마인드 콘트롤,초월명상등)을 통해 내면에 있는 신의 본질을 발견하여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신으로 진화한다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란쯔의 앨범은 반기독교적인 내용으로 가득차 있는데 그 중 세 가지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기독교의 유일신론을 반대하고 거짓신들을 친근한 이미지로 묘사한다. 이 앨범에는 사단의 무리들인 화신과 반인반수의 판신을 마치 인간의 친구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거짓신들이 인간과 교통하며 인간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베수비오' (Vesuvius)에서는 전기기타를 사용한 하드 록 사운드를 배경으로 휘몰아치는 불길 속에서 영흔들이 집단으로 추는 춤을 느끼게 하며 불의 신이 그 춤을 주관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판의 장난' (Escapades of pan)에서는 팬 플룬의 연주로 반인반수인 판과 함께 들판을 가로지르며 즐기는 상상에 빠지게 한다.

이처럼 거짓신들을 친근하게 묘사하고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신들로 묘사를 하는데 성경은 이러한 행위를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나님은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출 20.3)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한 예로 모세가 산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여러가지 지시를 받는 동안 기다리다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며 그 주위를 춤을 추고 돌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얼마나 그 행위가 요란하였는지 마치 싸우는 소리 같을 정도로(출 32: 17) 요란법석을 떨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그 금송아지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시게 한 후 레위자손을 통해 삼천명을 도륙하도록 하시었다. (출32장) 이만큼 하나님은 하나님외에 거짓신들을 숭배하는 것을 금하셨고 구약성경을 통해 이러한 행위를 영적음란이라고 표현하실 정도였다

요즘 온갖 형태의 귀신들이 친한 친구처럼 묘사하는 뉴에이지 운동의 영화나 만화들이 범람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음란을 저지르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인간의 완전성에 대한 강한 믿음이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며(창2:7) 죄로 인해 불완전한 존재(롬 3:23)라고 말한다. 인간은 결코 무한한 존재인 신이 아니다. 그리고 내부에 신이 될 수 있는 본질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졌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으로 인해 다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나약하고 미천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뉴에이지 운동은 인간이 완전한 존재라고 하며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죽음조차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이 스스로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말은 엄청난 거짓말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은 결코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요3'16)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데이비드 란쯔는 내면세계에 들어가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아각성과 신비를 탄생시키는 두번째 태양을 보라고 유혹한다. 데이비드 란쯔는 인간의 내면에 태양이 또하나 있는데 그 존재가 바로 인간 스스로 무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우매한가?

셋째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데이비드 란쯔가 '크리스토포리의 꿈' (Christofori's Dream)이라는 앨범에서 프로콜 하룸 (Procol Harum)의 '창백한 하얀 그림자' (A White Shade of Pale)를 편곡했던 것처럼 이 앨범에서는 무디 블루스 (Moody Blues)의 '하얀 비단에 쌓인 밤' (Night in White Satin)을 편곡해서 연주한다. 이 두 곡은 모두 프로그레시브 록이다. 프로그레시브 록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기독교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없고 더구나 초현실주의적인 내용의 곡이 많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듣기 에는 좋지않은 음악장르다.더구나 피카소가 사람의 형상을 비대칭적으로 그림으로 하나님의 질서에 대항했던 것처럼 프로그레시브록도 비정상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데이비드 란쯔는 `하얀 비단에 쌓인 밤`이 사랑과 희망의 노래라고하면서 육십년대 이상주의를 나타내고 있다고 말한다. 육십년대의 이상주의는 사단의 연출아래 마약과 히피에 의해 주도되었고, 인도의 구루들과 힌두교 사상에 의해 각색된 반기독교적인 평화의 시대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주의는 지금 뉴에이지 운동가들이 기독교가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뉴에이지의 유토피아를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은 뉴에이지 음악에 왜 그렇게 큰 의미를 두느냐고 말하면서 그냥 가볍게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뉴에이지 음악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뉴에이지의 명상에 빠지게 만들며 반기독교적인 사상을 세뇌시킨다.그래서 이음악에 깊이 심취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영적인 부작용을 경험하게 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만일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서 처음에 편안함과 안식을 느낀다면 그것은 절망으로 들어가기 위한 서곡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계속해서 깊이 빠지게 되면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되살아며 염세주의와 허무를 느끼고 우울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필자는 수많은 상담을 통해 뉴에지지 음악을 통해 이러한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근심과 걱정이 있을 때 찬송가를 듣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뉴에이지 음악을 포함한 일반 대중음악들은 인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없지만 찬송가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절대적인 해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데이비드 란쯔와 같은 뉴에이지음악이나 대중음악 보다는 교회음악이 정서생활이나 정신건강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7) 뉴에이지 음악과 명상


횐 눈이 덮여있는 언덕에 크리스천과뉴에이저가 서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에 감동한 두 사람은 잠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크리스천은 무릎을 꿇고 두손을 올리며 하나님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창조의 솜씨를 찬양하기 시작했고 뉴에이저는 그 자리에 앉아서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은 채 하나님이 되려고 명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계셨다

크리스천과 뉴에이저.

알곡과 쭉정이 .

명상을 하고 있는 뉴에이저의 생각처럼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 있을까?

성경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다" (전5 : 2)고 분명하게 창조자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을 구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에이저들은 하나님이 되기 위해 지금도 명상을 하고 있다.

뉴에이저들이 명상을 하는 주된 이유는 명상이 의식의 전환을 가져다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의식의 전환이란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고정관념에서 깨어나 무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명상이 진리에서 벗어나 착각에 빠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뉴에이저들에게 필요한 의식의 전환은 인간이 하나님이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목적지를 뒤에 두고 거꾸로 달려가고만 있다.

뉴에이지의 명상은 음악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뉴에이지 음악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음악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단순한 음악으로만 알고 있다. 뉴에이지 음악이 어떤 음악인지는 지금 C여성잡지의 창간호 부록으로 나와 있는 잠재의식 메시지를 이용한 뉴에이지 음악인 '살 빼는 음악'의 작곡자 스티븐 핼펀의 글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뉴에이지 음악이란 무엇인가' 라는 아티클에서 스티븐 핼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뉴에이지 음악가들은 다른 장르와는 달리 명상, 전인치료(Holistic Health), 우주적인 각성과 같은 여러 가지 형태들을 수행하고 있다‥‥ 명상이나 요가, 자연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 자신의 음악을 작곡하는 것이다. . 많은 뉴에이지 아티스트들은 그들이 영감받는 한 방법으로 채널링 (Channeling:명상이나 요가를 통해서 갖는 악령과의 영적인 교통 필자주)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인정한다. "


이 말은 뉴에이지 음악을 작곡하는 사람들이 명상이나 채널링을 통해서 악상을 얻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뉴에이지 음악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단순히 책상이나 피아노 앞에 앉아서 떠오르는 악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명상이나 채널링이라는 반기독교적인 방법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뉴에이지 음악은 듣는 사람들을 명상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원래 초기 뉴에이지 음악가들이 뉴에이지 음악을 만든 목적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명상에 심취하고 있었던 이들은 음악을 통해서도 명상을 하고 영적인 효과를 얻을 목적으로 실험음악으로 만든 것이 바로 뉴에이지 음악이었다.

명상을 위한 도구가 바로 뉴에이지 음악인 것이다.

뉴에이저들은 명상을 할 때 뉴에이지 음악을 보조도구로 사용한다. 왜냐하면 명상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셜리 맥클레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음악을 병행하여 명상하는 방법은 내면의 조화가 외부세계의 파동을 변화 시킨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이용될 수 있다. "


뉴에이지 음악은 단순한 음악이 결코 아니다. 명상이나 채널 링이라는 영적인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뉴에이지 운동의 도구이다. 그리고 지금 크리스천들에게 접근하는 도구로서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크리스천들의 영적생활에 거부감없이 다가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하나님의 창조의 솜씨를 찬양하기 위해 만든 음악과자연속에서 명상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생각에 악상을 얻어 만든 음악은 분명한 영적인 차이가 있다. 어느 음악이 크리스천들에게 유익한 음악인가?

뉴에이지 음악에 무분별하게 빠져있는 크리스천들이 좀더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8) 뉴에이지 음악 매니아들의 반응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필자의 강의를 들은 매니아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뉴에이지 음악을 왜 그렇게 비판적으로 보느냐는 반응이고, 두번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동의하는 반응으로 나뉜다.

첫번째 반응을 보이는 매니아들은 뉴에이지 음악의 좋은 점들을 이야기 하면서 필자의 견해에 대해 강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예를 들면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며 비트가 있는 음악보다 훨씬 더 안정감을 주고, 음악적으로 보았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해서 어디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음악이며 어떤 곡은 샘플링을 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장르의 음악에도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매니아들과 이야기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첫째는 뉴에이지 운동에 대해 서 모른다는 것이다. 둘째는 다른 장르의 음악에는 가사가 문제 있는 곡들이 있지만 뉴에이지 음악은 가사가 없는 음악이므로 반기독교적인 사상이 담겨있지 알다는 것이다. 셋째는 어느 장르의 음악이든 문제가 있기 마련인데 굳이 뉴에이지 음악이라는 장르 전체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뉴에이지 음악이 뉴에이지 운동에서 나온 음악이고 도구로 사용된다고 설명을 해도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매니아들에게는 우선 뉴에이지 운동에 대해서 조사해 보라고 권면한다.

가사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는 의견은 잘못된 것이다. 음악은 영적인 것이고 가사뿐만이 아니라 음악 자체에도 사상을 담을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헤비메탈 음악 가운데 좋지 않은 음악들은 가사를 통해서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폴킹 박사의 '청소년기에 있어서 헤비메탈 음악과 마약남용'이라는 연구논문을 보면 가사뿐만이 아니라 음악자체가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수있다. 그리고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인 데이비드 란쯔는 "내 음악 속에서 말하는 메시지는 밝은 미래를 위한 것이며 이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과 함께 그것을 나누고 싶다"고 하는데 이 말은 음악 자체에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 장르 전체를 비판하는 문제는 사실 매우 조심해야할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왜냐하면 영적인 부분 보다는 뉴에이지 음악이라는 장르가좋아서 음악을 하는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 그리고 여기에서 뉴 에이지 음악의 세계적인 전문가인 스티븐 핼펀의 이야기를 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뉴에이지 음악이란 무엇인가' 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뉴에이지 음악가들로서 전문가의 위치에 있는사람들의 대부분은 명상파 홀리스틱 헬스, 우주적인 각성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

이 말은 뉴에이지 운동의 수행방법들을 하고 있다는 뜻이며 뉴에이지 음악이 왜 반기독교적인 음악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그리고 뉴에이지 음악이라는 장르 그 자체가 영적인 시각에서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뉴에이지 음악이 어떤 목적을 담고 있는가를 살펴보아도 충분히 나타난다. 뉴에이지 음악을 만들어낸 초기 음악가들은 뉴에이지 운동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실제로 명상이나 요가를 수행하고 있었고 이것들을 통해서 얻는 영적인 효과들을 음악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실험음악으로 만든 것이 바로 뉴에이지 음악이다. 이렇게 뉴 에이지 운동의 수행방법들을 통해서 음악을 만드는 방법은 지금까지 뉴에이지 음악을 만드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므로 뉴에이지 음악은 뉴에이지 운동이 가지고 있는 목적과 동일한 목적을 담고있다.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필자의 강의를 듣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는 매니아들은 대부분 뉴에이지 음악의 많은 장르들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 일렉트릭 음악을 집중적으로 듣는 한 형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CD들을 모두 필자에게 주면서 좀더 연구해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었고 어떤 형제는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신비한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하루 24시간 내내 뉴에이지 음악에 심취해 있던 한 주부는 그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영적으로 방황했었는지를 말하면서 역시 자신이 듣던 테이프들을 필자에게 주기도 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뉴에이지 음악을 듣다가 이상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은 음악 때문이 아니라 그사람 자체에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생각은 잘못이다 그 누구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사람들도 음악을 통해 여러 가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고 실제로 이러한 사례나 연구결과들은 외국에서 종종 발표되기도 한다

지금 뉴에이지 음악은 랩이나 레게음악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매니아들이 늘고있다. 그 가운데 크리스천 매니아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성서적이어야 하듯이 뉴에이지 음악도 매니아의 관점이 아니라 성서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9) 뉴에이지 음악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진금 한국교회에는 뉴에이지지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곳곳에서 뉴에이지 운동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사역자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이같은 사역을 하는데 있어 몇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어서 오히려 기독교 문화사역에 혼란을 초래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 문제점을 살펴보면 첫째는 뉴 에이지 운동에 대한 연구와 이해의 부족이다 둘째는 뉴에이지 운동에 대한 자료의 부족에 따라 추측을 하거나 신빙성이 없는 자료에 의존하는 것이다. 셋째는 뉴에이지 운동이 아닌 것을 뉴에이지 운동인 것처럼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넷째는 뉴에이지 운동을 강의하면서 모든 문화는 기독교인이 배척해야 하는 것으로 강의하는 것이다. 이른바 반문화운동을 주장하는 경우인데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뉴에이지 운동을 연구하고 비판하는 것이 절대로 반문화 운동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일각에서는 뉴에이지 운동에 대해 강의하는 사역자들을 모두 반문화운동가들로 몰아서 비판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뉴에이지 운동을 상의하는 사역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고 그로인해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을 발생시키는 분야가 바로 뉴에이지 음악이다. 왜냐하면 우선 음악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어야하고 그에 따른 전문자료들이 있어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매니아들의 질문에 대해 제대로 대답을 못하거나 엉뚱한 대답을 해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뉴에이지 음악을 연구하려면 우선 반드시 성서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만일 단순히 매니아의 입장에서 연구한다면 뉴에이지음악의 실체를 파악하기가 몹시 힘들다.예를 들어 지금 대중음악계에 서는 뉴에이지 음악을 단순히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음악`이니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음악`이라는 식의 개념으로 정의하고 잇는데. 만일 매니아의 관점에서 음악을 연구한다면 이러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성서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음악이 세상이 주는 거짓평안(요14:27)을 체험하도록 만들며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이교적이 영성(신18:9-14)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뉴에이지음악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주의해야할 점은 어떻게 구분하느냐 하는 점이다. 뉴에이지 음악이 아닌 것을 마치 그런것처럼 구분하거나 잘못 분류하는 사역자들이 많은데 이러한 점은 오히려 매니아의 비판만 일어나도록 만든다.

예를 들어 존덴버의 음악을 살펴 보자. 뉴에이지 운동을 강의하는 사역자들 중에는 존 덴버의 음악을 뉴에이지 음악이라고 강의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존 덴버의 음악은 음악장르로 보면 뉴에이지 음악이 아니라 컨츄리 음악에 속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존 덴버가 뉴에이저이고 그의 노래 속에는 뉴에이지 사상이 담겨있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존 덴버의 음악을 어떻게 구분하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이러한 혼동을 피하기 위해 존 덴버의 음악을 '뉴에이지 송'으로 분류한다. 뉴에이지 송이란 뉴에이지 음악 외에 다른 장르들, 예를 들면 컨츄리, 록, 헤비메탈, 레게, 랩 음악 등과 같은 장르의 음악 가운데 뉴에이지 사상으로 만들어진 음악을 말한다. 이렇게 분류해야 하는 이유는 뉴에이지 운동이 뉴에이지 음악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사용해 뉴에이지 사상을 전하기 때문이다. 비틀즈와 산타나와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는 록음악을, 스티브 바이는 헤비메탈을, 존 덴버는 컨츄리 음악을, 조지아 켈리는 클래식 음악을 에이스 오브 베이스는 레게 음악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뉴에이저들이 음악을 사용할 때 무조건 뉴에이지 음악으로 보지 말고 잘 구분해야 할 것이다.

