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受傅訓 入奉母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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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受傅[注 1]訓하고 入奉母[注 2][注 3]라 (外◑受◯傅◑訓◑하고 入●奉◯母◯儀◎라)

()밖으로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안으로는 어머니의 법도를 받든다.

男子十秊이면 出就外傅[注 4]而學焉이라 故曰 外受傅訓이라하니라
女子十秊이면 不出하며 聽從姆敎[注 5]라 故曰 入奉母儀라하니라

남자는 10세가 되면 바깥의 스승에게 나아가 배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밖으로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다.”고 한 것이다.
여자는 10세가 되면 밖에 나가지 않으며 여자 스승의 가르침을 들어 따른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안으로는 어머니의 거동을 받든다.”고 한 것이다.

外受傅訓

外受傅訓

(韓) 팔세면 바깥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簡) 밖에소도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며

8歲면 바깥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바깥 외(外),받을 수(受),스승 부(傅)가르칠 훈(訓)

한자 유래

외수부훈(外受傅訓)이란 남자가 열 살이 되면 집을 나가 스승을 따라 배운다. 밖(外)에서 생활(生活)하면서 거친 옷을 입고 기본 학문(學問)인 육서(六書)와 수리(數理)를 계산(計算)하는 법을 배우는 것을 말한다. 13세가 되면 음악(音樂)을 배우고 시(詩)를 암송(暗誦)하며, 15세가 되면 활(弓)쏘기와 말(馬) 다루는 법을 배우며, 20세가 되면 관(冠)을 쓰고 성인(成人)이 된다.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예(禮)를 배우며 비단 옷(緋緞衣)을 입을 수 있다. 여기에서 육서(六書)란 한자가 만들어지는 여섯 가지의 기본 법칙(基本法則)이다. 즉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가차(假借) 전주(轉注)를 말한다.

밖 외(外)의 구성(構成)은 저녁 석(夕)과 점 복(卜)으로 짜여 있다. 석(夕)은 해가 서산(西山)으로 지고 반달이 동쪽 산허리에 걸친 모양(模樣)이라 할 수 있다. 갑골문(甲骨文)에는 반달 모양으로 그려져 있어 월(月)이나 석(夕)의 구분(區分)이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다 후대로 오면서 월(月)은 달 자체를, 석(夕)은 밤을 뜻하다, 밤을 뜻하는 야(夜)의 등장(登場)으로 석(夕)은 또다시 해질녘으로 세분화 (細分化)되었다. 복(卜)은 거북이를 불에 굽기 위해 올가미를 씌워 옆에서 본 것을 상형화(象形化)한 글자로 특히 복갑(腹甲)의 갈라진 금을 보고서 점을 쳤다. 그 갈라진 금(卜)을 보고서 말(口)해 주는 게 바로 점(占)이다. 이러한 행위(行爲)는 해 뜰 무렵인 이른 아침(早)에 점(卜)을 보아야야만 신의 계시(啓示)를 탁월(卓)하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이지, 신성(神聖)한 기운이 사라진 밤(夕)에 보는 점(卜)은 계시에서 벗어난다(外)고 여겼다.

