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生麗水 玉出崑岡: Difference between revi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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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水는 在雲南省永昌府하니 土人이 取沙於水하여 淘汰<ref group="注">淘汰 : 물에 일어서 잡물질을 씻어 없애고 제거하는 것이다.(≪漢≫)  
麗水는 在雲南省永昌府하니 土人이 取沙於水하여 淘汰<ref group="注">淘汰 : 물에 일어서 잡물질을 씻어 없애고 제거하는 것이다.(≪漢≫)  
淘와 汰는 모두 일어낸다는 뜻이다.</ref>百鍊<ref group="注">鍊 : 제거하여 精髓만 남게 하는 것이다. 湅은 실을 다룸[治]이고 練은 비단을 다룸이고 鍊은 쇠를 다룸인데, 모두 빨거나 일어내어 정수만 남게 하려는 것이니, 단지 다루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룬다[治]는 것은 녹여 사라지게 함[銷]이니, 引伸되어, 무릇 제거하여 정수만 남게 함을 鍊이라고 한다.(≪說文≫ 鍊 段注)</ref>하면 則成金하나니라
淘와 汰는 모두 일어낸다는 뜻이다.</ref>百鍊<ref group="注">鍊 : 제거하여 精髓만 남게 하는 것이다. 湅은 실을 다룸[治]이고 練은 비단을 다룸이고 鍊은 쇠를 다룸인데, 모두 빨거나 일어내어 정수만 남게 하려는 것이니, 단지 다루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룬다[治]는 것은 녹여 사라지게 함[銷]이니, 引伸되어, 무릇 제거하여 정수만 남게 함을 鍊이라고 한다.(≪說文≫ 鍊 段注)</ref>하면 則成金하나니라<br>
崑은 山名이니 在荊山之陽<ref group="注">陽 : 물의 북쪽, 산의 남쪽을 지칭한다.(≪春秋穀梁傳≫ 僖公 28년) 물에서 볼 때 북쪽은 산에서 볼 때 남쪽으로 모두 양지쪽이 되는 곳이다.</ref>이라 楚人卞和가 得玉於此하여 獻於成王<ref group="注">成王 : 文王 또는 共王으로 쓰인 곳이 있으나, 여러 전적에 문왕이 많이 나타난다.</ref>하니 名和氏璧<ref group="注">楚人卞和……名和氏璧 : 楚나라 사람 卞和가 楚山에서 璞玉을 얻어 厲王에게 올리자, 여왕이 玉工을 시켜 감정하게 하였는데, 옥공이 돌이라고 하자 여왕은 변화가 속였다고 하여 그의 왼쪽 다리를 베었다. 여왕이 죽고 武王이 즉위한 뒤 변화가 또 그 박옥을 받들어 올리자 무왕이 옥공을 시켜 감정하게 하였는데, 또 돌이라고 하자 무왕은 또 변화가 속였다고 하여 그의 오른쪽 다리를 베었다.
崑은 山名이니 在荊山之陽<ref group="注">陽 : 물의 북쪽, 산의 남쪽을 지칭한다.(≪春秋穀梁傳≫ 僖公 28년) 물에서 볼 때 북쪽은 산에서 볼 때 남쪽으로 모두 양지쪽이 되는 곳이다.</ref>이라 楚人卞和가 得玉於此하여 獻於成王<ref group="注">成王 : 文王 또는 共王으로 쓰인 곳이 있으나, 여러 전적에 문왕이 많이 나타난다.</ref>하니 名和氏璧<ref group="注">楚人卞和……名和氏璧 : 楚나라 사람 卞和가 楚山에서 璞玉을 얻어 厲王에게 올리자, 여왕이 玉工을 시켜 감정하게 하였는데, 옥공이 돌이라고 하자 여왕은 변화가 속였다고 하여 그의 왼쪽 다리를 베었다. 여왕이 죽고 武王이 즉위한 뒤 변화가 또 그 박옥을 받들어 올리자 무왕이 옥공을 시켜 감정하게 하였는데, 또 돌이라고 하자 무왕은 또 변화가 속였다고 하여 그의 오른쪽 다리를 베었다.
무왕이 죽고 文王이 즉위하자 변화가 그 박옥을 안고 초산 아래에서 3일 밤낮으로 통곡하니 눈물이 다하고 이어서 피가 흘렀다. 문왕이 그것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 연유를 묻기를 “천하에 발을 잘린 사람이 많은데 그대는 어찌 통곡하기를 슬피 하는가!” 하니, 변화가 말하기를 “나는 발을 잘린 것을 슬퍼함이 아니라, 寶玉을 돌이라 품평하고 정직한 선비를 사기꾼이라고 부르니, 이것이 내가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하였다. 문왕이 마침내 옥공을 시켜 그 박옥을 다루게 하여 寶玉을 얻고 마침내 명명하여 和氏之璧이라 하였다.(≪韓非子≫ 卷4 〈和氏〉)</ref>이라 後爲秦璽<ref group="注">秦璽 : 傳國璽. 傳國寶. 秦나라 이후 皇帝가 대물려 전하던 印章이다. 唐나라 때 傳國寶라고 개칭하였다. 李斯가 篆文으로 쓴 “受命于天 旣壽永昌(명을 하늘에서 받아 이미 오래갔고 영원히 창성한다)” 8글자를 새겼는데 秦나라가 망하자 漢나라로 갔다.(≪漢≫)</ref>
무왕이 죽고 文王이 즉위하자 변화가 그 박옥을 안고 초산 아래에서 3일 밤낮으로 통곡하니 눈물이 다하고 이어서 피가 흘렀다. 문왕이 그것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 연유를 묻기를 “천하에 발을 잘린 사람이 많은데 그대는 어찌 통곡하기를 슬피 하는가!” 하니, 변화가 말하기를 “나는 발을 잘린 것을 슬퍼함이 아니라, 寶玉을 돌이라 품평하고 정직한 선비를 사기꾼이라고 부르니, 이것이 내가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하였다. 문왕이 마침내 옥공을 시켜 그 박옥을 다루게 하여 寶玉을 얻고 마침내 명명하여 和氏之璧이라 하였다.(≪韓非子≫ 卷4 〈和氏〉)</ref>이라 後爲秦璽<ref group="注">秦璽 : 傳國璽. 傳國寶. 秦나라 이후 皇帝가 대물려 전하던 印章이다. 唐나라 때 傳國寶라고 개칭하였다. 李斯가 篆文으로 쓴 “受命于天 旣壽永昌(명을 하늘에서 받아 이미 오래갔고 영원히 창성한다)” 8글자를 새겼는데 秦나라가 망하자 漢나라로 갔다.(≪漢≫)</ref>
하니라
하니라
麗水는 雲南省 永昌府에 있는데, 이 지방 사람들이 물에서 모래를 건져내어 일어서 백 번을 精鍊하면 금이 생성된다.
 
麗水는 雲南省 永昌府에 있는데, 이 지방 사람들이 물에서 모래를 건져내어 일어서 백 번을 精鍊하면 금이 생성된다.<br>
崑은 산 이름이니 荊山의 남쪽에 있다. 楚나라 사람 卞和가 이 산에서 玉을 얻어 成王에게 바치니, 和氏璧이라고 불렀는데, 뒤에 秦나라의 玉璽가 되었다.
崑은 산 이름이니 荊山의 남쪽에 있다. 楚나라 사람 卞和가 이 산에서 玉을 얻어 成王에게 바치니, 和氏璧이라고 불렀는데, 뒤에 秦나라의 玉璽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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