사역자들이 뉴에이지 음악을 구분하는데 있어서 또 한가지 주의해야할 점은 자연의 소리를 담은 모든 음악앨범이 뉴에이지 음악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은 자연의 소리를 음악 속에 집어넣어 사용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는 모든 음악을 뉴에이지 음악으로 분류해서는 안된다 폴 혼과 같은 뉴에이지 음악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이 방법은 뉴에이지 음악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방법도 아니고 클래식 음악이나 경음악에서도 사용되고 있고 앞으로 더욱 더 많이 사용될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므로 자연의 소리를 담은 음악을 분류할 때는 작곡자, 연주자, 레이블 그리고 음악 장르를 잘 살펴 보아야만 할 것이다. 필자는 교회 음악에서도 자연의 소리를 잘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찬송가 40장이나 78장을 연주할 때 아름다운 새소리나 물소리를 가미한다면 더욱 더 아름다운 음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뉴에이지 음악을 구분하는 방법들이 많이 있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적인 분별력을 요청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 진리의 영과 미흑의 영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듯이(요일4.1-6) 뉴에이지 음악을 보다 정확히 영적인 눈으로 구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10)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오해


필자가 제주도에서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강의를 할 때의 일이다.

강의에 참석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간지 J일보의 K기자가 있었다.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K기자는 나름대로 어떤 위기 의식을 느꼈는지 다음날 신문에 '뉴에이지 음악, 청소년들의 영혼 오염시킨다' 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그날 오후, 신문이 배포되자 마자 신문사로 항의전화가 빗발같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수많은 항의 전화를 견디지 못한 기자는 당황한 나머지 필자를 찾아왔다. 청소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음악에 대한 정보를 주려고 그 글을 썼는데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고 실망하는 K기자를 위로하면서 필자는 그 기자를 통해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위험성을 제주도민들에게 알리신 하나님의 계획을 느낄 수 있었다.

K기자에게 걸려왔던 항의전화 가운데 대부분은 뉴에이지 음악을 청소년들이 들을 수 있는 건전한 음악으로 추천해야 할 기자가 오히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건전한 음악을 매도한다는 내용이었다.

뉴에이지 음악은 지금 일반적으로 다른 장르의 음악보다 매우 건전한 음악으로 인식되어 있는데 이러한 점은 크리스천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강의를 들은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전혀 예상 밖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저 부담없이 들으면서 사색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음악인 줄로만 알았는데 반기독교적인 음악이고 뉴에이지 운동의 도구로 사용되는 음악인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이 다른 대중음악 장르에 비해 건전하고 좋은 음악으로 추천되고 있는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주제들을 전혀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뉴에이지 음악에서는 록이나 헤비메탈, 랩 음악 등에서 나타나는 반사회적인 주제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둘째는 비트가 강하지 않은 음악이라는 점이다. 뉴 에이지 음악에서 비트는 아무 의미가 없다. 가끔씩 약한 비트들이 들어 있지만 오히려 비트를 배제한 음악이라는 표현이 더 나을 정도로 부드러운 음악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트가 강한 음악, 특히 요즘 유행 하는 전자기기를 이용한 강한 비트를 사용하는 랩음악이나 댄스음악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준다. 셋째는 기성세대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음악문화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뉴에이지 음악을 연주하는 곳에서는 청소년들의 비명소리가 없다. 플래카드를 흔들면서 심하면 졸도까지 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연주하는 사람들의 의상도 매우 단순하고 자연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이상한 옷차림을 입도록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게 음악을 즐기면서 깊은 사색에 빠지도록 만든다 넷째는 자연회귀사상을 담은 노래라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데 현대문명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자연의 포근함을 안겨주어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을 찾도록 해준다는 점과 자연보호운동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이렇게 놓고보면 뉴에이지 음악은 전혀 이상이 없는 음악인 것처럼 여겨진다. 적어도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뉴에이지 음악의 건전하고 자연스러운 모습 뒤에 감추어져 있는 영적인 본질을 크리스천들은 볼 수 있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의 경우를 한번 살펴보자. 첫번쌔의 경우에 있어서 비록 비윤리적이거나 비도덕적인 주제들을 다루지는 않지만 반성경적인 내용을 다룬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음란이나 폭력을 주제로 하지 않는다고 다 좋은 음악은 아니다. 뉴에이지 음악은 이러한 주제들 대신에 반기독교적인 영적 주제들을 다룬다. 지난호에서 다루었듯이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방법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음악이 바로 뉴에이지 음악인 것이다. 두번째로 비트가 강하지 않다는 점도 살펴보자. 이러한 점은 듣는 사람들을 명상으로 유도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인간이 신이라는 의식의 전환을 위한 명상에 빠지도록 만들고 허무주의나 우울증에 빠지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세번째의 경우는 비록 문제가 되는 음악들보다는 건전한 음악문화를 형성하는 것 같지만 육체적인 타락으로 나타나는 시각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음악들 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인 타락으로 빠지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음악이 더 위험한 음악인 것이다. 네번째로 뉴에이지 음악이 다루는 자연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이 아니라 범신론이 바탕이 된 자연이라는 점이다. 자연으로의 회귀는 인간이 신적 본질을 찾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 어느 곡에서도 자연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이 되려는 교만한 인간의 욕심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천들은 영적인 분별력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17)조지 윈스턴, 12월, 그리고 자연주의의 함정


뉴에이지 음악 앨범 가운데 겨울이면 특히 많이 찾게 되는 것이 바로 조지 윈스턴의 '12월' (December)이다.

순백색의 바탕 위에 몇 그루의 나무와 눈 덮인 들판이 있는자켓은 그 하나만으로도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려 삭막하게 사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충분히 자극시킨다.

일반적으로 뉴에이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뉴에이지 음악이 자연을 아름답게 그린다는 점이다 록이나 메탈처럼 요란하지도 않으며 재즈처럼 난해하지도 않고, 가장 단순하면서도 부드럽게 자연을 묘사한다고 말한다.

뉴에이지 음악이 대중음악계에서 급속도로 그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월리엄 액커먼(William Ackerman)에 의해 1976년에 설립되었고 뉴에이지 음악을 전세계에 보급하는 레이블인 윈댐 힐(Windham Hill)의 기본 정책은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다 국내에서 윈댐 힐 레이블의 뉴에이지 음악을 전문적으로 발매하는 S사에서 나온 앨범 소개지를 보면 "복잡 미묘하고 개인적 사고로 가득 찬 현대 사회의 거칠은 감성을 '자연으로 돌아가자' 는 포괄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뉴에이지 음악'이라고 소개한다. 윈댐 힐 뿐이 아니라 나라다(Narada)나 글로벌 패시픽(Golbal Pacitic) 등의 거의 모든 뉴에이지 레이블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자연과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 순수음악이라는 이름으로 뉴에이지 음악을 만드는 대중음악인들의 대부분이 바로 이런 자연주의에 매료되어 앨범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뉴에이지 음악에 담긴 자연주의에 대한 메시지가 어떤 의미를 가지 있는지 알아야 한다.

뉴에이지 음악의 자연주의는 반기독교적인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 여러 번 강조했던 것처럼 뉴에이지 음악은 뉴에이지 운동의 사상을 담고 있다. 뉴에이지 운동에서의 자연은 범신론에 기초한 신(神)의 일부분이다.

자연과의 영적인 교감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에 존재한 신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마이클 존스(Michael Jones)가 'After the Rain' 을 만들 때 자연을 묘사하는 어느 뉴에이지 여성댄서의 춤을 보고 영감을 얻었던 이유도 조지 윈스턴이 '12월'(December)이나 '가을' (Autumn) 등 사계를 시리즈로 해서 앨범을 만들었던 이유도 모든 뉴에이지 운동에서 말하는 '신의 일부분인 자연' 과의 조화를 통해 인간 모두가 자신이 신임을 자각하도록 돕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을 단순히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더구나 자연을 묘사한다고 해서 친근감을 갖는 것도 위험하다. 자연은 신의 일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의 에너지를 얻어 신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자연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며 우리에게 잘 다스리라고 주신 선물이다. (창1.26)

우리가 자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으며(창1:1-25),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자연을 잘 다스리라고 명령하신 말씀(창1 :28)을 따라 잘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자연의 오묘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섬세하고 무한한 능력을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존재도 깨달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숲 속에 들어갔을 때 우리의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은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 때문이지 신의 일부분인 자연 속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받기 때문은 절대로 아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 눈으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은 우리의 육체와 마음을 밝게 하고, 하나님의 아름답고 우아한 창조의 손길을 느끼며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찬양할 때 우리의 영혼에 기쁨과 참 평안이 넘치게 되는 것이다.

만일 뉴에이지 음악이 자연을 그린다는 이유로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며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선물한다면 "네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호4:6)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음악 속에 들어 있는 반기독교적인 영적 의미를 다시 한번 조사해 보아야 할 것이다.


(12) 리믹스(remix)와 샘플링(sampling) 그리고 뉴에이지 음악


70년 대 말에 DJ들이 보다 화려하고 펑키한 리듬을 만들려고 레코드 판을 손으로 조작해 이상한 소리들을 내던 것을 기점으로 하여 리믹스 기술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리믹스란 음항변조기계나 특수녹음등을 통해서 기존의 곡들을 변형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예를 들면 서태지와 아이들의 란 알아요라는 앨범에서 '록큰롤 댄스'라는 곡은 AC/DC(Anti Christ De-vil's Children, 적그리스도 악마의 자식들)의 'Back in Back'을 리믹스 시킨 곡이다. 또 기현우의 '홍도야 울지 마라 1991'은 트롯인 '흥도야 울지 마라'를 리믹스시켰다. 이 두 곡은 기존의 곡들과는 전 혀 다른 분위기의 곡이다.

샘플링이란 리믹스의 한 방법이지만 기계적인 소리가 아니라 실제 소리를 녹음해서 합성하거나 다른 작품들에서 몇 부분을 인용하는 방법이다. 요즘 한참 문제가 되고 있는 마이클 크래두의 '이니그마'(ENIGMA)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앨범을 자세히 살펴보면 독창적인 면은 발견할 수가 없고 여러 작품들을 짜집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퀴 드사드의 문귀를 발췌해서 쓴다든가 그레고리안 성가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 '믿음의 강들' (The Rivers of the belief)에서는 요한계시록 8장 1절을 인용하면서 "어린 양이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고요하더니"(원문은 일곱 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 쯤 고요하더니)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이 작자가 어떠냐?" (How about this guy)라고 빈정거리면서 묻는데 여기서 일곱째 인을 떼는 어린 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마이클 크래두의 이 앨범은 사실 기법을 사용한 곡 중에서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적절하게 나열해서 음악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전체적으로 신비스럽고 묘한 여운을 마음 속에 자리잡도록 의도적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비록 샘플링 기법을 잘 사용한 곡이지만 이 곡의 의도가 기독교의 성윤리를 비판하면서 마퀴 드 사드의 글을 인용해서 자유로운 성윤리를 갖도록 주장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자의 신음소리와 인위적으로 기계를 조작해서 만든 블랙 댄스리듬, 그리고 마퀴 드 사드의 글을 음란한 목소리로 인용하는 여자의 목소리는 마이클 크래두의 인터뷰를 보지 않더라고 그의 의도를 충분히 짐작하게 만든다. (지금 이 앨범은 마퀴드 사드의 글을 함부로 인용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걸려 있다. )

국내의 대중가요 중에서 샘플링 기법을사용한 곡으로는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사랑'을 들 수 있다. 이 곡은 도입부에서 베토벤의 Ich Liebe Dich의 첫 소절을 리믹스시켰다. 오히려 이 곡은마이클 크래두의 이니그마와는 정 반대로 건전한 방향으로 샘플링 기법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리믹스와 샘플링은 대중 음악계에서 하나의 혁명이라고까지 표현된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혁명 적인 기술은 여 러 가지 면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어떤 작품이든 함부로 인용해서 자신의 흥미와 취향에 맞게 변질시키는 것이라든지 순수한 음악을 기계를 이용한 인위적인 소리들로 변형해서 듣는 사람들을 자극시켜 이상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그 예다

독일의 테크노그룹 소프트웨어(SoftWare)의 앨범인 '은은한 열기' (Modesty Blaze)처럼 온갖 음란한 소리와 말들을 혼합하는 등의 문제점들이 있다 그러나 보다 영적으로 심각한 문제점은 이러한 기법들이 주로 뉴에이지 음악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은 초기에 순수 어쿠스틱 악기들을 이용했던 것과는 달리 전자악기와 기기들의 발전으로 보다 다양한사운드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기타로(Kiraro)의 앨범 '기' (氣)나 실크로드 중의 `둔황'처럼 무겁고 신비한 사운드를 이용해서 환각을 경험하게 만들고 심하면 정신병에 걸리도록 만드는가 하면 장 미셀 자르(Jean Michel Jarre)의 '랑데뷰' (Rendez-Voub)처럼 우주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신비주의적인 요소들을 가미시키고 있다.

뉴에이지 음악의 이러한 흐름은 최근에 가볍고 부드러운 것들보다 점차 무겁고 신비주의적인 사운드가 인기있음을 잘 나타내 보여준다. 또, 이러한 현상은 점차 뉴에이지 음악에 심취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새소리나 바람소리 , 벌레 울음소리 등은 신디사이저의 신비적인 사운드와 함께 리믹스되어 안락의자나 침대에 누워 오랜 시간동안 뉴에이지 음악을 듣는 것에 몰두하도록 만들고 있다.

김00의 명상음악 시리즈는 윤00 교수가 채취한 자연음을 이용해 '간에 좋은 음악' , '방광에 좋은 음악' , '위장에 좋은 음악' 등 건강에 좋다는 표제를 달아 만들어졌는데 자연 소리와 신디사이저 소리가 묘하게 리믹스 되어 있다.

