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慈隱惻 造次弗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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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慈隱惻을 造次弗離[注 1]라 (仁慈隱◯惻●을 造◯次◑弗●離◎라)

()인자하고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다급할 때에도 떠나지 말아야 한다.

仁者는 心之德이며 愛之理也[注 2]요 慈愛는 仁之用也요 惻隱은 仁之端也[注 3]
孔子曰 君子는 無終食之閒違仁하여 造次必於是라하니 仁之不可離 如此라

仁은 마음의 德이며 사랑의 原理이고, 慈愛는 仁의 응용이요 惻隱은 仁의 단서이다.
≪論語≫ 〈里仁〉에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밥 한 그릇을 먹는 짧은 시간도 仁을 떠남이 없어 다급할 때에도 반드시 仁으로 한다.” 하였으니, 仁을 떠날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

[節旨] 위에서 오륜을 갖추어 말하였으나 五常의 덕이 아직도 명확히 지적되지 않았으므로, 여기에서 자세히 말하였다. 이것은 仁의 덕을 말한 것이다.(≪釋義≫)

仁慈隱惻

仁慈隱惻

(韓) 어진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고 또는 이를 측은히 여겨야 한다.

(簡) 어진 마음으로 사랑하고, 측은히 여기며

어진 마음으로 사랑하고 또는 이를 측은히 여겨야 한다. 어질 인(仁),사랑 자(慈),숨을 은(隱),슬플 측(惻)

한자 유래

사람의 관계(關係)에서, 항상 어짐(仁)과 자애(慈)함으로 대하며, 형편(形便)이 어렵거나 재앙(災殃)을 입은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고, 그 아픔을 같이 슬퍼(惻)할 줄을 알아서, 함께 나누어야 한다. 즉 나라를 다스리려는 사람은 즉, 위정자(爲政者)는 백성을 측은(惻隱)히 여기는 마음은 잠시도 떠나서 는 안 된다는 말이다. 늘 백성(百姓)을 사랑(愛)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질 인(仁)의 구성)(構成)은 서있는 사람의 옆모습(模襲)을 본뜬 사람 인(亻)과 두 이(二)로 이루어졌다. 이(二)는 가로선 두 개를 그은 것으로 처음부터 변(變)하지 않고 그대로 내려온 ‘둘’을 뜻하는 지사글자(指事字)다. 이 또한 후대(後代)로 오면서 철학적(哲學的)인 의미(意味)를 부여(附與) 하였는데, "설문(說文)"에서는 “이(二)는 땅의 수(數)이다. 일(一)을 나란히 한 모양(模樣)으로 구성(構成)되었다.”라고 하였다. 갑골문(甲骨文)의 자형(字形) 역시 현재(現在)까지 잘 유지(維持)되고 있다. 여기서 이(二)를 땅이라 한 것은 역(易)에서 ‘천일지이(天一地二)’라고 한 음양(陰陽)의 개념(槪念)을 해석(解釋)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인(仁)은 두(二) 사람(亻) 사이의 관계(關係)를 나타내 ‘친하다’ ‘어질다’는 뜻을 부여(附與)했다. 인(仁)의 옛글자로 인(忎)을 들 수 있는데, 수 많은 사람(千)들의 마음(心) 속에 내재(內在)되어 있는 본성(本性)을 ‘어질고 착함’으로 보았다.

사람 자(慈)자는 형부인 마음(心)과 성부인 '무성할 자(玆)'로 된 형성자이다. 그러니 자(慈)자는 마음(心)이 무성하니(玆) '사랑하다(慈)'라는 뜻이다. 성부인 자(玆)자는 '사랑할 자(慈)'자의 본의를 담고 있다. 자(茲)자는 작은(艹) 풀(艸)이 여기 저기(幺→丝) 나서 '무성하다(茲)'라는 뜻이다. 그런데 자형이 매우 비슷하게 생긴 '검을 자(玆)'자와 구분(區分)할 수 있어야 한다. '검을 자(玆)'자는 '검을 현(玄)'자 두 개를 더해 '매우 검다'는 뜻 외에도 실(糸→丝)이 뽑히는 출발점(茲)이 모인 상태(狀態)의 '玆'자 개념(槪念)으로 해석(解釋)되어 '이, 이에'란 대명사(代名詞)로 쓰이니 주의(注意)를 요한다. 그럼, '검을 자(玆)'자와 '이, 이에'라는 뜻은 전혀 별개(別個)로 생겨난 것에 관계(關係)가 있다. 바로 실마리는 알(卵)이다. 생명(生命)의 출발점(出發點)이요 근원(根源)이 머무는 곳은 알, 씨앗, 어미의 자궁(子宮) 속처럼 칠흑 같이 검고 어두운 곳이다. 따라서 이런 개념(槪念)에 마음이 스민 자(慈)자는 마음(心)이 무성하니(玆) '사랑하다, 어머니, 자석(慈)'이라는 뜻이다. 사랑 자(慈)자는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라는 뜻도 있다. 남의 어머니를 높이 이르는 자당(慈堂)이 그러한 예다. 자비(慈悲)는 '사랑하고(慈) 불쌍히(悲) 여기는 마음'이고, 자선(慈善)은 '사랑(慈)과 선의(善)를 베풀다'는 뜻이다.

