川流不息 淵澄取暎: Difference between revi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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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on as of 21:18, 10 August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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川流不息하고 淵澄取映[注 1][注 2][注 3]이라 (川流不●息●하고 淵澄取◯映◉이라)

()냇물은 흘러 쉬지 않고, 못 물은 맑아 비침을 취한다.

水之逝者爲川이니 其流日夜不息하니 以喩君子乾惕[注 4]不已也라
水之停者爲淵이니 其澄足以取映하니 以喩君子獨觀昭曠也라
물이 흘러가는 것을 내라 하는데, 그 흐름이 밤낮으로 쉬지 않으니, 군자가 힘쓰고 두려워하여 그치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못이라 하는데, 그 맑음이 충분히 비추어낼 수 있으니, 군자가 홀로 보는 것이 밝으며 활달함을 비유한 것이다.

[節旨] 효도는 온갖 행실의 근원이어서 능히 부모에게 효도하면 덕이 있는 사람이 되므로 비유를 설정하여 찬미하였다.(≪釋義≫)
[節解] 그 德이 향기로운 것은 난초와 같고, 그 덕이 무성한 것은 소나무와 같고, 그 덕이 순수하여 일정하면서 끊어지지 않는 것은 냇물이 흘러서 그치지 않는 것과 같고, 그 덕이 깨끗하여 더러움이 없는 것은 못이 맑아서 비칠 수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釋義≫)

川流不息

川流不息

(韓) 내가 흘러 쉬지 아니하니 군자의 행지를 말한 것이다.

(簡) 흐르는 물은 쉬지 않으며

내(川)가 흘러 쉬지 아니하니 군자의 行志를 말한 것이다.내(川)가 아니 흐르거나 쉼이 없으니 군자의 行志와 같다. 내 천(川), 흐를 류(流), 아닐 불(不), 쉴 식(息)

한자 유래

천류불식(川流不息)이란 즉, '냇물이 쉬지 않고 흐른다'는 공자(孔子)의 이야기에 나온다. 어느 날 공자(孔子)가 흐르는 시냇물을 보며, '가는 세월(歲月)이 흐르는 냇물과 같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흐르네'라고 읊었다. 이에 공자(孔子)는 인생(人生)도 시냇물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흘러가므로, 더욱 부지런히 도(道)와 학문(學問)을 닦아야 한다고 자신을 일깨운 것이다. 이는 "논어(論語)" '자한(子罕)'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내 천(川)은 상형글자로 자형 양 쪽은 물이 범람(汎濫)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쌓아 올린 제방(堤防)을 뜻하며, 가운데 자형(丨)이 물길을 의미(意味)하고 있다. 즉 사람들의 손길을 통해 만들어진 하천(河川)이라는 의미(意味)를 담고 있다. "설문(說文)"에서는 “川은 뚫어서 관통(貫通)하여 흐르게 하는 물이다.”고 하였다. 갑골문(甲骨文)의 자형(字形)은 양쪽 언덕사이로 물이 흘러가는 모양(模樣)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인공적(人工的)인 하천을 말한다. 즉 자형의 가운데 ‘丨’이 물줄기를 뜻하고 좌우는 인공적(人工的)으로 쌓아올린 제방(堤防)을 의미(意味)한다. 고대(古代)의 정책(政策) 중 가장 중요(重要)한 일이 곧 물길을 다스리는 치수(治水)였듯이 제방(堤防)을 쌓아 물이 범람(汎濫)하지 않도록 했음이 천(川)자에 담겨 있다.

흐를 류, 유(流)는 물 수(氵)와 깃발 류(㐬)로 구성(構成)되었다. 수(氵)는 물줄기가 갈라지고 합(合)해지는 강을 본뜬 물 水(수)를 간략(簡略)히 세 개의 물방울로 표시(表示)한 것으로 여기서는 양수(羊水)를 뜻한다. 류(㐬)의 자형 상부는 산모(産母)의 자궁(子宮)에서 막 태어나려는 아이(子)가 거꾸로 머리를 내밀고 나오는 모양(模樣)이며 하부의 ‘川’ 모양(模樣)은 출산(出産) 시 먼저 터져 아이의 출생(出生)을 돕는 양수(羊水)를 기호화(記號化)한 것이다. 그러나 후대(後代)로 오면서 류(㐬)가 본뜻을 잃고 ‘깃발’이란 뜻으로 쓰이자, 양수(羊水)를 뜻하는 수(氵)를 더해 류(流)를 만들었는데 이 역시 본래의 의미(意味)는 거의 상실(喪實)하고 단지 물이 ‘흐르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아닐 불(不)의 갑골문(甲骨文)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模樣)이나, 허신(許愼)이 "설문(說文)"에서 “불(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一)로 구성(構成)되었으며, 일(一)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象形字)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解釋)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否定)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副詞)로 가차(假借)되어 쓰이고 있다.

