旣集墳典 亦聚群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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旣集墳典[注 1]하고 亦聚群[注 2][注 3]이라 (旣◑集●墳典◯하고 亦●聚◯群英◎이라)

()이미 ≪三墳≫과 ≪五典≫을 모으고, 또한 뭇 英才를 모았다.

三皇[注 4]書曰三墳이니 言高大也요 五帝書曰五典이니 言可法也라 不言九丘[注 5]八索[注 6]諸經百家는 擧大包小也라
旣集墳典하고 又必徵訪英賢하여 聚於廣內承明하여 講明討論하여 以昭治道也라

三皇의 책을 ≪三墳≫이라 하니 높고 크다는 뜻이고, 五帝의 책을 ≪五典≫이라 하니 본받을 만하다는 뜻이다. ≪九丘≫, ≪八索≫, 여러 經書, 百家書를 말하지 않은 것은 큰 것을 들어 작은 것을 포함한 것이다.
이미 ≪三墳≫ㆍ≪五典≫을 모아놓고 또 반드시 英才와 賢士들을 부르며 찾아서 廣內ㆍ承命에 모아 강론하며 토론하여 정치하는 도리를 밝혔다.

[節旨] 이 宮殿ㆍ樓觀 안에 ≪三墳≫ㆍ≪五典≫이 보관되고 여러 인재들이 모이는 것을 말하였다.(≪釋義≫)
이 節은 아래 6節의 綱領이 된다.(≪釋義≫)

旣集墳典

旣集墳典

(韓) 이미 분과 전을 모았으니 삼황의 글은 삼분이요 오제의 글은 오전이다.

(簡) 이미 법전을 쌓아 모았으니

이미 분과 전을 모았으니 삼황(三皇)의 글은 三墳 이요 오제(五帝)의 글은 五典이다.(여기에서 墳은 三皇의 史的記錄冊이요 典은 五皇帝의 史的典이다) [皇帝는 秦始皇이 처음으로 이 칭호를 썼음.(Emperor)] 1.이미 3.諸侯의 글을 2.모아 4.皇帝典을 편찬하다. (많은 諸侯中에는 三皇반열에 오른 기록과, 아름답고 어진 賢皇帝의 史的記錄에 오른 五帝가 있다는 內容이다) 本句에 관한 위의 뜻 풀이는 周興嗣가 千字文 著述시에 그 당시 중국에서 알려진 중국 역사관에서 글귀를 저술 한 것으로 어조사가 뜻풀이의 史的 역할을 하고 있다. 三皇 五帝의 飾也的 墳說이 바로 그것이다. 즉 三皇의 글은 三墳이요, 五帝의 글은 五典이다 라고 한 내용이다. 學習者의 생각으로는 우선 황제와 제후를 분별하고, 墳과 典의 구분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三皇은 諸侯중에 있음이요 五帝는 황제로 보면 타당하고 제후의 업적과 황제의 업적이 다른 점을 강조했다. [황제는 秦始皇이 처음으로 이 칭호를 썼음.(Emperor)] 이미 기(旣),모을 집(集),무덤 분(墳), 법 전(典) 여기에서 주목하는 글자는 무덤 분(墳)字를 왜 文과 冊이라 하는 냐? 墳은 賁과 同一하다 했다.賁은 비,분,본.식야(飾也)에 꾸밀 비(賁), 卦名에 괘 이름 비(賁), 大也에 클 분(賁),勇也 虎곤날랠 본(賁),치 .文.元에서 비롯됨.<<典하면 특정사항에 관하여 일정한 범위의 규범을 통일하여 체계적으로 배열. 편찬한 성문법의 전체(code)>>

한자 유래

기집분전(卽集墳典)이란 기집(旣集)은 '이미 모았다'는 뜻이다. 즉 '이미 모았다'는 분전(墳典)을 말한다. 또한 분전(墳典)이란 삼분 오전(三墳五典)의 준말이다. 따라서 삼분(三墳)이란 삼황(三皇)의 사적(事迹)을 기록한 서적(書籍)이고, 오전(五典)은 오제(五帝)의 세계(世系)를 기록한 서적(書籍)이다.