받을 수(受)의 구성(構成)은 손톱 조(爫)와 덮을 멱(冖), 그리고 또 우(又)로 이루어졌다. 조(爫)에 대해 허신(許愼)은 "설문(說文)"에서 “조(爪)는 손으로 잡는다는 뜻이다.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게 하는 것을 ‘조(爪)’라 하며 상형글자(象形字)이다.”라고 하였다. 반면에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하는 것은 ‘장(掌)’이라고 한다. 다른 부수에 더해져 자형을 이룰 때 주로 조(爫)로 쓰이는 경우(境遇)가 많다. 여기서 멱(冖)은 어떤 물건(物件)을 뜻한다. 우(又)는 오른 손을 세 손가락으로 줄여서 만든 상형글자(象形字)로 왼손에 비해 자주 쓰기 때문에 ‘또’ ‘다시’라는 의미(意味)로 확장(擴張)되었으나 다른 자형에 더해질 때는 주로 ‘손’이라는 뜻을 지닌다. 따라서 수(受)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손(爫)으로 어떠한 물건(冖)을 잡아서 주니 오른 손(又)으로 받는다는 데서 ‘받다’ ‘얻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스승 부(傅)자는 형부(形)인 사람(亻)과 성부(聲)인 '펼 부(尃)'로 된 형성자이다.그러니 부(傅)자는 사람(亻)이 펼치듯(尃) 남을 위해 '시중들다(傅)'라는 뜻이다. 성부인 부(尃)자는 '시중들 부(傅)'자의 본의(本意)를 담고 있다. 부(尃)자는 촌(寸部) 글자로 형부인 손마디(寸)와 성부인 '클 보(甫)'자가 '부(尃)'로 전음(轉音) 된 형성자(形聲字)이다. 그러니 부(尃)자는 손마디(寸)가 큰(甫) 베틀 북을 좌우로 오가며 '펼치다(尃)'라는 뜻이다. 그리고 보(甫)자는 통(用)과 그 속에서 싹(屮)이 나오는 듯한 실로 베 짜는 베틀 북을 그린 상형자(象形字)이다. 그런데 통은 '보, 용(甫=用)'으로 바뀌고 나오는 실을 의미하는 싹(屮)은 통을 움직이는 손목(寸)으로 바뀌어 손목마디(寸)에 힘을 써서(用) 북통을 좌우로 펼치는(甫) 동작을 나타내게 되었다. 북은 많은 씨실을 담아서 큰 모양(模樣)으로 되어있고 세로로 놓인 날실의 틈새를 겨우 오갈 수 있으며, 좌우 왕복운동을 함으로써 비로소 베를 짤 수 있다. 이런 배경(背景)이 스민 보(甫)자는 '크다, 많다, 씨, 겨우, 깔다, 두루 알리다(傳)'라는 뜻이다. 따라서 북이 오가며 펼치는 듯한 사람의 행위(行爲)를 나타내는 부(傅)자는 사람(亻)이 펼치듯(尃) 남을 위해 '시중들다, 돌보다, 돕다, 베풀다(傅)'라는 뜻이다. 이런 일은 주로 사제지간에 사부(師傅)가 제자 가까이에 붙어서 바르게 베푸는 역할(役割)이므로 부(傅)자가 '스승, 바르다, 가까이 하다, 붙다(傅)'라는 뜻으로 확장(擴張)된다. 부(傅)자 안에 있는 보(甫)자는 자손의 씨앗을 담고 있는 통(用)이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며, 씨앗이 발아한 싹(屮)과 같은 씨실은 남성의 정액(精液)을 상징한다. 한편 날실은 여성의 성기(性器)를 상징함으로써 조물주인 아낙네가 베틀이라는 세상을 주관(主管)하며, 수평으로 오가는 남성인 북의 씨실과 수직으로 여성인 날실이 음부(陰部)가 패인 각도(角度)를 유지하며 위아래로 교차(交叉)시키며 자손이라는 베를 짜는 큰 일을 하는 것이다. 이는 한갓 성행위(性行爲)로만 보면 피식 웃음이 나겠지만 조물주가 북(甫)을 손(寸)으로 움직여 펼침(尃)으로써 생명 탄생(誕生)의 숭고(崇高)함을 생각하면 사부(師傅)가 북(甫)을 손(寸)으로 움직이듯 제자를 이끌어 바르게 가르치려고 펼치는(尃) 일이 얼마나 숭고하고 고귀(高貴)한 일인지 알 수 있다. 그러니 천지를 주관하는 조물주(造物主), 베를 짜는 여인, 제자(弟子)를 가르치는 스승은 이런 점에서 맥이 통한다. 나무에도 돌에도 가까이 붙일 곳이 없는 목석불부(木石不傅)처럼 가난하고 외로워 의지할 곳이 없는 물질적(物質的) 처지만 한탄(恨歎)한다. 그리고 정신적(精神的)인 가르침을 주시는 사부의 보살핌을 경시(輕視)하는 경향(傾向)이 있다. 사람(亻)이라면 남을 위해 펼치려고(尃) 시중드는(傅) 사부의 심정(心情)을 한번쯤 새겨볼 일이다.