이것은 데니스 앤드류(Dennis Andrew)의 요일마다 구분하여 듣는 명상음악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조지 윈스턴의 '12월'처럼 표면상으로 가볍고 투명한 색채를 지녀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인기가 있으나 실제로는 깊은 명상의 과정에서 뉴에이지 사상으로 이루어지고 채색된 깊이 있는 음악과는 달리, 무겁고 신비주의적인 요소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폴 윈터 (Paul Winter)는 그랜드 캐년에 가서 동물들의 소리와 자연의 소리들을 녹음해서 리믹스시키는가 하면 앞에서 언급한 마이클 크래두나 소프트 웨어처럼 테크노 뉴에이지 음악들도 리믹스와 샘플링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지금 뉴에이지 음악가들은 전자기기 등으로 갖가지 소리들을 리믹스시키고 마퀴 드 사드의 비윤리적인 작품들을 인용하거나 성경구절들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 또한 명상을 통해 유체이탈(영흔이 육체와 분리되는 현상)을 해서 우주를 여행하는 것처럼 만들기 위해 신비적이고 괴기한 소리들로 우주적인 사운드를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요가나자연과의 대화 그리고 명상을 통해 얻는 느낌들을 배가시킬 수 있으며 그 음악을 듣는 사람 역시 제작자와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는 스티븐 핼펀(Steven Halpern)의 말처럼 작곡자가 의도한 대로 청취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리믹스와 샘플링 기술은 그것이 시작된 이후로 건전한 방향보다는 오히려 음악의 장르를 무너뜨리고, 원래의 작품을 변질시키며 다른 창작품(클래식이나 문화작품 그리고 교회음악 등)을 함부로 인용해서 비윤리적인 작품에 사용하는 등 좋지 못한 방향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로 해악성이 많은 뉴에이지 음악에 폭넓은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2. 뉴에이지 송(New Age Song)


(1) 뉴에이지 송의 개념


대중음악에는 여러 장르가 있다. 록, 고고, 랩, 테크노, 헤비메탈,레게, 프로그레시브 록, 뉴에이지 음악 등등 그 중에서 뉴에이지 음악은 이미 뉴에이지 운동의 도구로 사용되는 음악이라고 설명을 했다 그런데 뉴에이지 운동에서 사용되는 음악은 뉴에이지 음악만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인도뿌나에 있는 오쇼 라즈니쉬의 아슈람에서는 기본적으로 뉴에이지 음악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뉴에이지 음악 외의 다른 음악장르들을 사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60년대부터 지금까지 발표된 음악 가운데에는 뉴에이지 음악을 제외한 다른 음악장르들 가운데 뉴에이지 사상으로 이루어진 곡들이 많이 있는데 이러한 곡들은 장르 구별에 있어서 특별한 분류법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조지 해리슨의 '나의 사랑하는 주님' (My Sweet Lord)은 힌두교의 대표적인 신인 크리쉬나와 라마 신을 찬양하는 노래인데 대중음악에서는 단순하게 록 음악으로 분류가 된다. 그러나 이 곡은 분명하게 뉴에이지 사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크리스천들에게 는 특별히 따로 분류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 외에 다른 장르의 음악에서 나타나는 뉴에이지 사상으로 이루어진 음악들에 대한 분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는 이런 음악들을 '뉴에이지 송' (New Age Song)으로 분류하고 있다.

선거기간 동안에 특정후보에 대해서 유권자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로고송이나 특별한 제품을 선전하고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CM송처럼 뉴에이지 사상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악들이기에 뉴에이지송으로 분류한 것이다.


(2) 뉴에이지 송의 분류


뉴에이지 송은 다시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뉴에이지 록, 뉴에이지 프로그레시브, 뉴에이지 랩, 테크노 뉴에이지, 뉴에이지 재즈 등등

지금 대중음악인들 가운데 뉴에이지에 물들어 가면서 뉴에이지 사상을 담은 음악을 발표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이들은 하나의 음악 장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음악 장르에서 나타난다.

존 덴버의 음악 같은 경우는 컨츄리 송이지만 그가 부른 노래 중에 뉴에이지 사상을 담은 곡은 뉴에이지 컨츄리로 분류할 수가 있는 것이다.

뉴에이지 송을 분류함에 있어서 뉴에이지 음악과의 차이점은 가사의 유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뉴에이지 음악은 가사가 없다. 조지 윈스턴의 음악이든 데이비드 란쯔의 음악이든지 악기로만 연주할 뿐 가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뉴에이지 송은 메탈 발라드를 제외하고는 가사가 있다. 뉴 에이지 사상을 담은 가사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러한 곡들은 기독교의 복음성가들과 비교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면 아난다 마가에서 나온 '내 마음의 문들' (The Doors of My Heart)이라는 음악은 뉴에이지의 신들을 찬양하거나 뉴에이지 사상을 전하는 가사들로 되어 있는데 이런 곡들은 복음성가들이 기독교인의 모임이나 특별한 집회에서 불려지듯이 뉴에이지들의 특별 캠프나 모임 등에서 불려진다.

이처럼 기독교의 복음성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곡들 외에도 대중음악의 하나로 만들어지고 연주되는 곡들도 많이 있는데 이런 곡들은 연주자나 작곡자가 뉴에이저일 경우가 많다.


(3) 우주적인 영가(Cosmic Chants)


'우주적인 영가' 란 파라나한사 요가난다(Paranahansa Yogananda)를 추종하는 요가단체인 'Self-Realization Fellow-ship' 에서 만든 악보 집의 이름이다. 이 악보집에는 모두 60곡이 실려 있는데 모두 뉴에이지 사상을 담은 곡들이다. '신과의 교제를 위해 영적으로 정화시키는 곡' (Spirtualized Songs for Divine Communion)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곡들은 기독교의 복음성가와 같은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진 곡들이다.

이 책의 서언에서 파라나한사 요가 난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운드와 진동은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은 신의 예술로서 기쁨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신임을 깨닫는 자각의 길을 위해서 사용되어졌다. 헌신된 노래들로 부터 나온 진동들은 우주적인 진동이나 말씀들과 동조되도록 이끌어준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요한 복음 1 1"


요가 난다는 성경의 말씀을 사용하여 뉴에이지 이론을 합리화시킨다. 사운드와 음의 진동이 인간으로 하여금 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도움을 주며 특히 헌신되고 영감받은 노래들이 잘 유도하여 준다고 하면서 요한 복음 1장 1절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노래들은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서 불러야 하는데 되풀이하여 부르면 축적된 힘을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마음의 라디오를 통해 놀라운 축복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노래를 통해서 자신이 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축복을 얻게 된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이들은 음악에 어떤 가치를 두고 있는가? 물론 자신이 신이라고 깨닫는 하나의 도구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4) 뉴에이지 송의 용도


'우주적인 영가'와 마찬가지로 뉴에이지 운동에서 사용하는 뉴에이지 송들은 신이 되기 위해 행하는 여러 가지 수행 방법이나 뉴에이저들 간의 독특한 대중문화를 위해 사용되며 일반 대중들에게 부담감 없이 다가가는 하나의 도구로 사용된다.

오쇼 라즈니쉬 명상센터에서 나온 뉴에이지 송들은 명상을 하거나 음악을 듣고 즐길 때 사용되는 음악들이고 아난다 마가에서 나온 곡들은 교회의 복음성가와 같은 역할을 하며 스티브 바이의 음악들은 일반 대중들에게 뉴에이지 사상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곡들이다.

뉴에이지 송들은 우선 대중들이 쉽게 선호하거나 접할 수 있는 음악장르로 만들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뉴에이지 사상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은 부담 없이 뉴에이지 송을 듣게 된다 예를 들어 조지 해리슨의 '나의 사랑하는 주님'과 같은 곡들은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전도를 받아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히피들이 종종 들었던 곡이었다. 스티브 바이의 곡들은 메탈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대할 수 있는 음악이다.

이런 식으로 갖가지 대중음악의 장르들로 이루어진 뉴에이지 송들은 음악 매니아들에게 뉴에이지 사상을 음악을 통해서 쉽게 전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뉴에이지 송을 만들고 연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에 있어서는 전문가들로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지명도가 있는 음악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아는 대중들이 그 명성만으로 음악을 선택해서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뉴에이지 송은 이러한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쉽게 뉴에이지 사상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5) 뉴에이지 송을 부르는 뮤지션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비틀즈의 멤버로서 대표적인 뉴에이저이다 비틀즈의 멤버들이 뉴 에이지 사상을 가지도록 유도한 인물이며 지금도 뉴에이지 사상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표적인 뉴에이저이다. 육십팔년 초에 비틀즈가 인도로 건너가 마헤쉬 요기에게 TM.을 배우기 전부터 뉴에이지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비틀즈의 앨범인 '페퍼상사의 고독씨 클럽 밴드'에서 B면의 첫곡인 Within You Without You를 만들었는데 이 곡 역시 뉴에이지 사상을 담은 곡이다. "당신이 자신을 초월하여 볼 때 그 곳에 기다리고 있는 마음속의 평안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될 때 그 시간이 올 겁니다'라고 노래한다.

'나의 사랑하는 주님' (My Sweet Lord)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인도의 힌두교 신들을 찬양하는 대표적인 뉴에이지 송이다. "나의 사랑하는 주님 주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느끼기를 원합니다. 크리쉬나신을 찬양합니다. 라마 신을 찬양합니다. "라는 내용으로 된 이 곡은 지금도 국내에서 나이 사십 이상 된 기성세대들이 즐겨 듣는 곡 중의 하나이다.

어떤 평론가는 조지 해리슨을 "신과 자아라는 커다란 두 줄기를 가지고 우주나 자연에까지 그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데 신이라는 절대자 아래서 자아와 진리를 찾으려는 내용을 가사 속에" 담는 음악인이라 평한다. 이렇게 평한 것은 한마디로 하면 뉴에이저란 뜻이다. 죠지 해리슨은 그의 음악세계를 뉴에이지 사상으로 꾸미고 있는 대표적인 뉴에이저인 것이다.


스티브 바이 (Steve Vai)

메탈 그룹인 White Snake의 멤버였던 스티브바이는 세계적인 기타리스트이다. 일반인들이 6현짜리 기타를 사용하는 반면 스티브의 바이는 7현짜리 기타를 사용한다. 그의 앨범은 지금 국내에 두장이 발매되어 있는데 '열정과 전쟁' (Passion and Warfare), '섹스와 종교 (Sex & Religion)가 바로 그것이다. 열정과 전쟁은 스티브 바이가 뉴에이지 사상을 가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앨범이다.

그는 인사말에서 "나는 나에게 위임하고 나를 통해서 사역하고 있는 우주의 힘에게 특별한 감사를 보낸다"라고 말한다. 앨범 표지를 보면 지옥불 가운데 스 티브 바이가 서 있고 그 옆에는 사단주의와 연관이 있는 마크들이 있으며 머리 위에 뉴에이지 상징인 피라미드 속에 호루스의 눈이 그려져 있고 양쪽 기둥에는 해골과 태극마크가 그려진 깃발이 꽃혀있다.

이 앨범에는 모두 14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일곱번째 곡인 'For The Love of God' 을 설명한 글을 보면 "종교도 없고 실재나 실재의 결핍도 없으며 시작도 끝도 없다. 너와 나도 없으며 오로지 모든 것이 있을 뿐이다 단지 하나의 것이 모든 것인데 그것은 신성 그 자체일 뿐이다"라고 써있다. 이 말은 범신론을 표현한글로서 스티브 바이가 연주하는 일곱번째 곡이 뉴에이지 운동에서 숭배하는 신의 사랑에 대한 곡임을 알 수 있다. 스티브 바이가 걸고 다니는 목걸이는 주술의 상징인 육각형별이며 기타의 플랫 판 사이에는 피라미드가 그려져 있다.

'섹스와 종교'라는 앨범에서 스티브 바이는 일반 대중들에게 섹스 와 종교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외치면서 특별히 테마곡인 '섹스와 종교' (Sex & Religion)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비웃고 있다.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

이 그룹은 육십년대 최고의 스튜디오 엔지니어인 알란 파슨스(Alan Parsons)가 만든 프로젝트 그룹이다 칠십육년 오월에 에드가 앨런 포우의 괴기소설을 주제로한 'Tales of History & Imagination'을 발표하기도 했었고, 팔십이년에는 비틀즈의 스튜디오인 애비로드 (Abbey Road)에서 녹음한 '하늘의 눈' (Eye in the Sky)을 발표하였다. 하늘의 눈이라는 앨범은 뉴에이지 운동의 대표적인 상징인 호루스의 눈을 의미하는 것으로 앨범 표지 그림에도 이 마크가 그려져 있다.

하늘의 눈이라는 곡은 "나는 하늘의 눈, 너를 주시하고 있지 나는 네 마음을 읽을 수 있어 내가 바로 바보들과 사귀는데 필요한 규칙들을 만들었지 나는 너를 속여서 눈이 멀게 할 수토 있어"라는 가사로 되어있으며 전체적으로 호루스의 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하늘의 눈' (Eye inthe Sky) 앨범에 들어있는곡의 제목들을 보면 '달의 자녀들' (Children of the Moon), '제미니'(Gemini, 쌍둥이 좌), '침묵과 나' (Silence & I)등 뉴에이지적인 곡들로 되어 있다

이 그룹이 만든 앨범 가운데 '피라미드' 는 표지 그림에 유체이탈을 경험하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가사 내용도 피라미드의 파워를 경험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내 머리 속에 피라미드가 하나 있고,

내 침대 밑에 또 하나가 있어요

내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피라미드의 힘과 자그마한 행운이랍니다

어딘가에서 읽은적이 있죠. 거짓말이 아니에요

당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피라미드의 도움이죠"


알란 파슨스는 비틀즈의 'Abbey Road' 앨범(힌두교에서 죽은 시체를 상징하는 맨발로 횡단보도를 걷고 있는 비틀즈의 모습이 앨범 표지그림으로 되어있다)의 레코딩에도 참가했었고 핑크 플로이드의 전설적인 앨범인 'Dark Side of the Moon'을 제작해서 그래미상 녹음부분 후보에까지 오르기도 한 스튜디오 엔지니어이다. 알란 파슨스가 어떤 생각으로 뉴에이지 사상을 담은 앨범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육십년대부터 미국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뉴에이지적인 흐름에 영향을 받았던지 고대 이집트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는 있다. 다만 성병에 걸린 두 여자의 얼굴을 표지그림으로 한 '이브' (Eve)라는 앨범을 만들고 '피라미드'(Pyramid)라는 앨범을 만드는 등 뉴에이지적인 앨범을 만드는 것을 보아서는 앨범을 만들기 위해 뉴에이지 사상을 도용한 것이 아니라 뉴에이지 사상을 나타내기 위해 앨범을 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

칠십년대에 모두 흑인들로 구성된 밴드로 리듬앤 블루스와 재즈를 융합한 음악을 연주하는 그룹이다 세 장의 CD로 구성되어 있는 콜렉션 앨범 이 출반되었는데 표지그림은 피라미드 속에 호루스의 눈이 있고 여신이 두 손 사이에 불 을 들고 있는데 그 옆으로 앵크십자가가 그려져 있다.