숨을 隱(은)의 구성(構成)은 언덕 부(阝)와 삼갈 은(㥯)으로 이루어졌다. 부(阝)는 인공(人工)으로 만든 계단(階段)을 본뜻으로 한 부(阜)의 약자(略字)다. 갑골문(甲骨文)을 보면 인공적으로 만든 계단 모양(模樣)이다. 즉 고대 황하유역(黃河流域) 사람들의 거주지였던 토굴을 오르내리기 쉽게 통나무를 깍아 계단을 만든 모양(模樣)이었다. 또한 높은 언덕을 오르내리기 쉽도록 흙을 깎아내 계단(階段)을 만들었는데 본뜻인 ‘계단’보다는 ‘높은 언덕’이라는 의미(意味)로 확대되었다. 은(㥯)은 위에서 내려잡은 손 모양을 본뜬 손톱 조(爫)와 장인의 공구 모양을 상형(象形)한 장인 공(工), 그리고 뭔가를 움켜잡은 손 모양의 나타낸 계(彐)와 사람의 심장을 본뜬 마음 심(心)으로 구성(構成)되었다. 그 뜻은 정교(精巧)하게 만든 어떤 물건(工)을 두 손(爫와 彐)을 이용(利用)하여 들고 있는 사람의 마음(心)을 나타내 ‘삼가하다’ ‘조심하다’는 뜻을 부여(附與)했다. 따라서 은(隱)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언덕(阝) 뒤로 조바심을 내며(㥯) 숨는 모양을 나타내 ‘숨다’ ‘가리다’는 뜻을 표현(表現)하였다.

슬퍼할 측(惻)자는 형부인 마음(心=忄)과 성부인 '본받을 측(則)'으로 된 형성자(形聲字)이다. 그러니 측(惻)자는 마음(忄)이 바로 본받아(則) '슬퍼하다(惻)'라는 뜻이다. 성부인 칙(則)자는 '슬퍼할 측(惻)'자의 본의(本意)를 담고 있다. 측(則)자는 '법칙 (측), 곧 (則), 본받을 (則)'이라는 여러 훈과 음을 갖는데, 칙(則)자는  (刀)部 글자로 칼(刀=刂)과 솥(鼎=貝)의 뜻이 모인 회의자(會意字)이다. 그러니 칙(則)자는 칼(刀=刂)이 솥(鼎=貝)에서 달궈진 후 거북껍질을 지지면 갈라지면서 드러나는 '법칙(則)'이라는 뜻이다. 칼(刀=刂)이 솥(鼎=貝)에서 달궈진 후에 거북껍질을 지지면 '치직∼'하는 소리와 함께 껍질이 갈리는 결과(結果)를 보고 무슨 일이 언제·어떻게 될 것인지 점을 쳐서 가늠했던 머나먼 옛날로 거슬러올라가 본다. 칼이 손에서 달궈진 후 거북껍질이나 소의 어깨뼈에 지지면 갈리면서 본보기(則)가 되는 법칙(則)이 곧(則) 드러나려는 순간이다. 이런 배경(背景)이 스민 칙(則)자는 '법칙 칙(則), 곧 즉(則), 본받을 측(則)'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곧 바로 본받는 법칙과도 같은 마음을 나타내는 측(惻)자는 마음(忄)이 즉시 본받아(則) '슬퍼하다, 측은하다, 가엽게 여기다, 진심을 다하는 모양(惻)'이라는 뜻이다. 즉 측(惻)자는 슬픔을 보면 자신도 바로 본받아 슬퍼지는 감정전이 현상(感情轉移現象)을 나타낸다. 남의 슬픔을 내 마음 속에 담은 측은(惻隱)함은 딱하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으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측은지심은 인(仁)의 근본이라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인지단야(仁之端也)"에 나타나 있듯이 우리들의 마음(忄)이 바로 본받아(則) 슬퍼지게(惻) 된다.