가르칠 훈(訓)의 구성(構成)은 말씀 언(言)과 내 천(川)으로 짜여 있다. 언(言)에 대해 허신(許愼)은 "설문(說文)"에서 “직접 말하는 것을 言(언)이라 라고 여러 사람이 토론(討論)하는 것을 어(語)라고 한다. 구(口)로 구성(構成)되었으며 자형 상부의 '건(辛)의 하부에서 일(一)이 빠진 글자)'이 소리요소이다.”고 하였다. 즉 스스로 생각한 바를 입(口)을 통해 마음속을 꼭 찌르듯이(辛) 말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언(言)이 들어가는 글자는 입을 통해 소리로 묘사(描寫)하는 다양(多樣)한 행동(行動)적 양식(樣式)을 나타내게 된다. 천(川)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인공적(人工的)인 하천(河川)을 말한다. 즉 자형(字形)의 가운데 ‘丨’이 물줄기를 뜻하고 좌우는 인공적(人工的)으로 쌓아올린 제방(堤防)을 의미(意味)한다. 고대(古代)의 정책(政策) 중 가장 중요(重要)한 일이 곧 물길을 다스리는 치수(治水)였듯이 제방(堤防)을 쌓아 물이 범람(汎濫)하지 않도록 했음이 천(川)자에 담겨 있다. 따라서 훈(訓)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냇물(川)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이치(理致)를 좇아 다정다감(多情多感)한 말(言)로써 ‘가르치고, 타이르다’는 뜻이 담겨 있다.

주역

[풀이] 어려서는 부모의 슬하에서 사랑을 받고 자라지만 성장하면 밖으로 나아가 스승을 모시고 엄격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옛날에는 '君師父一體(군사부일체)'라 하여, 가르침을 베푸는 스승에 대해선 나라의 임금과 집안의 부모를 동일시하여 지극히 존숭하였다. 바깥짝인 入奉母儀(입봉모의)와 함께 내외출입의 도에 대한 설명문구라 할 수 있다.

[字義] 外는 夕(저녁 석)과 卜(점 복).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이른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점을 치는 것이 관례인데, 저녁에 점치는 경우는 예외(例外)라고 하여 '밖' 또는 '멀리함'을 가리키게 되었다고 한다. 受는 爪(손톱 조)와 눞(덮을 멱)과 又(또 우). 본래는 위(爪)에서 베풀어주는(눊) 사랑을 아래에서 '받아들임'을 뜻한다. 授(줄 수)는 受와 상대되는 '줌'을 이른다. 대개 눊 은 (덮어쓸 몽)과 蒙(입을 몽, 기를 몽) 등에서 보듯이 감싸주고 덮어주는 뜻이 있다. 傅(스승 부)는 人(사람 인)과 (펼 부). 널리 가르침을 펼치는 이, 즉 스승을 가리킨다. 는 甫(클 보)와 寸(마디 촌), 즉 법도(寸)에 맞추어 크게(甫) 폄을 나타내는데, 연관글자로 博(넓을 박) 縛(묶을 박) 搏(잡을 박) 敷(펼 부) 등이 있다. 訓은 言(말씀 언)과 川(내 천). 시내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자연한 이치에 순종하도록, 즉 순리(順理)를 타일러 가르치는 것에서 '가르치다'는 뜻을 나타낸다.

[참조] 卜은 대개 거북점을 칠 때 거북등의 균열(龜裂)된 조짐을 나타낸 글자로 보지만, 눀(뚫을 곤)과 눁(점 주) 즉 상천(上天)과 하지(下地)의 이치를 하나로 꿰뚫어 그 중간에 있는 사람으로, 대처할 길에 대해 분명히 점을 찍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지의 이치를 벗어나고 인륜의 법도를 벗어난 점이란 애당초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점(卜)을 치는 것은 자신을 벗어난 바깥세상, 즉 어둠침침한 저녁(夕)처럼 보이지 않는 미래(未來)의 일에 대해 대처하고자 함이다. 집안에서 고요히 머물러 있을 때엔 길흉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지만 밖으로 나아가 활동함에 따라 길흉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경계시키고자 밖을 뜻하는 外에 굳이 卜이란 글자를 넣은 듯하다.

入奉母儀

入奉母儀

(韓) 집에 들어서는 어머니를 받들어 종사하라.