앨범 속에 포함된 곡은 제목들을 보면 '태양 여신' (Sun Goddess) , '전지 전능한' (Mighty Mighty) , '영혼' (Spirit) , '파워' (Power) '악' (Evil) 등 뉴에이지적인 곡들이 들어있다 앨범제목도 '영원한 춤' (Eternal Dance)으로 뉴에이지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고대 이집트사상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이 그룹은 여러 가지 면에서 뉴에이지 운동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 스스로 뉴에이지라고 밝히지는 않았기 때문에 분명하게 뉴에이저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뉴에이지 사상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은 이들의 앨범을 수집하거나 선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비틀즈(Beatles)

이 그룹은 이미 뉴에이지 음악의 역사적인 배경에서 설명하였다 그러나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대중음악 역사상 이들만큼 확실하게 뉴 에이지 송을 만든 그룹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했으며 뉴에이지 사상을 공공연하게 주장하였다. 사단 주의와 연관이 있음은 그들이 앨범 표지 그림(Ye11ow Submarin)에서 사단을 사랑한다는 손가락 표시를 하였다)에서도 나타나지만 공적인 활동에 있어서도 뉴에이지적인 행동들을 하였다. 특히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은 그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비틀즈의 앨범 가운데 '페퍼상사의 고독씨 클럽 밴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보면 표지 그림에 18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사단주의자인 앨리스터 크로울리(Aleaster Crowley)의 모습이 보인다. 후에 이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들을 넣었다고 말했는데 사단주의자를 존경한다는 것은 이들이 사단주의와 연관이 있음을 말해준다 표지 그림에는 이외에도 뉴에이지 심리학자인 칼 융(Carl Jung)과 다섯 명의 구루(guru)의 모습이 들어있다.

이 앨범 가운데 조지 해리슨이 만든 '그대의 안과 밖에' (Within You Without You)라는 곡은 시타르, 탬부라, 딜루바등 인도악기들을 연주해 만든 뉴에이지 곡이라는 사실을 앞에서 밝힌바 있다

에이스 오브 베이스(Ace of Base) 제2의 아바(ABBA)라고 불리우는 스웨덴 출신의 혼성 사인조 그룹인 에이스 오브 베이스는 데뷔앨범인 'Happy Nation'(미국에서는 The Sign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됨)을 발표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신생그룹이다. 천구백구십오년 미국의 아메리칸 뮤직상에서 두 개 부문의 후보로 올라 그 중 한 개의 상 (팝/록 밴드 듀오 그룹상)을 받은 실력있는 그룹이다. 그리고 국내에서 이들의 앨범이 무려 팔십 만장이나 팔릴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그룹에 문제가 있다. 이들이 구체적으로 뉴에이지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이들의 곡을 살펴보면 뉴에이지적인 사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이들의 곡 가운데 문제가 있는 곡은 바로 '더 사인' (The Sign)이라는 곡이다. 이 곡은 뉴에이지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앵크 (Ankh)십자가를 찬양하는 곡이다. 구체적으로 가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어요

당신은 날 알아보지 못할 거예요

난 기뻐요 왜 내가 당신에게 관심을 가졌을까요

내가 왜 그랬을까요

당신은 내 사람이 아닌데

나는 사인을 보았는데 그것이 내 눈을 뜨게 했어요

나는 사인을 보았어요‥‥

나는 사인을 보았는데 그것이 내 눈을 뜨게 했어요

난 지금 행복하답니다

당신이 없는 지금 나는 사인을 보았는데

그것이 내 눈을 뜨게 했어요"


여기서 말하는 사인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이들이 만든 뮤직 비디오를 보면 잘 알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뮤직 비디오에는 앵크십자가가 나타난다. 그러면서 이 노래가 의미하고 있는 사인이 앵크십자가임을 암시한다. 에이스 오브 베이스의 음악성이나 앨범의 수준 그리고 세계적인 지명도를 따지기에 앞서 크리스천으로서 영적인 눈으로 이 곡을 보았을 때 크리스천들이 듣지 말아야 할 곡 중의 하나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어떻게 사단이 영생을 준다는 의미를 지닌 앵크 십자가를 찬양하는 곡을 들으라고 권할 수 있겠는가? 필자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 글을 읽고 있는 크리스천 가운데 에이스 오브 베이스를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에이스 오브 베이스 뿐만이 아니라 크리스천으로서 데스메탈 (Death Metal, 죽음이나 사단을 찬양하는 곡)이나 사타닉 메탈 (Satanic Matal, 사단을 찬양하는 음악) , 블랙메탈(Black Metal)이나 둠 메탈(Doom Metal)과 같은 반기독교적인 음악을 듣는 크리스천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사야 어떻든 자신에게 맞는 음악장르를 선택해 듣고 즐기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대중음악 평론가들도 마찬가지다. 대중음악을 다루는 전문잡지들을 살펴보면 이런 반기독교적인 음악들을 권하는 사람들의 글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이들은 좀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 대중음악으로서 가치가 있고 희귀한 음악들, 국내에 별로 소개되지 않거나 적은 수의 매니아들을 가지고 있는 장르의 음악들을 소개하면서 그것이 기독교적이든 반기독교적이든 가리지 않는다. 영적인 분별력이 없고 대중음악을 영적인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그저 육신의 눈으로 보고 평하기 때문에 이들의 추천이나 평가는 영적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고 있는 크리스천 가운데 혹시 위에서 언급한 위험한 사상을 가지고 있거나 대중음악 평론가들의 추천에 쉽게 귀를 기울이는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위험한지 다시 한번 강조한다.

에이스 오브 베이스의 음악을 좋아하는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곡이 아무리 재미있고 귀에 들어온다 해도 크리스천으로서 영적인 눈으로 대중음악을 바라보아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잡식성 매니아(모든 장르의 음악을 가리지 않고 파묻혀 듣는 사람)든지 골수 매니아(한 장르의 음악에 파묻히는 사람)든지 대중음악의 매니아가 되는 것은 영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지만 예수음악 매니아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그밖의 뮤지션

이 외에도 메탈 그룹이면서 반기독교적인 그룹인 아이언 메이든 (Iron Maiden)의 'Powerslave', 콘크리트 블론디(Concrete Blonde)의 '런던을 걸으며 ' (Waking in London)나 유럽 (Europe)의 낙원의 죄수들(Prisoners in Paradise)과 같은 곡들이 앨범 표지 그림으로 뉴에 이지 상징물들을 그려넣고 있고 가사 내 용도 부분적으로 뉴 에이적인 냄새가 나므로 뉴에이지 송으로 분류 할 수 있다.


3. 클래식 뉴에이지 음악


클래식 음악은 과연 건드리면 안되는 성역과 같은 것인가?

클래식 음악 가운데 반기독교적인 음악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 큰일이 나는가? 필자가 낮은 울타리에서 '뉴에이지와 음악'이라는 비디오 강의 테이프를 만든 적이 있었다. 그 내용 중에는 잠깐 클래식 뉴에이지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 테이프를 보고 부산에서 어떤 사람이 낮은울타리에 편지를 보냈다. 편지 내용은 필자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마치 클래식 음악에는 전혀 반기독교적인 음악이 없는 것처럼 항변하였다. 자신이 삼십년 동안 클래식 음악을 연구했다고 하면서 클래식 음악을 언급하는 것조차 불쾌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 테이프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협박까지 하였다. 그 편지를 보고 당시에는 그저 웃고 넘겼지만 이렇게 뉴에이지 운동에서 다루는 음악에 대한 책을 집필하면서 이 문제 만큼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분이 삼십년 동안 클래식 음악을 연구하였고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클래식 음악 가운데 들어있는 반기독교적인 음악들을 분류했어야 했다. 그런데 전혀 그런 곡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삼십년 동안 들어왔다는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편지 가운데 지금의 복음성가 가수들이나 C.C.M.가수들을 바이러스라고 표현하면서 마치 반기독교적인 활동을 하는 대표적인 인물들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을 보았을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클래식 음악은 전혀 흠잡을 수 없는 완벽한음악이고 대중음악은 천박한 음악이라는 식의 표현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필자는 그동안 클래식 음악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송용민 전도사와 수원시립합창단원인 송은경 자매의 도움을 받아 클래식 음악을 연구해 왔다. 문제가 있는 음악들을 분류하여 자료를 조사하고 음악을 분석하면서 클래식 음악 가운데 반기독교적인 음악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필자에게 도움을 주었던 책은 미국 맨하탄 가스펠 하우스 교회 담임 목사님인 최혁 목사님이 지으신 `나의 찬송을 부르라' (규장출판사)는 책이다 이 책에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한 최목사님은 "클래식 음악이 고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성서 음악적인 입장에서 보면 클래식 음악이나 팝음악이나 모두 하나의 세상적 도구"라고 말하면서 클래식 음악에 나타난사단의 영향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클래식 음악의 사상적 배경이 인본주의에 있다면 클래식 음악은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를 멸망으로 인도하려는 사단의 고단위 술책이 들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음악을 연구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편협한 시각을 배제하는 것, 그리고 객관성을 유지하고 특히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클래식 음악을 살펴보면 클래식 음악이 결코 모두 선한 음악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클래식 음악 가운데도 크리스천으로서 멀리해야 할 음악이 있다는 것이다. 신실한 크리스천으로서 클래식 음악을 연구하며 영적인 분별력으로 관찰할 수 있는 전문가가 나서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를 바란다.

뉴에이지 음악을 연구하면서 그동안 클래식 뉴에이지 음악을 중점적으로 연구해 보았다. 그런데 클래식 뉴에이지 앨범을 살펴보았을 때 가장 많이 뉴에이지 음악으로 편곡되는 곡들이 인상주의 음악임을 알게 되었다. 인상주의 음악이란후기 낭만주의의 사조 중 하나로 프랑스에서 발생한 음악이다. 마네, 모네, 세잔느와 같은 인상주의 미술에서 영향을 받은 음악으로 그 이전의 음악들이 형식적이고 논리적이었던 반면 인상주의 음악은 이런 것에서 탈피하여 직관과 감정을 중요시하는 음악이다 이런 면에서 뉴에이지 운동과 비슷한 사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초기 뉴에이지 음악가들이 실험음악으로 뉴에이지 음악을 처음 만들 때 인상주의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상주의 음악과 뉴에이지 음악은 비슷한 면이 많기 때문이다.


(1) 플래식 뉴에이지 음악의 개념


클래식 뉴에이지 음악은 세 가지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클래식 음악 가운데 뉴에이지 사상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둘째는 클래식 음악을 뉴에이지 음악으로 편곡한 곡이다. 세번째는 뉴에이지 음악 가운데 정통 클래식으로 보기에는 미흡하고 뉴에이지 음악으로 보기에도 어울리지 않는 곡이다.

클래식 음악 가운데 뉴에이지 사상이나 이와 비슷한 사상으로 만들어진 곡들은 아직까지 그리 많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이 부분은 영적인 분별력을 가진 클래식 음악 전문가가 연구해야 할 문제이다. 필자는 에릭 사티나 알렉산더 스크랴빈, 모짜르트 그리고 베토벤, 힘멜, 타스킨을 언급할 뿐이다. 이들 가운데 모짜르트, 베토벤, 힘멜, 타스킨은 18세기 프리메이슨의 의식을 위한 음악을 작곡한 사람들이다.

클래식 음악을 뉴에이지 음악으로 편곡한 곡들은 많이 나와 있다. 빌 퀴스트나 조지아 캘리, 스티븐 킨들러,조지 윈스턴, 턱 앤 패티와 같은 뉴에이지 음악가들이 이러한 시도를 하고 있다.

세번째 개념을 가진 곡들은 일반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호감을 갖는 부분이다. 대중음악도 아니고 정통 클래식 음악도 아닌 곡들을 선호하는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뉴에이지 음악에 대해 호감을 갖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2) 조지아 캘리(Georgia Kelly)와 스티븐 킨들러(Striven Kindler)의 Fresh Impression'을 중심으로

뉴에이지 음악은 겉만 봐서도 뉴에이지 운동의 충실한 선전도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명상이라든가 기라든가 요가라든지 하는 여러 분야의 뉴에이지 운동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상과 목적이 하나이듯이 뉴에이지 음악 역시 여러 장르의 음악 형태로, 또는 각 장르별로 나타나지만 그 본질은 뉴에이지 라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뉴에이지 음악의 이러한 방법론을 가리켜 바실레아슬링크 여사는 '다양성 안의 일치'라고 표 현했다.

이번에는 그 중에서도 클래식 뉴에이지 음악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국내에 나와 있는 클래식 뉴에이지 앨범 중에 대표적인 것이 조지아 캘리와 스티븐 킨들러가 함께 연주한 'Fresh Impressions' 과 빌 퀴스트(Bill Quist)가 에릭 사티 (Erik Satie)의 곡들을 편곡해서 연주한 '피아노 솔로' (Performed by Bill)이다. 조지아 캘리의 앨범은 대표적인 뉴에이지 레이블인 글로발 퍼시픽에서 제작된 것이고 빌 퀴스트의 앨범은 윈댐 힐 레이블의 월리엄 액커먼이 제작을 맡아 출발된 것이다.

조지아 캘리는 유명한 하프 연주가이며 스티븐 킨들러는 바이올린 연주가이다. 두 사람은 모두 클래식적인 음악 바탕 위에 뉴에이지 음악의 탑을 세운 대표적인 뉴에이지 음악가이다. 그의 음악은 신비적인 면이 무척 강하다. 그녀의 음악을 들으면 고대 신화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여러 신들이 세상을 주관하며 그 신들과 인간 사이의 사랑과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성서의 시편에서 다윗이 하프를 연주하며 부르는 노래시를 읽을 때는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느낄 수 있지만 조지아 캘리의 하프 연주를 들으면 추잡스러운 이방신들에 대한 묘사를 단번에 느끼게 되는 것이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니글거리는 토악질을 해댈 것만 같은 느낌‥‥

과연 이것이 누구의 말처럼 주관적인 종교적 선입관을 가지고 듣기 때문인가?

이 질문에 대한 첫번째 대답은 조지아 캘리의 앨범 제목들을 보면 얻을 수 있다

'고대의 메아리' (Ancient Echoes), '에로스와 로고스' (Eros and Logos), '영의 소리' (The Sound of spirit).그리고 '여자 영혼' (Woman Spirit) 등등 얼핏 듣기만 해도 거짓 영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앨범의 제목들.

두번째 대답은 앞서 말한 'Fresh Impressions' 에서 얻을 수 있다

이 앨범은 인상주의 작곡가들의 곡을 편곡한 것이다. 에릭 사티 , 가브리엘 포레 그리고 드뷔시의 곡들을 그녀 자신의 음악적인 사상과 스타일로 새롭게 재해석하여 연주하였다

왜 조지아 캘리가 많은 클래식 음악 중에서 인상주의 음악을 선택했는가가 중요하다. 인상주의 음악은 후기 낭만주의의 사조 중 하나로 프랑스에서 발생하였다. 마네, 모네 그리고 세잔느와 같은 화가들이 중심이 된 인상주의 미술에서 영향을 받은 음악으로 이전까지의 클래식 음악이 형식적이고 논리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었던 것에서 탈피하여 음표 하나 하나에 치중하기 보다는 그 음악이 주는 전체적인 분위기에 치중하며 논리보다는 직관과 감정을 중요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산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베토벤이나 리하르트 시트라우스 등 기존의 작곡가들이 산의 웅장한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는데 반하여 인상주의 음악가들은 산을 보았을 때 자신에게 다가오는 직관을 내면 세계로부터 끌어올려서 묘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산그 자체보다는 산에 대한 작곡자 자신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이러한 인상주의 음악은 뉴에이지 음악의 특성과 일치한다. 기존의 형식을 벗어나는 것도 그렇고 작곡자 자신의 사상이나 주관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도 그렇다. 더구나 환상적이고 신비한 느낌을 주는 것에 있어서도 일치한다. 조지아 캘리가 클래식 뉴에이지 음악을 만드는데 있어서 인상주의 색채를 띠게 된 것은 인상주의 음악이 그러한 모든 구색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뉴에이지 사상을 자연스럽게 담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클래식과 뉴에이지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목시켜 클래식 뉴에이지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조지아 캘리의 음악를 들으면 우선 느낄 수 있는 것은 부드러운 하프의 선율 속에 들어 있는 날카롭고 예리한 칼날이 마음을긁고 지나간다는 것이다. 샘물과 같이 투명하고 맑은 듯한 그녀의 음악이지만 성령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 뒤에 들으면 무거운 압박감을 주는 것을 분명 느끼게 될 것이다.

