晋楚更覇 趙魏困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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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楚[注 1][注 2]霸하고 趙魏困橫[注 3]이라 (晉◑楚更霸◑하고 趙◯魏◑困◑橫◎이라)

()〈春秋時代에〉 晉나라와 楚나라가 번갈아 霸權을 잡았고, 〈戰國時代에〉 趙나라와 魏나라가 連橫에 곤궁하였다.

春秋時에 晉文公이 敗楚成王于城濮[注 4]而霸러니 至靈公하여 失霸하고 楚莊王이 又稱霸하니 是晉與楚更迭而霸也라
戰國時에 縱[注 5]人은 欲以六國伐秦하고 橫[注 6]人은 欲使六國事秦이러니 六國이 終困于橫하니라 六國에 只擧趙魏나 其餘可見이라

春秋時代에 晉나라 文公이 楚나라 成王을 城濮에서 패퇴시키고 패권을 잡았는데, 靈公에 이르러 패권을 잃고 초나라 莊王이 다시 패자가 되었으니, 이는 진나라와 초나라가 번갈아서 패권을 잡은 것이다.
戰國시대에 合縱을 주장한 사람들은 六國으로 秦나라를 치려 하였고, 連橫을 주장한 사람들은 六國에게 秦나라를 섬기도록 하려 하였는데, 六國이 마침내 연횡에 곤궁하게 되었다. 六國 중에 趙ㆍ魏만을 들었으나, 그 나머지도 곤궁했음을 알 수 있다.

晋楚更覇

晋楚更覇

(韓) 진과 초가 다시 으뜸이 되니 진문공 초장왕이 패왕이 되니라.

(簡) 진나라와 초나라가 다시 으뜸이라 하고

진과 초가 다시 으뜸이 되니 晉文公 楚莊王은 패왕이 되니라. 1.晉王은 3.다시 2.楚王과 함께 4.교대로 우두머리 나라王들 이다. (1.3.2.4 순으로 풀이) 진나라 진(晉), 나라 초(楚), 다시 갱(更), 으뜸 패(覇), 두목 패(覇), 우두머리 패(覇)

한자 유래

'晉楚更覇(진초경패)는 진나라와 초나라는 번갈아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말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의 '강대국(强大國)' 중에서도 특히 진(晉)나라와 초(楚)나라가 가장 막강(莫强)한 국력(國力)과 권력(權力)을 가졌음을 언급(言及)한 것이다. 고대(古代) 중국인들은 황하(黃河)를 중심으로 한 중원(中原) 지역만을 원래 중국(中國)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중원(中原)지역에 있던 제후국들(송(宋), 위(衛), 조(曹), 진(陳), 정(鄭), 노(魯), 제(齊), 진(晉)나라 등)은, 서쪽 변방의 진(秦)나라나 남쪽 변방의 초(楚)나라, 북쪽 변방의 연(燕)나라, 동남쪽 변방의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를 변방국으로 업신여겼다.

나아갈 진(晉)은 상형자(象形字)로, 두 대의 화살을 그릇에 꽂아 넣은 모양(模樣)을 본떠, '끼우다'의 뜻을 나타내었으나, '진(進)'과 통하여, '나아가다'의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여기서는 '진(晉)나라'의 뜻을 나타낸다. '진(晋)'은 '진(晉)'의 속자(俗字)이다. 따라서 진(晋)나라는 주(周)나라 무왕의 아들을 시조(始祖)로 하며 작위(爵位)는 후작(侯爵)이었다. 진(晉)은 주나라와 가장 가까이 있는 큰 나라였지만 기원전 8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나라 안에 분쟁(分爭)이 벌어져 분가(分家)하여 혈통(血統)을 이어받은 무공(武公)이 진(晋)나라 제후(諸侯)인 민공을 쓰러뜨리고 주 왕실에 뇌물(賂物)을 바치고 새로운 진(晋)나라의 왕이 되었다.

