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靜情逸 心動神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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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靜情逸하고 心動神疲[注 1]라 (性◑靜◯情逸●하고 心動◯神疲◎라)

()성품이 고요하면 감정도 편안하고, 마음이 동요하면 정신도 피곤해진다.

人生而靜者爲性也요 感物而動者爲情也라 縱逸은 亦動之意也라
心은 統性情者也[注 2]니 心若逐物而動하여 淵淪天飛하면 則不能全其性하여 而使神氣疲倦也라

사람이 태어나 靜할 때에는 本性 그대로이고, 사물에 감동되어 동요하면 情이 된다. 縱逸(방종과 안일)은 또한 動의 뜻이다.
心은 性과 情을 통합하고 있으니, 心이 만일 사물에 따라 동요하여 못 속에 빠지듯이 하고 하늘 위에 날듯이 하면, 그 性을 온전히 보전하지 못하여 神氣를 피곤[疲倦]하게 한다.

[節旨] 이는 윗글의 五常의 덕을 총괄하여 말하였다.(≪釋義≫)

性靜情逸

性靜情逸

(韓) 성품이 고요하면 뜻이 편안하니 고요함은 천성이요 동작함은 인정이다.

(簡) 마음은 고요하고, 편안히 하는 것은

성품과 뜻이 고요하면 편안하니 고요함은 천성이요 동작함은 인정(人情)이다. 성품 성(性),고요 정(靜),뜻 정(情),편안할 일(逸)

한자 유래

성품(性)이 고요(靜)하면 감정(情)이 편안(逸)하고, 마음(心)이 흔들(動)리면 정신(神)이 피로(疲)해진다. 유가(儒家)에서 '성(性)'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간직하고 있는 착한 본성(本性)을 말하고, '정(情)'은 외부(外)의 사물(物)로부터 자극(刺戟)을 받아 형성되는 욕망(慾)을 말한다. 따라서 '성(性)'은 그 착한 본성을 다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긍정적(肯定)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반면 '정(情)'은 마땅히 교육(敎)과 교화(化)로써 억제(抑)되고 통제(制)되어야 할 부정적(否定)인 이미지를 갖게 된다. 이는 '인간관(人間觀)'을 주장(主張)한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이다.

성품 성(性)은 마음 심(忄)과 날 생(生)으로 구성(構成)되어 있다. 마음(心)의 또 다른 표현인 심(忄)은 몸의 한 가운데 위치(位置)한 심장을 본뜬 것으로 옛사람들은 마음작용(心作用)을 일으키는 주된 역할(役割)을 오장 중 심장이 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심(心)은 놓이는 위치(位置)에 따라 자형(字形)의 좌변에서는 심(忄), 그리고 자형(字形)의 하부에서는 심(心)과 심(㣺)으로 쓰이고 있는데 마음작용(心作用)과 관련(關聯)이 깊다. 생(生)은 땅거죽(土)을 뚫고 자라나는 풀(屮)을 본떠 ‘낳다’라는 뜻을 부여(附與)했다. 따라서 성(性)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변화무쌍(變化無雙)하게 나타나는 우리 마음(忄)이 자라나는(生) 본체라는 데서 ‘성품(性品)’ ‘성질(性質)’을 뜻하게 되었다. 즉 하늘이 부여(附與)한 생명의 본체인 ‘본성(本性)’을 말하는데, 그것은 누구나 같은 근원(根源)에서 출발(出發)한 본래부터 밝은 빛의 존재(明德)였다.