70년대에 영상수련을 통해 클래식 뉴에이지 음악의 새로운 영역을 발전시켰던 콘스탄스 뎀비(Constance Demby), 그녀가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 보다 높은 경지로 안내한다는 표면적인 목적과 뉴에이지 사상을 심으려는 본질적인 목적을 가지고 클래식 뉴에이지 음악을 만들었던 것을 보면 조지아 캘리의 음악을 들을 때 느낄수 있는 영적인 압박감과 충격을 결코 선입관 때문만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영이 맑은사람에게 있어 뉴에이지를 가려내는 것은 그리 어렵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조지아 캘리의 음악이 사단적이라는 보다 확실한 근거는 그녀가 완벽한 뉴에이지 사상을 전달하는데 주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달콤하지만 독약이 들어 있는 달콤해서 중독되기 쉬운 이런 류의 음악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이 시대에 악한 영 가려내는 은사와 능력이 대중문화 소비자인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때가 아닌지


(3) 빌 퀴스트(Bill Quist)의 'Piano Solos of Irik Satie'를 중심으로


클래식 뉴에이지는 대중음악 분야에 70년대 중반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크로스 오버 (Cross Over) 현상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크로스오버는 한마디로 장르의 경계를 없애는 음악적인 시도이며 이렇게 시도된 음악 역시 하나의 음악장르로 구분된다.

클래식 뉴에이지를 크로스 오버(Cross Over) 현상의 하나로 볼수 있는 이유는 바로 클래식과 뉴에이지 음악과의 경계를 희석시켰기 때문이다. 클래식으로 보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하고 그렇다고 뉴에이지 음악으로 보기에도 어딘가 흡족하지 못한 면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클래식 뉴에이지를 클래식과 뉴에이지 음악과의 중간시대에 놓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클래식 뉴에이지가 명백한 뉴에이지 음악이기 때문이다.

클래식 뉴에이지 음악을 보면 그 배경이 반성경적인 뉴에이저들의 주장과 서로 일맥 상통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지적하고 있는 빌 퀴스트의 음악을 예로 들어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앨범은 에릭 사티의 곡 중에서 '3개의 짐노페디' (3 Gymnopedies), 3개의 사라방드(3 Sarabande), 임종 전 사색 (Avant Dernieres Pensees)의 1곡 '목가' (Idylle), 2곡 '아침의 노래' (Aubade) , 3곡 '명상' (Meditation),'3개의 그노시 엔' (3 Gnossienne) 등의 곡들을 빌 퀴스트가 연주하고 뉴에이지 음악의 전문 윈댐힐 레이블의 대표인 뉴에이지 기타리스트 월리엄 엑커먼(William Acker man)이 제작했다. 에릭 사티(Erik Satie)는 신비주의에 심취했었다. 그는 카페 '검은 고양이'에서 펠라당(Joseph Peladin)을 만나 '장미 십자단'이라는 단체에 가입했었다. 장미 십자단(Rosicrucians)은 라틴어로 '장미 십자가를 표방하는 고대적 신비주의자 결사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고대 이집트의 아메노피스 4세 시절에 있었던 신비주의 학파에 뿌리를 들고 있다. 그리고 로마카톨릭의 위계질서에서는 15위에서 18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간 희생제사를 드리는 단체다. 쿠르트 코흐 는 "성령을 통하여 거듭남을 체험한 기독교인이 만일 이 단체에 가입한다면 영적인 해악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펠라당이라는 인물은 영지주의(Gnosism)와 연금술에 심취해 있었으며 사티는 그를 통해서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영지주의는 지금 뉴에이지 운동의 종교, 철학적인 바탕이 되는 그리스 시대의 대표적인 이단이다.

사티의 곡 중에서 '3개의 그노시엔' (3 Gnossienne)은 바로 영지주의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이다. 또,'3개의 짐노페디' (3 Gymnopedies)는 플로베르의 소설인 '살랑보'의 일부에서 영감을 얻었다 살랑보는 제1차 포에니 전쟁 직후에 카르타고 공화국에서의 용병의 반란을 무대로 한 소설인데, 카르타고의 운명이 걸려있는 신비로운 달의 여신의 베일을 지키는 처녀 살랑보의 용병군의 두목 마또와의 사랑에 대한 내용이다. 여기서 달의 여신은 바로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니므롯의 아내인 세미라미스를 의미한다. 이시스, 아프로디테등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세미라미스는 바알숭배를 일으켰던 사악한 여인이다.

짐노페디란 고대 그리스의 의식의 하나로 당시에 젊은이들이 나체로 춤을 추었다는 내용이다.

월리엄 엑커먼은 사티의 곡들을 대화하는 듯한 에고(EGO) 정신을 깊이 지니고 있는 점을 들어 높이 평가했다. 대화하는 듯한 에고 (EGO)라는 표현은 사티의 음악 속에서 발견되는 사상이 뉴에이지 운동의 사상과 일치함을 가장 간단하고 분명하게 지적하는 것이며 클래식 음악들의 대부분이 뉴에이지 운동과 관계가 있음을 잘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침례신학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하며 클래식 음악 속에 나타나는 뉴 에이지적인 요소들을 연구하고 있는 송용민 전도사는 빌퀴스트의 이 앨범을 사티의 클래식 앨범들과 비교하면서, 빌퀴스트의 연주에는 사티의 곡에 있는 뉴에이지 음악의 요소와 명상음악에서 나타나는 요소들이 접목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앨범들은클래식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새로운 흥미거리로 다가선다고 말한다.사티의 곡들이 클래식 음악의 초보적인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사티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의 전문적인 단계에 와있는 사람들이고 이미 그런 음악에 흠뻑 빠져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사티의 음악에서 뉴에이지적인 요소들이 발견 된다는 말을 해주면 비록 그가 크리스천이라 할지라도 흥분하며 화를 버럭 낸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서 클래식도 결코 안전한 분야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앞으로 보다 깊은 연구와 조사를 통해서 밝혀지겠지만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크리스천들이 멀리해야 할 음악들이 분명히 있다

조지아 켈리와 스티븐 킨들러의 클래식 뉴에이지 음악 앨범과 지금 언급하고 있는 빌 퀴스트의 앨범들에서 다루어지는 클래식 음악들은 뉴에이지 운동의 기본 사상들과 유사하거나 일치하는 점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 신화나 반기독교적인 내용을 다룬 클래식 음악들은 그당시 유행했던 이야기들이나 소설들을 주제로 하여 단순히 음악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그렇게 위험한 음악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만 본다면 요즘 신비주의나 사단주의 그리고 폭력 자살 등을 주제로 하는 대중음악들도 결코 정죄할 수 없다는 결론이 된다.

필자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클래식 음악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반기독교적인 사상과 본질이 결코 침투할 수 없는 이 세상 최고의 음악으로 착각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클래식 음악이든 대중 음악이든 모든 음악은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음악의 영역에서 크리스천들이 들어야 할 음악과 듣지 말아야 할 음악들을 잘 분별하며 분류하는 일이 시작해야 한다.

클래식 뉴에이지 .

이것의 목적은 클래식 음악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맛을 제공하고 세미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보다 쉽게 다가서서 뉴 에이지 음악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뉴에이지 음악을 보다 수준 높은 음악으로 격상시키려는 음모이며 결국은 무서운 뉴에이지 사상을 전염시키는 것이다.


(4) 스크랴빈과 뉴에이지 운동


모든 클래식 음악은 과연 크리스천들이 듣기에 안전한가?

음악이 인간을 선하게도 악하게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접한 크리스천들이 종종 갖게되는 질문이다

록 음악이나 헤비메탈과 같은 음악들에 나타나는 반기독교적인 모습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왠지 클래식 음악 만큼은 위험이 내포되지 않은 선한 음악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한 인식은 클래식 음악이 고급문화에 해당되고 대중음악들이 대중문화에 해당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이 고급문화인가 대중문화인가라는 구분점을 따지기에 앞서서 창세기 3장에 나타나기 시작한 뉴에이지는 인류역사를 통해 흘러오면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가리지 않고 스며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이 뉴에이지에 대해서 만큼은 안전지대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클래식 뉴에이지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인상주의 음악들의 위험성을 경고한 적이 있다 그들의 음악에서 나타나는 뉴에이지의 분명한 색과 뉴에이지 음악과의 연관성에 대해 말했었다.

이제 인상주의 음악 외에도 뉴에이지의 색을 지닌 음악이 있음을 말하려고 한다.

뉴에이지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사상을 음악을 통해 표현했던 음악가가 있는데 그는 다름 아닌 러시아의 작곡가인 알렉산더 스크랴빈(A.Skryabin, 1872. 1. 6.-1915, 4. 27.)이다

'원시 종교 사상에 영향을 받아 생긴 동양 신비주의의 작곡가'

클래식 음악에서 스크랴빈을 한 마디로 요약하는 표현이다.

신비주의에 빠져 있었던 스크랴빈이 뉴에이지 사상을 가지게 되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1905년에 신지학 협회를 창설한 헬레나 페트로브라 블라바츠키 (Helena P, Blavatsky)를 만나게 되면서부터이다.블라바츠키는 러시아 여인으로 결혼한지 2개월만에 남편을 버리고 서쪽으로는 미국까지, 동쪽으로는 인도에 이르기까지 25년동안 순례의 길을 걸었던 영매이다 자신을 존 왕(King John)이라고 부르는 신령 안내자의 영매이며 1875년에 뉴욕에서 신지학협회를 창설했다. 신지학 협회는 그 창설이 뉴에이지 운동이 역사적으로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된 계기가 되었을 정도로 뉴에이지 운동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스크랴빈이 뉴에이지 사상을 가졌다는 증거는 그의 교향곡들에서도 나타난다.

교향곡 3번인 '신성한 시' 에서는 모든 구속을 파기하고 자아를 신성으로 이끌어 올리는 것을 표현한서주와 인성의 신화에 눈을 뜨는 내용인 제3악장을 비롯해서 뉴에이지 사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1905년부터 작곡되기 시작한 교향곡 제4번인 '법열의 시'에서는 인간과 우주와의 융합을 통해 인간의 완성을 표현한다.

더구나 교향곡 제5번의 표지 그림에는 뉴에이지의 상징물인 오각형별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악상기호도 명상적으로 고통스러울 만큼 육욕적으로 "베일에 가리워진 듯이 신비하게 고요하고 불길한 느낌으로"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스크랴빈은또한 '피아노소나타 제5번'과 '교향곡제4번' 에서 사용되는 신비화음을 창안하기도 했는데 신비화음은 1921년에 12음화성을 만든 쇤베르크에게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였으며 20세기 초에 유럽의 급진적인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필자는 1960년대 중반에 뉴에이지 음악을 실험음악 형태로 시도했던 초기 뉴에이지 음악가들도 스크랴빈의 신비화음에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것은 뉴에이지 음악에서 나타나는 클래식 음악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로 신비화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토니 스콧이나 폴 혼. 스티븐 핼펀, 그리고 퓨전재즈의 효시격인 마일즈 데이비스가 혹시 스크랴빈을 하나의 실험음악적인 모델로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스크랴빈이 가졌던 생각 중에 뉴에이지 사상과 연관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색채조명이다. 실제로 교향곡 제5번에는 색채조명을 사용해야 된다고 명시되어 있고 1915년 3월 20일에 색채조명을 사용한최초의 연주가 뉴욕에서 있었다. 음악과 색과의 연관성은 지금 뉴에이저들이 음악명상이나 차크라(인간의 몸에 있다는 에너지 중심) 명상에서 매우 중요하게 사용되어지고 있다

셜리 맥클레인은 도(C)-적색 레(D)-오렌지 색,미(I)-황색 등과 같이 음과 색과의 연관성을 강조하며 이것이 인간의 제1차크라 부터 제7차크라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이 신이되기 위한 명상의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스크랴빈과 지금의 뉴에이저들 사이에 음과 색에 대한 차이는 있다. 그러나 1907년에 림스키 코르샤코프를 만나면서부터 가지게 되었던 음과 색에 대한 연관성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뉴에이지 사상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극단적인 신비주의자들이나 뉴에이저들의 삶의 모습과 같이 스크랴빈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윤리적으로 타락한 삶을 살았다. 자신을 메시아로 까지 생각하는 착각에 빠졌던 그는 입술에 난 종기의 독으로 인해 발병한 패혈증으로 1915년 4월21일에 숨을 거두고 만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간의 분명한 결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허무한 죽음을 맞은 것이다.


4. 치료용 뉴에이지 음악


음악치료 분야가 조금씩 활성화되면서 뉴에이지 음악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는 바로 스티븐 핼펀(Steven Halpern)이다. 명상음악의 귀재로 알려진 스티븐 핼펀은 바로 초기 뉴에이지 음악을 만들었던 사람이다 특히 잠재의식 음악을 만드는 전문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뉴에이지 사상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뉴에이저이며 음악가인 이 사람은 음악 속에 뉴에이지 사상을 담아 전하는 음악 심리학자이며 뉴에이지 운동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수정 을 주제로 한 '크리스탈모음집' (Cirstarl Suite) 등 여러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었다.

국내에도 이 사람의 앨범이 들어와 있는데 그것 가운데 C잡지사에서 창간호 부록으로 만든 살빼는 음악 CD가 대표적이다. 이것은 잠재의식 메시지가 담긴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서 살을 뺄 수 있다는 이론에 의해 만들어진 치료용 음악으로 "이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날씬해진다"는 안내문구가 적혀있다 이 곡을 들어보면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데 명확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아마 "당신은 음식을 줄일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나 살을 뺄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일본에서 음악치료 분야가 활성화되어 음악치료를 담당하는 곳이 생기고 있다. 여기서는 클래식 음악을 주로 사용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뉴에이지 음악도 사용하고 있다. 국내 S오디오에서 출반된 김모씨가 만든 명상음악 시리즈나 태교음악 시리즈는 모두 치료용 음악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뉴에이지 사상이 담긴 대표적인 뉴에이지 음악이다.

