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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믿음의 분별: update Korean version with the right content for the da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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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 == 한글: 산 정상의 영역 == | ||
'' | ''막 9: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 ||
우리는 | 우리는 모두 정상에 있었던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으며 그곳에 거하길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기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영적 삶의 시험은 내려올 줄 아는 능력입니다. 만일 우리가 오르는 능력만 있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함께 변화산 정상에 머무는 것도 위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곳에 이르게 되는 이유는 마귀로 가득찬 이 세상에 내려와 이 세상 사람들을 영적으로 들어올리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변화산 정상에서의 체험, 해 돋는 새벽, 아름다움에 대한 애착 같은 것들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자가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오직 영감을 얻기 위한 순간들일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계곡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곧 일반적인 삶 속에서 우리의 실력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 이기심은 언제나 정상에만 머물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천사처럼 말을 하고 천사처럼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면서 계속 산 꼭대기에만 있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상의 시간들은 특별한 시간으로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특별한 의미를 지닌 때입니다. 그러나 영적 이기심은 우리의 모든 시간을 그러한 예외적인 시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를 유의하십시오. | ||
우리는 이 세상에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유익한 교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일들은 교훈 이상의 것을 줍니다. 즉 인격을 빚어낸다는 사실입니다. 산 위의 정상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뭔가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이 경험이 무슨 유익이 있지?”라는 질문은 가장 위험한 함정을 안고 있습니다. 영적인 세상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답이 없습니다. 산 정상의 순간들은 드문 기회들이며 그 기회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