고요할 정(靜)의 본자(本字)이며 형성문자(形聲字)이다. 다툴 쟁(爭)은 물건(物件)을 서로 끌어당기는 일, 여기에서 팽팽히 당겨져서 움직이지 않는 모양(模樣)을 나타낸다. 음(音)을 나타내는 청(靑)은 푸른 색깔을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무성(茂盛)하다(菁)', 깨끗하다(淸), 자세하다(精), 편안하다(靖) 따위에 공통되는 뜻을 이어 받고 있다. 정(靜)은 물건(物件)이 움직이지 않고 조용함, 편안함, 또 자세함, 장식(裝飾)함, 아름다움, 물이 물결치지 않는 것을 청(淸) 또는 정(淨)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또 정(瀞)이라고도 쓴다. 정지(靜止), 정숙(靜肅), 냉정(冷靜), 안정(安靜) 등에 들어가는 고요할 정(靜)자는 '다투지(爭) 않으면 고요하다'는 뜻이다. 또 푸른 산이나 푸른 물에서 느껴지듯이 푸를 청(靑)자는 '쉬거나 조용하다'는 뜻이 있다. 여기에서는 푸를 청(靑)자가 소리로 사용된다. 정맥(靜脈)은 '고요한(靜) 혈관(脈)'이란 뜻으로, 심장에서 나온 피가 동맥과 모세혈관을 지나 심장으로 돌아가는 혈관이다. 심장에서 나오는 피는 심장의 박동과 함께 움직이지만, 심장으로 돌아가는 피는 조용히 흘러간다. 정물화(靜物畵)는 ‘과일, 꽃, 화병 따위의 정지(靜)된 물건(物)들을 놓고 그린 그림(畵)’이다. 정전기(靜電氣)는 ‘이동하지 않고 정지된(靜) 전기(電氣)’다. 보통의 전기는 양극에서 음극으로 전기가 흐르지만, 마찰전기와 같은 정전기는 흐르지 않고 있다가 다른 물체와 접촉하면 흐른다.

뜻 정(情)의 구성(構成)은 마음 심(忄)과 푸를 靑(청)으로 짜여 있다. 마음(心)의 또 다른 표현(表現)인 심(忄)은 몸의 한 가운데 위치(位置)한 심장(心腸)을 본뜬 것으로 옛사람들은 마음작용(心作用)을 일으키는 주된 역할(役割)을 오장 중 심장(心腸)이 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심(心)은 놓이는 위치(位置)에 따라 자형의 좌변에서는 심(忄), 그리고 자형의 하부에서는 심(心)과 심(㣺)으로 쓰이고 있는데 마음작용(心作用)과 관련(關聯)이 깊다. 청(靑)에 대해 허신(許愼)은 "설문(說文)"에서 “청(靑)은 동쪽 방향(方向)을 나타내는 색(色)이다. 목(木)은 화(火)를 낳는다(오행의 상생관계, 목생화木生火를 뜻함). 생(生)과 단(丹)으로 구성(構成)되었다.”고 하였다. 갑골문(甲骨文)에는 보이지 않지만 금문(金文)에 그려진 자형을 보면 광산의 갱도(井)에서 광물(丶)을 깨내는데, 자형(丹)이 형성(形成)된 시대적인 배경(背景)으로 보아 구리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붉은 뜻을 갖은 단(丹)은 안료(顔料)로 쓰이는 주사(朱砂)나 진사(辰砂)를 의미(意味)하기도 하지만, 구리(銅)를 나타내기도 했다. 따라서 구리(丹)가 산화(酸化)되면 푸른빛을 낸다(生)는 점에 착안(着眼)하여 ‘푸를 청(靑)’이라 하였다. 따라서 정(情)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깊은 마음(忄)속에서 우러나는 푸른 하늘처럼 맑고 깨끗한(靑) ‘사랑’이나 ‘정’을 말한다.

편안할 일(逸)은 일(佚)과 동자(同字)이다. 책받침, 쉬엄쉬엄 갈 착(辶) 부(部)와 없어지게 되다 토(兎)와의 합자(合字)이다. 즉 토끼를 쫓다가 놓쳤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안일(安逸)'하다와 '안이(安易)'하다를 언뜻 생각하면 같은 의미(意味)인 것 같지만 엄밀(嚴密)히 따져보면 동의어(同義語)가 아니다. 여기서 '안일(安逸)하다와 안이(安易)하다는 모두 너무 쉽게 여기는 태도(態度)'라는 뜻을 갖고 있어서 명확(明確)히 구분(區分)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안일(安逸)하다는 '편안할 안(安)'자에 '달아날 일(逸)' 자가 만나 편안함만을 생각하고 현실에서 달아나려는 태도가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안이'하다는 '편안한 안(安)'자에 '쉬울 이(易)' 자가 결합(結合)해 너무 쉽게 여기는 태도나 경향(傾響)이 있다는 의미로 사용(使用)된다. 쉽게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안일'하다는 편안한 것만 생각하고 현실(現實)을 회피(回避)한다는 비판적(批判的)인 의미가 더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안일(安逸)하다'에는 '나태(懶怠)하다'는 의미도 포함(包含)돼 있는 것이다. 또 '안일(安逸)하다'는 형용사(形容詞)뿐 아니라 부사(副詞)로 '안일히'나 명사(名詞)로 '안일'로도 쓰일 수가 있지만, '안이하다'는 형용사로만 쓰이고 '안이'만 따로 떠어내서 사용(使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주역