국내에서 뉴에이지 음악을 선호하는사람들은 그저 단순히 하나의 대중음악 장르로 뉴에이지 음악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치료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듣는다. 집중력 강화를 위해, 피로 회복을 위해,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태교음악으로,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뉴에이지 음악을 론는 것이다. 과연 뉴에이지 음악에 이러한 효과가 있을까? 중요한 사실은 뉴에이지 음악은 영적인 분별력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연주되는 주제나 동형진행, 단순한 화음이나 선율과 같은 특징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의 영성이나 음악 속에 담긴 영성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기대하고 듣는다면 이교적인 영성에 의해 영혼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음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우리의 정서순화를 위해, 인간과 인간이 서로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기 위해 그리고 건전한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음악을 주셨다. 그러므로 음악이 음악으로서의 본질을 찾으려면 우선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 음악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낼 때가 바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치료를 위해 음악을 선택할 때 반드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을 듣는 것이 가장 좋은 최선의 방법이다. 태교음악도 마찬가지다 뉴에이지 사상이 담긴 음악보다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이 태아를 위해 가장 좋은 음악인 것이다.

성경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데 다윗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사울왕에게 들린 악귀를 음악을 통해 몰아낼 때 과연 다윗이 어떤 음악을 연주했을까? 당시에 유행했던 대중음악이었을까? 이방신을 찬양하는 음악이었을까?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위해 만든 인본주의적인 음악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다윗은 분명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을 연주 하였다.

시편을 보아도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시편을 자세히 살펴보면 시편의 기자들이 괴로울 때든지 불안할 때든지 슬플 때든지 하나님을 찬양했음을 알 수 있다. 음악치료의 기초적이고 기둥적인 이론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세속적인 음악이론보다 우선하여 성경의 말씀을 기초로 하여 출발 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국내에 있는 신학대학 중 교회음악과가 있는 신학대학에서 지금은 음악치료를 연구할 수 있는 과정이 마련되어야만 한다 치료용 음악으로 널리 퍼지고 있는 뉴에이지 음악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이 기독교 음악치료용 음악을 보급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복음성가나 C.C.M 을 허용하느냐 마느냐로 논쟁만 할 때는 지났다. 논쟁보다 우선적으로 교회음악이 담당해야할 영역을 침범하는 뉴에이지 음악을 막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서 교회와 교회음악가들이 그리고 문화사역자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결론

어떤 대중가수가 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낮은울타리에 실린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글을 보고 화가 나서 전화를 한 것이었다 필자가 전화를 받자마자 갑자기 화를 내며 왜 뉴에이지 음악이 반기독교적인 음악이냐고 따졌다.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하자 필자 의 이야기는 들을 생각도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끝난 뒤 뉴에이지 음악을 듣다가 영적인 부작용을 경험하는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음악을 듣다가 그런 것을 느끼는 사람들은 모두 또랑이가 아니냐고 대꾸했다 그 때의 답답함이란‥‥

문득 필자는 그 가수가 교회 집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어떤 의식을 가졌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뉴에이지 운동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크리스천으로서 C.C.M.을 해볼 생각은 없느냐고 물으니까 C.C.M 이 뭐냐고 되물으면서 자기는 그런 복잡한 것은 질색이라고 대답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크리스천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음악적인 달란트를 사용해서 하 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거늘 전화를 통해 필자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전혀 그런 의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크리스천 대중가수들이 이렇게 의식이 없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답답해하실 것인가? 그러나 다행히 하덕규 집사, 이무하 형제를 비롯한 여러 명의 대중가수들이 C.C.M.을 만들고 부르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이 원고들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강의를 다니면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 중에는 뉴에이지 음악에 깊이 빠진 매니아들이 필자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뉴에이지 음악 앨범들을 주기도 하였지만 어떤 사람들은 왜 뉴에이지 음악이 반기독교적인 음악이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뉴에이지 음악가들 중에는 뉴에이지 사상에 물들어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저 뉴에이지 음악이라는 장르가 좋아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책에서는 전자의 경우만 다루었을 뿐 후자의 경우는 다루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전자의 경우는 위험한 음악이라고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필자의 생각은 뉴에이지 음악이라는 장르가 좋아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음악은 뉴에이지 운동에 빠져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만큼 위험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뉴에이지 음악의 음악적 특성상 위험성은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초기 뉴에이지 음악이 그랬던 것처럼 뉴에이지 음악은 명상으로 유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뉴에이지 음악은 이러한 특징을 잃지 않고 있으며 음악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유지할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의 장르는 다양해졌지만 기본 목적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얼음판을 걸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이런한 생각은 그동안 필자가 다양한 형태의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서 느꼈던 점이고 뉴에이지 음악에 깊이 빠져있던 매니아들의 고백과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서 영적인 부작용을 경험했던 사람들과의 상담을 통해 결론내린 것이다. 또한 뉴에이지 앨범을 분석하고 세계적인 뉴에이지 음악가들의 글과 인터뷰를 분석하여 종합한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뉴에이지 음악이 뉴에이지 운동의 음악적인 도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뉴에이지 음악을 크리스천들이 허용하는 것은 뉴에이지 운동을 허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을 연구하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뉴에이지 음악에 대해 강의하는 사람들이 뉴에이지 음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강의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팔십년대 중후반에 록음악을 사단의 음악으로 비판하던 강의가 유행했었다 그런데 뉴에이지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록음악이나 메탈 음악 가운데 반기독교적인 곡들이 엉뚱하게 뉴에이지 음악으로 오인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뉴에이지 음악을 설명하면서 오지 오스본이나 블랙 사바스를 이야기하고 쥬다스 프리스트나 반 헤일런을 설명한다 분명한 사실은 이들은 뉴 에이지 음악가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은 대중음악의 한 장르이며 록이나 메탈과는 분류가 되는 음악이다. 그러므로 오지 오스본이나 블랙 사바스는 뉴에이지 음악가로 설명하지 말고 사단을 섬기는 가수로 설명해야 한다 물론 뉴에이지 운동 중에는 사단을 숭배하는 무리들이 있다. 안톤 라베이가 만든 사단교회처럼 사단숭배의식을 정기적으로 갖고 있는 뉴에이저들의 모임이 있다. 만일 이 모임에 가입한 가수가 록음악으로 사단을 찬양하고 뉴에이지적인 노래를 부른다면 그것은 뉴에이지 음악이 아니라 뉴에이지 송으로 분류하여 음악적인 장르를 구분해서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은 지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한국교회의 관심은 시들어가고 있다. 뉴에이지 운동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하고 그저 반 뉴에이지 운동을 역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한 채 무책임한 발언을 계속해서 하고 있어 뉴에이지 운동이 교회에까지 흘러 들어가고 있다. 뉴에이지 영화를 크리스천들이 볼만한 영적으로 좋은 영화인 것처럼 소개하던 ㅂ연구소나 영화평론가로 자신을 소개하는 S씨 등 전혀 대책없는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로 인해 오히려 뉴에이지 운동이 더욱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반면 크리스천들의 반기독교적인 문화를 향한 영적인 감각은 둔해지고 있다. 뉴에이지 운동을 비판하는 것이 만일 문제가 있다면 그것에 대한 비판은 철저하게 성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반뉴에이지 운동가들도 겸허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또한뉴에이지 운동이 아닌 것을 뉴에이지 운동으로 비판하거나 극단적인 생각으로 반문화주의로 흐르는 등의 강의는 지 양되어야 한다. 그러나 초대교회 시절에 사도들이 이단에 대항하고 반박하기 위해 글을 쓰고 경고했던 것처럼 지금 반 뉴에이지 운동가들이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음을 크리스천들은 알아야 한다.

그 동안 공개적으로 뉴에이지 운동을 비롯한 반기독교적인 문화를 연구하고 발표하는 역할을 낮은울타리가해왔다. 이땅에 기독교문화가 정착되고 반기독교적인 문화가 사라지는 날을 위해 지금도 꾸준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명를 감당하고 있다. 반문화주의 모임으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낮은울타리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고 계신다. 필자가 삼년여 동안 뉴에이지에 관련된 글을 낮은울타리에 실어온 이유는 뉴에이지 문화를 비롯한 반기독교적인 문화를 연구하고 발표하며 기독교문화를 정립하는 일을 감당하기에 가장 신뢰할 만한 곳이 낮은울타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신뢰감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필자가 결론 말미에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낮은울타리와 같은 사명을 가지고 의식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문화사역자들이 나타나 기독교문화를 정립하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해외선교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문화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문화선교전략을 세우며 문화선교사들을 양육하고 파송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크리스천들 중에 문화사역에 사명이 있음을 깨달은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헌신하기 바란다 문화사역자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는 낮은울타리에 문의하면 된다. 문화사역자를 위한 문화아카데미가 계속해서 개설되어 있고 필요한 자료들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도록 허락하시고 영감을 주시며 영적인 분별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글이 보다 많은 문화사역자들을 양성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한국교회가 뉴에이지 운동을 분석하고 물리치는 데 도구로 사용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 부록 ==

청소년 대중문화진단


한국교회와 청소년 그리고 대중문화


청소년과 대중문화를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 이 문제로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60년대 클리프 리처드 내한공연, 80년대 레이프 가렛 내한공연, 그리고 90년 뉴 키즈 온더 블럭의 내한공연을 지켜 보면서 한국교회는 대중문화에 의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청소년들을 근심스러운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팬티를 벗어던지고 머리를 미친 듯이 흔들고 눈물을 흘리며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스타들의 이름을 불러대는가 하면 심지어는 기절까지 해서 앰블런스에 태워져 응급처 치를 받는 청소년들의 모습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주위를 돌면서 온갖 추태를 다 부리던 이스라엘 민족의 우상숭배가 재현되고 있는 것 같아 한국교회는 안타까워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안타까운 시선과는 달리 청소년들의 잘못된 대중문화적인 습관을 고쳐주고 그들의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도록 만드는 대안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고민의 뒷자리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걱정은 하면서도 대안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었던 것이다 비판은 하면서도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들은 더욱더 자신들만의 스타에게로 빠져들어 교회보다는 대중문화를 주저없이 선택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떤 여중생에게 예수님과 서태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누구를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주저없이 서태지를 선택하겠다고 대답한 것도 그동안 한국교회가 청소년과 대중문화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었나를 잘 나타내 보이고 있다.

다음은 낮은 울타리 시월호에 실렸던 어느 소녀의 글이다.


"제가 사춘기 소녀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누구를 맘에 우상으로 삼아 따르고 하는 그런거 있잖아요. 저의 그 우상은 000이예요"

이 소녀는 우상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하고 있다. 우상이라는 말이 하나님보다 더욱 사랑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을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우상으로 특정 연예인을 섬기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녀는 서두에서 자신이 예수님도 사랑하고 부모님도 사랑한다고 밝히면서도 우상으로 연예인을 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이 소녀의 고백은 요즘 너무나 흔한 것이 되어 버렸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특정연예인을 예수님 보다 더 사랑하는 아이들은 흔하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성경책 속에 , 찬송가 속에 그 연예인의 사진을 넣고 다니며 수시로 보고 그리워하는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필자가 강의할 때도 이러한 청소년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어떤 연예인에 대해 좋지 않은 점을 이야기하면 그 연예인의 열성 팬인 아이들은 필자를 노려보며 심지어는 강의가 끝날 때까지 울거나 화를 내는 경우가 흔하다.

예수님보다 특정 연예인을 더 사랑하는 청소년들 그리고 한국교회 ,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특정 연예인을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청소년과 대중문화에 대한 문제의 다는 아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교회가 대중문화에 대해 마치 송충이 보듯 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들과 대중문화를 분리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N0'다. 청소년들은 결코 대중문화와 분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대중문화가 바로 청소년들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대중문화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들의 독특한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고 배워가며 그들의 삶을 즐긴다.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음악, 취미 등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그들의 문화이며 그것이 그들이 살아있음을 느끼도록 만들어 준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과 대중문화를 분리할 수 있을까? 물론 청소년들로 하여금 사막이나 깊은 산 속에서 현대문명과 분리된 삶을 살도록 할 수는 일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그 곳에서 그들만의 대중문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대중문화를 무조건 송충이 보듯 싫어하고 비판만 한다면 청소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도원에 들어가 살 것인가? 중세기의 고행자들처럼 나무 위나 벽 속에 갇혀서 살 것인가?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대중문화는 무조건 피한다고 멀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대중문화는 그 내부로부터 개혁이 일어나 잘못된 부분들이 스스로 허물어지고 도태되도록 만드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로마 시대에 부패한 상류층의 삶 속에서 청결하고 고귀한, 깨끗한 도덕적인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고 상류층의 로마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것처럼 교회가 대중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전략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대중문화에 대해 무조건 비판만 하고 염려만 했었다. 그리고 드러나는 현상들에 대해서 강한 불만을 나타내면서 모든 대중문화가 타락한 것처럼 이야기 해왔다. 그러다 보니 문화선교전략은 세우지 못하고 잘못된 대중문화가 교회로 흘러 들어와도 무방비 상태로 있을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문화선교전략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선교전략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어떤 선교사를 해외로 파손할 때 그 선교사에게 문화충격을 이겨내야 선교에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문화충격을 받고 있으면서도 선교전략 하나 세우지 못하고 있다 세계선교사들은 양육하고 파송하면서 문화사역자(선교사)들은 양육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선교도 중요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교회가 대중문화에 대한 문화선교전략을 가지고 문화사역자들을 양육하고 파송하는 일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만약 지금처럼 계속해서 대중문화에 청소년들을 빼앗겨버린다면 21세기에는 교회에 노령화 현상이 나타나 젊은이들은 하나도 없고 늙은이들만 교회의자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모습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것이다

대중문화는 VR이나 CD롬 등과 같은 첨단을 걷는 방법들을 이용해서 뛰어가는데 교회는 주판을 두드리며 걸어가고만 있다면 그 경쟁은 보지 않아도 결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대중음악은 몇억씩 들여서 일년 반이나 이년동안 심혈을 기울여 최첨단 장비와 최고의 세션맨들을 사용하여 앨범을 만들어 내는데 몇백만원이나 몇천만원들여 세달에서 다섯달 사이에 영세한 스튜디오에서 졸작 복음성가 앨범을 지금처럼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면 고급스러운 귀를 가진 청소년들은 앞으로도 계속 교회음악보다는 대중음악을 선택할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교회에서 기도하고 성경책을 들고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영화는 흥행에서도 실패하고 그리 큰 효과를 얻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영화들을 불신자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을 뿐더러 크리스천들 조차 보러가질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복음이 들어있는,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복음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도 그 주제나 메시지가 복음을 전하는 감동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라이언 킹이나 꿈의 구장처럼 감동을 주면서 그 배경에 뉴에이지 사상을 집어넣고 사람들에게 뉴에이지 사상을 전하는 지금, 아름다운 영화, 감동을 주는 영화를 만들어 그 영화를 통해 복음을 전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비평가들도 수준높은 영화로 인정하고 영화제에서 상도타는 그런 영화들이 한국교회를 통해 양육된 문화사역자들에 의해 만들어 져야 하는 것이다.

또하나의 문제점은 한국교회가 대중문화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등부에 소속된 어떤 아이가 그 반을 담당한 교회 선생님에게 와서 이 렇게 물었다.

"선생님 에이스 오브 베이스의 더 사인이라는 곡이 뭔가 이상한 것 같아요. 그 노래만 들으면 머리가 아프고 기분이 좋지 않은데 어떻게 된거죠7"

이 말을 들은 지도교사는 그 아이에게 이렇게 묻는다

"에이스 오브 베이스가 뭔데?"