이미 기(卽)의 구성(構成)은 고소할 급(皀)과 병부 절(卩)로 짜여 있다. 급(皀)은 고소한 흰 쌀밥을 그릇가득 담아 놓은 모양(模樣)을 본뜬 글자임을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을 보면 알 수 있다. 절(卩)은 나무를 쪼개 만든 신분(身分)을 알 수 있는 병부(兵符)나 신표(信標)를 뜻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은 모양(模樣)을 나타낸다. 즉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밥그릇(皀) 앞으로 다가 앉아(卩) 숟가락을 들고서 ‘곧’ 밥을 먹으려는 모양(模樣)을 그려내고 있어, 밥상 ‘가까이’ 혹은 ‘다가가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이와는 반대(反對)의 뜻을 나타낸 글자로 이미 기(旣)자가 있는데, 식사를 마치고서 밥상(皀)에서 고개를 돌린 모양(旡)을 그리고 있어 ‘이미’ ‘벌써’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모일 집(集)은 새 추(隹)와 나무의 모양(模樣)을 상형한 나무 목(木)으로 구성(構成)되었다. 추(隹)에 대해 허신(許愼)은 "설문(說文)"에서 “추(隹)는 꽁지가 짧은 새들을 아우른 명칭(名稱)이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꼬리가 긴 새는 鳥(조)라 하며 비교적 짧은 꽁지를 가진 참새나 도요새 등을 지칭(指稱)하는 글자를 나타낼 때는 추(隹)에 다른 부수를 더해 참새 작(雀)이나 도요새 금(雂)처럼 활용(活用)된다. 따라서 집(集)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큰 나무(木)가 높다랗게 서 있으면 온갖 잡새들(隹)이 모여들게 마련이란 데서 ‘모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무덤 분(墳)의 구성(構成)은 흙무더기를 쌓아올린 모양(模樣)을 상형한 흙 토(土)와 클 분(賁)으로 짜여 있다. 분(賁)은 풀 훼(卉)와 조개 패(貝)로 구성(構성되었다. 훼(卉)는 풀 모양을 상형한 풀 철(屮)이 세 개인 것을 보다 간소(簡素)하게 ‘풀 훼(卉)’로 하였으며, 철(屮)이 네 개인 것은 ‘잡풀 우거질 망(茻)’이다. 패(貝)는 조개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象形字)이다. 고대에는 조개를 화폐(貨幣)로 활용(活用)했는데, 여느 바다나 강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조개가 아니라 남중국해나 인도양 등지에서 나는 희귀(稀貴)하고 아름다운 아주 단단한 것이었다. 갑골문(甲骨文)의 자형은 두 쪽으로 벌려진 조개의 모습이었으나 금문으로 오면서 두 개의 촉수를 내민 현재의 글자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墳(분)의 의미는 흙(土)을 크고 높게(賁) 쌓아올린 무덤으로 값진 부장품(貝)을 함께 넣은 큰 무덤을 말한다. 분(墳)자는 '흙(土)을 크게(賁) 솟아오른 것이 무덤이다'는 뜻이다.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은 '나무(木)로 만든 곽(槨) 위에 돌(石)을 쌓고(積) 그 위에 흙을 입힌 무덤(墳)'으로, 신라 고분(古墳)인 천마총(天馬塚)이 대표적이다.

법 전(典)은 외형상(外形上)으로는 굽을 곡(曲)과 여덟 팔(八)로 보이지만, 전(典)은 상형글자(象形字)로서 성인(聖人)들의 말씀이 담긴 책(冊)을 상서(祥瑞)로운 상(一)에 올려놓고 두 손(八)으로 받드는 모습(模襲)을 본뜬 것이다. 전(典)은 성인(聖人)들의 말씀이 담긴 책(冊)을 두 손으로 받들다(두 손으로 받들 공, 廾)는 데서 여러 사람에게 귀감(龜鑑)이 되는 ‘법(法)’이나 ‘책(冊)’을 뜻한다.