[풀이] 마음의 본바탕인 성품을 고요히 닦으면 마음의 쓰임새인 감정도 자연히 안정됨을 강조한 문구이다. 성품은 내적인 마음의 이치를 일컫고(性, 心之理) 감정은 외적인 마음의 작용을 이른다(情, 心之用).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천부(天賦)의 착한 성품(性品)과 희로애락(喜怒哀樂)으로 표출되는 감정(感情)을 지니고 있는데, 중용(中庸)에서는 이러한 성정의 지극한 조화를 중화(中和)로 설명하고 있다.

[字義] 性은 눬(心·마음 심)과 生(날 생). 태어날(生) 때부터 타고난 본래 마음(心)이 성품이라는 뜻이지만, 마음(心)의 발생지(生) 즉 마음이 일어나는 모태(母胎)가 성품이라는 뜻도 된다.

靜은 靑(푸를 청)과 爭(다툴 쟁). 본래는 푸른 빛을 서로 자랑하여 다투는 것을 가리키는데, 짙푸른 샘물일수록 잔잔하고 조용하므로 '고요하다'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靑(푸를 청)은 井(우물 정)과 生(날 생)의 변형으로 즉 우물에서 나는 푸른 물빛, 爭은 서로 손을 내밀어 물건을 얻으려는 다툼을 뜻한다.

情은 눬(心·마음 심)과 靑(푸를 청). 마음이 자못 파릇파릇하게 생동감이 있는 것에서 기쁨, 성냄, 슬픔, 즐거움 등 실지로 일어나고 느끼는 마음을 일컫는다.

逸은 뉂(뉁·쉬엄쉬엄 갈 착)과 免(면할 면). 일하러 나아감을 모면하여, 바쁘지 않아 편안함을 말한다. 그러므로 세상에 이름을 내놓지 않고 빠져있는 사람을 '일민(逸民)'이라고 한다.

[참조] 중용(中庸)의 앞머리에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하늘이 명령하신 것을 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본연의 성품을 따르는 것을 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길을 닦아놓은 것을 敎라고 정의하고 있다.

心動神疲

心動神疲

(韓) 마음이 움직이면 신기가 피곤하니 마음이 불안하면 신기가 불편하다.

(簡) 마음이 움직이면, 정신이 피곤하기 때문이다.

마음과 신기가 움직이면 피곤하고 마음이 불안하면 신기가 불편하다. 마음 심(心),움직일 동(動),귀신 신(神),피곤할 피(疲) 성정정일(性靜情逸)성품은 뜻이요 고요함은 편안함이다. 천리부명(天理賦命)에서 성품 성(性)다음에 정(情)이 따르면 마음 성(性),질야(質也)는 바탕 성(性), 욕(欲)에서는 색욕성(色欲性)로 각각 그 뜻을 다르게 함을 볼 수 있다. 하여 정(情)을 성지동의야(性之動意也)에서는 뜻 정(情)인데 실 야(實也)에서는 실정 정(情)로 심중(心中) 마음속 정(情)로 그 뜻을 달이 하고있다. 고요 정(靜)은 동지대(動之對)에서 고요 정(靜)이요 ,모야(謀也) 에서는 꾀할 정(靜), 안야(安也)에 편안할 정(靜), 식야(息也)에서는 고요 정(靜)로, 적야(寂也)에서는 고요할 정(靜)이다. 편안할 일(逸)은 락야(樂也)이고, 종야(縱也)에서 놓일 일(逸), 은야(隱也)에서 숨을 일(逸), 실 야(失也)는 잃을 일(逸), 방야(放也) 놓을 일(逸), 분(奔)에서는 달아날 일(逸), 우야(優也)에는 뛰어날 일(逸)이다. 이러한 글귀를 놓고 보면 글자라는 것은 앞과 뒤에 붙이는 글자나 단어에 따라 얼마나 민감한 영향을 주게 되는지를 짐작이 간다. 사람은 갈 곳이나 설 곳을 먼저 생각을 하고 마음과 행동을 정 하여야 하며, 가서는 아니 될 곳을 가거나 머물 거리지 못할 곳에서 머물 거리거나 정을 함부로 통해서는 아니 되며 매사에 심사숙고(心思熟考) 해야 한다.