이렇게 되면 상담자와 피상담자가 바뀌게 되고 아이는 오히려 선생님에게 에이스 오브 베이스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효과적인 상담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사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많이있다. 대중문화적인 고민이 있는데 그 고민을 해결할 곳이 없는 것이다. 교회에서 삶 가운데 어떻게 말씀을 적용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까지 해결해주기 위해서는 영적 지도자나 교사들이 문화에 대해서 알아야만 하는데 성경말씀을 가르키는 것으로 그 사명을 다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문화와 교회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소년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필자가 제주도에 강의하러 갔을 때 어느 교회 목사님이 자신은 청소년 선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아무런 주저함 없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사실 이 목사님의 생각이 오늘 날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은아닐지‥‥ 제자훈련을 비롯해 교인배가에 초점을 맞추어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진행 하면서 청소년 문화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장년들의 배가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인 것이다.

목회자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보니 그 교회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목회자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는 강의를 다니면서 이러한 목회자들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교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어떤 문화적인 프로그램을 가질려고 해도 그것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는 목회자들 때문에 그 계획이 무산되는가 하면 그러한 이유들로 인해 중등부 고등부가 감소하면 오히려 그 원인을 교사들에게 돌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돌더미 가운데 핀 꽃이 되라

최근 몇년간 신세대 가수들은 대중앞에서 자신을 좀더 자극적이고 개성적인 모습으로 포장하여 내어 놓으려고 시도해 왔다. 이러한 시도는 한마디로 '튀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른 가수들에 비해서 대중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고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위한 방법중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돌더미 가운데 핀 꽃처럼 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사가 채정은은 이러한 대중음악 가수들의 시도를 보고 포장지와 리본에 투자하는 단위가 높아졌다고 진단한다.

신세대 가수들이 튀어 보이는데는 그들을 따라 다니는 코디네이터들의 영향이 크다. 이들은 자신들이 담당하는 가수들이 조금이라도 더 튀어보이기 위해 기성복을 사다가 여러 형태로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는 일본이나 홍콩, 미국 등지에서 사다가 입히기도 한다. 항상 외국의 패션에 민감하고 조금이라도 더 세계적인 유행을 빨리 따라가기 위해 노력한다.

전속 코디네이터와의 합작으로 만든 머리 스타일과 의상으로 인기를 얻었던 신세대 가수 중의 대표적인 가수로는 바로 김건모를 들 수 있다. 앞머리와 윗머리를 앞으로 빗어 두피에 붙이는 헤어 스타일을 유행 시키다가 다시 오른쪽 옆머리를 계단식으로 면도하고 앞머리도 쥐가 파먹은 듯이 들쭉날쭉하게 만든 SW(Stairway) 헤어스타일을 하기도 했었다. 의상도 허름하고 큰 윗도리에 반바지를 입고 신발도 자신의 발사이즈인 260mm보다무려 30mm가 더 큰 290mm군화를 신기도 했었다. 최근에는 팔이 길고 여러가지 색이 혼합된 남방에 모자를 쓰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그는 자메이카 스타일의 패션을 유행시키기도 했었다

튀기 위해서 비정상적인 패션을 유행시키는 가수들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가수가 바로 '슈퍼맨의 비애'를 부른 D.J.덕과 '날 떠나지 마' 를 부른 박진영이다. 이들은 한 겨울에 몸에 달라붙는 반팔 T셔츠를 입고 나와 노래를 부른다. 겨울이면 누구나 다 긴팔 옷을 입는 것이 상식인데 그러한 상식을 벗어나 처량해 보이는 반팔 옷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특히 박진영은 반바지를 입고 겉에 비닐과 같은 투명한 소재로 만든 바지를 입고 나오기도 한다

독특한 헤어 스타일로 노래를 부르는 대표적인 가수로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부르는 박미경을 들 수 있다. 일명 '박미경 퍼머'라고 불리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는 '빨래반 퍼머'와 이를 변형시킨 '언밸런스 퍼머'이다 머리에 굵은 웨이브를 주어 생머리와 빨래판 처럼 구불구불한 머리를 섞은 이러한 머리 스타일은 지금 이십대 여성들사이에서 유행하고 있기도 하고 이밖에도 D.J. 덕은 짧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기도 하고 투투의 멤버였던 황혜영은 머리에 눈을 맞은 것처럼 하얗게 물들이고 나오기도 하는데 초대손님으로 나왔던 가수 이문세가 계속해서 눈 맞았냐고 놀리기도 했었다.

독특한 스타일 외에도 남녀의 키가 바뀐 언밸런스한 듀오도 조금씩 인기를 얻고 있는데 '쇼팽과 인어공주' 를 부르는 팝콘이 바로 그들이다. 혼성 이인조 듀오인 이들은 혼성 듀오라면 남자의 키가 크고 여자의 키가 작은 것이 일반적인데 이러한 관례를 깨고 오히려 여자가 남자보다 키가 더 큰 듀오이다 모델가수 출신인 여성멤버 신시아는 Im74의 장신인 반면에 남성 멤버인 석우준은 Im64로 무려 10cm나 작다.

튀기 위해서는 춤도 한몫을 한다 브레이크 댄스에서 유래된 춤으로 온몸이 32비트 리듬에 맞춰 흔드는 디기딥 춤과 '비밀은 없어'를 부르면서 추는 전기춤의 룰라, 반쪽춤을 추었던 투투, 스틱춤을 추었던 D-보이스, 딱따구리 춤을 추었던 솔리드, 접시닦는 춤을 추는 코코, 엉덩이 춤을 추는 박진영, 코믹춤만 추는 멤버를 한명 기용해 독특한 춤을 추는 소방차 등 개성적인 춤을 추는 신세대 가수들도 있다

신세대 가수들의 이러한 튀기위한 방법들은 신세대들 사이에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때 서태지와 아이들이 상표가 달린 옷을 입고 나왔을 때 그것이 유행했던 것처럼 신세대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의 스타일을 쉽게 닮으려고 한다 이것은 신세대 가수들이 신세대들의 문화를 주도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며 이들의 역할이 문화에 있어서 얼마나중요한 역할을차지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의식을 가진 신세대 가수들이 얼마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이에 대한 대답은 매우 인색할 것 같다.신세대 문화에 대해 건전한 의식을 가진 가수들의 모습은 사실 그동안 그리 쉽게 발견할 수 없었고 오히려 부정적인 면만 나타났었다. 신세대 가수들의 대마초 흡연 사건을 비롯해 문화 보다는 인기에 집착하거나 그와 관련된 물질에 집착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기를 얻어 앨범이 많이 팔리고,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계속 해서 부를 수 있고, 풍부한 물질을 얻는 것 외에 신세대 문화를 주도해 간다는 의식을 가지고 책임감을 느끼는 가수와 작곡가, 작사가, 매니저 그리고 코디네이터들이 과연 있을까? 슬픈 사랑 타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노래를 만드는 사람들과 그러한 노래로 인기를 얻을려는 가수들,그리고 그것에 맞게 포장하고 조금이라도 더 튀게 보이려는 코디네이터, 노래를 홍보하고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얻기위해 애쓰는 매니저들에게 과연 건전한 문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스타일로, 노래로, 춤으로 다른 가수들과 비교해서 조금이라도 더 튀어보려는 생각보다는 건전한 청소년 문화를 위한 경쟁이 더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신세대 가수들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신세대들의 방황 - 나는 누구인가?


최근 몇년간의 대중가요들을 살펴보면 가사들이 주로 방황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사랑타령에만 국한되어있던 가사들이 신세대라는 연령층이 구분되어지고 독특한 그들의 스타일이 사회문제화 되기 시작한 이래로 점점 정신적인고 영적인 방황을 그리고 시작했다는 것은 쉽게 보아넘길만한 것이 아닌것 같다.

그렇다면 그렇게 방황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 가요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대중가요들을 살펴보면 그 이유가 사랑때문이라고 간단하게 결론 지을 수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의 친구가 연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괴로워하고 방황하는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이나 떠나려는 연인에게 이유가 필요없음을 역설하는 박미경의 '이유같지 않은 이유' , 사랑하는 사람의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 괴로워하면서 떠나지 말 것을 간청하는 박진영의 '날 떠나지마'와 같은 상위권의 곡들은 모두 사랑으로 인해 갈등하고 방황하는 신세대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특별하게 관심을 갖는 곡들뿐이 아니라 대중가요의 전반적인 모습을 보았을 때 신세대들의 방황은 단순히 사랑이 그 이유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세대들이 갖는 특징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기주의와 적극적인 개성추구이다. 철저하게 자신만을 위한 이러한 특징은 그만큼 내적인 방황이 많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개성을 추구하고 자신을 꾸미며 드러내는 일에 열중하는 등 자신에게 집착한다는 것은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세대들은 항상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퍼붓는다. 기성세대들이 보기에 대책없이 일을 저질르고 순간순간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자신의 실존에 대한 강한 의문을 가지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신세대들이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저멀리서 누가 날 부르고 있어‥‥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내 곁엔 항상 어둠뿐이었어

- 듀스의 '우리는'

삶의 어디쯤 내가 와 있는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목마른 물음들을 던져봐도 언제나 뜻모를 메아리뿐.

-허준호,김대희의 `나홀로 서는 곳`

떨어지는 별을 보고 가슴속의 소원을 빌면


하루하루 이어지듯 늘 세상은 같아보였고

먼지덮인 이 도시에 오히려 난 지쳐버렸지

때론 날 이기려는 힘이든 고통이 되고

내 마음이 절망으로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난 이세상 저 밖으로 차츰차츰 빗겨가는데.

- 이정재의 `길이 끝난곳에서`


가로등 불빛사이로 밀려드는 차가운 수많은 시선들

숨가쁘게 지나치다 허공을 가득메운 또 다른 외침들

소리없이 밀려오는 외로움을 뒤로하고

터벅터벅 걸어가다 긴 한숨만 날려 버리나.

아무것도 아닌 듯이 흘려버렸던 내 작은 소망들

-김알음의 방황


신세대들의 이러한 방황은 결국 신비주의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 요즘 점을 치거나 귀신놀이를 통해서 귀신을 불러내어 자동필기로 미래를 물어보는 등 신비주의 적인 방법에 심취하는 신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컴퓨터 점 프로그램이 확산되었고 컴퓨터 게임에도 신비주의적인 것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 전에는 음지에서만 나타나던 신비주의적인 방법들이 지금은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난히 고요하던 밤 하늘을 바라보다가

유성처럼 떨어지는 별을 봤지

떨어지는 별을 보고 가슴속의 소원을 빌면

영화처럼 현실이 된다는 얘기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기히야 야발라기히야

야발라기 히 야모하이마모하이루라 ·.

- 이승환의 '덩크 슛'


대중가요에 나타난 신세대들의 실존에 대한 의문과 방황 그리고 신비주의에 대한 관심은 그들의 마음속에 참된 평안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참 평안(요 14:21)을 맛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신세대.

신세대들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방황에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참 평안이 주어진다면 신세대들의 의미없는 사랑타령이나 방황을 노래하는 노래들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당신은 항상 내게 손을 내밀어도 나는 왜 그 손을 잡진 못하는지

아낌없이 부어준 그 사랑을 나는 왜 항상 잊고 살아가는지

당신 곁에 언젠가 당신 곁에 아름답게 당신 곁에 영원토록

오랜 나의 방황을 지켜주던 따스한 손길 오 Jesus

- 박학기의 '언젠가 당신 곁에서'


영화평 - 로렌조 오일(lorenzo's Oil)


ALD(대뇌백질 위축증)라는 불치의 병에 걸린 로렌조와 아들을 살리기 위한 오도네 부부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인해 치료제를 발견하게 되었던 실화를 그리고 있는 영화다. 의학계조차ALD에 대한 연구가 시작단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된 오도네 부부가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집념 하나로 직접 연구를 해서 마침내 올레인산(올리브유)과 에루쿠산(평지씨 기름)이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이 치료제는 로렌조 오일이라고 불려지고 있으며 ALD를 앓고 있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공급되고 있다.

이 영화는 의사출신 감독인 조지밀러가 만든 작품으로 릭 놀테와 수잔 새런든이 오도네 부부로 열연을 하는데 수잔 세런든은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었다.

영화를 통해서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도네 부부가 역경에 대처하는 모습이다. 5 - 10세의 어린이들에게 발병하는 ALD는 불치의 병으로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한 번 걸리면 모든 희망을 포기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들도 철저하게 객관적인 입장에서 고통을 감수하도록 부모들을 설득할 수밖에 없었고 부모들은 자식의 고통을 조금도 덜어줄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인해 더욱더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ALD환자의 부모들 모임인 ALD재단 에서도 단지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며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려는 노력만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오도네 부부는 달랐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직접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치료제를 발견하게 된다. 수없이 실패하고 그로인해 절망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기적을 이루어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벅찬 감동을 느끼게 만든다.

이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이한 것은 클래식 음악을 상황에 맞도록 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로렌조의 병이 발견되어 절망적인 상태에 있을 때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Norma) 중 '정결한 여신이여' 가 흐르고 도서관에서 치료법을 찾기 위해 애쓸 때는 엘가가 자기 아내의 죽음을 예상하면서 만든 작품인 첼로협주곡(엘가의 마지막 작품)이 흐른다. 이외에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베르디의 레퀴엠(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 중 신의 어린 양 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성당의 천정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 클로즈 업 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원하는 내용의 종교곡인 모짜르트의 아베베룸 코로푸스 가 흐르는 등 음악이 갖고 있는 철학적인 의미가 무척 강한 작품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영화전반에 흐르는 음악들이 종교적인 냄새를 풍기면서도 아프리카의 무속음악, 이방종교적인 세속음악, 인간승리를 다룬 인본주의 음악 등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특히 벨리니의 노르마는 드루이드교도에 대한작품인데 드루이드교도들은 사단을 숭배하던 민족들이었고 이들이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리듬을 비틀즈가 그대로 록음악 속에 접목시키기도 했었다. 더구나 '정결한 여신이여'는 여신에게 세상 근심을 잊고 평화를 내려달라고 기원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여신사상을 발견할 수 있 는 반기독교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의 음악적인 특징 중 하나는 작곡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작곡자(music by)가 아니라 음악편집자(sound editor)의 이름만 나온다. 영화그자체로만보면 음악편집자가 상황에 맞게 음악에 담긴 철학적 인 의미를 고려해 잘 편집 했지만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여러 가지로 문제점이 드러난다.

이러한 문제점 외에 아프리카의 무속신앙이 엿보이는 등의 몇가지 문제점들이 발견되지만 온가족이 함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음악에 대한 영적인 분별력

지혜 없는 자와 지혜 있는 자.

