都邑華夏 東西二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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都邑華夏는 東西二京[注 1]이라 (都邑●華夏◑는 東西二◑京◎이라)

()中國에 도읍한 곳은 東京(洛陽)과 西京(長安)의 두 서울이다.

都邑之在華夏者는 隨代而異也라
東京은 洛陽이니 東周東漢魏晉石趙後魏都焉하고 西京은 長安이니 西周秦西漢後秦西魏後周隋唐都焉하니라

도읍이 華夏(中華)에 있는 것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東京은 洛陽으로 東周ㆍ東漢(後漢)ㆍ魏ㆍ晉ㆍ石趙(石勒의 後趙)ㆍ後魏가 도읍하였고, 西京은 長安(西安)으로 西周ㆍ秦ㆍ西漢(前漢)ㆍ後秦ㆍ西魏ㆍ後周ㆍ隋ㆍ唐이 도읍하였다.

[章旨] 이상은 第3章이다. 이 장은 天下에서 王 노릇하는 사람은 그 서울의 크기, 궁궐의 장엄함, 典籍의 성대함, 英才의 많음, 토지의 넓음이 이와 같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釋義≫)

都邑華夏

都邑華夏

(韓) 도읍은 왕성의 지위를 말한 것이고 화하는 당시 중국을 지칭하던 말이다.

(簡) 도읍은 여름이 화려하며

도읍은 왕성의 지위를 말한 것이고 빛나는 당시의 중국을 지칭한 것이다. 도읍 도(都),고을 읍(邑),빛날 화(華),여름 하(夏)

한자 유래

도읍화하(都邑華夏)에서 도읍(都邑)은 도회(都會)와 같은 말로 사람이 많이 살고 번화한 곳을 말한다. "좌전(左傳)"에 "읍(邑)에 선군(先君)의 종묘(宗廟)가 있는 것을 도(都)라 한다." 하였고, 읍(邑)은 국야(國也)라 했으니 읍(邑)은 나라와 통하는 말이다. 그래서 도읍은 천자(天子)가 사는 곳으로 한 나라의 수도(首都)를 뜻하였다. 즉 '서울'을 가리킨다. 화하(華夏)에서 화(華)는 화려(華麗)하 다는 뜻이고, 하(夏)는 대국(大國)이란 뜻이다. 따라서 화하(華夏)는 '영화(榮華)로운 대국'이란 뜻을 담아 중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높여서 일컫는다. 지금의 중화(中華)도 같은 뜻이다. 화(華)나 하(夏)는 모두 중국을 뜻한다.

도읍 도(都)의 구성(構成)은 놈 자(者)와 고을 읍(邑)의 간략형인 부(阝)로 이루어졌다. 자(者)는 본래는 솥에 음식물(飮食物)을 넣고 삶는 모양(模樣)을 상형한 글자다. 그런데 현재 자전에서 자(者)를 찾으려면 로(耂)부수에서 찾아야 되는 ‘회의글자(會意字)’로 분류(分類)되어 있다. 그래서 그 해석(解釋) 또한 대부분 나이 많은 노인(耂)이 나이 어린사람에게 말할 때(白) ‘이놈저놈’ 한다는 데에서 ‘놈’이란 의미가 부여(附與)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갑골문(甲骨文)과 금문(金文)에 나타난 자형을 살펴보면, 자형하부의 ‘白’은 솥단지가 변화된 것이며 상부의 ‘耂’는 나물이나 고깃덩어리가 부글부글 끓면서 솟아오르는 김의 모양(模樣)을 나타낸 것으로 ‘삶다’가 본뜻이었다. 그런데 솥에 삶은 국을 ‘이놈저놈’이 나누어 먹는 다는 뜻을 담아 평범(平凡)한 사람을 의미하는 ‘놈 자(者)’로 쓰이자, 본래의 뜻을 보다 명확(明確)히 하고자 불 화(灬)를 더해 ‘삶을 자(煮)’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부(阝)는 놓이는 위치(位置)에 따라 자형의 좌측에 올 때는 언덕이라는 뜻을 지닌 부(阜)로 쓰이고, 자형의 우측에 놓일 때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고을 읍(邑)을 뜻한다. 따라서 도(都)의 전체적인 의미는 고을(阝=邑)중에서도 많은 사람(者)들이 모여 사는 ‘도회지(都會地)’를 뜻한다.