천자문(千字文)은 중국 남조(南朝)의 주흥사(周興嗣)가 양무제(梁武帝)의 명(命)을 받아 지은 책(冊)으로, 모두 다른 한자(漢字) 1000자로 1구 4자의 사언 고시(四言古詩) 250구로 되어 있다. 동진(東晉) 왕희지(王羲之)의 필적(筆跡)에서 해당(該當)되는 글자를 모았다고 하는데, 더 오래전에 중국 위(魏)나라 종요(鍾繇)의 필적(筆跡)을 모은 것이라는 설(說)도 있고 천자문(千字文)을 종요(鍾繇)가 손수 만들었다는 설(說)도 있다.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해서 '언재호야(焉哉乎也)'의 어조사(語助辭)로 끝나는데, 자연 현상(自然現象)부터 인륜 도덕(人倫道德)에 이르는 넓은 범위(範圍)의 글귀를 수록(收錄)하여 한문(漢文)의 입문서(入門書)로 널리 쓰였다. 당(唐)나라부터 빠르게 보급(普及)되어 여러 판본(版本)이 만들어졌는데, 가장 유명(有名)한 것은 왕희지(王羲之)의 7대손 왕지영이 진서(眞書)와 초서(草書)의 두 서체(書體)로 만든 "진초천자본(眞草千字本)"으로 1109년에 새긴 석각(石刻)이 남아 있으며 둔황(敦煌)에서 발견(發見)된 문서(文西)에 그 필사본(筆寫本)이 많다고 한다. 송(宋)나라부터는 완전(完全)히 정착(定着)되어 "속(續)천자문"을 만들기도 하고 "서고천자문(敍古千字文)"과 같이 전혀 다른 글자를 이용(利用)한 새로운 천자문(千字文)이 생기기도 했으며, 천자문(千字文)의 순서(順序)를 이용(利用)해 문서 번호를 붙이는 풍습(風習)도 생겼다. 전설(傳說)에는 주흥사(周興嗣)가 무제(武帝)의 명(命)에 따라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야 했으나 마지막 4자를 짓지 못하여 고심(苦心)하고 있는데, 홀연히 귀신(鬼神)이 나타나서 어조사(語助辭) 언재호야(焉哉乎也)의 마무리를 알려주었으며, 완성(完成)한 후에 보니 머리털이 하얗게 세었다고 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는 별명(別名)이 붙었다. 천자문(千字文)은 모든 한자(漢字)가 없어서 팬그램이 아니다. 드라마에서 한자(漢字) 교육(敎育) 장면(場面)이 나오면 꼭 천자문(千字文)을 읽게 하고 읽지 못하면 체벌(體罰)을 내리는 장면(場面)이 나온다.

亦聚群英

亦聚群英

(韓) 또한 여러 영웅을 모으니 분전을 강론하여 치국하는 도를 밝힘이라.

(簡) 군주의 영화로다.

또한 여러 영웅을 모으니 분절을 강론하여 치국하는 도를 밝힘이라.(이미 삼분오전(三墳五典)같은 고서를 수집하고 학식과 재능 영재 모집) 또 역(亦),걷을 취(聚)무리 군(群), 꽃부리 영(英)

한자 유래

역취군영(亦聚群英)에서 역취(亦聚)는 '또한 모았다'는 뜻이고, 군영(群英)은 '많은 영재(英才)'를 뜻하니, '또한 학식(學識)과 재능(才能)이 뛰어난 영재(英才)들을 많이 모았다'는 뜻이다. 이런 영재(英才)들이 모든 전적(前績)을 모아 놓은 광내전(廣內殿)이나 석거각(石渠閣)이나 편찬소(編纂所)인 승명전(承明殿) 등에 직무를 맡으면서 천하를 다스리는 치도(治道)의 근본을 구축(構築)하고 체계화(體系化)하였던 것이다.