회초리 초(楚)는 뜻을 나타내는 수풀 림(林) 부(部)와 소리를 뜻하는 필, 소(疋)로 이루어진 형성자(形聲字)로, 림(林)은 군생(群生)해 있는 나무, '수풀'의 뜻이고, 필, 소(疋)는 '초(酢)'와 통하여, 자극(刺戟)이 있는 것의 뜻을 나타낸다. 군생(群生)하며, 가시의 자극을 가진 '장미(薔薇)'의 뜻을 나타낸다. 본뜻은 '가시덤불'로, '가시나무, 우거지다, 회초리 매'의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초(楚)나라'를 뜻한다. 즉 초나라 초(楚, 회초리 초)는 갑골문(甲骨文)에도 보이는 자형으로 그 구성(構成)은 수풀 림(林)과 짝 필(疋, 발 소)로 이루어졌다. 림(林)은 두 개의 나무 목(木)으로 구성(構成)되어 있는데, 목(木)의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模樣)을 본뜬 상형글자다. 이에 따라 두 개의 나무(木)를 겹쳐 나무들이 우거진 ‘수풀’을 뜻하게 되었다. 소(疋)는 무릎아래 종아리와 발을 국부적(局部的)으로 본뜬 것이다. 또한 발은 둘이라는 데서 짝 필(疋)로도 쓰인다. 따라서 초(楚)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나무가 우거진 수풀(林) 사이를 사람이 오간다(疋)는 데서 ‘우거지다’는 뜻을 지녔지만 ‘회초리’란 뜻도 지니게 되었으며, 여기서는 ‘초나라’를 뜻한다.

고칠 경(更)은 초기글자인 갑골문(甲骨文)을 보면, ‘종모양의 잘 다듬은 돌을 매달아 놓고 손으로 채를 잡고 치는 모양’을 본뜬 글자였다. 자형상부의 ‘一+由’모양이 매달아 놓은 종모양이며, 하부가 손으로 채를 잡은 모양으로 단순화 되었다. 아마도 일정한 시간을 알리는 도구였을 것이다. 그 흔적이 바로 일경(一更) 이경(二更) 삼경(三更)에서와 같이 시간의 단위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뭔가를 ‘변경하다’ ‘고치다’는 뜻으로 확장되었고, 시간을 알릴 때마다 다시 종을 쳐야 함에 따라 ‘다시’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따라서 便(편)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亻)이 종을 친다(更)는 데서 ‘알리다’ ‘소식’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고, 또한 사람(亻)을 위해 불편한 점을 고친다(更)는 데서 ‘편안하다’는 뜻이 발생되었으며, ‘똥오줌’이란 뜻은 가차된 것이다. 경(更)은 복(攴)과 병(丙)의 회의자(會意字)로, '복(攴)'은 '치다'의 뜻이고, '병(丙)'은 '받침'의 상형(象形)이다. 받침을 두 개 포개어서 압력(壓力)을 가해 단단하게 굳혀 판판하게 하다의 뜻에서, '바꾸다, 고치다, 다시'의 뜻을 나타낸다. 고치고 바꾸는 것을 말할 때는 '경(更)'이라 발음(發音)한다. 예를 들면, 갑오경장(甲午更張)처럼 사회적, 정치적으로 부패(腐敗)한 제도를 고치어 새롭게 하는 것을 경장(更張)이라 한다. 또 무엇인가 고쳐서 정(定)하는 것을 경정(更定)이라 하고, 이제까지 있던 제도(制度)나 기구 따위를 고쳐 새롭게 하는 것과 종전(從前)의 기록을 깨뜨려 기록(記錄)을 새롭게 고치는 것을 경신(更新)이라 한다. 또, '다시, 재차'의 뜻으로 쓰일 때는'갱'으로 발음한다. 예를 들면 죽을 지경(地境)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갱생(更生)이라 한다. 또한 다시 새로워지다, 다시 새롭게 하다' 그리고 법률(法律)에서, 계약 기간이 만료(滿了)되었을 때, 그 기간을 연장(延長)하는 일을 갱신(更新)이라한다. 그런데 갱신(更新)과 경신(更新)이 바르게 쓰이지 못하고 혼란(混亂)스럽게 쓰이는 경우가 많아 주의(注意)해야 한다. 여기서는 '번갈아'의 뜻으로 쓰였기 때문에 '경(更)' 발음한다.

으뜸 패(覇)는 패(霸)의 속자(俗字)로, 패(霸)는 뜻을 나타내는 월(月) 부(部)와 소리를 뜻하는 비에 젖은 가죽 박(䨣)가 합(合)하여 이루어진 형성자(形聲字)이다. 박(䨣)은 '백(白)'과 통하여 '희다'의 뜻이다. 초승달의 흰빛의 뜻이다. 또 '백(伯)'과 통하여 '제후의 우두머리'의 뜻으로 쓰인다. 승패(勝敗)를 좌우하는 '패(覇) 싸움'이 치열(熾烈)하다. 자칫 패를 잘못 썼다간 치명적(致命的)인 결과(結果)를 가져오게 된다. 패싸움 과정(過程)에서 필연으로 따르는 것이 사석(私席)이다. 작게는 몇 집에서 많게는 수십 집에 이른다. 때문에 패싸움은 자신의 희생(犧牲)을 언제나 함께한다. '패(覇)'의 의미(意味)를 찾아보니 '으뜸, 두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잘못 사용(使用)하다가는 자신이 가진 으뜸이나 두목을 잃을 수가 있고, 잘만 이용(利用)하면, 사즉생(死卽生)이 될 수도 있는 것이 패싸움인 듯 싶다.