고을 읍(邑)자는 '일정한 구역(口)'에 '꿇어앉은 신분이 낮은 사람(巴)'의 꼴을 본뜬 상형자(象形字)로 '고을(邑=郡)'을 뜻한다. 읍(邑)자는 나라, 고을, 마을 같은 일정한 구역(區域)의 명칭으로 사용된다. '巴' 부수는 글자들의 오른쪽에 놓일 때와 왼쪽에 놓일 때 의미가 다르다. 오른쪽에 놓일 때는 우부방(阝)이라는 명칭으로 고을(邑)을 뜻하며, 왼쪽에 놓이면 좌부변(阝)이라는 명칭으로 막아주는 언덕(阜)을 뜻한다. 먼 옛날에 읍(邑)자는 제후나 대부(大夫)가 직접 다스리는 영토(領土)를 뜻했다. 그런데 현재 우리 나라의 행정구역 명칭과 같이 '광역시(廣域市)', '도(道)', '시(市)', '군(郡)', '구(區)', '읍(邑)', '면(面)', '동(洞)', '리(里)'와 같은 "구역 단위(區域單位)"의 일부로 쓰이고 있다. 우부방(阝)이 포함(包含)된 글자에는 "지명(地名)"이나 지역(地域)을 오가는 역참(驛站) 따위의 "통신(通信)" 또는 그 지역에서 씨족이 군집(群集)해서 사는 "성씨(姓氏)" 따위를 의미(意味)한다. "설문(說文)"에서는 “읍(邑)은 나라(國)를 뜻하며, 위(囗)로 구성(構成)되었다. 선왕(先王)이 법을 제정하여 존비(尊卑)와 대소(大小)의 차이를 두었다. 절(卪)로 구성되었다.”고 하였다. 갑골문(甲骨文)에서는 성곽(城郭)을 뜻하는 위(囗)아래에 사람이 꿇어앉은 모습(卩)을 그려내 사람의 거주지(居住地)를 나타냈다. 여기서 존비(尊卑(존)는 사람의 신분을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으로 나눈 등급(等級)을 말하며, 대소(大小)란 사방 500리, 사방400리, 사방300리, 사방200리, 사방100리의 나라를 말한 것이다. 또한 제후(諸侯)의 등급에 따라 공후(公侯)는 사방 100리, 백(伯)은 사방 70리, 자남(子男)은 사방 50리의 나라를 가질 수 있다고 맹자(孟子)는 주장(主張)하였다.

빛날 華(화)는 풀 초(艹)와 잎이 늘어진 가운데 화려(華麗)하게 꽃봉오리가 진 모양(模樣)을 상형(象形)한 모양(模樣)으로 이루어져 ‘꽃’을 뜻하였다. 그런데 주(周)나라 때부터 쓰였던 꽃봉오리를 본떠 만든 이 ‘꽃 華(화)’가 붓으로 쓰기가 쉽지 않자 초서(草書)가 유행한 한나라 말 무렵부터 간편하게 쓰기 위해 꽃 화(花)를 별도로 만들었다. 전체적인 의미(意味)인 화(華)는 ‘화려(華麗)하다’ ‘빛나다’ ‘번성(繁盛)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여름 하(夏)는 하(夓)의 간략형(簡略形)으로 그 구성(構成)은 머리 혈(頁)과 천천히 걸을 쇠(夊)로 이루어졌다. 사람의 얼굴(머리)을 뜻하는 혈(頁)은 갑골문(甲骨文)과 금문(金文)에도 사람의 몸과 머리털을 비교적 상세(詳細)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특히 얼굴이 강조(强調)되어 있다. 쇠(夊)에 대해 허신(許愼)은 "설문(說文)"에서 “쇠(夊)는 느릿느릿 발을 질질 끌면서 걷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양 발로 신을 끌고 가듯 걷는 모양(模樣)을 본떴다.”고 하였다. 따라서 하(夓)의 본래 의미(意味)는 농사를 주업(主業)으로 한 사람들이 여름철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 위해 춤추는 모양(模樣)을 그려낸 것이었다. 그런데 하(夏)로 간략화(簡略化) 시켜 뜨거운 햇빛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頁) 느릿한 걸음걸이(夊)로 걸어야 하는 ‘여름’을 뜻하기도 했다. 이러한 계절(季節)적 특징(特徵)을 나타낸 글자가 바로 또 다른 ‘여름 하(昰)’이다. 뜨거운 햇볕(日)이 곧 바로(正) 내리 비추는 상황(狀況)인 ‘여름’을 그려냈다.