숨 쉴 식(息)은 스스로 자(自)와 마음 심(心)이 위아래로 놓여 있다. 자(自)는 ‘자기(自己) 자신(自身)’을 가리킨다. 그러면 ‘휴식(休息)’은 ‘마음을 스스로 쉬게 한다’는 뜻이다. 자(自)는 원래 코를 본떠 만든 글자이다. 양쪽 콧방울을 둥그렇게 표시(表示)한 것을 보면 제법 그럴싸하다. 심(心)은 심장(心臟)을 뜻한다. 옛날 사람들은 코와 심장(心臟)이 연결(連結)된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코는 심장(心臟)보다는 폐(肺)와 더 관련(關聯) 있다. 하지만 심장(心臟)과 연결(連結)됐다는 것도 엄밀(嚴密)히 따지면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몸에 필요(必要)한 산소(酸素)와 호흡(呼吸)의 찌꺼기인 이산화탄소는 혈액(血液) 속에서 교환(交換)된다. 산소(酸素)를 가득 담은 신선(新鮮)한 혈액(血液)은 심장(心臟)에서 나와 온몸을 돌며 노폐물(老廢物)을 실은 후 다시 심장(心臟)으로 돌아온다. 그리곤 폐(肺)로 간다. 폐(肺)에서 산소(酸素)를 가득 채워 깨끗한 피로 탈바꿈한 뒤 다시 심장(心臟)으로 가 온몸을 도는 것이다. 그래서 코와 심장(心臟)의 연결(連結)을 의미(意味)하는 식(息)은 ‘숨 쉰다’는 뜻을 갖게 됐다.

주역

[풀이] 공자는 '서자여수(逝者如水)' 즉 세월의 지나감이 흐르는 물과 같다고 말씀하였는데, 여기서는 내가 흐르고 흘러 바다에 이르듯이 군자가 끊임없이 노력하여 매사에 지극한 정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중용(中庸)에 "작은 덕은 냇물처럼 흐르고 큰 덕은 만물을 두텁게 화육한다(小德川流 大德敦化)" 하였고, 주역(周易)에도 "하늘의 운행이 굳세므로 군자가 이를 본받아 스스로 굳세게 해서 쉬지 않는다(天行健 君子以 自彊不息)"고 하였다.

[字義] 천(川)은 수로가 정비되어 물이 일정하게 흐르는 시내를 뜻한다. 流는 가득 채워진(充) 물이 마침내 넘쳐서 두루 아래로 흘러내림을 나타낸다. 不은 하늘로 향하여 날아오르는 새를 본뜬 것인데, 그칠 줄 모르고 끝까지 나아가지 말라는 즉 '아니'라는 부정(否定)적 의미로 쓰인다. 하나(一)보다 작은 것(小)은 없다. 또는 木(나무 목)에서 위의 줄기가 잘린 상태이므로 더 이상 자라지 못한다는 뜻도 된다. 息은 自(스스로 자)와 心(마음 심). 심장부(心)로부터 코로 빠지는 숨, 잔잔한 숨에서 '쉬다'는 뜻이 된다. 자(自)는 사람의 코를 본뜬 글자로 숨은 저절로 쉬어지기에 '스스로 자', 숨을 쉬면서부터 생명활동이 시작되므로 '~로부터'라는 전치사로도 쓰인다. 마음으로부터(心+自) 모든 생각이 일어나므로 息에는 '불어나다'는 뜻도 아우르고 있다.