趙魏困橫

趙魏困橫

(韓) 조와 위는 횡에 곤하니 육군때에 진나라를 섬기자 함을 횡이라 하니라.

(簡) 조나라와 위나라도 이와같다 하니, 곤란한 일이다.

조와 위는 橫에 곤하니(橫에 困하니 는 함께 곤 하니 로),육군(6群)때에 晉나라를 섬기자 함은 橫이니라.(이것은 수평적 관계이다). 1.趙는 3.困하여 어려운지라 2.魏와 4.橫的연합을 하다(즉 水平的 연합). (1.3.2.4 풀이) 나라 조(趙), 나라 위(魏), 곤할 곤(困), 가로 횡(橫), 나라간에 서로 통하는 것으로 조(趙)와 위(魏)는 횡적(橫的)연합으로 진(秦)나라를 섬기던 자인 장의(張儀)의 설(說)로, 연형설(連衡說)의 준말이 연형(連衡)이다. 여기에서 합종설(合從說)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중국전국 시대(中國戰國時代)에 소진(蘇秦)이 주장한 외교정책.한.위.조.연.제.초 등 6개국이 연합하여 서쪽의 강한 진(秦)나라와 대항을 한다는 주장. 또 하나는 합종(合從)이라는 종(從)에 관한 유래는 지리적으로 관계가 있었고, 특히 제환공(齊桓公)이 죽은 다음해에 진문공(晉文公)과 초장왕(楚莊王)이 교대로 패자로 등장하여 제후를 견제 하였으나 한.위.조.연.제.초 6국은 진 나라를 섬기라는 장의(張儀)의 연형설(連衡說)과, 그 반대로 소진(蘇秦)이라는 객설(客說)의 이른바 합종설(合從說) 때문에 6국은 갈팡질팡 하였다.6국 중에서도 조 나라와 위나라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지리적인 면에 있어 진나라와 싸우면 불리했기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 연형설(連衡說)은 6국의 관중(關中)의 진 나라와 대치 할 때 지리적으로 가로로 연결된 데서 유래 한 것이고, 합종설(合從說)은 관동의 6국을 합치고 보면 그 지세가 남북, 즉 세로로 길게 뻗게 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종(從)은 종(縱)과 같은 뜻이다. 진.초 두 나라의 세력이 강대하여 제후의 패(覇:우두머리)한 자로서 천하를 호령했지만, 한편 조, 위 등의 약소국은 강대국 사이 에서 곤란을 면 치 못했음을 서술한 글이다.

한자 유래

조(趙)와 위(魏)는 한(韓)을 포함한 삼진(三晉)을 가리킨다. 전국책(戰國策), 조책(趙策)에 "삼진이 연합(聯合)하면 진(晉)나라가 약(弱)해지고, 삼진이 흩어(散)지면 진나라가 강(强)해진다"라는 말이다. 진나라와 삼진은 서로 이웃해 있으면서 치열(熾烈)한 경쟁 관계를 형성(形成)해 왔다. 그래서 삼진은 내부적 단결(團結)을 기초로 한 육국(六國)의 합종(合縱)으로 진나라의 동진을 막아보려 했으나, 연횡책(連橫策)에 말려서 대항(對抗)이 여의치 못하였다. 삼진을 완충 지대(緩衝地帶)로 삼고 있는 나라들이 연횡(連橫)을 포기(抛棄)하지 않으면 결국 삼진은 포위(包圍)가 되는 셈이므로 "연횡(連橫)으로 인하여 곤경(困境)에 처하게 되었다"라고 쓴 것이다.