주역

[풀이] 인의(仁義)와 성정(性情)에 대한 내용에서 중국의 문물(文物)과 제도(制度) 등의 뛰어남을 찬미한 문구들로 이어진다. 운(韻)도 'ㅣ'운에서 'ㅇ'으로 바뀌고 있다. 華夏는 중화민국(中華民國)의 또 다른 명칭이다. 중국 고대왕조는 요순(堯舜)에 뒤이어 우(禹)를 시조로 하는 하(夏)나라로부터 은(殷)과 주(周)에 이르는 이른바 삼대(三代)의 하은주(夏殷周) 시대가 열린다. 중국문명이 최초왕조인 夏로부터 번성되기 시작하므로 그 화려함을 강조하여 중국을 華夏로 일컫는데, 그 도읍지들에 대한 설명이다.

[字義] 都는 者(놈 자, 것 자)와 뉃(邑·고을 읍). 많은 사람들(者)이 모인 마을(邑) 즉 도회지(都會地)를 가리키는데, 나라의 수도(首都)를 일컫기도 한다. 邑은 口(입 구)와 巴(뱀 파, 땅이름 파). 일정한 경계 안의 땅(口)을 절도(눖·병부 절)있게 맡아 다스리는 고을을 나타내는데, 고대에는 天子가 제후(諸侯)에게 부절(符節)을 내려 일정한 영토(領土)를 맡아 다스리도록 하였다. 한편 巴는 먹이를 입에 넣은 뱀(巳·뱀 사, 여섯째지지 사)의 목 부위가 불룩하게 팽창한 모양을 본뜬 글자이므로, 사람이 많이 모여 팽창된 지역(口) 즉 고을과 통한다. 華는 줄기로부터 꽃이 활짝 핀 모양. 花(꽃 화)의 총칭으로 초목에 만개(滿開)한 꽃을 나타낸다. 夏는 해가 가장 머리(頁·머리 혈) 위에 가까이 오고 무더워서 발걸음이 더딘(눝·천천히 걸을 쇠) 여름철을 뜻한다. 낮이 길므로 해가 더디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계절이 또한 여름이다.

[참조] 井(우물 정)의 한복판에 자리한 口는 수원지(샘구멍)인데, 口에 十을 넣은 田(밭 전)으로써 열길 깊은 샘물을 표상한다. 田(四口)의 형태가 口巴(邑)와 같고 많은 사람이 찾는 샘물을 뜻하므로 邑과 상통한다. 또한 고대의 토지제도인 정전법(井田法→눛)으로 보면 중앙의 口는 바깥 여덟 집(민가)이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물을 나라에 세(稅)로 내는 공전(公田)인데, 이것이 邑에 상응한다. 한편 井을 사통팔달(四通八達)하는 길로 보면, 중심인 田은 사람이 사는 邑(성 안), 井과 田이 교차하는 곳은 교(郊: 邑 주변의 들), 더 멀리는 야(野: 郊外의 들)에 속한다.

東西二京

東西二京

(韓) 동과 서에 두 서울이 있으니 동경은 낙양이고 서경은 장안이다.

(簡) 동서의 두 서울은

동과 서에 두 서울이 있으니 동경은 낙양이고 서경은 장안이다. 동녘 동(東), 서녘 서(西), 두이(二), 서울 경(京)

한자 유래

동서이경(東西二京)은 화하(華夏), 중국의 도읍지(都邑地)로 동쪽과 서쪽에 서울이 두 개 있다는 내용(內容)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낙양(洛陽)과 장안(長安)을 말한다. 동쪽의 서울은 낙양(洛陽)을 가리킨다. 낙양(洛陽)을 서울로 둔 나라는 역사적으로 동주(東周), 동한(東漢), 위진(魏晉), 석조(石趙), 후위(後魏)가 있었다. 서쪽의 서울에는 장안(長安)이 대표적인데 이 장안을 서울로 둔 나라는 서주(西周), 서진 (西秦), 서한(西漢), 후주(後周), 수(隨), 당(唐)이 있다.