[참조] 식(息)은 생명활동이 코의 호흡과 심장의 맥박으로 유지됨을 나타낸 글자이다. 평균 1분마다 18회 호흡을 하고 72회 맥박이 뛰므로 천체가 한 바퀴 도는 天行의 하루 24시(1천440분)를 주기로 하여 총 12만9천600회의 호흡과 맥박의 활동이 이루어진다. 주역에서는 한 해의 주기(1歲 12月 360日 4천320辰)를 대연(大衍)한 천체운행의 기본대주기를 1元 12會 360運 4천320世로 보는데, 30歲가 1世이므로 1元은 총 12만9천600歲를 주기로 한다.

淵澄取暎

淵澄取暎

(韓) 못이 맑아서 비치니 즉 군자의 마음을 말한 것이다.

(簡) 맑은 물은 깊이 비친다.

못이 맑아서 비치우니 즉 군자의 마음을 말한 것이다.(못이 취한 맑은 영상은 군자의 마음과 같다) 못 연(淵),맑을 징(澄),취할 취(取), 비칠 영(映) 쉬지 아니하고 흐르는 냇물을 군자의 行志에 비유한 것이고, 쉬지 않고 졸졸 흐르는 작은 냇물도 마침내 큰 강에 이르고 또 큰 바다를 이룬다. 이것을 군자의 나아가는 품위에 비유를 했다. 즉 작은 뜻에서 결코 큰 뜻을 이루다. 사람도 덕을 닦는데 게을리 하거나 좌절하지 아니하고 학문을 깊이 연구하면 성현의 경지에 도달 할 수 있는 것이다. 淵徵取影은 맑은 물이 찬 연못에 비추어지는 영상 (映像):비추어지는 (형상)形狀)처 럼 자연스럽게 취해 지는 이라.이 뜻은 마치 거울 가까이 하는 물체의 형상이 거울에 비추어지듯 노력의 대가는 자연스럽게 사실 그대로 나타난다는 뜻이 된다.

한자 유래

군자(君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自身)에게 힘쓰고 자신(自身)을 경계(警戒)하여 노력(努力)함을 쉬지 않아야 하며, 세상(世上)의 여론(輿論)과 속세(俗世)의 풍습(風襲)에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높고 밝게 볼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군자(君子)는 길이 아니면 가지 않고, 말이 아니면 듣지 않으며, 뜻이 맞지 않으면 행동(行動)하지 않는다고 했다. '연징취영(淵澄取映)'이란 즉 '못의 물이 밝으면 비춰 볼 수 있다'는 말인데, 군자(君子)의 명결(明潔)한 면모(面貌)를 보여준다.

못 연(淵)의 고자(古字)는 연(囦)이고 속자(俗字)는 연(渊=渕)이다. 즉 연(淵)자는 형부(形)인 물(氵)과 성부(聲)인 '연못 연(囦)'으로 된 형성자(形聲字)이다. 그러니 연(淵)자는 물(氵)이 연못(囦)에 고이도록 가두고 서서히 흘려보내는 '못(淵)'을 뜻한다. 성부인 연(囦)자는 '못 연(淵)'자의 본의(本意)를 담고 있다. 연(淵)자는 본디 일정 구역(口)과 그 안에 흐르는 개념(槪念)인 '물(川)'처럼 세 줄로 나타낸 그림이었다. 그 후 물(氵)과 위아래로 흐를 수 있도록 입구와 출구가 난 '巛' 꼴이 되면서 지금의 연(淵)자가 되어 '못(囦), 소(沼), 웅덩이(淵)'를 뜻한다. 이 뜻 외에도 물이 못에 많이 모여서 깊고 조용하다는 의미(意味)에서 '물건(物件)이 많이 모이는 곳, 깊다, 조용하다(淵)'라는 뜻으로 확장(擴張)되었다. 연(淵)자와 같은 입력(入力)과 출력(出力)의 균형(均衡)이 뚜렷한 개념(槪念)으로 비유(比諭)되는 역사(歷史)의 인물(人物)로 고구려(高句麗) 말기(末期) 대막리지(大莫離支) 장군(將軍)이었던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있다. 일명 천개소문(泉蓋蘇文)으로도 불린 그는 성씨로 보아 연(淵)자의 절제(節制)된 균형성(均衡性)과 천(泉)자의 샘솟는 생동감(生動感)을 연상(聯想)케 한다.