나라 조, 찌를 조(趙)는 뜻을 나타내는 달아날 주(走) 부(部)와 소리를 나태내는 닮을 초(肖)가 합(合)하여 이루어진 형성문자(形聲字)로 빨리 '달아나다'의 의미를 나타낸다. 조(趙)나라는 중국(中國)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나라 이름인 전국 칠웅(戰國七雄)의 하나로서, 한(韓), 위(魏)와 함께 진(晉)을 삼분(三分)하여 성립(成立)된다. 산서성(山西省), 하북성(河北省)에 걸쳤으며 한단(邯鄲)이 도읍(都邑)이다. 또한 성(姓)의 하나이다. 특히 조씨(趙氏)는 조선조(朝鮮朝)에서 세도가문(勢道家門)으로 손꼽히는 명문(名門)이다. 조씨는 본래 중국 전욱(顓頊)의 후예(後裔)로 백익의 후손이 요(堯)제 때 우와 더불어 치수(治水)에 공(功)이 컸다하여 순제로부터 영씨를 하사받았고, 그후 주나라 목종이 서언을 치는데 전욱(顓頊)의 후손 조부가 공을 세워 조성에 봉해짐으로써 그때부터 나라 이름으로 인하여 조씨라 했다고 한다. 조씨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 와서 살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본관(本貫)을 230여본까지 기록(記錄)하고 있는 문헌(文憲)도 있으나 현존(現存)하는 본관은 30여본이나 그중에서 풍양(豊壤), 한양(漢陽), 양주(楊州), 임천(林川), 배천(白川), 함안(咸安), 옥천(玉川), 횡성(橫城), 평양(平壤), 김제(金堤), 직산(稷山) 등 10여 본이 대본(大本)으로, 이들이 전체 조씨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라 이름 위, 빼어날 외(魏)는 뜻을 나타내는 귀신 귀(鬼) 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맡길 위(委)가 합(合)하여 이루어진 형성문자(形聲字)이다. 중국의 나라이름인 전국 칠웅(戰國七雄)의 하나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위사(魏斯)가 조적(趙籍), 한건(韓虔)과 함께 진(秦)나라를 삼분(三分)하여 세운 나라인데 안읍(安邑)에 도읍을 정했다. 또한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조조(曺操)가 화북(華北)을 통일(統一)하고 그 아들 조비(曺丕)가 후한(後漢)의 마지막 임금인 헌제의 자리를 빼앗고 세운 나라다. 낙양(洛陽)에 도읍(都邑)하고 하북(河北)의 13주 97군을 통치(統治)했다. 중국 삼국시대 3국의 하나로서 후한(後漢) 말, 당고(黨錮)의 옥, 황건(黃巾)의 난(亂)으로 후한의 위세(威勢)는 땅에 떨어지고, 동탁(董卓), 원소(袁紹), 원술(袁術), 공손찬(公孫讚) 등 군웅이 각지에 할거(割據)하였다. 조조(曺操)도 한 부장(部將)으로서 황건적을 토벌하여 복속(服屬)시키는 등 점차 세력을 확대(擴大)하였다. 196년 헌제를 허(許, 河南省 許昌縣)에 받들어 승상(丞相)이 되고 위국공(魏國公)에 봉하여 화북(華北)을 통일하였다.