(簡) 집에서는 어버이를 받들어 모시고

집에 들어서는 어머니를 받들어 종사하라. 들 입(入),받들 봉(奉),어미 모(母), 거동 의(儀) 우리 나라는 문물교환이 중국과의 많은 교류가 있었고 家錄도 중국과 연관하여 내용 많은 것은 사실이나 오늘날 우리글과 어우러져 중국글을 사용한기보다는 중국을 알고 중국의 문물 중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들을 알 수 있어 한문 공부를 하는 니 한문의 뜻을 우리에게 맞게 파악을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여기에서 바깥가르침을 전해받는다 함은 집안을 떠나 바깥에서 일어나는 메사를 전수(傳受) 한다 함이요, 8세 미만까지는 바깥일을 잘 모르는 것으로 주로 어머니중심의 가르침과 가족의 보호중심으로 지내 오다가 기발이 서서히 활발해짐으로서 내 집 밖의 대인 관계가 많은 학교생활과 함께 활발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밖에서 나에게 전해오는 모든 것이 스승이다. 이 말은 외수부훈(外受傅訓)에 근거한다. 어릴 때부터 외부에 나아가면 나를 낮추고 겸손할 줄 알아야 함을 훈계(訓戒)하고있다. 밖에 나아가 外受傅訓에 착실한 자는 집에 들어서는 어머니를 도와서 종사함에 행동을 올바르게 행할 것이며 어머니를 돕는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바로 입봉모의(入奉母儀)인 것이다.

한자 유래

입봉모의(入奉母儀)란 여자는 열 살이 되면 밖에 나가지 아니하며 여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유순(柔順)한 말씨와 태도(態度), 어른의 말을 잘 듣고 순종(順從)하는 법을 배우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여자의 일을 배워 삼베길쌈을 하고 누에를 길러 실을 뽑으며 비단(緋緞)과 명주(明紬)를 직조(織造)하여 집안에서 어머니가 지녀야 할 태도(態度)를 배운다는 말이다.

들 입(入)은 사람이 건물(建物)이나 경계(境界) 안으로 들어감을 추상적(抽象的)으로 표현(表現)한 지사문(指事文)자이다. 입(入)에 대해 "설문(說文)"에서는 “입(入)은 안으로 들어감을 말한다. 밖으로부터 안으로 들어가는 모양(模樣)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안 내(內)자를 살펴보면 보다 명확(明確)히 그 뜻을 유추(類推)할 수 있다. 자형 외곽의 멀 경(冂)은 들 坰(경)의 옛글자인데, 사람들이 거주(居住)하는 곳을 >고을 읍(邑)이라 하고, 읍 밖을 성 밖 교(郊)라 하며, 교(郊)의 밖을 들 야(野)라 하고, 야(野) 밖을 수풀 림(林)이라 하며, 림(林) 밖을 먼데 경(冂)이라 한다. 따라서 먼 곳(冂)으로부터 안으로 들어온다(入)는 뜻이 담겨 있다.

받들 奉(봉)의 구성(構成)은 풀이나 나무가 무성(茂成)하게 자란 모양(模樣)을 상형(象形)한 우거질 봉(丰)과 두 손으로 받들 공(廾), 그리고 사람 손 모양(模樣)을 본뜬 손 수(手)의 간략형(簡略形)으로 이루어졌다. 초기자형인 갑골문(甲骨文)에는 뿌리가 달린 나무를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모양(模樣)인데, 아마도 제사(祭祀)나 어떠한 기념(記念)으로 신령(神靈)스러운 나무를 심는 의식(儀式)일 것이다. 금문(金文)에서는 나무(丰)를 두 손으로 받든 모양(廾)이다가 소전(小篆)으로 오면서 나무(丰)를 두 손(又, 又)으로 받들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손(手)을 더해 ‘받들다’는 뜻을 강조(强調)하였다.

어미 모(母)는 두 손을 마주하고서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여자의 모양(模樣)을 본뜬 녀(女)자에 유방(乳房)을 가리키는 두 점을 강조(强調)하여 ‘아이를 낳아 젖을 주는 여자’, 즉 산모(産母)를 뜻하였으나 ‘어머니’라는 의미(意味)로 쓰이게 되었다. 요즘은 많아야 하나둘 아이를 낳지만 고대에는 다산(多産)이 곧 축복(祝福)이자 모두가 바라는 염원(念願)이었다.