동녁 동(東)자는 나무(木) 사이로 해(日)가 떠오르는 곳이 동쪽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갑골문(甲骨文)을 보면 자루의 아래위를 묶은 모습(模襲)이다. 가차(假借)되어 동쪽이란 뜻으로 사용(使用)된다. "설문(說文)"에서는 “동(東)은 만물(萬物)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목(木)으로 구성(構成)되었다. 관부(官溥)의 설에 따르면 ‘해가 나무에 걸려 있는 모습(模襲)으로 구성(構成)되었다.’고 한다.”고 기술(記述)하고 있다. 여기서 움직임을 뜻하는 동(動)으로 풀이한 것은 해가 뜰 무렵인 아침에는 만사만물(萬事萬物)이 부산하게 움직인 점을 감안(堪案)하여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에 그려진 것을 보면 양쪽 끝을 동여맨 꾸러미 모양(模樣)이어서 가차(假借)된 것이라고 주장(主張)하는 설(說)도 있다.

서녘 서(西)는 덮을 아(襾) 부수로 상형문자(象形字)다. 따라서 서녘(日入方位), 서쪽, 수박(西瓜), 서양(西洋), 깃들이다, 옮기다 등의 뜻이 있으며, 닮은 문자로는 닭 유(酉)가 있다. 옛 자형(字形)은 새의 둥지나 그와 비슷한 꼴을 나타낸다. 그 옛 음(音)이 사(死, 사람이 없어지다)나 천(遷, 옮아가다)과 관련(關聯)이 있었기 때문에 서(西)는 해가 지는 것을 나타내는 데 쓰여지고 해가 지는 방향(方向), 서녘의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나중에 서(西)의 자형(字形)을 새가 둥지에 있는 모양(模樣)으로 잘못 보아 저녁 때 해가 서쪽에 기울어 새가 둥지에 돌이가는 것이라고 설명(說明)하게 되었다.

두 이(二)는 가로선 두 개를 그은 것으로 처음부터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내려온 ‘둘’을 뜻하는 지사글자(指事字)다. 이 또한 후대(後代)로 오면서 철학(哲學)적인 의미(意味)를 부여(附與) 하였다. "설문(說文)"에서는 “이(二)는 땅의 수이다. 일(一)을 나란히 한 모양(模樣)으로 구성(構成)되었다.”라고 하였다. 갑골문(甲骨文)의 자형 역시 현재까지 잘 유지(維持)되고 있다. 여기서 이(二)를 땅이라 한 것은 역(易)에서 ‘천일지이(天一地二)’라고 한 음양(陰陽)의 개념(槪念)을 해석(解釋)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인(仁)은 두(二) 사람(亻) 사이의 관계(關係)를 나타내 ‘친하다’ ‘어질다’는 뜻을 부여(附與)했다.

서울 경(京)은 상형글자(象形字)로 옛날에는 높은 언덕위에 신전(神殿)을 모시고 그 주위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서 산데서 유래(由來)하였다. 또한 왕이 거주(居住)하는 왕궁은 일반 서민(庶民)이 사는 집보다 훨씬 높다랗게 건축(建築)한데서도 글자의 형태(形態)를 그려낼 수 있다. 즉 경(京)자는 원래 높이 지은 건물의 모습(模襲)을 본떠 만든 글자이다. 상형문자(象形字)를 보면, 높이 지은 집의 모양(模樣)을 본떠 만든 높을 고(高)자나 높을 교(喬)자와 유사(類似)하게 생겼다. 왕이 사는 서울은 높은 건물(建物)이 많아 '서울'이라는 뜻이 생겼다. 하지만,다른 글자와 만나면 큰 집이란 뜻으로 사용(使用)된다. 예를 들어 고래 경(鯨)자는 '고래 등처럼 큰 집(京) 같은 고기(魚)'라는 뜻이다. 경강상인(京江商人)은 '서울(京)의 한강(江)을 중심(中心)으로 장사하던 상인(商人)'으로, 조선 시대에 한강을 중심으로 중요한 뱃길을 장악(掌握)하여 곡류 따위를 도거리로 판매(販賣)함으로써 이익(利翼)을 보던 상인이다. 경재소(京在所)는 ‘서울(京)에 소재(在)를 둔 연락소(所)’라는 뜻으로, 조선 초기에 정부와 지방의 유향소(留鄕所) 사이의 연락 기능을 담당(擔當)하기 위하여 서울에 둔 기구이다. 서울에 세금(稅金)도 바쳐야 되고, 공문서(公文書)도 받아와야 하는 등등의 일을 하기 위하여 서울에 출장사무소를 둔 개념이다. 또한 유향소를 중앙에서 직접 통제(統制)할 수 있게 함으로써 중앙 집권을 효율(效率)적으로 강화(强化)한 정책이었다.