또 역(亦)자는 대인(大)의 양쪽에 갈라진(󰑒) 겨드랑이에 같은 물건을 역시 또(亦) 끼고 있는 상태를 생각하면 된다. 즉 ‘또 역(亦)’자는 "큰 대(大)…가를 팔(󰑐)"자처럼 풀어지는데, 부수가 ‘머리 두(亠)이므로 머리 두(亠) 삐침 별(丿) 갈고리 궐(亅 가를 팔(󰑐)》로 풀어서 ‘또․역시(亦是)’라는 의미로 기억하면 혼동을 막을 수 있다. 이렇게 풀어서 의미를 만들어보면, ‘또 역(亦)’자는 머리(亠) 밑 겨드랑이에 삐친(丿) 채 갈고리(亅)처럼 당기며 양쪽에 갈라서(󰑐)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는 ‘또․역시(亦)’라는 뜻이다. "설문(說文)"에서는 “역(亦)은 사람의 팔 아래 겨드랑이를 뜻한다. 대(大)로 구성(構成)되었으며, 좌우 두 획은 겨드랑이 모양을 본뜬 것이다.”고 하였다. 갑골문(甲骨文)의 자형은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서있는 사람(大)의 팔 아래 두 개의 점을 표시(表示)해 겨드랑이를 나타내고 있다. 본뜻은 ‘겨드랑이’였으나 ‘또’라는 의미로 쓰이자 ‘겨드랑이 액(腋)’을 별도(別途)로 제작(制作)하였다.

모을 취(聚)자는 '여러 사람들이 무리(乑)를 지어 모이다'는 뜻이다. 무리 중(乑)자는 사람 인(人)자가 여러 개 모여 있는 모습(众=乑)으로, 무리 중(衆)자의 원래 글자다. 따라서 가질 취(取)자는 '적군의 귀(耳)를 잘라서 손(又)으로 가지다'는 뜻이다. 취사선택(取捨選擇)은 '가질 것은 가지고(取) 버릴 것은 버려서(捨) 선택(選擇)한다'는 뜻이다. 무전취식(無錢取食)은 ‘돈(錢)이 없이(無) 남의 파는 음식(飮)을 가지다(取)’는 뜻으로, 돈이 없이 식당에서 밥이나 술을 먹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경우 경범죄에 해당된다. 또한 취합(聚合)은 '모여서(聚) 합(合)치다'는 뜻이고, 취락지구(聚落地區)는 '사람들이 모여서(聚) 부락(部落)을 이루는 땅(地)의 구역(區)'이다. 의방유취(醫方類聚)는 '치료하는(醫) 방법(方)에 대해 종류(類) 별로 모은(聚) 백과사전'으로, 조선 세종 27년(1445년)에 김순의 등 12명이 공동 편찬한 의학 백과사전이다.

무리 군(群)의 구성은 임금 군(君)과 양 양(羊)으로 짜여 있다. 군(君)은 통치(統治)의 상징인 지팡이를 오른손에 쥐고(尹)서 입(口)으로 명령(命令)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곧 ‘임금’이나 ‘주권자(主權者)’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양(羊)의 자형상부는 두 개의 뿔을, 중앙은 통통한 몸통과 네 다리를, 그리고 하부는 꼬리를 그려낸 상형글자(象形字)이다. 유순(柔順)한 양은 동물(動物) 중에서도 떼를 지어 다니는 대표(代表)적인 동물이다. 따라서 군(群)의 전체적인 의미는 무리를 지어 떼로 몰려다니는 양(羊)은 가장 힘이 센 우두머리(君)를 따라 이동(移動)하기 때문에 그 특징 살펴 ‘무리’라는 뜻을 부여 하였다.