주역

[풀이] 여기 仁慈隱惻으로부터 다음의 造次弗離 節義廉退 顚沛匪虧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하나로 연계되며, 전체적으로 인의(仁義)를 강조하고 있다. 주역 건괘(乾卦)에는 하늘의 사덕(四德)을 원형이정(元亨利貞)으로 설명하였다. 이를 계승한 맹자(孟子)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사람의 성품이 본래부터 착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고 인예의지(仁禮義智) 사단(四端), 즉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仁의 실마리(惻隱之心 仁之端也), 사양하는 마음은 禮의 실마리(辭讓之心 禮之端也), 자신의 허물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된 바를 미워하는 마음은 義의 실마리(羞惡之心 義之端也),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은 智의 실마리(是非之心 智之端也)가 되는 것에서 입증된다고 하였다.

[字義] 仁은 人(사람 인)과 二(두 이). 두 사람(二人)이 사랑을 주고받는 것에서 서로 아껴주고 돕는 어진 마음의 덕을 일컫는다. 두 사람(부모)의 사랑으로 인한 밝은 생명의 씨라는 뜻에서 '씨 인'으로도 풀이하는데, 봄에 뿌리는 씨 또한 음양(암수) 둘로 되어있다. 慈는 (무성할 자, 불어날 자)와 心(마음 심). 어린 자식의 배를 불리려는 부모의 마음이라는 뜻에서 '사랑하다'는 뜻이다. 는 가는( + ) 실처럼 초목(눿)의 싹이 자라 우거지는 것에서 불어남을 이른다. 隱은 阜(뉄:언덕 부)와 (삼갈 은). 세상의 눈을 피해 조심스레 산언덕 밑으로 숨는다는 뜻이다. 은 손(爪)과 손(又의 변형)을 모아 조심스럽게(心) 물건을 만드는(工) 것에서 삼감을 이른다. 惻은 心(마음 심)과 則(법칙 칙). 법도에 벗어나 허물을 짓는 세상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마음이 슬프다는 뜻이다.

[참조] 하늘은 가장 큰 존재(一+大)인 동시에 만물을 만드는 조물주(工+人)이다. 또한 천지음양(二)의 조화로 人(즉 만물)이 나오는 것으로 天(二+人)을 풀이하면 하늘이 천지인 삼재(三才)를 주관하고 통솔하는 주재자라는 뜻이 된다. 한울(天)이 仁을 본체로 하므로 仁과 天에 다같이 二와 人이 들어있다고 하겠다.

造次弗離

造次弗離

(韓) 남을 위한 동정심을 잠시라도 잊지 말고 항상 가져야 한다.

(簡) 다시는 헤어지지 않으며

남을 위한 동정심을 잠시라도 잊지 말고 항상 가져 야 한다. 지을 조(造),버금 차(次),아닐 불(弗),떠날 리(離).인자(仁慈)마음이 어질고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두터운 사랑이요, 은측(隱惻)숨기어진 슬픔을 불상이 여기는 것으로 이에 대해 달래어 주는 사랑을 주는 것은 인자은측(仁慈隱惻)이다. 여기에서 인자(仁慈)가 붙지 아니하면 은측(隱惻)만으로는 어진 마음으로 사랑을 베푸는 형용어는 해당이 아니 된다. 압축해서 말하면 외롭고 슬프고 괴로운 사연이 숨어 있는 이 에게 달래어 주는 사랑이라 하겠다 .조차(造次)아주 갑작스러운 것, 불리(弗離) 어그러질 불(弗) 이별할 리(離) 이별함이 어그러지면 떨어질 수 없다는 것으로 잠시라도 잊을 수 없다, 조차 불리(造次弗離)하면 길흉(吉凶)을 막라(莫羅)하고 아주 갑작스러운 일을 당하면 특히 흉사(凶事)에는 동정심을 잠시라도 잊지 말고 위로하고 협력을 아끼지 말라는 뜻이다.