곤할 곤(困)의 구성(構成)은 에워쌀 위(囗)와 나무 목(木)으로 이루어졌다. 위(囗)는 사방을 에워싼 모양(模樣)을 나타낸 자형(字形)으로 ‘둘레 위(圍)’의 본 글자이며, 또한 일정한 경계안의 지역(地域)을 뜻하는 ‘나라 국(國)’의 옛 글자이기도 하다. 목(木)은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模樣)을 본뜬 상형글자(象形字)이다. 곤(困)은 갑골문(甲骨文)에도 보이는데, 그 의미(意味)는 나무(木) 주변(周邊)을 사방(四方)에서 에워싸(囗) 버리니 잘 자라지 못해 ‘곤궁(困窮)하다’ ‘지치다’ ‘괴롭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가로 횡(橫)자는 형부인 나무(木)와 성부인 '누르 황(黃)'자가 '횡'으로 전음(轉音) 된 형성자(形聲字)이다. 즉 횡(橫)자는 나무(木)가 누런(黃) 패옥을 건 빗장처럼 가로지른 '가로(橫)'를 뜻한다. 횡(橫)자는 대문짝에 가로지른 '빗장'이 본디 뜻인데, 누런(黃) 패옥과 빗장 간에 연관성이 추론(推論)된다. 동양적인 사고방식은 위계를 나타내는 종(縱)자에 가치(價値)를 둔 반면, 종(縱)자와 상대자인 '가로 횡(橫)'자는 금지를 상징(象徵)한다는 것이다. 사건 현장에 접근(接近)하지 못하도록 가로지른 띠를 연상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말하는데 가로지르는 것은 결례(缺禮)인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理解)할 수 있다. 따라서 횡(橫)자는 누런(黃) 패옥에 대해 접근을 금지(禁止)시키려고 빗장을 가로지른 나무(木)라는 의미에서 횡(橫)자의 '빗장'이란 의미를 추론해볼 수도 있다. 성부인 황(黃)자는 '가로 횡(橫)'자의 본의를 담고 있다. 황(黃)자는 두 갈래로 짝을 이은 패옥을 늘어뜨린 모양, 또는 곡식을 베어서 묶은 후 논밭에 차곡차곡 쌓은 볏단 더미인 볏가리 꼴로 '노랗다'라는 뜻이다. 노란 황색(黃色)은 '영광(榮光), 힘, 부(富)'를 상징하여 발랄(潑剌)하고 찬란한 느낌을 주는 색이다. 즉, 우리 전통사상에서 알 수 있듯이 황색(黃色)은 음양의 양(陽)에 해당하며, '토(土), 중앙(中央), 욕심과 욕정(慾), 믿음(信), 단맛(甘)' 등을 나타낸다. 반면에 우유부단한 속성도 있다. 또한 '흙색'으로 비유되어 흙이 만물을 생장하는 성질로부터 모성적(母性的) 측면도 있으나 만물을 거둬들이는 매장적(埋葬的)인 측면도 있다. 그래서인지 어울리는 폭이 넓다. 그러나 고독(孤獨)한 속성(屬性)도 있어서 새로운 삶을 갈망(渴望)하는 놀라운 의지(意志)의 색이기도 하다. 즉, 강인한 의지로 자신만의 영역(領域)을 구축(構築)하려는 독립적인 삶을 추구(追求)하는 속성인 것이다. 따라서 찬란한 누런 패옥(佩玉)을 고이 숨겨두고 자신만 사용(使用)할 의도로 설치한 나무 기물을 나타내는 횡(橫)자는 나무(木)가 누런(黃) 패옥 보관(保管)함의 문이 열리지 않도록 문이 열리는 방향과 빗겨서 빗장을 가로지른다는 의미(意味)에서 '가로(橫)'를 뜻한다. 그리고 횡(橫)자는 열리려는 문에 빗장을 가로지르듯이 말이나 진로를 가로막는 짓이 뜻밖이라는 것에 비유(比喩)되어 '거스르다, 방자(放恣)하다, 뜻밖에(橫)'라는 뜻으로 확장(擴張)된다.

  1. 晉楚更霸 : 춘추시대의 五霸는 齊나라 桓公뿐만 아니라, 또 晉나라 文公과 楚나라 莊王도 있다. 晉ㆍ楚는 모두 나라 이름이다. 更은 ‘번갈아’이다. 霸는 제후의 우두머리이다. 이는 晉ㆍ楚가 제나라 환공의 뒤를 이어서 서로 바꾸어가면서 제후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五霸는 齊 桓公, 晉 文公, 秦 穆公, 宋 襄公, 楚 莊王이 있는데, 晉ㆍ楚만 말하고 秦ㆍ宋을 말하지 않은 것은 글을 생략한 것이다.(≪釋義≫)
  2. 更 : 平聲이다.(≪釋義≫) 이 평성에 의해 ‘번갈아 경’으로 독해되고 去聲의 ‘다시 갱’으로 독해되지 않는다. ≪註解≫에서는 㪅으로 썼는데, 更이 俗字이다.
  3. 趙魏困橫 : 趙ㆍ魏는 모두 나라 이름이다. 困은 괴로움이 극심한 것이다. 橫은 連橫이다. 전국시대에 蘇秦이 六國 제후들을 설득하여 合從으로 秦나라를 막게 하였고, 뒤에 張儀가 또 육국 제후들을 설득하여 連橫으로 진나라를 섬기게 하였으니, 六國 제후들이 合從ㆍ連橫에 곤궁함을 말한 것이다. 연횡만 말하고 합종을 말하지 않은 것은 글을 생략한 것이다. 六國은 趙ㆍ魏ㆍ韓ㆍ齊ㆍ楚ㆍ燕이 있으나 둘만 들어 그 나머지를 포괄하였다.(≪釋義≫)
  4. 城濮 : 지금의 山東 鄄城 西南 지역인데, 城濮之戰으로 유명하다. B.C.632년에 晉나라와 楚나라가 전쟁하여 晉나라가 크게 승리하였다.
  5. 縱 : 從(남북 군사동맹 종)으로도 쓴다. 六國이 상호 南北으로 군사동맹을 맺어 秦나라에 대항하게 하는 일이다.
  6. 橫 : 衡(동서 군사동맹 횡)으로도 쓴다. 서쪽의 秦나라가 동쪽 六國의 각 나라와 東西로 군사동맹을 맺어 自國인 秦나라를 섬기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