꽃뿌리 영(英)자는 형부(形部)인 풀(艸→艹)과 ‘가운데 앙(央)’자가 ‘영(英)’으로 전음(轉音)된 형성자(形成字)이다. 영(英)자는 풀(艹)이 큰사람의 목 가운데(央)에 멍에를 두르듯 꽃잎을 두른 ‘꽃부리(英)’를 뜻한다. 성부(聲部)인 앙(央)자는 ‘꽃부리 영(英)’자의 본의(本意)를 담고 있다. 앙(央)자는 형부인 큰사람(大)과 보조형부(補助形部)인 ‘멀 경(冂)’으로 된 회의자(會意字)이다. 앙(央)자는 큰사람(大)이 멀리(冂) 오래가려고 가운데에 멍에를 맸다는 의미(意味)에서 ‘가운데(央)’를 뜻한다. 앙(央)자는 본디 큰사람이 머리 뒤 또는 목에 ‘凵’꼴을 하던 것이 ‘H 또는 ⋃’꼴로 바뀐 것을 보아 큰사람(大)이 멀리(冂) 오래가려고 가운데에 멍에를 맸다는 의미(意味)에서 ‘가운데(央)’를 뜻한다. 따라서 큰사람이 목 가운데에 멍에를 한 듯 한 풀 부위를 나타내는 영(英)자는 풀(艹)이 큰사람의 목 가운데(央)에 멍에를 두르듯 꽃잎을 두른 ‘꽃부리(英)’를 뜻한다. 또한 영(英)자는 큰사람의 목 가운데(央)에 멍에처럼 화환(花環)을 두르는 장면(場面)을 연상(聯想)하더라도 ‘재주(才能)가 뛰어나다, 빼어나다․ 명예(英)’라는 뜻으로 확장(擴張)되리란 짐작(斟酌)을 할 수 있다. 풀(艹)이 큰사람의 목 가운데(央)에 멍에를 두르듯 꽃잎을 두른 꽃부리(英)는 뛰어남을 상징(象徵)한다. 예를 들면 재능(才能)이 뛰어난 젊은이인 영묘(英妙)나 뛰어난 인물인 영걸(英傑)은 특별히 영특(英特)하고 영명(英明)한 총명(聰明)함을 지니고 있으니 이들은 재능(才能)과 지혜(智慧)가 뛰어나 대중을 영도(領導)하고 세상을 이끌 수 있는 영웅(英雄) 대접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풀(艹)이 큰사람의 목 가운데(央)에 멍에를 두르듯 꽃잎을 두른 꽃부리(英) 재능(才能)을 지닌 영재(英才)로 영리(怜悧)하고 민첩(敏捷)하여 영민(英敏)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그 지혜(智慧)를 세상에 베푸는데 쓰지 못하고 일신의 부귀영화(富貴榮華)만을 위해 쓴다면 꽃부리 같은 영예(榮譽)를 누릴지언정 후에 부귀영화가 사라지는 동시에 영민(英敏)함은 마음의 멍에로 자리할 것이다. 그러지 않도록 널리 인간(人間)을 위한 꽃부리가 되도록 힘쓸 일이다.

  1. 墳典 : 살펴보건대 옛날의 ≪三墳≫은 이미 고찰할 수 없다. 宋나라 元豊(1078~1085) 연간에 張商英이 唐州 北陽의 민가에서 얻었는데 그 책은 ≪山墳≫ㆍ≪氣墳≫ㆍ≪形墳≫ 3편이 있었고 말이 대부분 허탄하며 망측하니, 僞書였다. ≪五典≫은 곧 ≪書經≫의 〈堯典〉ㆍ〈舜典〉ㆍ〈大禹謨〉ㆍ〈皋陶謨〉ㆍ〈益稷〉의 5편이다.(≪釋義≫)
  2. 群 : 羣의 俗字이다.(≪中≫)
  3. 旣集墳典 亦聚群英 : 旣는 일을 마쳤다는 말이다. 集은 聚이다. 墳은 ≪三墳≫이고, 典은 ≪五典≫이다. ≪三墳≫은 三皇의 일을 기록한 것이고, ≪五典≫은 五帝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春秋左氏傳≫ 昭公 12年에 이르기를 “楚나라 左史 倚相이 능히 ≪三墳≫ㆍ≪五典≫을 읽었다.” 하였다. 책은 ≪三墳≫ㆍ≪五典≫보다 오래된 것이 없으므로 이를 들어 여러 책을 겸하였다. 亦은 또이다. 群은 무리이다. 才德이 무리에서 뛰어난 사람을 英이라 한다.(≪釋義≫)
  4. 三皇 : 삼황은 전설 속 上古시대의 세 임금으로, 가리키는 것이 한결같지 않다. ① 伏羲ㆍ神農ㆍ黃帝. ② 伏羲․神農․女媧. ③ 伏羲․神農․燧人. ④ 伏羲․神農ㆍ祝融. ⑤ 天皇ㆍ地皇ㆍ泰皇. ⑥ 天皇․地皇․人皇.(≪漢≫)
  5. 九丘 : 전설 속 중국의 가장 오래된 책 이름이다.(≪漢≫)
  6. 八索 : 옛 책 이름인데, 후대에는 대부분 古代 典籍 혹은 八卦를 지칭한다.(≪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