한자 유래

조차불리(造次弗離)는 인자은측(仁慈隱惻)을 한 순간도 떠나서는 아니 된다는 설(說)이다. 이 인자은측(仁慈隱惻)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조차(造次)는 조차지간(造次之間)을 말한다. '지극히 짧은 동안'을 뜻한다. 창졸(倉卒)과 수유(須臾)의 뜻을 가지고 있다. 불리(弗離)는 '떠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지을 조(造)는 쉬엄쉬엄 갈 착(辶)과 알릴 고(告)로 구성(構成)되어 있다. 고(告)는 소 우(牛)와 입 구(口)로 구성(構成)되었는데, 옛날 하늘에 제사(祭祀)를 지낼 때는 소(牛)를 제물(祭物)로 바치고서 제주(祭主)는 큰 소리(口)로 소원(所願)을 빌었다. 이러한 풍속(風俗)에 따라 뭔가 큰일을 하기에 앞서 사람들은 신(神) 혹은 창조주(創造主)를 모신 제단(祭壇)에 소(牛)를 제물로 올리고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그 앞에 나아가(辶) 소원을 빌었던(口) 것이다. 이러한 유풍(流風)은 오늘날까지도 행해지고 있는데, 소 대신 돼지머리를 올리는 게 다를 뿐이다.

버금 차(次)는 '두 이(二)'자와 '숨을 내쉬는 모습'으로 된 '하품 흠(欠)'자를 더해 '두 번째로 (이어서)쉰다'는 뜻을 나타낸 '버금(二) 차, 이을 차, 혹은 머무를 차(次)'자다. 차례(次例), 절차(節次), 점차(漸次), '조차불리(造次不離, 잠깐도 떠나지 않음)'가 있다. 차(次)는 상형자(象形字)로 사람이 한숨을 쉬는 모양을 본떠, '묵다'의 뜻을 나타낸다. 성부인 차(次)자는 '방자할 자(恣)'자의 본의를 담고 있다. 차(次)자는 두 점(二=冫)과 무릎꿇은 사람(欠)을 그려 모자란 것을 달라고 재차 빈다는 의미에서 '버금(次)'이라는 뜻이다. 버금이란 서열이나차례로 으뜸의 다음을 일컫는다. 그러니 차례나 순번을 매기면 으뜸(元)과 비교하여 모자라니 두 번째에 머무른다. 따라서 차(次)자는 '버금·차례·번·매기다·이르다·잇다·머무르다'라는 뜻이다. 또한 차(次)자는 머무르는 경우 군사가 둔(屯)을 치는 의미로 확장되어 '진영(陣營)'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뜻은 으뜸(元)과 상대적으로 이해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즉, 으뜸 다음으로 버금이 있음으로 하여 차(次)자의 뜻인 버금, 차례, 번, 매기다, 이르다, 잇다, 머무르다, 진영' 등의 뜻이 더욱 분명(分明)해진다. 따라서 이런 의미(意味)들이 마음에 스민 자(恣)자는 '방자하다, 방종하다'라는 뜻이다. 대체적으로 버금(次)인 사람들의 마음(心)은 방자(放恣)하게 여겨진 듯 하다. 그렇게 여긴 타당성(妥當性)을 예로 들면 어느 정도 수긍(首肯)할 수 있다. 형제의 으뜸(元)인 맏이 또는 부인의 으뜸인 정실(正室)은 아무 거리낌 없이 함부로 행동하는 버금인 둘째 아들이나 후실(後室)들보다 상대적으로 신중(愼重)한 경향이 있다. 그래서 버금의 처지에 있는 둘째나 후실들이 상대적(相對的)으로 도전적(挑戰的)이고 진취적(進取的)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때로 적극성(積極性)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으뜸인 자의 마음(心)으로 이런 성향(性向)의 버금(次)이 방자하게(恣) 보이는 것이다.