맑을 징(澄)자는 형부인 물(水→氵)과 성부인 '오를 등(登)'자가 '징'으로 전음(轉音) 된 형성자(形聲字)이다. 그러니 징(澄)자는 물(氵)이 위로 오를수록(登) '맑다(澄)'라는 뜻이다. 성부인 등(登)자는 '맑을 징(澄)'자의 본의(本意)를 담고 있다. 등(登)자는 두발(癶)과 오르는 단(豆) 및 두 손으로 디딤대를 받치는 꼴을 그려 디딤대를 두 손으로 옮겨 놓고 그 위에 두발로 말(馬)을 올라탄다는 의미(意味)에서 '오르다(登)'라는 뜻이 된 회의자(會意字)이다. 따라서 물줄기에서 상류(上流)로 올라갈수록 변(變)하는 물의 성질(性質)을 나타내는 징(澄)자는 물(氵)이 위로 오를수록(登) '맑다(澄)'라는 뜻이다. 물(氵)은 수원(水源)을 따라 올라갈수록(登) 맑아지므로징(澄) 징수(澄水)를 발생(發生)하게 된다. 맑고 깨끗한 청징(淸澄)의 물은 고려(高麗) 때 왕세자(王世子)가 학문(學文)을 닦던 징원당(澄源堂)이 있을 정도로 가치(價値) 있게 여겼다. 청징(淸澄)한 물을 벗하는 마음은 밝고 맑은 명징(明澄)의 마음을 지니게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물처럼 맑은 징주(澄酒)는 너무 맑아 취하는 줄 모르니 마음마저 맑은 샘물(泉)을 찾아 올라가는 주도(酒道)가 몸에 베이도록 힘쓰는 것도 애주가(愛酒家)에게는 의미(意味) 있는 일일 것이다.

취할 취(取)는 귀 이(耳)와 오른 손을 뜻하는 또 우(又)로 구성(構成)되었는데, 자형(字形)에 담긴 뜻은 전쟁(戰爭)의 참혹(慘酷)함이 그대로 반영(反映)되어 있다. 고대(古代)의 부족(部族)이나 혹은 나라 간의 전쟁(戰爭)에서 승리자(勝利者)는 적군(敵軍)의 한 쪽 귀(耳)를 잘라 전리품(戰利品)으로 삼는 풍속(風俗)이 있었다. 즉 상대(相對)의 귀(耳)를 잘라 꾸러미에 꿰어 손(又)에 들고 온 숫자로써 전공(戰功)을 따졌는데, 이에 따라 ‘취(取)하다’ ‘손아귀에 넣다’라는 뜻이 발생(發生)했다.

비칠 영(暎)자는 형부인 해(日)와 ‘꽃부리 영(英)’으로 된 형성자(形聲字)이다. 즉 영(暎)자는 해(日)가 꽃부리(英)를 두르듯 ‘비추다(暎)’라는 뜻이다. 성부인 영(英)자는 ‘비출 영(暎)’자의 본의(本意)를 담고 있다. 영(英)자는 형부인 풀(艸→艹)과 ‘가운데 앙(央)’자가 ‘영’으로 전음(轉音) 된 형성자(形聲字)이다. 따라서 영(英)자는 풀(艹)이 큰사람의 목 가운데(央)에 멍에를 두르듯 꽃잎을 두른 ‘꽃부리(英)’를 뜻한다. 그런데 여기서 ‘꽃부리 영(英)’자의 성부인 앙(央)자는 형부인 큰사람(大)과 보조형부인 ‘멀 경(冂)’으로 된 회의자(會意字)이다. 이에 앙(央)자는 큰사람(大)이 멀리(冂) 오래 가려고 가운데에 멍에를 맸다는 의미(意味)에서 ‘가운데(央)’를 뜻한다. 그런데 앙(央)자는 본디 큰사람(大)이 멀리(冂) 오래가려고 가운데에 멍에를 맸다는 의미(意味)에서 ‘가운데(央)’를 뜻한다. 따라서 큰사람이 목 가운데에 멍에를 한 듯 한 풀 부위를 나타내는 영(英)자는 풀(艹)이 큰사람의 목 가운데(央)에 멍에를 두르듯 꽃잎을 두른 ‘꽃부리(英)’를 뜻한다. 또한 영(英)자는 큰사람의 목 가운데(央)에 멍에처럼 화환(花環)을 두르는 장면(場面)을 연상(聯想)하더라도 ‘재주가 뛰어나다, 빼어나다, 명예(英)’라는 뜻으로 확장(擴張)되었음을 짐작(斟酌)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재주가 빼어나 명예(名譽)로움으로 화환(花環)을 두른 듯한 꽃부리처럼 해가 비추는 것을 나타내는 영(暎)자는 해(日)가 꽃부리(英)를 두르듯 ‘비추다(暎)’라는 뜻이다.