모양 의(儀)자는 형(形)부인 사람(亻)과 성(聲)부인 '옳을 의(義)'로 된 형성자(形聲字)이다. 그러니 의(儀)자는 사람(亻)이 바르고 옳다(義)고 여기는 '거동(儀)'이라는 뜻이다. 성부인 의(義)자는 '거동 의(儀)'자의 본의를 담고 있다. 의(義)자는 끝에 양뿔(羊) 꼴로 장식한 자루와 자루보다 무겁고 날카로워 보이는 세 가닥의 날(我)을 그려 전투용 무기(武器)라기보다는 군율(軍律)의 상징으로 '옳은 일(義)'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런 군율 밑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儀)자는 사람(亻)이 군율처럼 옳은(義) 몸짓이나 태도(態度)를 하는 '거동(擧動), 법도(法度), 법식(法式), 예절(禮節), 본보기(榜樣), 본받다(儀)'라는 뜻이다. 그리고 의(儀)자는 이렇듯 법식(法式)에 따라 의례(儀禮)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헤아린다는 개념(槪念)에서 '천문기계, 헤아리다(儀)'라는 뜻으로 확장(擴張)되었다. 우리 나라는 먼 옛날부터 자타가 인정(認定)해온 예의를 숭상(崇尙)하는 예의지국(禮儀之國)으로 어떤 행사(行事)든 의식(儀式)을 치르는 거동에 법식이 있었다. 의례(儀禮)는 몸을 움직이는 짓이나 태도(態度)를 일컫는 거동에 있어 형식(形識)을 갖춘 예절로 마땅히 지켜야할 법이요 본이 되는 규범인의범(儀範)으로 여겼다. 이와 같은 행동거지에 형식을 갖춘 의례(儀禮)는 예로부터 지켜 내려와 생활 속에서 사회적 습관(習慣)인 풍속(風俗)이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풍속으로는 하늘을 숭배(崇拜)하고 제사를 지내는 제의(祭儀)로 원시종교의식(儀式)인 부여(夫餘)의 영고(迎鼓), 동예(東濊)의 무천(舞天), 고구려(高句麗)의 동맹(東盟)과 같은 제천의식(祭天儀式)일 것이다.

주역

[풀이] 집안에 들어가선 가내(家內)의 일을 도맡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행동거지를 본받으라는 뜻으로 가정교육의 중요함을 설명한 문구이다. 안짝인 外受傅訓은 男效才良, 바깥짝인 入奉母儀는 女慕貞烈에 비견(比肩)된다.

주역의 풍화가인(風火家人)은 집에 들어가() 환히 등불을 켜는() 형상으로 식구들과 화목하게 합하는 제가(齊家)의 도리를 보여주는 괘이다. 가인 괘사에 '여자의 올곧은 덕이 이롭다(利女貞)'고 하였는데, 공자는 "여자는 안에서 위치를 바르게 하고 남자는 밖에서 위치를 바르게 하여야 한다. 남자와 여자의 바름이야말로 천지의 큰 의리이다(女正位乎內 男正位乎外 男女正而天地之大義也)"라고 부연하여 풀이하였다.

[字義] 入은 눂(삐침 별)과 (파임 불). 뿌리가 둘로 갈라져 땅속을 파고듦을 본뜬 글자이다. 좌양우음(左陽右陰)의 법도로 보면 왼쪽의 눂은 밝은 양(陽), 오른쪽의 은 어두운 음(陰)을 가리키는데, 양(눂)이 음() 아래에 처한 상이다. 땅속에 들어간 뿌리는 어두워 보이지 않는 법이다. 이와 정반대 형태인 人은 밝음(左陽)이 어두움(右陰)을 억누른 상태로 살아있는 생명을 나타낸다.

入은 幽(그윽할 유), 人은 明(밝을 명)과 통하는 것이다. 奉은 三(석 삼)과 人(사람 인) 밑에 (예쁠 봉)의 획 줄임.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도(道) 즉 天道와 地道, 人道를 조화하여 잘 받든다는 뜻이다. 奉의 아랫부분인 발음요소 은 卄의 변형으로 두 손을 가리킨다.