아니 불(弗)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굽은 나무(세로의 두 획)를 한 가닥의 끈(弓)을 이용하여 ‘바르게 편다’는 데서 ‘바로잡다’가 본뜻이라고 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활 弓(궁)의 자형적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활대(弓)를 만들기 위해 두 줄로 묶어둔(丿+丨, 세로의 두 획) 나무는 아직은 활로 쓸 수 없다는 데서 ‘아니다’는 뜻이 발생(發生)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즉 (弗)은 상형자(象形字)로 얽히는 끈을 두 개의 막대기로 휘둘러 떨어뜨리는 모습에서.'떨다, 제거하다'의 뜻을 나타낸다. 가차(假借)하여 '아니다'라는 부정(否定) 조자(助子)로 사용한다. 불(弗)은 또 미국 화폐의 단위인 '달러'를 뜻하는 $글자와 모양(模樣)이 비슷하여 가 차자(假借字)로 쓰이기도 한다. 불(弗)은 불(不)과 대체로 유사하지만 불(不)이 주로 동사의 행위(行爲)를 결정지어 주는 조동사(助動詞)의 역할을 하는데 비해, 불(弗)은 동사(動詞), 명사(名詞), 형용사(形容詞)의 뜻을 도와주는 보조사(補助詞)의 역할로 쓰이기도 한다.

떠날 리, 이(離)의 구성(構成)은 산에 사는 신령(神靈)한 짐승을 뜻하기도 하는 떠날 이(离)와 새 추(隹)로 짜여 있다. 여기서 이(离) 자는 ‘사로잡다’와 ‘날짐승’을 뜻하는 금(禽)과 관련(關聯)이 깊은데, ‘날짐승 금(禽)’은 자형 상부를 이루는 부수(人+文+凵)와 발자국 유(禸)로 구성(構成)되어 있다.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을 보면 긴 자루나무 끝에 그물(罔)을 맨 그림이었으며 한나라의 소전(小篆)으로 오면서 현재의 자형과 비슷한 유형(類型)을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이 자형 상부를 금(今)으로 보면서 소리요소로 파악(把握)하지만 작성자마다 좀 다르다. 문자라는 것은 학문(學問)의 발달(發達)과 함께 다양(多樣)한 의미(意味)가 추가(追加) 된다는 점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된다. 글자 역시 사유 체계(思維體系)의 발달(發達)과 함께 사물(事物)을 본뜬 상형(象形)의 회화적(繪畵的)인 단순(單純)함에서 벗어나 보다 세부적(細部的)인 요소가 가미(加味)된 지식을 담게 되기 때문이다. 금(禽) 자에는 이러한 글자의 발달 과정(發達過程)이 잘 담겨있다. 자형 상부를 이루는 부수들을 보면, ‘인(人)’은 새장의 지붕을, 무늬를 뜻하는 ‘문(文)’은 아름다운 무늬를 띤 새를, ‘감(凵)’은 새장을 뜻한다. 여기에 짐승 발자국을 뜻하는 유(禸)를 더해 사람이 아닌 짐승임을 강조(强調)했다. 따라서 금(禽)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지붕(人)을 씌워 새(文)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새장(凵)에 가두어(禸) 두었다는 것이니, 금(禽)은 곧 날짐승을 대표하는 글자로 규정(規定)되었다. 떠날 리(離)를 살펴보면 이러한 뜻이 보다 명확(明確)해진다. 날짐승을 뜻하는 금(禽) 자의 상부를 이루는 지붕(人)이 없어지게 되면 새(隹)는 새장을 벗어나 멀리 날아가 버린다는 데서 ‘떠나다’ ‘헤어지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주역

[풀이] 본성의 어짊을 잠시라도 떠나면 사람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를 잃게 됨을 설명한 문구이다. 중용(中庸)에도 "하늘의 명에 말미암은 것이 성품이고 본연의 성품 그대로 따르는 것이 길이며, 그 길을 닦아놓은 것이 가르침이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고 정의하면서, "道(즉 길)는 잠시도 떠나지 못하니, 떠난다면 도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곳(즉 自性=天命)에 늘 경계하여 삼가고 두려운 마음을 품는다"고 하였다.