주역

[풀이] 화하(華夏)의 대표적인 도읍지인 東西의 二京에 대한 설명인데, 동쪽의 수도는 주(周) 무왕(武王)의 아들인 성왕(成王)이 세운 낙양(洛陽)이고 서쪽의 수도는 한(漢) 고조(高祖)가 세운 장안(長安)을 이른다. 東京(낙양)은 동주(東周), 동한(東漢=後漢), 위(魏), 진(晉), 후위(後魏) 등의 도읍지였고 西京(장안)은 서주(西周), 진(秦), 서한(西漢=前漢), 서위(西魏), 후주(後周), 수(隋), 당(唐) 등의 도읍지였다.

[字義] 東은 木(나무 목)과 日(날 일). 해(日)가 떠올라 세상을 환히 비추기 시작하고 초목이 싹트는 봄철(木)에 해당하는 동녘 방위를 뜻한다. 木은 봄에 해당하는 오행(五行)으로 해가 뜨는 동쪽을 가리킨다. 西는 본래 새(兀)가 둥우리(口)를 찾아드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저녁이 되면 짐승이나 사람이 모두 제 처소를 찾게 마련인데,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때이므로 서쪽을 나타낸다. (덮을 아)가 그 부수이므로 서쪽 지평 너머로 해가 들어가 어둠이 깔린다는 뜻도 담겨 있다. 二는 하나(一) 위에 또 하나(一)를 올려놓은 모양으로 '둘'을 가리키지만 본래는 둘로 나뉜 하늘땅(위 一과 아래 一)을 표상한다. 먼저 하늘이 열린 다음에 땅이 열리므로 '두 번째'를 뜻하기도 하며, 음의 부호가 두 획이므로 음을 대표하는 수로 많이 쓰인다. 京은 高(높을 고)와 光(빛 광)을 축약한 형태. 생활수준이 높고 문명이 발달하여 빛나는 곳인 수도(서울)를 뜻한다.

[참조] 현재 지도에서 쓰이는 것은 서양의 방위법이다. 본래 고대 동양에선 사람을 중심으로 보아 상천(上天), 하지(下地), 중인(中人)을 정한 다음 하늘에 태양이 올라 머리를 비추는 남쪽을 上(天), 그 반대의 북쪽을 下(地)로 간주하였다. 또 사람은 밝은 빛을 향하게 마련이므로 어두운 북쪽을 등지고 밝은 남쪽을 향함을 기본으로 하여, 해가 떠오르는 왼편(左)을 東으로 놓고 해가 넘어가는 오른편(右)을 西로 놓아 동서남북의 사방을 정하였다. 오행에선 동방(左)을 木, 남방(上)을 火, 중앙을 土, 서방(右)을 金, 북방(下)을 水로 간주한 다음 해가 도는 방향에 따라 오행의 상생(목생화→화생토→토생금→금생수→수생목)을 설명한다.

  1. 都邑華夏 東西二京 : ≪帝王世紀≫에 이르기를 “天子가 宮을 지은 곳을 都라고 한다.” 하였다. 邑은 고을인데, 王都를 또한 邑이라고 일컫는다. ≪詩經≫ 〈商頌 殷武〉에 이르기를 “商나라 도읍이 가지런하다.” 하였는데 여기서 말한 邑은 王都의 邑이다. 華는 文明한 모양이다. 夏는 크다는 뜻이다. 中國을 華夏라고 하니, 그 빛나고 큰 것을 말한다. 華는 빛나는 모양이다. 京은 또한 크다는 뜻이니, 王者가 사는 나라이다.(≪釋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