주역

[풀이] 맑고 고요한 연못의 물속 정경은 실제보다 가까이 환히 투영되어 보인다. 마음을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이 고요히 가라앉혀서 욕심으로 인한 갈등과 번민을 버리라는 내용으로, 끊임없는 노력을 강조한 앞의 천류불식(川流不息)과 그 동정(動靜)이 극명 대비되는 문구이다.

[字義] 淵은 수(水)를 뺀 것이 본래의 자형인데, 좌우의 언덕을 경계로 물이 빙빙 맴도는 모습 즉 물에 의해 패어진 연못을 나타낸다. 澄은 水(수)와 登(등). 登은 발판(豆)을 밟고(눸) 위로 올라섬을 뜻하는데, 물이 맑으면 실제 밑바닥보다 위로 올라와 보이는 것에서 '맑다'는 뜻이 되었다. 연관된 글자로 높은 단 위에 올라서 사실을 명확하게 밝힌다는 證(증거 증)이 있다. 取는 耳(귀 이)와 又(또 우). 옛날 전쟁터에서 죽인 적의 왼쪽 귀(耳)를 손(又)으로 베어내어 전공(戰功)의 징표를 삼은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손이 되어 늘 곁에서 도와주고 귀가 되어 밖에서 들리는 소식(소문)을 알려주는 중요한 조력자를 얻었다는 뜻도 된다. 取의 음과 뜻을 취한 글자로 聚(모일 취)와 娶(장가들 취) 등이 있다. 映은 日(날 일)과 央(가운데 앙). 중천에 솟아오른 해가 사방을 두루 빛을 비춤을 나타낸다.

[참조] 천도운행은 종즉유시(終則有始)하여 끝없이 순환하여 반복하므로 주역에서는 어두운 음들이 밝은 양을 깎아먹는 박괘(剝卦: 음 9월괘) 다음에 다시 음들 밑에서 한 양이 되살아나는 복괘(復卦: 음 11월괘)를 놓았다. 생명이 진멸(盡滅)되지 않고 부활(復活)한다는 것인데, 복즉불망(復則不妄) 즉 밝은 본성을 회복하면 조금도 망령된 마음이 없게 되므로 복괘 다음에 무망괘(无妄卦)를 두었다. 復(복)과 无妄(무망)을 川流不息(천류불식)과 淵澄取映(연징취영)에 연계해 봄직하다.

  1. 川流不息 淵澄取映 : 川은 물이 흐르는 것이다. 流는 간다는 뜻이다. 息은 그친다는 뜻이다. 淵은 물이 그친 것이다. 澄은 맑다는 뜻이고, 映은 비춘다는 뜻이니, 물이 맑으면 사물을 비출 수 있다.(≪釋義≫)
  2. 川流不息 : 孔子가 냇가에 있으면서 말하였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 쉬지 않는다.”(≪論語≫ 〈子罕〉)
  3. 淵澄取映 : “정신은 지혜의 못이다. 정신이 맑으면 지혜가 밝아진다. …… 사람은 흐르는 장마 물에서는 보는 것이 없으나 맑은 물에서는 보게 되는데 맑고 또 고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신이 맑고 뜻이 평안해야 사물의 실정을 형용할 수 있다.”(≪文子≫ 卷上 〈守清〉)
  4. 乾惕 : “군자가 종일토록 부지런히 힘써 저녁까지 삼가 두려워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으리라.”에서 줄인 것이다.(≪周易≫ 〈乾卦 九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