[字義] 造는 뉂(뉁·쉬엄쉬엄 갈 착. 책받침)과 告(알릴 고, 고할 고·곡). 일하기에 앞서 먼저 천지신명에게 고하고자(告) 나아가는(뉂) 것으로 '나아갈 조'인데, 일을 만들어나가는 것에서 '만들다' 또는 '짓다'는 뜻이 되었다. 次는 二(두 이)와 欠(부족할 흠, 하품 흠). 기력이 달려(欠) 앞장서지 못하고 그 다음으로(二) 뒤처짐을 가리키는데, 앞과 거의 버금하여 뒤따름을 뜻한다. 단어용례로 순차(順次), 차서(次序) 등이 있다. 弗은 弓(활 궁)에 눂(삐칠 별)과 (파일 불). 활등이 이리 삐뚤(눂) 저리 삐뚤() 한지라 활줄이 매어지지 않는 데서 '아니'라는 뜻이 된다. 또는 활(弓)을 쏠 때 곧은 화살을 써야지, 좌(눂)나 우() 한편으로 휘어진 화살을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離는 (흩어질 리, 떠날 리)와 (새 추). 새떼가 흩어짐을 나타낸다. 팔괘(八卦) 중 타오르는 불을 나타내며, 음이 두 양 사이에 걸려 붙은 의 명칭으로 쓰인다. 사슴의 두 뿔이 중간에 걸림을 나타낸 麗(고울 려, 걸릴 리) 또는 (꾀꼬리 리)와 통한다.

[참조] 인류문명의 시작은 복희씨의 팔괘로부터 비롯된다. 공자는 옛적 복희씨가 세상을 다스릴 당시 천문과 지리 조수의 무늬 등을 두루 관찰하고 처음 팔괘[일명 結繩文字]를 만들어 신명의 덕을 통하고 만물의 실정을 분류하는 한편, 노끈으로 엮은 그물을 만들어 사냥을 하고 물고기를 잡게 하였으니, 이는 離()에서 취한 바라고 말씀하였다. 밝은 불을 대표하는 離는 문명을 상징함과 더불어 그물()의 형상과 같다. 일설에는 창힐이 새 발자국을 본떠 문자를 창안(創案)하였다고 하는데, 새 발자국((+눻)이 찍힌 무늬(文+눏)를 나타낸 글자가 또한 離임을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仁慈隱惻 造次弗離 : 慈는 사랑한다는 뜻이다. 隱은 매우 아파함이다. 惻은 간절히 애상해함이다. ≪孟子≫ 〈告子 上〉에 말하기를 “측은한 마음은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다.” 하였다. 造次는 다급하고 구차할 때이다. 弗은 금지하는 말이다. 離는 떠난다는 뜻이다. 이것은 仁은 사랑을 위주로 하지만 차마 못하는 일을 만나면 哀傷함이 절실하며 아파함이 심하니, 이것은 사람의 본심이어서 비록 황급하며 구차한 때를 당하더라도 버릴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살펴보면 仁ㆍ義ㆍ禮ㆍ智ㆍ信이 五常의 덕이 되지만 仁ㆍ義가 중대하므로 밝게 지적하였으니, 마치 윗글의 오륜에서도 君臣ㆍ父子를 중대하게 여긴 것과 같다. 그러나 仁ㆍ義 두 가지에서도 仁이 나머지 四德을 포괄하여 義보다 더욱 크므로 또 구별하여 말하였으니, 마치 윗글에서 君ㆍ父를 아울러 중시하였으나 임금을 섬기는 도리는 아버지를 섬기는 도리에 의지하여 또 孝를 근본으로 삼은 것과 같다. 비록 그 글에 자세하며 간략함이 있으나 이치는 실로 관통하여 앞뒤의 차등 차례가 자른 듯이 어지럽지 않으니, 독자는 마땅히 자세하게 玩味해야 할 것이다.(≪釋義≫)
  2. 仁者 心之德 愛之理也 : 統合ㆍ親切과 體ㆍ用으로 설명하여 “心之德은 融合된 설명이고, 愛之理는 한창 親切한 곳을 말한 것이다.” 하고 “心之德은 體이고 愛之理는 用이다.”로 설명하기도 한다.(≪孟子≫ 〈梁惠王 上〉 大全)
  3. 惻隱 仁之端也 : 端은 ‘처음’으로, ‘고치실의 실마리’로 비유하여 “端은 실마리[緒]이니, 사물의 ‘시작’이다. 고치실[繭絲]로 비유하면 바깥에 한 가닥 실마리가 있으면 바로 속에 한 덩어리 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실이 안에 없다면 실마리가 무엇을 말미암아 밖에 보이겠는가!”라고 설명하였다.(≪孟子≫ 〈公孫丑 上〉 大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