한자 유래

심(心)은 통성정야(統性情也)라 했다. 마음은 성(性)과 정(情)을 통합(統合)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외물(外物)에 따라 움직(動)이면 그 성(性)을 온전히 보전(保全)하지 못하고 신기(神氣)를 피곤하게 한다. 마음은 모든 법(法)의 근본이며 주인이다. 그래서 마음쓰기에 따라 밝음(明)으로 갈 수 있는데도 어리석은 중생(衆生)들은 그 보다는 마음 속에 악한 일을 생각하고 행동(行動)으로 옮겨서 스스로 업보(業報)의 고통을 자초(自招)하고 있다.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은 한 치도 어긋남이 없어서 죄를 지으면 그 보(報)를 받음이 마치 수레가 가면 바퀴자국이 뒤따름과 같다는 말이다.

마음 심(心)은 사람의 심장을 본뜬 상형글자(象形字)다. 고대 사람들은 ‘마음’ 혹은 몸을 운용(運用)하는 주체인 ‘영혼(靈魂)’이 심장에 머물고 있다고 보아 군주지관(君主之官)으로 분류(分類)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심(心)은 놓이는 위치(位置)에 따라 자형의 좌변에서는 심(忄), 그리고 자형의 하부에서는 심(心)과 심(㣺)으로 쓰이고 있다.

움직일 동(動)은 무거울 중(重)과 힘(力), 힘써 일한다는 뜻이 합해 물건(物件)을 들어 올리거나 움직이는 모습(模襲)을 의미(意味)한다. 이를 파자(破字)하면 중력(重力)인데 사물(事物)의 움직임에 관한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牛顿万有引力法則), 중력(重力)을 고대인(古代人)들이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설문(說文)"에서는 “동(東)은 만물(萬物)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목(木)으로 구성(構成)되었다. 관부(官溥)의 설에 따르면 ‘해가 나무에 걸려 있는 모습(模襲)으로 구성(構成)되었다.’고 한다.”고 기술(記述)하고 있다. 여기서 움직임을 뜻하는 동(動)으로 풀이한 것은 해가 뜰 무렵인 아침에는 만사만물(万事万物)이 부산하게 움직인 점을 감안(勘案)하여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에 그려진 것을 보면 양쪽 끝을 동여맨 꾸러미 모양(模樣)이어서 가차(假借)된 것이라고 주장(主張)하는 설도 있다.

귀신 神(신)의 구성은 보일 시(示)와 펼 신(申)으로 이루어졌다. 示(시)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祭壇)을 본뜬 상형글자인데, 자형 상부의 一(일)은 조상신이나 천신에게 올린 제물을, 가운데 자형(丅)은 제단을, 그리고 좌우로 삐친 자형(八)은 제물에서 흘러나온 피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申(신)은 갑골문에도 보이는 자형으로 ‘번갯불’이 땅을 향해 퍼져나가는 모양을 상형한 것으로 ‘펴다’ ‘늘이다’는 뜻을 지녔다. 번갯불은 하늘에서 땅으로 유입되며 강력한 자기장(磁氣場)을 형성하는데, 이때 빗방울은 물론 하늘까지도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神(신)의 전체적인 의미는 양전자와 음전자가 충돌하여 빚어낸 번개(申)와 같이 위대한 힘에게 제사(示)지낸다는 데서 대자연의 ‘신’을 뜻하며, ‘정신’ ‘신통하다’는 뜻은 확장된 것이다.