母는 갓난애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젖꼭지. 여자(女)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어머니가 됨을 뜻한다. 母의 부수로 쓰이는 毋(말 무, 없을 무)는 '하지 말라' 또는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여자(女)가 불선한 행동이나 부정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빗장(눀)을 지른 형태이다. 여기서 눀(뚫을 곤)은 여자를 범하는 것도 되는데 함부로 여자를 범하지 말라는 경계의 의미를 담고 있다. 儀는 人(사람 인)과 義(의로울 의). 사람으로서의 의로운 행동거지 즉 올바른 거동을 이른다.

  1. 傅 : 음이 赴(부)로 돕는다는 뜻이며 선생이니, 甫(남자 미칭 보)를 따르고 寸(한 치 촌)을 따랐다. 傳은 음이 椽(연/전)으로 ‘주다’이고 ‘잇다’이고 ‘펴다’이니, 專(실패 전)을 따랐다.(≪字彙≫ 辨似 二字相似) 옛날에 ≪國語≫ 〈晉語 1〉에 이르기를 “백성은 세 분에 의해 사니, 섬기기를 한결같이 해야 한다. 아버지는 낳아주시고 스승은 가르쳐주시고 임금은 먹여준다.” 한 것이 이것이다. ≪禮記≫ 〈檀弓 上〉에 이르기를 “부모를 섬기되 힘써 할 일을 행하여 죽음에 이르며 致喪(극진한 상례) 3년을 하고, 임금을 섬기되 힘써 할 일을 행하여 죽음에 이르며 方喪(부모에 견주는 상례) 3년을 하고, 선생을 섬기되 힘써 할 일을 행하여 죽음에 이르며 心喪(상복 없이 애모하는 상례) 3년을 한다.” 하였으니, 스승은 아버지와 아울러 존중되는 것이다. 후세에는 師道(선생의 도)를 강구하지 않아서 唐나라 韓愈가 〈師說〉을 지었는데 온 세상이 그를 비난하였으니, 풍조가 옛날답지 못한 것이 오래되었다.(≪釋義≫) 三은 君ㆍ父ㆍ師이다. 如一은 힘쓸 일을 행하여 죽음에 이름이다. 食(사)는 녹봉을 말한다.[三 君父師也 如一 服勤至死也 食 謂禄也](≪國語≫ 〈晉語 1〉 韋昭 注) 食는 음이 似(사)이다.[食 音似](≪小學≫ 〈明倫〉 集註) 致喪은 그 애통하며 수척해가는 예절을 극진히 하는 것이다. 方喪은 부모 상례에 견주어 의리로 은혜를 아우름이다. 心喪은 몸에 喪服과 絰帶(首絰과 腰絰)의 복장이 없으면서 마음에 슬픈 감정을 지니는 것이니, 이른바 아버지 상례와 같이 하면서 상복이 없는 것이다.(≪禮記≫ 〈檀弓 上〉 集說)
  2. 母 : 母는 父母이다. 毋는 음이 無(무)이고 그친다는 뜻이다. 毌은 음이 冠(관)이고 물건을 꿰어 지님이다. ★{毋*丨}는 음이 牟(모)이고 蒙(몽)과 뜻이 같다.(≪康熙字典≫ 辨似 四字相似)
  3. 外受傅訓 入奉母儀 : 外는 나가서 마을 속에 있는 것이다. 受는 받는다는 뜻이다. 傅는 스승이다. 訓은 가르친다는 뜻이다. 入은 들어간다는 뜻이니, 집안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奉은 역시 받는다는 뜻이다. 儀는 본보기이다. 밖에 나가 마을에 있으면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집에 들어와 있으면 어머니의 법도를 받듦을 말한 것이다.(≪釋義≫)
  4. 十秊 出就外傅 : ≪禮記≫ 〈内則〉 秊은 年의 本字이다. ‘곡식이 익다[穀熟]’가 본의이고 禾(벼 화)를 따르고 千(일천 천)이 소리인 形聲이다.(≪說文≫)
  5. 十秊 不出 聽從姆敎 : ≪禮記≫ 〈内則〉 姆(무)는 여자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