오늘날의 영적 싸움의 최전선은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뉴에이저들은 문화혁명 을 외치며 많은사람들을 미혹하고 있고 교회는 문화싸움에서 열세를 보이며 신세대들을 잃어가고 있다. 엄청난 돈과 수많은 새로운 방법을 동원하여 사단은 문화를 이용하고 있는데 교회는 변변한 문화선교전략 하나 세우지 못한채 끌려가고 있다. 오히려 문화선교전략의 개념조차 가지지 못하고 있는 목회자와 교회들이 많다는 사실에서 문화전쟁은 그 결말이 훤히 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자녀인 크리스천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과연 지혜 없는 자와같이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교회가 싸워야할 전선은 문화라는 곳이다. 과학 문명의 발달로 인간은 보다 편리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들을 창출하고 접하고 누리면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시대에 맞게 문화선교전략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뛰어가는 현대문화에 비해 오히려 걸어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문화선교전략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교회는 문화선교전략을 세우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 세상문화가 교회를 흘러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염려해서 엄두도 못내기도 한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담글 것인가? 앞으로 교회의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신세대들을 세상문화에 빼앗기고, 그래서 교회에 노령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어떤 크리스천들은 문화사역자들에 대해 무조건 비판만 하는 경우도 있다. 열심히 땀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영적 싸움의 최전선에서 수고하는 문화사역자들에 대해 그저 편하게 앉아서 자신들의 우매한 지식을 잣대로 사용하여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는 식으로 마치 자신의 견해가 최고인 것처럼 행동하는 지혜 없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교회는 해외선교사를 파송할 때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는 선교사들이 잘 이해해야 선교전략을 세을 수 있다고 수차례 강조하면서도 현재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어야 할 문화선교전략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한 경우도 있다.

과연 누가 지혜 있는 자이고 누가 지혜 없는 자인가? 분명한 사실은 현대선교전략 가운데 문화선교전략이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직시하는 교회가 지혜 있는 자에 속한다는 것이다.


"지혜 없는 자판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엡5: 15)


음악이라는 도구

문화선교전략 가운데 포함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음악이라는 분따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만드는 문화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음악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그 특정대로 사람들의 영혼을 자극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인간들의 시선을 세상으로 향하도록 만드는데 아주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가 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음악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음악 속에는 메시지를 담을 수도 있고 그 메시지에 의해 듣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곡자가 자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어떤 곡을 작곡하면 그 곡을 듣는 사람도 자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육십년대를 장식했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이며 기독교의 정통성을 향한 반항의 기수로 인정받고 대중음악계에서 영웅으로 평가받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는 "음악자체가 영적인 것이다. 누구든지 음악으로 사람들을 마취시킬 수가 있다 음악이 사랑의 가장 취약한 부분에까지 이르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 주입시킬 수가 있다 "고 이야기한다.

'팝음악에 나타난사단의 활동'을 쓴 손종태 목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악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과소평가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은 실로 전세계적인 도구입니다. "라고 이야기한다

미국 테네시 대학교의 의과대학 조교수인 폴 킹(Paul King) 박사는 '헤비메탈 음악과 청소년기의 마약남용' (Heavy Metal Music And Drug Abuse In Adolescents)이라는 연구논문에서 헤비메탈 음악은 "청소년들이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행동들인 자신을 인정하게 되는지를 결정하려고 애쓰는 것을 더욱 혼란하게 만든다"고 말하면서 잘못 사용되는 음악이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음악은 잘못 사용될 경우 한사람의 일생을 망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며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쁜 삶의 열매를 맺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영적인 분별력

음악을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이 문제는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만일 모든 음악이 건전한음악이고 좋은 음악이라면 우리는 안심하고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음악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러므로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음악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요일4:1-6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음악을 분별할 때에 영적인 분별력을 사용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음악은 영적인 것이고 음악 속에 미혹의 영이 담긴 반기독교적인 음악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한 예로 헤비메탈음악을들수 있다 이 음악가운데 사타닉 메탈(Satanic Metal)이나 데스메탈(Death Metal)과 같은 음악장르가 있는데 이 음악들의 주제는 사단, 죽음, 고통 절망, 지옥과 같은 것들이다. 이 음악은 노골적으로 사단을 찬양하며 인간에게 끔찍한 고통이 임하는것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며 지옥에 가라고 서슴없이 권장한다. 더구나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사단을 숭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음악을 좋아하는 크리스천들이 있다. 이른바 헤비메탈 매니아들인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사단을 찬양하는 음악을 좋아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영적인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헤비메탈 뿐만이 아니라 록음악이나 다른 음악장르 가운데에도 미혹의 영이 담기거나 이교적인 영성을 지닌 곡들이 있는데 이러한 곡 들을 분별하지 못한채 좋아하는 크리스천들도 있다.

이외에도 대중음악의 기법 가운데는 백워드 매스킹(Backward Masking)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노래를 바로 들을 때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노래를 거꾸로 돌리면 이상한 말이 흘러 나오는 것이다. 마이클 잭슨의 빗잇(Beat it)을 거꾸로 돌리면 "나는 내 안에 있는 존재가 사단이라고 믿는다" (I do belive it was Satan who's in me)라는 말이 흘러 나오고 그룹 이글스(Eagles)의 호텔 캘리포니아 (Hotel California)라는 곡을 거꾸로 돌리면 "예, 사단께서 자신의 종교를 손수 창조하셨습니다"(Yes, Satan organized his own religion)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이렇게 백워드 매스킹으로 감추어진 말들은 인간의 뇌에 영향을 미쳐 잠재의식 가운데 자리를 잡도록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 메시지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백워드를 사용하는 그룹이 국내에 있다. 백워드 매스킹(감추어진 말들)은 아니지만, 그리고 반기독교적이거나 과격한 말은 아니지만 가사의 일부분을 백워드 시켜놓는 앨범을 발표한 그룹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이들은 최근에 나온 3집 앨범 가운데 A면 끝곡인 '내 맘이야'라는 곡에서 가사를 거꾸로 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 "라해 로꾸꺼 은말 이" 라고 부르는데 이 말을 거꾸로 하면 "이 말은 꺼꾸로 해라'라는 뜻이 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항상 실험음악적인 성향을 보이는 이들이기에 이러한 방법을 쓰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연습실에 해골을 놓고 있어 영성이 의심되는 이들인지라 앨범의 노래 가운데 백워드 기법을 쓴 것은 사뭇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자녀인 크리스천들은 음악을 영적으로 분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 음악이나 함부로 듣지 말고 음악을 잘 분별해서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께 영적인 분별력을 요청해야 할 것이며 음악에 대한 전문가들이나 문화사역자들과의 상담을 통해 음악에 대한 정보를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그리고 어떤 음악을 들을 때에 그 음악의 가사와 작곡자, 음악가를 살펴보고 앨범자켓을 유심히 보아서 그 음악이 어떤 음악인지를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음악을 듣는 것에 무슨 절차가 그리 까다롭느냐고 항의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음악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문화가 영적으로 타락해 있으므로 반드시 이러한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는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그래서 호4:6의 말씀처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라는 말씀이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도록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음악적인 선교전략

요즘 기독교 서점에 가보면 훌릉한 교회음악들이 많이 나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신세대들은 대중음악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그만큼 교회음악이 대중음악과 비교하여 볼 때 여러 가지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교회에서 음악사역자들을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길러내야 하며 이러한 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해야만 한다. 교회의 외형적인 성장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교회의 장래를 위해 문화사역자들을 발굴하고 양육하여 이들을 집중적으로 후원함으로 영적 싸움의 최전선인 문화싸움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또한 교회 내에서 신세대와 구세대간의 벽을 허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음악적인 견해에 있어서 벽이 생기고 있는데 서로 기도하고 대화를 통해서 이러한 담을 헐고 함께 힘을 모아 음악적인 문화 선교전략을 세우고 그 전략에 따라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할 때에 대중음악으로 향한 크리스천들의 관심을 교회로 돌릴 수 있으며 세상음악에 익숙해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슬픈 사랑, 가슴 아픈 사랑


나 이제 알아 혼자된 기분을, 그건 착각이었어.

-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


왜 이렇게 하루하루 지쳐가는 걸까.

너 없는 이 세상은 견딜 수가 없어.

우리 다시 이별없는 나라에서

이별없이 사랑할 수 있게 기도해줘요.

- 팝콘의 '이별 없는 나라'


그리움의 끝엔 언제나

눈물 속에 항상 네가 있는 것은

돌아갈 수 없는 아픔인 듯

시린 추억이 가슴 속에 남아서야

- K2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그대는 오늘도 내 맘 속에 슬픈 그림을 그려주려고

소리없이 다가와 나의 눈물로 색칠을 하네

- 신승훈의 '오랜 이 별 뒤에'


사랑은 과연 슬프기만 한 것일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이란 슬픔과 아픔과 가슴이 찢어지는 상처만 남기는 것일까?

최근에 출반된 대중가요앨범들을 보면 대부분 슬퍼서 미치겠는 사랑, 가슴이 찢어지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이성간의 사랑이 모두 슬픔만을 던져주는 가슴 아픈 고뇌덩어리이고 끝내 눈물로 마음을 색칠하도록 만드는, 쓸쓸한 이별의 장송곡과 같은 것이라는 정의를 내리는 것 같다.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도 많을 터인데 굳이 슬픈 사랑의 이야기만 주제로 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가요가 히트하려면 슬픈 사랑만 노래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다 이젠 대중가요도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지 말아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어야 할 때이다. 사랑이란 아름다운 측면이 전혀없어 자지러질 것처럼 슬픔에 잠겨 노래하는 모습은 처량하게만 보일뿐 더이상 연민의 정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한다. 진정 의식이 있는 작사가와 가수라면 대중가요를 가장 많이 듣는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메시지, 밝은 미래를 꿈꾸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진실한 사랑조차 해보지 않은 청소년들로 하여금 가슴 아픈 사랑 부터 노래하게 만든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분간 이런 것들이 얼마나 공허한 기대인가를 나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대중가요는 슬프고 가슴 아픈 사랑을 노래할 것이고 청소년들은 여전히 그런 노래들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백만장 이상이 팔렸다는 김건모의 앨범 가운데 히트곡인 '잘못된 만남'이나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 (이 앨범에서 사단주의와연관이 있는 Eagles의 Hotel California'를 리메이크했다), 박진영의 날 떠나지마' ,신승훈의 오랜 이별 뒤에'와같은 곡들이 모두 처절한 사랑을 노래하는 곡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를 순화시킬 수 있는 어떤 대안이 없을까?필자의 생각으로는 C.C.M.이 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자극적인 것만 추구하게 하고 불건전한 인생의 떼시지를 던져주는 오늘의 대중가요를 순화시키는 사역은 부름받은 사람들이 담당해야 하며 그 방법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C.C.M.이다.

거듭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수준높은 컨템퍼리 크리스천 뮤직 (직역하면 그 시대의 가스펠송)이 많이 나와야 한다. 국내에서도 C.C.M.이 외국에서처럼 가요순위 차트에 진입해 오주 연속 일위를 차지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그래서 대중가요를 떠날 수 없는 청소년들이 복음이 내재된 건전한 C.C.M.을 들으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려본다.


삶의 열매? 그럴 수도 있지

록의 신화.

신화라는 말은 도덕이나 윤리를 초월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가 될만한 유명한 록스타들의 삶의 열매는 팬들에게 있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음란한 생활을 하였든지 마약을 복용했든지 변태적인 생활을 하였든지 도무지 문제 삼으려고 하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크리스천들 중에 삶의 열매가 성경에서 금하는 죄악으로 분명하게 드러난 록가수들을 포기하지 않는사람들이 많이 있다.

비틀즈,퀸,블랙 사바스, 킹 크림슨,뉴 키즈온 더 블럭, 엘튼 존, 롤링 스톤즈, 데이비드 보위 등등.

음악은 음악일뿐 삶의 열매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국내의 대중가수들이 그런 삶의 열매를 맺었다면 당연하게 경멸하고 그들의 음악을 멀리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외국의 가수들, 특히 신화적인 존재들은 오히려 그런 삶이 흥미거리로만 여겨진다.

음악 프로에서는 그런 이야기들을 언급하면서 음악을 소개하고 듣는 사람들은 그저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받아들인다.

TV 방송국에서도 만찬가지다. 국내 연예인들 중에 윤리 ,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키거나 사회적인 물의를 빛은 사람들은 무기한 출연정지를 시키지만 외국의 가수들 중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음악과 뮤직 비디오는 여전히 방송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헤어스타일을 문제삼아 출연정지를 시키는 반면에 몸에 문신을 하고 반라의 차림으로 연주하고 삶의 열매가건전하지 못한 건스 앤 로지스의 뮤직 비디오나 하체춤을 추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습은 신화적이라는 의미를 담은 DJ의 말과 함께 방송을 하는 것이다.

필자는 종종 항의전화를 받는다. 물론 크리스천이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외국가수들의 반기독교적인 삶의 열매를 전혀 문제삼지 않으려는 사람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이다 그중에 특히 그룹 퀸(Queen)의 팬들이 많이 있다. 세미나를 할 때는 퀸의 음악 중에 마리화나를 피우라는 메시지가 거꾸로 들어있는 부분을 들려주면서 설명을 하기 때문에 항의가 동의로 바뀌지만 전화로는 그렇지가 않다. 어떻게 후레디 머큐리가 동성연애자일 수가 있느냐는 내용부터 시작해서 후레 디 머큐리가 동성연애자라는사실을 그가죽기까지 아무도 몰랐는데 어떻게 그 이전부터 사람들이 알 수 있었느냐는 등 보통 삼사십분씩 전화를 해온다 그래서 상담을 해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지 염려하며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과 기준에 맞추어 퀸의 누명(?)을 벗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가끔 자신이 숭배하는 록가수를 포기하는 것보다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하겠다는 아이들을 만난다 예를들면 뉴 키즈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한다고 다시는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하는 청소년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자신이 예수를 믿어주는 것이고 교회도 다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중가수들은 숭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믿어주는 것이라니‥‥

외국의 대중가수들뿐만 아니라 국내의 대중가수들을 병적으로 좋아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섹스, 마약 그리고 록큰를

필자가 가지고 있는 사진집의 이름이다

록의 신화로 불리우는 외국 스타들의 삶의 열매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책이다.

마약, 동성연애, 변태적인 성행위 등 마치 포르노 잡지와 같다.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고 금하신 온갖 더러운 모습들을 볼 수가 있다

이들 중에는 지금도 방송을 통해서 국내에 여전히 소개되는 가수들도 있고 수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가수들도 있다

"삶의 열매? 그럴 수도 있지,"

참 위험한 생각이다 그런데도 이 말은 외국의 록가수들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굳어지고 있다. 그래서 상황윤리가 더욱더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점점 더 선과 악의 구별이 모호해져 간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별하는 방법을 열매로 알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는데도(마7: 17-20) 불구하고 음악이라는 포장에 둘러싸인 죄악은 그저 하나의 흥미거리로만 여겨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뉴에이지 운동이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이 잡혀가는 것이다. 선과 악의 구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 때에 선과 악은 하나라는 뉴에이지 사상은 적당한 온도와 습기 속에 번져가는 곰팡이처럼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공중부양이나 염력, 유체이탈, 심령수술과 같은 신비한 것들만 뉴에이지로 볼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접근해로는 사소하면서도 영적으로 타락한 곰팡이와 같은 뉴에이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그러므로 대중음악에 대해 너무나도 관대한 마음을 추스려야 한다.단순한 팬으로서가 아니라 크리스천으로서 대중음악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없으면 하나님에 영적인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