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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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는 15세기 후반에 만들기 시작했음
- 가장 오래된 족보는 안동 권씨 성화보
- 성화는 명나라 황제의 연호 (1465-1487)
- 1476년 (성종 7년)에 만들어짐
- 두번째로 만들어진 족보는 문화 유씨 가정보 (1565)
- 강릉 김씨 을축보 (1565)
- 능성 구씨 만력보 (1576)
- 조선 전기까지도 족보가 만들어지지 않았음
- 본관은 고려초에 만들어짐
- 성씨는 언제부터?
- 혈연집단
- 기록에서 가장 먼저 확인되는 성씨는 韓씨
- 삼국지 위서 동이전
- 기자조선: 중국 은나라 말기에 기자(箕子)가 조선에 와서 단군조선에 이어 건국하였다고 전하는 나라
- 기자조선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箕準(기준, aka 準王)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김, 그래서 위만조선이 시작함
- "도망을 해서 韓의 지역에 (삼한: 마한·진한·변한) 거주하면서 스스로를 韓王이라 칭했다"
- 위략 (魏略) 이란 책에서는
- "箕準의 아들과 친척으로서 나라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그대로 韓氏를 사칭하였다"
-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부터 성씨 사용
- e.g. 공자 = 성: 孔 (공), 이름: 丘 (구), 맹자 = 孟軻
- 한국에서 子로 칭하게 되는 학자 두명은 퇴계 이황 (李子) 와 송시열 (宋子)
- 서양의 성씨 - surname or family name
- 조선 말기 보통 사람들은 字 와 號 가 있었다
- 이름이 있지만 문서에 기입할때만 사용하고 보통때는 사용하지 않음 (피휘 - 避諱)
- 字는 친구들끼리 사용되는 명칭
- 號는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이름
- e.g. 정몽주, 호: 포은, 字: 달가(達可)
- 奇 (기) 는 箕 (기) 氏 를 같은 가족으로 여김
- 선조실록
- 윤근수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가 왕에게 "세상에 전하기로 청주 한씨가 기자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 윤영경이 아뢰기를, "마한, 진한, 변한이 삼한의 국호였으므로, 한을 가리켜 기자의 후손이라 하는 것입니다" 라고 했고
- 윤근수 曰 "공가, 인가, 선우가 도 다 기자의 후손입니다. 대개 기자의 작은 아들이 우(于)에 봉해졌으므로 선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시(古時)에 '기자의 후손에는 털복숭이가 많다'라고 했는데 대개 선우추(鮮于樞, 사)를 가리킨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왕족의 성씨
- 고구려의 고주몽은 고구려의 高를 자신의 성으로 삼았다
- 백제의 왕족은 부여(夫餘)氏
- 신라의 朴 은 박혁거세가 박같은 알에서 나왔다하여 박씨
- 신라의 금씨는 금궤작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하여 김알지
- 신라의 석(昔)씨는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 출생으로, 처음에 그 국왕이 여국왕의 딸을 데려다 아내로 삼았더니 아이를 가진 지 7년 만에 큰 알을 나았다
- 신라의 6촌성 (이,최,손,정,배,설)
- 中의 신당서 란 책
- 당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책
- 신라전: "왕의 성은 김씨이고 귀인의 성은 박씨이다. 백성들에게는 성이 없고 이름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