피곤힐 피(疲)는 뜻을 나타내는 '병상에 드러누운 모양'의 병질엄(疒) 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지치다의 뜻을 나태내기 위한 피(皮)로 이루어져 병들어 지치다의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가죽 피(皮)자의 상형문자를 보면 손(又)으로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모습(模襲)이다. 이후 껍질이란 뜻도 생겼다. 호피(虎皮)는 '호랑이(虎) 가죽(皮)'이고, 대뇌피질(大腦皮質)은 '대뇌(大腦, 큰골)의 껍질(皮)에 있는 물질(質)'로, 대뇌의 표면(表面)을 덮고 있는 두께 1.5~4.5 mm의 회색질 얇은 층이다. 감각영역(感覺領域)과 운동영역(運動領域) 및 이 두 영역(領域)을 연결(連結)해 주는 연합영역(聯合領域) 등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가죽(皮)을 뜻하는 한자는 피(皮), 혁(革), 위(韋)자 등 세 가지가 있는데, 피(皮)는 짐승으로부터 벗긴채로의 가죽, 혁(革)은 털을 뽑아 만든 가죽, 위(韋)는 다시 가공(加工)한 무두질한 가죽이다. 총체적으로 피(疲)자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피곤할 피(疲)자는 병은 아니지만 병(疒)의 껍질(皮)이란 뜻으로 피곤(疲困), 피로(疲勞) 등에 사용(使用)한다는 뜻이다.

주역

[풀이] 앞의 性靜情逸에 뒤이어, 性과 情을 거느리는 주인인 마음(心)을 편안히 다스려 정신(精神)을 수고롭게 만들지 말라는 문구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思多太損神' 즉 생각이 많으면 정신을 해친다고 하였다. 사람이 욕심을 버리면 마음이 자연 맑아지고, 마음이 맑아지면 정신도 맑아지는 것이다. 대개 神은 음양조화의 묘용(妙用)을 이르고 鬼神은 음양조화의 공용(功用)을 일컫는다.

[字義] 心은 눁(점 주) 셋과 乙(싹 을). 심장의 네 구멍을 본뜬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지만 본래 세 군데의 눁는 삼재(三才)인 천지인(天地人)을 나타내고 乙은 싹이 움터 나옴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구성하는 세 가지 바탕인 삼재의 도가 비롯되는 본연의 마음을 가리킨다. 動은 重(무거울 중, 거듭 중)과 力(힘 력). 힘을 써서 무거운 짐을 움직임을 나타낸다.

輕(가벼울 경)이 홑 바퀴를 달아 지름길을 잘 달리는 가벼운 수레를 뜻함과 달리, 重은 수레(車)에 겹 바퀴를 달아 무거운 짐을 싣는 큰 수레를 본뜬 것으로 '거듭하다(겹치다)' 또는 '무겁다'는 뜻으로 쓰인다. 神은 示(볼 시)와 申(납 신, 아홉째 지지 신). 하늘에서 해와 달과 별의 밝은 빛(示)을 뿜어줌으로 인해 주렁주렁 열매 맺는 초가을(申)의 묘한 작용이 있게 된다는 뜻인데, 뒤에 생명의 신비를 주관하는 하늘의 '신'을 뜻하게 되었다.

단단한 껍질을 뚫고 뿌리를 내린(甲) 씨가 드디어 완전히 자라서 쭉 뻗는(申 → 伸·펼 신) 것이 참으로 신비롭게 보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疲는 눷(병들어 기댈 녁→ 疾)과 皮(가죽 피). 속으로 병든 게 아니라 밖의 가죽(껍질)에 병이 듦 즉 피곤함을 나타낸다.

[참조] 주역 계사전(繫辭傳)에는 '음양불측(陰陽不測)' 즉 음이나 양으로 헤아리지 못하는 존재를 神으로 일컫는다고 하였다. 또 중용에서는 鬼神을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視之而弗見)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지만(聽之而弗聞) 물건마다 본체가 되어서 떠나지 않는 존재(體物而不可遺)'라고 보았다.

  1. 性靜情逸 心動神疲 : 하늘이 仁ㆍ義ㆍ禮ㆍ智ㆍ信의 덕을 사람에게 부여한 것이 性이다. 情은 性의 발동이다. 心은 性을 실은 것이다. 神은 心의 신령함이다. 靜은 五常에 그쳐서 움직이지 않음이다. 逸은 편안하다는 뜻이다. 靜에 반대되는 것이 動이다. 疲는 애씀이 지극한 것이다. 이는 사람으로서 오상을 수련하는 자는 그 성품이 仁․義․禮․智․信에 그쳐서 발동하는 정이 모두 편안하지만, 그 오상을 수련하지 않는 자는 이와 반대로 心이 외물에 동요당하여 그 정신이 피로함을 말한 것이다.(≪釋義≫)
  2. 心 統性情者也 : 統의 풀이는 ‘통솔하다’와 ‘겸하다’로 논쟁이 되어왔다.